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문학사는 귀스타브 플로베르를 현대문학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1856년 프랑스에서 그가 발표한『마담 보바리』는 전위를 자처하는 현대작가들 사이에서 문학의 정전으로 숭배받는다. 생전에 전설이 되었지만 1880년 작가가 죽자마자 그의 글을 모은 전집이 속속 발간되었다. 특히 소설만큼이나 값진 문화사적 기념비로 평가되는 서간집을 포함한 ‘정본 전집’을 만들기 위한 학자들의 노력은 세기를 넘겨 이어졌고 1936년경에야 비로소 ‘소설 정본’두 권이 완성되었다. 장 부뤼노 교수가 ‘서간집 정본’수립에 뛰어든 것이 1960년대 중반이었고 5권의 주석본이 완료되어 문자 그대로 플로베르의 최종 전집이 완성된 것은 2007년이었다. 한 작가의 비평 정본을 완성하는데 기울인 세월을 대충 계산해도 130년이 넘는다. 특히
“가장 고요할 때/가장 외로울 때/내 영혼이/누군가의 사랑을 기다리고 있을 때/나는 책을 연다/밤하늘에서 별을 찾듯 책을 연다/보석상자의 뚜껑을 열듯/조심스러이 연다…(후략)…” 다형 김현승의 시 첫 연이다. 시인은 책을 펼치는 것을 마치 밤하늘의 별을 찾듯, 보석상자의 뚜껑을 열듯, 조심스럽고 소중한 행위로 비유한다. 그리고 책 속에서 기쁨과 슬픔, 괴로움과 희망을 노래해 줄 ‘영혼의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음도 노래한다. 그래서 시인은‘책과의 여행’을 그 무엇에도 뒤지지 않는 행복한 여정으로 여겼나 보다. 책이 주는 기쁨과 가치에 대해서는 이미 수많은 선현들의 증언이 있다. 그런데도 현실은 자못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인터넷 서점이
캠퍼스에는 초록빛이 완연하고 싱그러운5월 인데도 현실로 눈을 돌리면 계절만큼 상큼하지는않은것같다. 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된 적이 있다. 사회 전반적으로 ‘아프니까 청춘’임을 수긍하고 인정하는 듯한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여러 매체를 통해 거론되었다. 그런데 과연 청춘들만 아프고 나머지 계층은 평안하게 태평성대를 구가하고 있는지, 또한 청춘들이 아픔을 느낄 수 없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아픔이란 같은 상황이라도 민감한 사람이 더 깊이 느끼고 멈춰있기보다는 활발하게 움직이는 상태에서 더 많이 느끼게 된다. 청춘들은 지금까지 대부분 수동적으로 가르침을 받아오다가
주말에 무심코 인터넷 서점에서 과학 분야의 베스트셀러 목록을 살펴보다 상위 순위를 차지하고 있는 신간을 발견하였다. 카이스트 세 명의 교수가 학생들을 위해 대중 강의를 진행하고 그 강의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개인적으로 강의 내용을 담은 책들을 좋아한다. 규격화된 일반물리학 강의를 새롭게 구성한 최무영 교수의 , 최근 중문학과 교수님이 추천해 주신 신영복 선생님의 등을 읽고 있노라면, 마치 강의를 듣고 있는 듯한 생생함이 느껴져, 과거에 그 꿈 많고 열정 가득했던학창시절로 되돌아가는 듯해서다. 강의는 가르침과 배움이 동시에 진행되는 또 하나의 학술활동이다. 장기간의 진지한 사유와 통찰의 결과로 얻어진 학술지식을 그 내용에 익숙하지 않는 학생 대중들에게 그들의
대졸자 취업문제가 청년실업문제의 일환으로 정부차원 뿐 아니라 대학에서 중요한 사안으로 떠오른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필자도 40년 전 대학생활을 통해 대기업 종합상사에 힘들게 취업했던 경험이 있다. 그 시절에는 일자리의 종류가 매우 한정되었고, 지원자격도 특정 전공에 국한되었을 뿐 아니라 지원자의 연령제한도 당연시되었고, 심지어 학벌차별, 지역차별 등이 공공연했으니, 번듯한 직장에 취업하기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였다. 오늘날 정부는 대학이 학생들을‘생산품’취급하며 일자리를 쥔 기업들의 입맛에 따른 ‘맞춤형 제품’을 만들어 많이‘납품’하는 것을 경쟁력 있는 대학으로 대우하여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하고 있기 때문에, 대학들은 취업률 제고에 매달려 온갖 노력을 기
리더십의 전문가 미국의 존 맥스웰 목사는 지도자의 자질로‘섬기는 자세’등 여러 항목을 나열하여 설명하고 있다. 또 일반적으로 지도자의 덕목으로‘언행일치’를 말하기도 하며, 정치인의 생명으로는‘도덕성’을 말하기도 한다. 중국의 송나라 학자 주자는 근사록에서 지도자의 덕목으로 여러 가지를 열거하였는데 그 중의 하나가 ‘정직하고 솔직하면서도 남의 결점을 들춰 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 간단하나마 앞에서 언급한 ‘섬기는자세’, ‘언행일치’, ‘도덕성’, ‘정직성’등은 우리 기독교인과 기독교 대학이 실천해야 할 덕목이기도 하다. 누구보다도 지도자가 솔선수범하여 이를 지켜야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손으로 선출한 지도자는 우리를 위하여 우리의 어려운 고통을 해소하고 복지를 챙기고 부모가 자녀를 돌보
2011년 여름, 나는 숭실대학교 융합기술원의 관계자들과 함께 동경에 출장을 간 적이 있다. 여섯 명이 함께 움직이며 지하철 표를 구입하고 갈아타고 내려서 또 한참을 걸어가서 업무를 보았던 경험은 마치 여행을 다니는 느낌이어서, 나는 그 출장이 너무나 즐거웠다. 그렇게 이동하면서 흥미로운 광경이 내 눈에 들어왔는데, 그것은 지하철에서 자그마한 그 옛날 삼중당 문고판 서적을 읽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 자그마한 책은 사람에 따라 각기 다른 껍데기로 소중하게 싸여 있었는데, 갖가지 천으로 만든 것을 비롯해서 종이, 가죽으로 만들어진 것도 있었다. 사실 나는 그 껍데기들이 매우 아름다워 보였다. (나는 3년 전 숭대시보에‘껍질이 좋아요’라는 에세이를 기고한 적도 있다.) 그래서 나도 그러한 멋진 책 껍데기를
학기가 시작되고 서서히 봄기운이 돌기 시작하면서 캠퍼스는 학생들로 북적인다. 여기서 말하는 학생들이란 당연히 남학생·여학생 구분없는, 그냥‘퉁’쳐서 대학생을 의미한다. 남녀 학생들이 함께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고 도서관에서 공부하며 식당에서 함께 밥을 먹고 캠퍼스에서 자유롭게 함께 어울려 활동하는 모습은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모습이기에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다. 우리나라의 몇 개의 대학을 제외하고 대학 교육은 남녀가 함께 공부하는 혼성교육의 형태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혼성교육과 단성교육의 효과성에 대한 논의는 교육학계에서 지속적으로 있어 왔는데, 요지는 이 두 개의 방식 중 어느 것이 교육적 효과가 더 큰가에 관한 것이다. 한국교육개발원의 자료에 따르면 전통적으로 우리나라는 유교문화 등의 영향으로
작년 말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스마트폰 사용자 수가 3천 2백만 명으로 세계 7위이고, 전체 휴대전화 사용자 중 59%가 스마트폰을 사용하여 보급률 면에서 세계 2위라고 한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서 스마트폰 사용자는 흔히 찾아 볼 수 있고, 스마트폰 구입을 고민하는 모습들도 많이 보게 된다. 스마트폰이 비교적 고가의 제품인 까닭에 구입 시 여러 가지를 고려하게 되는데, 그 중 하나가 얼마나 사용하기 편하고 보기 좋은 UI(User Interface)를 가지고 있는가이다. UI는 제품과 사용자가 만나는 접점인데, 다시 말하면 사용자가 제품을 만지고 조절하고 느끼게 되는 제품의 겉면이라고 할 수 있다. 사용자는 제품의 속을 보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제품의 겉면인 UI와 상호작용을 하므로, 당연히
박창희 교수(언론홍보학과) 완연한 봄기운이 숭실 캠퍼스에도 찾아왔다.선후배들이 다양한 동아리나 학회를 소개하는 진열대가 이곳저곳에서 장사진을 이루며 활기찬 대학생활의 생동감이 느껴진다. 어제 입학식과 개강을 한 것 같은데 벌써 3주차 수업의 시작이다. 나름대로 한 학기 계획을 세우고 수업도 열심히 하자는 결심이 아직 유효한 때이다. 하지만 계획도 계획 나름이고 열정과 노력도 의미 있는 곳으로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게 해야만 학기말에 후회 없이 잘 했구나 하는 스스로의 만족감에 뿌듯한 방학을 맞이하게 될것이다. 학생들에게 자주 이야기하는 책의 구절들이 있다. 인생을 여든 살 기준으로 하루로 생각한다면 우
지난 겨울 ‘사회대 글로벌현장학습’으로 아프리카 탄자니아를 2주 동안 방문했다. 아프리카 하면 우리는 쉽게 기아, 빈곤, 에이즈, 분쟁 등의 부정적인 상황을 떠올린다. 2주라는 기간이 이러한 편견을 불식시키기에 충분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탄자니아 방문은 아프리카도 희망과 열정이 있는, 밝은 마음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살아가는, 단지 동정과 시혜의 대상만이 아닌 곳이라는 것을 새삼 일깨워줬다. 탄자니아는 동아프리카에 위치한 인구 4천 만이 조금 넘는 아름다운 나라다. 국가 내에 120개 가 넘는 부족이 존재하고 국민 대다수가 무슬림이나 크리스천으로 이루어진 다종교 사회임에도 거의 분쟁 없이 지속적으로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루고 있다. 르완다, 콩고를 비롯한 이웃나라들이 부족 분쟁으로 극심히 고
지난 2월 1일에 제13대 한헌수 총장의 취임예배가 있었다. 숭실 구성원과 많은 축하객들 속에서 숭실은 새 지도자를 맞이하게 됐다. 총장의 향후 4년간의 학교경영 의지가 담긴 취임사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있다. "이제 우리는 기독교적 정체성을 이 땅의 빛으로 만들어 가기를 원합니다.”란 약속이다. 숭실의 정체성을 가장 먼저 강조한 것이 매우 인상적이다. 그렇다면 숭실 정체성의 현주소는 어떠한가? 지난해 본교 115주년 개교기념일 즈음하여 숭대시보에서 주관한 설문조사의 통계 결과를 보자.‘ 숭실다움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40%의 학생들과 16%의 교수들이 '한번도 들어 본적이 없다’고 대답했다. 또한 '학교를 홀보할 때 어떤 이미지를 부각시켰으면 하
‘숭실대 644.’포털사이트 네이버 에 숭실대를 입력하자마자 뜨는 연 관검색어다. 이른바‘숭실대 644’ 사건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한 누리 꾼이“나 644인데 공대 예비 10번이다.”라는 글을 게재하면서 시작됐다. 글이 올라온 지난 17일(목)부터 다음 날까지 ‘네이버’의 실시간검색어 1위를 차지할 정도로 논란은 거셌다. 이에 입학처는 17일(목), 입학처 홈페이지에‘학부 모·수험생 제위’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하지만 6줄 이 전부였던 본문 중 해명은“포털에 게시된 학과의 최 근 2년간 최종 등록자 성적은 2011학년도 87.6점, 2012 학년도 89.5점입니다.”뿐이었다. 25일(금), 총동문회 홈 페이지에 올라온 입학처의 입장 또한 해명이 되지 않았 다. 수험생과 재학생이 원하는 답변은‘64
매해 그러하듯이 이번 2월에도 어김없이 이별의 시간이 다 가왔습니다. ‘88만원 세대’,‘아픈 청춘 세대’인 여러분이 냉혹한 현실 세계로 내몰리는 것을 보아야 하는 마음 아픈 시기이지요. 여러분 중에는 원하는 직장을 구해 편한 마음으로 사회로 나가는 학생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학생들은 미래 에 대한 대책 없이 불안한 마음으로 숭실의 문을 나서야 할 것 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여러분을 사회로 보내는제마음이 편치 않게 됐습니다. 예전에는 가을학기가 종강되기 전에 직장을 구한 예비 졸업생들이 태반이어서 부득이 종강을 일찍 할 수밖에 없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제 그 시절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엘도라도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힘들 때 따뜻하게 보듬어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강의 시간에
지난달 진행된 학생회 선거에서 총여학생회에‘와락’선본이 당선됐 다. 하지만 선거 전부터 지금까지 본 교 커뮤니티 사이트‘유어슈’자유 게시판에는 총여의 실효성에 관한 학생들의 불만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글의 높은 조회수뿐만 아니라, 댓글을 통해서도총 여존재와 공약에대한학생들의불만을알수 있었다. 학생들의 불만은 이렇다. 홍보물에 나타난‘여성이기 때문에 교내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은 사례’가 과연 무엇 이며, 여성을 위한 공약만을 가진 학생회에서 양성평등 을 찾을 수 있냐는 것이다. 총여가 한쪽의 일방적인 권리 를 대변하는 동시에 남녀 양쪽을 포용한다며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학생들은 총여의 정체성과 존재의 필요성 에대해 의심하고 있다. 그러나 투표에서 보이는 학생들의 의견이 온라인 여 론과는 달랐다
교육과 함께 연구를 지향하는 대학에서의 교육이 초중고교 의 교육과 다른 점은 연구자 양성 교육이 포함된다는 점이다. 너무 가벼운 비유이겠지만 학문의‘소비자’뿐만 아니라‘생산 자’를 양성하는 교육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러한 대학관을 낡은 것으로 보는 분위기가 엄존한다. 무한 경쟁 시대의 대학은 학생들의 취업 교육이 가장 큰 목적이고 연구자 양성은 대학원으로 넘겨야 한다는 것이다. 아니 어쩌 면 이러한 분위기는 대학원까지도 취업의 최전선으로 몰고있 기도 하다. 이러한 압박 속에서‘연구자 양성 교육’은‘한가한 소리’로 치부되며, 학부뿐 아니라 대학원에서조차도 기존 이론의 학습과 수입 학문 현상이 더 깊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으로는‘지식정보사회’라는 새로운 경향도 병존한다. 정보통신
유럽 역사가들은 유럽의 지난 2000년 문명지도를 바꾸어 놓은 한 사람을 뽑으라면 주저없이 사도 바 울을 뽑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가 되기 전, 그는 사울이라는 이름을 가진 열혈 유대교 청년 랍비 후보생 이었다. 그가 예수를 직접 보았을 가 능성은 있으나 둘 사이의 의미 있는 조우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나사 렛 예수의 가르침을 이단이라고 판 정한 바리새파의 입장을 신봉한 나 머지 예수의 추종자들을 박멸하는 일에 투신했다. 이스라엘 본토의 모 든 예수 추종자들을 제거한 후에 갈 릴리에서 40Km 북쪽으로 떨어진 곳 에 있는 다메섹의 예수 추종자들을 체포하러 질주했다. 하지만 다메섹 에 거의 다 도착할 즈음에 하늘빛의 공격을 받고 고꾸라져 시력도 잃었 다. 역설적이게도 시력마저 잃은 사 울에게 영광의
지난 28일(수) 학생회 선거 투표로 베어드홀 앞이 분주했다. 푸른색 천 막 안 투표소에는 투표를 준비하는 선관위원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 었다. 그 앞을 지나가던 중 옆에서 두 여학생의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저긴 도대체 뭘 하는 거지? 우리 같은 신입생은 아무것도 모르는데 뭘하는지 왜 아무도 안 가르쳐주는걸까.” 큰 선거가 있는것 치고는 학교는 비교적 조용했다. 구내서점 위쪽에 걸린 후보자를 알리는 현수막, 건물 벽에 붙여진 총학생회 후보의 포스터몇장, 학생회관 앞에설 치된 권투링 부스만이 선거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투표 시작일인 월요일에야 학생회관 앞에는 투표 기간이 적 힌 현수막이 걸렸다. 후보자들이 교실과 캠퍼스를 누비 며 선거 운동을 벌이자 학생들은 그제야 이번 주가 학생 회 선거 기간
우리가 매일 숨을 쉬고 살 듯, 매일 물을 마시고 또 물을 사 용하고 있다. 물은 우리의 삶과 생활 속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 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물의 중요성에 대해서 인식하 고 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그 이유는 아마도 공 기와 마찬가지로 항상 있고, 있을것같고 해서 물이 없음에따 라 발생하는 불편함이 없어서가 그렇지 않은가 싶다. 하루를 생활하는데물이 없는 생활을 상상할수있는가? 특히 도시에 사는 사람은 더욱 그러할 것이다. 마실 것은 물론이고, 샤워도 할수없고, 화장실도 갈 수 없고 여러 가지로 불편할 것이다. 이렇게 매일 사용하고 있는 물의 수질이 어떤지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다. 우리나라의 경우에 수돗물을 만들기 위해서 사용되는 원수 의 98% 이상은 지표수를
스페인 안의 다른 스페인 바르셀로 나. 아니 스페인 안에 있는 스페인이 아닌 바르셀로나. 이 도시의 심장격 인 람블라스 거리를 걷노라면 마음이 참 느긋해진다. 거리의 좌우를 장식 하는 꽃가게와 새를 파는 가게, 잘 익 은 하몽을 파는 재래시장과 들어가 보고 싶은 카페테리아가 많아서만이 아니다. 한 낮의 작렬하는 태양을 천 연덕스럽게 그대로 맞으며 느긋하게 걷는 카탈루냐 지방 사람들과 섞여 있기 때문이다. 늦게 집에서 나온 사 람들이 맛있는 해산물 빠에야를 배불 리 먹고 다시 집으로 들어가 씨에스 타를 늘어지게 잘 것 같은 표정으로 걸어 다니니 바쁜 일상 속에 허덕이 던 나에게는 생소하게 느껴질 수밖 에. 그러나 느긋한 마음과는 달리 나 의 발은 분주하게 움직여야 했다. 볼 것이 너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