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를 시작하기 전에 숭대시보 편집국에서는 ‘알쓸신법(알고보면 쓸모있는 신비한 법학상식)’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제안했더랬다. 하지만 도대체 법학상식의 어디가 신비한가? 달리 마땅한 형용사가 없길래 제목을 ‘씬스틸law’로 바꾸어 연재를 시작했다. 시나이산에서 받은 모세의 十誡라면 신비한 법일 수도 있겠다. 그것은 법인 동시에 도덕이며 종교였으니. 그러나 현대의 법은 다른 사회규범과 다른 분명한 특질을 가지는데, 바로 조직적인 국가권력의 지지를 받는다는 것이다. 양심의 가책 또는 인간 대 인간의 비난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힘
이 영화에는 두 가족이 등장한다. 미라, 무신(미라 남동생의 아내), 채현(무신의 전남편의 전처의 딸)으로 이루어진 미라의 가족과, 선경, 경석(선경엄마가 내연남과 사이에서 낳은 아들)으로 이루어진 선경의 가족이다. 여기저기 이 영화에 대한 소개를 찾아보면 피 한 방울 안 섞인 사람들이 사랑으로 얽혀서 가족이 되었다고 많이들 강조하는데, 영화 속 가족 구성이 독특해서 그렇지 피 한 방울 안 섞인 이들이 가족이 되는 일은 드물지 않다. 어쩐지 이상해 보이는 가족 구성원들 중에 민법상 가족이 아닌 사람은 채현뿐이다. 민법상 가족은 배우
어색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법은 구속이 아니라 자유를 위해 존재한다. 근대사법은 개인을 구속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래서 인간은 스스로 판단하고 그가 원하는 바를 표시하여 자유롭게 법률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그런데 무엇을 원하고 표시하는 것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영화 『인사이드아웃』은 사람의 생각과 감정, 욕망이 겉으로 드러나는 과정을 다채롭게 시각적으로 구현하여 보여준다. 주인공 소녀(라일리)의 머리에는 기쁨(joy), 슬픔(sadness), 버럭(anger), 까칠(disgust
영화의 주인공 재훈(이병헌)은 아들의 영어공부를 위해 가족을 호주로 보내고 혼자 산다. 그는 증권회사 지점장으로 열심히 일했지만 회사가 부실채권을 대량으로 팔고 나서 법정관리에 들어가자 고객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괴로워한다. 분노에 찬 채권자들 앞에서 무릎을 꿇은 주인공에게 욕설이나 폭력보다 더 가슴 아픈 것은 지점장님을 믿었으니 한 번만 도와달라고 애걸하는 가난 한 채권자와 돌봐줄 이 없어 거기까지 따라온 어린아이의 눈빛이다. 잠 못 이루고 힘들어하던 주인공은 결국 아내와 아들이 있는 호주로 떠난다. 길에서 만난 워킹 홀리데이 여학
머물던 장소를 멀찍이서 다시 보면 왠지 낯설어 보이는 일이 드물지 않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아파트는 안에서 볼 때와 밖에서 볼 때의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현관 문을 닫고 들어가 외부로부터 차단되어 온전히 누리던 네모반듯한 공간은, 지상에서 무심코 고개를 돌려 다시 보면 수많은 창문 중 하나에 불과하다. 어디가 거긴지 알기 위해 일층부터 하나씩 세면서 올려다보면 갑자기 멀고 생경하게 느껴지는 나의 방. 이 영화 속에서 인물들이 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지고 다시 그리워하는 장소는 파리의 어느 아파트이다. 주인공들은 동경의 대상을 중정(中庭
“니.. 내 누군지 아나? 내가 인마 느그 서장이랑 인마! 어저께도! 같이 밥 묵고! 싸우나도 같이 가고! 마, 다했어!”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이 감칠맛 나는 대사는 죄를 짓고 잡혀간 반건달(최민식)이 경찰들을 향해 내지르는 一喝이다. 그를 체포한 하급 경찰이 오히려 곤욕을 치르고 반건달은 당당한 모습으로 풀려 나온다. 평소에 아낌없는 노력을 기울여 다진 인맥의 힘이다. 수첩에 빼곡한 전화번호로 기록된 인맥은 적법의 세계에서나 불법의 세계에서나 매우 유용하다. 싸워야 할 때 싸우는 게 건달이라는 조폭 세계의 룰을 충실히
영화『 러브레터』의 국내 개봉 당시 포스터 속에서 고개 들어 허공을 바라보는 주인공의 옆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아 미용실에 다녀온 적이 있다. 그 결과 나는 숱 많고 굵은 머리카락 덕분에 ‘하이바(안전모)’라는 별명으로 잠깐 불렸을 뿐,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컸다. 이와 같은 씁쓸한 기억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여전히 내게 눈처럼 깨끗하고 아련한 인상으로 남아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탄성과 한숨을 자아내는 안타까운 도서 카드 한 장. 그것은 오랜 시간 도서관에 잠들어 있다가 비로소 상대방에게 도달한 고백이다. 최종 목적지인 여자의 손에
어여쁜 자매가 나란히 앉아 피칠갑의 흰 옷을 입고 앉아 있는 『장화, 홍련』의 포스터와 달리 영화에는 유혈이 낭자한 장면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귀가 멍멍하도록 울려대는 비명이나 폭음도 거의 없다. 고적한 집과 평화로운 풍경, 잔잔한 음악 속에서 공포를 자아내는 것은 새엄마(은주)와 자매 중 언니(수미)의 적대감, 그리고 곧 희생될 듯 가련한 동생(수연)의 위태위태한 분위기이다. 자매의 아빠와 새엄마, 친엄마의 자세한 사연은 영화 중반이 넘어서야 짧게 드러나지만 그 사연을 알지 못해도 자매와 새엄마의 적대관계에 대해 의문을 품는 사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아프리카 어딘가의 어린이를 사랑하는 것보다 어렵다. 층간소음의 주범인 위층 식구를 염려하는 것보다 눈물겨운 사연의 방송화면 위에 뜬 ARS번호를 찍는 것이 훨씬 쉬우니 말이다. 아이들이 태어나 가장 먼저 싸우는 것은 손위 형제자매이고 학교에 들어가면 짝하고 수시로 다툰다. 담과 울타리를 마주 대고 있는 것, 같은 부모의 자식이라는 것, 어깨를 나란히 하고 수업을 듣는다는 것은 언뜻 가깝고 다정한 사이를 연상케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물질, 애정, 공간 등의 한정된 자원을 두고 계속 경쟁할 수밖에 없기 때문
“그 미소와 손짓에는 매력이 가득했다. 그것은 매력 잃은 육신 속에 가라앉아 있었던 한 몸짓의 매력이었다. 그 부인이라고 해서 자신이 이제 더는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모를 리 없을 테지만, 그녀는 그 순간만은 그 사실을 잊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일부를 통해서 시간을 초월하여 살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나이 없이 살면서, 어떤 이례적인 순간들에만 나이를 의식하는 것이리라.” -밀란 쿤데라, 『불멸』(김병욱 譯) 중 해변의 작은 마을에 노년의 자매가 살고 있다. 언니(자넷)와 동생(우슐라)은 성격
아내(임수정)와 남편(이선균)은 유학시절 일본에서 만났다. 지진으로 흔들리는 탁자 아래서 첫눈에 반해 연애하고 결혼한 부부는 현재 다정한 말 한마디 없는 사이다. 아내는 부정적인 감정을 쏟아내기 바쁘고 남편은 아내를 피하기에 바쁘다. 아내에게서 벗어나고 싶은 남편은 마성의 카사노바인 옆집 남자(류승룡)에게 아내를 유혹해 달라고 부탁한다. 행복한 가정은 비슷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남녀가 혼인을 결심하는 이유는 대부분 비슷하지만 혼인관계가 파탄에 이르는 이유는 실로 다양하다. 그런데
소유권(所有權)이란 어떤 물건의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를 전면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권리이다. 여타의 재산적 권리에 부연되는 구체적이고 건조한 설명과 비교해볼 때 소유권에 대한 수식은 화려하다 못해 현학적이다. 소유권은 혼일(混一)하고 탄력적이고 항구적(恒久的)이다. 소유권은 배타적이고 대세적(對世的)이며 가장 완전한 물권(物權)이다. 설령 소유권에 대해 모른다고 하더라도 무엇인가를 온전히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사람을 안도하게 하는가. 영화 『카모메 식당』은 식당주인(사치에)과 우연히 그녀와 합류하는 인물들의 소소한 사연들을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