스마트 자동차의 시대가 성큼성큼 다가오면서 이에 대한 다양한 연구와 개발이 시도되고 있다. 스마트 자동차를 대변하는 키워드라면 ACES, 즉 ‘자율(Autonomous)’, ‘연결(Connected)’, ‘공유(Shared)’, 그리고 ‘전기(Electric)’라 할 수 있다. 여기에 나는 또 다른 중요한 키워드로 ‘확장(Expandable)’을 꼽는다. 스마트 자동차가 단순히 운송 수단의 기능을 넘어 독서, 휴식, 회의 등 기능의 확장을 불러올뿐더러, AR HUD등 증강현실 기술이 접목함에 따라 공간성의 확장 또한 이루어질 것이기
게임은 이제 VR/AR이라는 새로운 기술을 바탕으로 무한한 범위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혹자는 VR/AR이 가상현실을 기반으로 제작되는 콘텐츠이자 기술이지 게임의 분야에 속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VR/AR이 대부분 게임엔진이라는 기반 아래에서 구성된다는 점에서, 또한 사용자와의 상호작용에 의해 조작, 체험된다는 차원에서 게임의 한 분야라고 주장한다. VR/AR이 다른 매체와 구별되는 특이점은 피터 루빈(Peter Rubin)이 ‘미래는 와 있다’에서 밝힌 ‘체화된 현존감(Embodies Presence)’일 것이다. 체화
몇 년 전 한 대학교에서 한국과 중국의 공동주관으로 진행하는 미디어아트 전시에 참석한 기억이 난다. 많은 작품들 중 나는 특이한 작품 하나를 발견했다. 나란히 붙어있는 책상들 위로 여러 깡통들이 놓여있었고 프로젝터는 깡통들 뒤의 흰 벽면에 영상을 투사하고 있었다. 깡통 앞에는 녹색테이프로 고정시켜놓은 버튼 하나가 있었다. 그 작가는 내게 버튼을 눌러보라고 했다. 버튼을 누르자 익숙한 슈퍼마리오가 등장했다. 나는 슈퍼마리오가 그 깡통 그림자를 넘어갈 수 있도록 버튼을 눌러야했다. 익숙한 점프게임이었다. 그런데 버튼을 또 한 번 누르자
예술은 항상 새로움에 목말라한다. 따라서 예술은 기존의 것에 저항한다. 예술은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는 모든 것에 새로운 의문을 던짐으로써 그동안 구축해 놓았던 질서와 관습과 체계를 붕괴시키고자 한다. 사진기의 등장은 기존 예술가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하나의 사건이었다. 하지만 예술가들은 이 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새로운 표현방식으로 구축하는 한편, 인상주의, 야수파, 큐비즘 등 새로운 예술 사조를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나는 예술의 진정한 의미가 익숙함에 저항하고 거부하면서 새로움을 받아들이는 과정 속에 있다고 생각한다.
게임이 예술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는 컴퓨터 게임이 등장한 이래 끊임없이 대두되어 왔다. 로저 에버트(Roger Ebert)는 다른 예술형식과 비교하여 예술작품 수준의 게임은 없다고 주장한 반면, 아론 스머츠(Aaron Smuts)는 게임이 영화보다 더 종합적인 예술 환경을 구축할뿐더러 사용자의 참여를 유도하는 등 표현의 영역을 확장시킨다는 점에서 예술로 간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게임이 예술의 범주 안에 있는가에 대한 논의는 하위징아(Johan Huizinga)의 놀이하는 인간, 즉 ‘호모 루덴스(Homo Ludens)
지금까지 매체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사진과 영사기 등 매체의 등장은 항상 놀이에서 출발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매체는 단순히 놀이의 도구로서 존재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영역을 예술로까지 확장하는데 그 이유는 바로 예술가에게 있었다. 예술가는 항상 새로운 표현 기법과 형식을 갈구한다. 그들에게 사진의 등장은 곧 회화를 대신하는 예술 도구였으며, TV는 백남준에 의해 새로운 예술 형식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하나의 매체가 예술 형식으로 발전한다는 것은 그만큼 그 매체에 담길 콘텐츠의 스펙트럼이 넓어진다는 것을 의미할뿐더러, 그 매체
나는 대학원 연구원들과 함께 지난 1월에 열렸던 ‘CES 2019’에 참가하기 위해 미국 라스베가스에 약 일주일동안 머물렀었다. 우리는 CES전시관에 마련된 부스에 작품을 설치한 후, 라스베가스 호텔 내에 있는 카지노에서 몇 차례 갬블링(Gambling)을 즐길 기회가 있었다. 나는 한 슬롯머신에 앉아서 가장 저렴한 25센트짜리 배팅을 하고자 10달러짜리 지폐 두 장을 넣고 버튼을 누르면서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얼마가 지났을까. 10달러 정도 남았을 때 갑자기 내 슬롯머신의 상단에 있는 계기판에 오색빛깔의 불빛이 번쩍이
좋게 보면 한국 게임은 현재 성장통 중이다. 그것도 아주 심한 성장통. 어쩌면 이대로 아프다 끝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이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다시 한 번 날개를 펼칠 수도 있다. 국내 게임의 역사를 바라보면 90년대 초고속 인터넷망의 구축과 함께 성장하였다. 하지만 기술의 초고속 발전과 비교하여 우리의 시민의식은 매우 낮은 상태였고 저작권에 대한 인식도 제대로 없는 상황에서 게임의 불법 다운로드는 당연히 예상되는 결과였다. 게임 개발사는 ‘무료 이용 후 유료 전환’보다 좋은 수익 구조가 필요했으며, 아이템 유료화
여러분은 게임에 도덕적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게임은 우리를 과몰입으로 유도하고 사행성과 폭력성을 조장하기에 이를 방지하는 윤리적 책임 의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물론 그렇다. 폭력게임으로 가장 유명한 게임을 고르라면 ‘GTA(Grand Theft Auto)’시리즈일 것이다. 1997년을 시작으로 2013년 발매된 ‘GTA Ⅴ’는 2019년 공시 발표를 통해 전 세계 1억 장 이상을 판매한 게임으로 기록되었다. 현재까지 게임 역사를 통틀어 1억장 이상 판매된 단일 게임은 ‘테트리스’와 ‘마인크래프트’ 밖에 없었다. 기존의 게
여러분은 게임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게임을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놀이’가 떠오른다. 그리고 하나 더 추가한다면 ‘재미’일 것이다. 즉 게임은 재미있는 놀이, 혹은 놀이를 통한 재미의 경험을 의미한다. 그런데 조금 깊게 생각해보면 놀이는 ‘형식과 규칙’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항상 어떤 놀이인가를 이해한 다음, 그 규칙을 배우고 플레이에 참여하는 절차를 밟는다. 그러므로 게임은 곧 하나의 규칙과 형식을 갖춘 ‘규칙체계(System of rules)’라 말할 수 있다. 게임이라는 체계는 현실을 모방하면서도 현실과 다른 가상세계를
게임이 화두다. 게임은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항상 수많은 이슈를 불러일으키고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친다. 어린 아이부터 시니어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미치는 범위도 다양하다. 현재 국내에서 게임은 사행성과 과몰입의 문제가 있어서 질병코드로 분류하자는 목소리가 커가고 있다. 특히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장애 국제질병 분류를 한 이래 한국 정신의학계는 게임 콘텐츠에 대한 게임 질병코드 분류에 큰 관심과 지지를 보내고 있다. 게임이 질병코드로 분류되면 게임장애를 정신 질환으로 간주되어 진료비 청구가 가능해진다. 한편으로는 새로운 수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