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자본주의가 고정된 제도의 묶음이 아니라, 환경의 변화에 따라 진화하고 적응해온 사회체제”라면서, 역사를 보면 자본주의가 위기를 통해 재조정되어 왔다고 주장한다. 1803년~1815년 유럽을 휩쓴 나폴레옹 전쟁, 1930년대의 대공황, 1970년대의 경제위기, 2007년~2009년의 금융위기가 대표적이다. 자본주의 1.0은 대공황으로 막을 내리는 ‘자유방임 자본주의’다. 유럽 복지국가 전성기, 미국 루스벨트의 뉴딜시기가 자본주의 2.0이다. 자본주의 2.0의 특징인 ‘사회민주주의’와 ‘복지자본주의’는 1970년대의 세계적인
은 많은 사람들이 접해본 적 있는 서적일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을 처음 본 순간 오만과 편견이 나쁜 것이라는 것을 알겠지만, 자신도 모르게 범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소설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이 소설의 엘리자베스는 당대 여성과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그 시대의 전형적인 여성은 수를 놓고, 꾸미며, 재력 있는 남자를 만나 결혼하려고 한다. 그러나 엘리자베스는 지성을 가지고 당당하며, 자신의 사랑을 스스로가 선택했다. 여기에서 현대 여성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현대에는 결혼이 필수가 아니며, 결혼을 하더라도 본
영화 가 500만 관객을 돌파하며 꾸준한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는 코믹스 영화 최초로 베니스 국제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며 일찌감치 주목 받은 작품이다. 영화 (2008)로 이미 대중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캐릭터인 ‘조커’는 완벽한 조커로 변신한 ‘호아킨 피닉스’의 열연과 함께 다시 한번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이전의 조커와 다르게 ‘토드 필립스’ 감독의 는 코믹북 기반이 아닌 새롭게 창조된 오리지널 스토리로 조커의 탄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사실이다. 주인공 아서(호아킨 피닉스)는
책 ‘월든’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가 미국의 메사추세츠 주 콩코드에 있는 월든 호숫가에서 2년 2개월 동안 홀로 오두막에 살면서 생활한 긴 서사시다. 소로우는 일기 형식으로 자신의 인생관과 자연 속에서의 생활을 상세하게 묘사한다. 마음의 울림을 주는 많은 대목 중, 특히 ‘숲속에서 들려오는 소리’ 부분의 종소리 묘사는 마치 한 폭의 수채화 같다. 그는 숲속에서 맞은 첫 여름, 온전히 자연에 동화되어 여름의 햇살, 새들의 노랫소리, 종소리 등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인다. 올봄 나는 새순이 돋고 꽃이 피는 과정을 한 번이라도 눈여겨봤는
잘 읽지 않는 시집을 잡게 된 것은 제목 때문이었다. 시는 원래 따분한 것이라 여겼다. 소설처럼 재미있지도 않고, 다른 “두꺼운” 책들처럼 지식이 남지도 않는데 왜 시를 읽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라는 제목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새벽에 괜히 연락처를 뒤져본 적이 있는가? 괜히 연락하면 귀찮아 할까 봐 포기한 적이 있는가? 누구나 한번쯤은 그랬을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숨죽여 울며 밤잠을 설친다. 넓고 얕은 관계가 판을 치는 오늘날의 세상에서 우리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외로움일 것이다. 외
미비포유의 마지막 후속작으로 나온 책이다. 주인공 루이자 클라크는 미비포유에서 가슴아프게 헤어진 윌을 잊지 못한다. 윌의 마지막 유언은 클라크가 하고 싶은 일을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클라크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떠나지만 안정적인 일자리가 쉽게 구해지지 않았다. 윌의 트레이너로 만났던 샘 덕분에 소득이 많은 일을 구하게 됐는데, 상류층만 살 수 있는 빌딩의 한 집에서 부인의 일정 관리 및 컨디션 관리를 하는 일이었다. 하는 일에 비해서 소득이 굉장히 높아 루이자는 아무리 힘들어도 끝까지 버텨내기로 한다. 루이자가 맡게
본 책에서 다룬 내용 중 필자가 가장 흥미롭게 생각하는 주제는 “로봇은 언젠가 인간을 위협할까?”이다. 필자는 로봇에게 그 위험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신체적인 스펙을 비교했을 때 여러 가지 측면에서 로봇은 인간을 가볍게 뛰어넘는다. 설계를 할 때 인간을 해치지 않는다는 조건을 넣더라도 로봇이 살인을 위한 용도로 사용되지 않을거라 확신할 수는 없다. 이 때문에 인공지능 개발에 반대하고 싶지만 인공지능 로봇들이 사람들이 꺼리는 직종에서 일할 때 경제적 효익이 매우 크다고 본다. 필자는 언젠가 양산형 소설을 인공지능이 쓸 수 있게
우리는 어릴 적에 인형에 이름을 붙이고 역할을 부여하기도 하며 예뻐해주고 때론 버리기도 했다. 제목 ‘인형의 집’의 의미를 살펴보자면, 인형의 집은 말 그대로 인형이 사는 집이고, 여기서 인형은 인형과 같은 존재로 살아온 주인공 ‘노라’이다. 이 작품을 처음 접하게 된 건 공연예술 교양에서였고, 다르게 연출된 연극들을 먼저 본 후 원작이 궁금해져 따로 책을 찾아 읽게 되었다. 이 작품은 1막, 2막, 3막으로 이루어져 있다. 1막이 시작되고, 만약 해당 부분만 읽었다면 독자들은 노라를 그저 사치스럽고 철없는 여인으로 볼 수밖에 없다
내 마음이 이리 좁았나는 생각이 들었던 날, 나는 나와 완전히 다른 환경의 이들을 책을 통해 만나보기로 했다. 어렸을 때 미국으로 입양 보내진 카밀라는 자신의 이름의 유래를 알고 그저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이름이 지어진 것일까라는 생각을 시작으로 정체성의 혼란에 빠진다. 성인이 된 카밀라는 친모 지은의 사진을 발견하고 친모가 본인을 무척 사랑했음을 느낀다. 엄마를 찾으러 한국으로 간 카밀라는 지은이 열일곱에 본인을 낳았고, 그 다음 해에 자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엄마를 찾아 나선 일을 후회하기도 하지만 곧 파도가 바다의 일인 것처
이 책은 4차 산업혁명에 관한 책이다. 산업혁명이라는 말이 낯선 대중들에게 1, 2, 3차 산업혁명에 대한 설명과 더불어 4차 산업혁명의 의미를 알려주는 책이다. 4차 산업혁명은 제조업과 ICT, 즉 정보통신기술이 결합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2016년 1월 말에 다보스 포럼이라 불리우는 세계 경제 포럼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용어이며, 같은 해 3월에 이세돌 바둑기사와 알파고의 대결을 통해 한국에서도 큰 이슈가 됐다. 독일의 지멘스 암베르크 공장이 최초의 인더스트리 4.0(4차 산업혁명) 공장인데, 이곳의 모든 기계는 소프트웨어로
SNS상 연예인들의 호화로운 삶과 예쁜 일반인을 보면 자괴감이 든다. “내 코가 이렇게 낮았었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과거에는 인식하지 못했던 내 모습이 새롭게 보이며 마음에 안 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도둑맞은 가난」에 나오는 화자도 가난한 삶의 진상을 처음엔 몰랐을 것이다. 동네에도, 일터에도 다 비슷한 사람들끼 모여서 하루 먹고 살기도 바쁘기 때문이다. 상처도 몰 다가 발견하고 나면 아프기 시작하듯이, 인지하는 것이 두려워 애써 외면해왔는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나도 개성있는 내 코에 만족했었지만, SNS를 통해 외면했던 진실을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이었다. 나는 복잡한 심정을 가라앉혀줄 책을 원했고 한강의 ‘흰’을 골랐다. 나는 작가의 필체와 그가 구사한 어휘에 담긴 감성에 충격을 받았고 동시에 마음이 치유되는 느낌을 받았다. 내 안에 있던 슬픔, 외로움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이 작가가 어린 시절부터 겪었던 감정들과 하나로 연결돼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면서 마음의 안식을 취하는 느낌이었다. 따라서 나의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책은 이 책이며, 이 책에 대해서 소개하려고 한다. 이 책은 태어나자마자 죽은 두 딸과 그 딸을 여읜 아픔
△삼국시대의 불교 수용 △조선 후기의 기독교 △천주교와 동학의 전파 등 종교적 역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종교는 이 땅에 신문명과 신사상을 가져다주는 새로움의 상징이었다. 이는 속세의 사람들에게 무궁한 신세계를 제시함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는데, 현대의 종교는 종교의 본래적 기능을 수행해내지 못하고 있다. 종교가 새로움이라는 성격을 지니고 있을 때, 종교는 필연적으로 저항적이다. 이는 조선 후기의 ‘동학’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동학은 ‘인간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人乃天)’ 사상과 ‘하늘의 마음이 곧 민중의 마음’이라는 ‘천심즉인
‘신은 죽었다’ 이 책에서 아마 가장 유명한 구절일 것이다. 나 또한 지나가다 한 번쯤 이 말을 접해본 적이 있다. 그렇다면 과연 신이 무엇이길래 죽었다 하는 것일까? 니체는 신을 어떻게 죽였을까? 그러한 의문들이 나로 하여금 이 책으로 이끌었다. 책에서 니체가 가진 대한 생각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는 곳은 광인에 대해 서술한 부분이다. 광인은 태양 아래에서 등불을 들고 신이 죽었음을 군중들에게 알리지만 사람들은 그를 미친 사람이라 비웃는다. 푸코적 광기이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향해 광인은 태양이 멀어지고 있음을 알지 못한다
나태주 시인은 풀꽃 시인으로도 불린다. 많은 사람들 이 한번쯤은 들어봤을 시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 풀꽃’을 쓴 시인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나태주 시인이 쓴 여러 시들 중 몇 개를 선정해 모아 놓은 선집이다. 나태주 시인의 시는 하나하나 예쁘지 않은 시가 없다. 책의 부제가 되는 한 줄도 시의 한 구절을 인용했다. ‘여행의 끝’이라는 제목의 시이다. 사랑시인데 그렇게 다정하고 예쁜 문장이 아닐 수 없다.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어둔 밤길 잘 들어갔는지’ 그리고 연이 나뉘고 이어지는
보통 사람들은 이 책을 ‘읽어야겠다, 구매해야겠다’고 결정하게 되는 계기가 ‘곰돌이 푸’ 때문일 것이다. 나에게 이 책을 구매하게 된 계기는 푸가 아닌 ‘행복’이었다. 이 책과 같은 에세이는 평소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장르의 책이었다. 사실 요즘 행복하지 않다는 생각보다는 행복 이라는 단어로 위안을 삼을만한 일이 많았던 것 같다. 그 런 이유로 이 책을 펼쳐보게 되었다. 평소 나는 스스로 자존감이 낮다는 생각을 한다.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는 걸 좋아하고 의사 결정을 할 때도 혼자 결정하기 보다는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는 경우가
프란츠 카프카의 명작 은 어느 한순간 변해버린 주인공, 그레고르의 죽음을 다루고 있다. 에서 그레고르는 자신의 존재를 불가피하게 숨기면서 살아야 하는 입장이다. 가족이 전부였던 그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가족과의 관계에서 찾았다. 하지만 그의 외형이 변하고나서 가족과의 유대가 끊어지고 그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잃었다. 결국 그는 혼자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우리는 어느 곳에라도 속하며, 소속감을 기반으로 유대감을 형성한다. 유대감은 사회적 동물으로서의 인간을 고양시키는 역할을 한다. 에서 그레고르는 인간임에도
개개인에게는 다시 읽고 싶은 책과 그렇지 않은 책이 있다. 기숙사에 살고 있는 나에게 짐을 늘리는 것은 꽤나 사치스러운 행위였기 때문에 나에게 어떻게 다가올지 모르는 책을 읽기 전에 산다는 건 위험이 따르는 일이었다. 그런 내가 근 일년 만에 책을 직접 사서 읽었다. 당연하게도 그 책은 황정은의 책이었다. 나에게 황정은은 언제나 ‘몇 번이고 다시 펴서 읽고 싶은 글’을 쓰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작품 또한 그랬다. 나는 책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문장이 있으면 메모를 하곤 하는데, 황정은의 이번 작품은 마음에 드는 문장이 너무
우리들은 스스로를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렇지가 않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때도 있고, 최선의 선택이 아닌 최악의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왜 이렇게 허점이 많은 걸까? 그 이유는 단순하다. 우리는 ‘이콘(Econ)’이 아닌 ‘인간(Human)’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만약 이콘이었다면 모든 것이 완벽했을 것이다. 어떤 상황이 주어지더라도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우리는 여러 한계점들을 지닌 인간이다. 현실 세계를 살아가는 인간들
‘곰탕’ 이 두 글자만 봤을 땐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지만, 친구가 읽고 있는 모습을 보고 얼떨결에 읽게 되었다. 본업이 영화감독인 작가는 텍스트만으로도 마치 영화와 같은 느낌을 주었다. 특히나 간결한 문장과 빠른 전개 속도, 그리고 예상치 못한 반전들이 어우러져 이 책의 매력도를 높였다고 생각한다. 제목만 봤을 때는 이게 왜 시즌2까지 있나 싶었다. 하지만 초반만 읽었을 뿐인데도 내가 넘기고 있는 책장이 너무나 아까웠다. 다 읽어버리면 끝이라는 생각에 아쉬워져, 은근히 아껴 읽었던 기억이 난다. 사실 책의 내용에서 곰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