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마지막 원고를 쓰는 이 순간, 감사한 마음뿐이다. 지난 9년간, 정확히는 17개 학기 동안 숭대시보가 베풀어 준 후의(厚意)에 감사하고, 늘 졸고(拙稿)를 높이 평가해주신 교수님들께 감사하고, 이메일로 피드백을 주신 여러분들께 감사하고, 원고를 늦게 주어도 싫은 내색 한 번 하지 않은 학생 기자님들께도 감사하다. 180번째 원고가 마지막 글이 될 줄은 몰랐는데, ‘180’이라는 숫자는 지금 이 순간부터 좋아하는 번호가 될 것이다. 기왕이면 ‘200’개를 딱 채웠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도 있지만, 나의 키와 비슷한 ‘1
숭대시보 여행칼럼을 마무리할 때가 된 것 같다. 2012년 2학기에 예루살렘으로 시작한 것이 이번 학기의 제천까지 이어졌다. 남극 대륙은 아직 가보질 않아서 다루지 못했지만, 6개 대륙에 있는 도시들 중 인상 깊었던 도시들은 나의 글감이 되었다. 아름다운 자연에 감탄했던 도시, 처참한 모습에 잠시나마 우울해졌던 도시, 먹는 것 하나하나가 나를 새로운 미각의 세계로 이끌어 주었던 도시, 영적인 감동으로 숙연해졌던 도시. 여행했던 도시 하나를 선정하여 원고지 12매에서 15매 정도의 분량으로 핵심만 뽑아서 묘사하는 일에는
1985년에 완공된 충주댐은 아름다운 인공호수를 만들어냈다. 충주와 제천, 그리고 단양에 걸쳐져 있는 꽤 커다란 호수를 충주 사람들은 충주호라 칭하고 제천 사람들은 청풍호(淸風湖)라 부른다. 그런데 충주호보다는 청풍호가 더 낭만적으로 들린다. 공식적인 명칭은 댐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충주호지만, 청풍호라고 하면 어디선가 신선한 바람이 불어올 것 같은 느낌이다. 청풍호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이유는 댐 건설 당시에 가장 많이 수몰된 지역이 제천시 청풍면이어서 그렇다고 한다. 설득력이 있는 이유다. 예컨대, 지하철 숭실대입구역이 살피재역
취재를 의뢰받아 실로 오랜만에 대구에 왔다. 지인의 경조사와 2002년 한일월드컵 행사를 사전조사하러 몇 번 오긴 했는데 이렇게 대구의 곳곳을 돌아보러 온 건 처음이다. 관심을 가지고 보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음을 이번 여행에서도 다시 깨닫는다. 예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서성로 일대의 적산가옥(敵産家屋)은 그것이 가진 역사를 따지기 이전에 꽤 고풍스럽게 보인다. 적산가옥이란 식민지 시절 일본인이 소유했으나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전쟁에서 패망하면서 남기고 간 주택을 의미한다. 적산가옥의 대부분은 정부에 귀속되
시민혁명 이전에 존재했던 절대군주제 국가에서 가장 큰 죄는 대역죄(大逆罪)다. 왕권을 찬탈(簒奪)하고 왕을 죽이려고 하는 행위는 어떤 이유로도 용서받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동아시아의 역사를 포함해서 세계사를 조금만 들여다봐도 수많은 대역행위가 발생했음을 알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대역이 성공하지 못할 경우에는 삼족(三族)이나 구족(九族)이 살해당하는 처절하고 잔인한 형벌을 받게 되지만 성공할 경우에는 새로운 왕조가 개국되거나 새로운 왕을 중심으로 탄탄한 왕권이 구축된다는 것이다. 권력을 차지하려는 인간들의 치열한 투쟁의 한 가지
국가에 위기가 닥쳤을 때 백성을 버리고 혼자만 살겠다고 도망친 왕이나 백성이 죽임을 당하고 있는데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왕은 이미 왕이 아니다. 껍질만 왕일 뿐 동족을 배반한 배신자일 뿐이다. 왕의 배신은 일반 백성의 배신보다 수백 배 이상 가중처벌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나는 사학자가 아니라서 섣불리 조선시대의 왕 중 특정인을 백성을 배반한 왕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그동안 봐왔던 여러 사료(史料)를 토대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무능하고 사악하고 이기적인 왕이 몇 명 있다. 굳이 그들의 이름을 열거하는 것 자체가 의미 없
코로나바이러스가 점점 소멸하여 물러갈 것 같았던 지난 6월 중순, 여러가지 면에서 취향이 맞는 의사 친구와 충청남도 지역을 여행했다. 서울에서 오랫동안 인술(仁術)을 베풀던 친구가 서울에서의 의사 생활을 모두 정리하고 낙향(落鄕)한다고 했을 때, 내심 걱정이 앞섰다. 많은 의사들이 서울로 올라와 개원(開院)하려고 하는데, 고향이기는 하지만 서울이 아닌 곳으로 내려간다는 사실에 선뜻 동의해 주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방에도 양질의 의료진이 더 많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어서 결국에는 친구의 결정에 박수를 보냈다. 나로서는 아쉽
독일의 남부는 독일에서 가장 큰 주인 바이에른(Bayern)주와 면적으로는 바이에른 주보다 작지만 경제적으로는 바이에른 주 못지않은 바덴뷔르템베르크(Baden Württemberg)주로 대표된다. 바이에른 주와 바덴뷔르템베르크 주는 여러 가지 면에서 늘 비교가 되는데, 그래서 그런지 두 주에 사는 사람들의 자존심 또한 대단하다. 독일에 이런 용어가 적용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역감정’도 상당한 것 같다. 그런데 두 지역의 감정은 ‘얄팍한 지역적 자존심’이 아니라 실력에 바탕을 둔 ‘의미 있는 자부심’에 가깝다. 바덴뷔르템베르크
돌이켜 생각건대, 2000년대 초반부터 중반까지 약 4년 동안은 강화도에 참 많이 놀러 다녔다. 해외에서 체류했던 기간을 제외하고, 많이 다닐 때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주말을 이용하여 강화도에 간 것 같은데, 특별한 목적이나 일로써가 아니라 순수하게 식도락이나 여흥(餘興)을 즐기러 매달 한 번씩 방문하는 도시가 얼마나 될까. 지금 생각하면 참 이상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곰곰이 다시 생각을 해보면 강화도는 서울에서 의외로 가까울 뿐만 아니라 먹을 것도 풍성하고 볼 것도 많고, 더구나 교통 또한 나쁘지 않아서 쉽게 근접할 수 있는 곳
이탈리아는 볼 것도 참 많고 먹을 것도 참 많다. 그래서 그런지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를 여행하면서 ‘참’이라는 수식어를 곳곳에 ‘참 많이도’ 붙였다. 그중에서도 토스카나 주(州)는 보석처럼 빛나는 지역이다. 꽃의 도시이자 르네상스의 발원지 피렌체가 있고, 피렌체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고도(古都) 시에나(Siena)도 있다. 전 세계 와인 애호가들을 기쁘게 하는 작은 마을 몬탈치노(Montalcino)가 있고, 키안티(Chianti)의 구릉지역에서는 세계 최고급 와인을 만들기 위한 포도가 지금 이 순간에도 강렬한 햇빛을 받으며 자라고
세계사 시간에 배웠던 그 유명한 이름 바이마르(Weimar). 시험을 보기 위해 ‘바이마르’가 도시 이름인지도 모른 채 ‘바이마르 헌법’이라는 단어의 조합을 외웠었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야 바이마르가 사람 이름이 아닌, 독일 중동부에 있고, 베를린에서도 아주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도시임을 알게 되었다. 요즈음엔 중고등학교에서 어떤 방식으로 역사를 배우는지 잘 모르겠지만 내가 공부하던 시절의 역사란 그냥 무조건 외우는 것이었다. 무조건 외우다 보면 점수를 잘 받을 수 있는 과목이 세계사였고 국사였다. 바이마르 헌법이 가진 역사적
대망의 2020년이 열리자마자 여행의 운(運)이 내 몸에 내려온 듯했다. 여행의 ‘내공’이 무르익어 올해를 기점으로 빛을 발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지난 1월 28일에 출국하여 2월 23일에 귀국하기까지 무려 26박 27일 동안 스리랑카와 라오스로 EBS 촬영을 떠났다. 평소에 즐겨보던 TV프로그램에 내가 큐레이터로서 출연하여 ‘특별한 여행’의 여정을 설명하게 된 것이다. 긴 촬영을 하면서 왜 이 프로그램의 이름에 여행이 아닌 ‘기행(紀行)’이 들어갔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기행이란 여행하는 동안 보고, 듣고
강남 3구 연합, 마포구, 서대문구가 서울의 현대성, 서민의 애환, 역사적 교훈을 내세우며 스스로가 서울에서 최고의 볼 것을 보유하고 있다고 자랑을 늘어놓는 동안 조용히 있던 성북구부터 말문을 이어갔다. 성북구: 강남 3구 연합의 봉은사, 서대문구의 봉원사가 모두 훌륭한 사찰이지만 서울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사찰은 길상사(吉祥寺)라고 확신합니다. 길상사에는 법정(法頂)스님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법정스님의 를 읽고 큰 감명을 받은 김영한이라는 여인이 오랫동안 요정(料亭)으로 사용되었던 대원각을 법정스님에게 시주
종로구, 중구, 용산구가 고궁(古宮)과 박물관을 자랑하며 최고를 뽐낼 때, 다른 구들도 볼 것을 강조하며 자웅(雌雄)을 겨룰 태세로 말을 시작했다. 강남 3구 연합: 서울의 현대성은 어디서 찾을 수 있나요. 서울하면 강남이죠. 빨리 한강에 있는 수많은 다리를 건너서 강남으로 넘어 오시죠. 강남은 ‘강남스타일’을 통해서 보듯 이미 세계인이 사랑하는 고유명사입니다. 기라성 같은 글로벌 기업들은 강남에 몰려 있습니다. 그건 트렌드 변화의 중심이자 편리한 인프라가 구축된 곳이기 때문입니다. 1988년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서울 올림픽의 성화가
현재 지구촌을 강타하고 있는 ‘코로나19 시대’에 해외여행을 언제부터 자유로이 다시 할 수 있을지 정확히 예상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변종 바이러스가 생성될 때마다 국가 간 인적교류는 고사(姑捨)하고 국내의 지역 간 이동도 부담스러워진다. 특정 지역에 대한 편견을 넘어 괴담마저 만들어지지 않을까라는 걱정도 크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사는 도시 서울에 대한 관심이 근래 들어 많아졌다. 그동안 간과했던 서울의 명소들이 새롭게 다가온다. 초거대도시 서울은 크고 작은 구(區)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구에 산재한 명소들을 찾아다니는
코로나 바이러스는 일상의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학생들은 학교에 등교하지 않고 여러 가지 방식으로 온라인 수업을 하고 있으며,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입장이 되지 않는 장소가 많아졌으며, 수시로 손을 닦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은행에서는 지폐를 소독하기까지 한다. 줄을 설 때도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은 기본적인 매너가 되었고, 스포츠 경기장이나 극장에서는 좌우전후로 한 좌석씩 띄어 앉아야 한단다. 대중교통을 꺼려하는 사람들이 가까운 거리라면 자전거를 이용하여 출퇴근 하는 경우가 늘고 있어서 자전거가 마스크처럼 구하기 힘든 아이템이
사람들은 태생적으로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하는 속성이 있다. 조용히 하라고 하면 더 떠들고 싶고, 나가지 말라고 하면 더 나가고 싶어진다. 나도 그런 속성을 고스란히 몸에 지니고 있는 것 같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많은 모임이 연기되거나 취소돼 일을 마치고 곧바로 집으로 오게 되는데, 평소라면 쉬기 바쁘던 내가 요즈음은 누구를 불러서 ‘술 한 잔’ 먹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있다.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누군가와 마시고 싶어지는 마음이 생기는 걸 보면 나도 ‘청개구리’과임을 부정하지 못한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나는 순수한 여행가다. 일본의 ‘살아있는 양심’ 무라카미 하루키가 멀리서 들려오는 북소리를 듣고 여행을 결심한 것과 마찬가지로 나도 그저 떠나야 한다는 마음의 신호를 전달받고 여행 가방을 싼다. 여행을 비즈니스와 엮을 생각이 전혀 없다. 여행은 여행으로서만이 그 역할과 의미를 다한다. 그리고 친족이 아닌 타인을 위해서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도 전혀 없다. 나 혼자 가든 여럿이서 같이 동행하든 내 마음이 동할 때 여행을 떠난다. 물론 동행할 때는 취향과 가치관이 서로 맞는 사람들하고만 떠난다. 여행의 기간이 하루 이상만 되어도 각기
2020년은 2010년대의 마지막 해이지만 숫자상으로는 2020년대의 첫해이기도 하다. 실제로는 2021년이 2020년대의 첫해이지만 사람들은 ‘새로운 숫자’에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1999년에서 2000년으로 해가 바뀔 때 사람들은 ‘Millennium Bug’를 이야기하며 호들갑을 떨었었다. 컴퓨터가 오작동해서 지구가 멸망할 것같이 과장하던 때가 벌써 20년 전의 일이라니 믿기지가 않을 정도다. 1999년 대재앙이 와서 인류가 멸망할 것이라는 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의 말이 회자(膾炙)되면서 ‘알지 모를’ 불안감이 퍼졌던 기억도
일본이 1905년 을사늑약(乙巳勒約)을 체결하고 제일 먼저 한 일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것이다. 외교권은 국제사회에서 국가를 대표하여 발언하고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독립국가가 가져야 할 최소한의 권한이다. 외교권 상실은 국가를 보호할 수 있는 힘을 완전히 잃는 것과 같은 의미다. 그 누가 외교권이 없는 국가와 조약을 맺고 협력을 하려하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대한제국의 황제 고종은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를 파견했다. 국사 시간에 밑줄을 그으며 그 이름을 외웠던 이준(李儁), 이상설(李相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