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는 영국 북부 광산지대의 소년이다. 빌리의 집은 똑같은 모양으로 다닥다닥 붙은 비좁은 주택 중 하나이며 아버지와 형은 모두 광부이다. 음악을 좋아하며 늘 뛰어다니는 탄광촌의 11세 소년은 권투 연습장에서 발레 수업을 구경하다 토슈즈를 신게 되고, 결국 왕립발레단의 주연무용수가 된다. 어찌 보면 인간극장에서 소개될 법한 가난한 집 엄마 잃은 소년의 성공기이다. 치매를 앓는 할머니, 엄마의 패물을 전당포에 맡겨 여비를 구하는 모습, 빌리를 떠나보내는 정거장에서 아버지와 형의 오열... 특히 석탄이 떨어지자 엄마가 치던 피아노를 부수
『굿바이 레닌』은 베를린 장벽의 붕괴될 때부터 동서독의 통일에 이르는 시기(1989~1990)의 동독을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의 ‘엄마(크리스티아네)’는 반정부시위에 참가했다가 경찰에 끌려가는 ‘아들 (알렉스)’을 보고 충격을 받아 쓰러지는데, 혼수상태에 빠진 8개월 동안 서기장 호네커가 사임하고 베를린 장벽은 허물어졌다. 간신히 깨어난 엄마가 심장에 충격을 받을까 두려워 알렉스는 동독이 건재한 것처럼 꾸미기로 작정하고 전방위적으로 거짓말을 시작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기발하고 눈물겨운 알렉스의 거짓말들 때문에 얼핏 음울한 내용으
영화『멋진 하루』에서는 헤어진 연인이 별로 낭만적이지 않은 이유로 재회한다. 1년 전 병운(하정우)에게 이별을 고했던 희수(전도연)가 어느 날 갑자기 병운을 찾아와, 헤어지기 전에 빌려줬던 350만 원을 갚 으라고 하는 바람에 그 하루 동안 병운은 자신의 지인들을 찾아다니며 돈을 꾸어 희수에게 바로 주는 방식으로 갚아 나간다. 병운은 돈을 ‘빌린다’고 하지만 돈을 주는 그 누구도 그에게서 돈을 돌려받을 것을 기대하지는 않는 것 같다. 병운의 지인들은 진심으로 그를 아끼는 듯, 오히려 희수를 비난하기도 한다(애인이라서, 사랑해서 빌려
“죽음은 늙음이나 아픔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육체가 반드시 겪게 되는 한 현상이다. 한 현상이라기보다는, 실존의 범주이다. 죽음은 그가 앗아간 사람의 육체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의 눈에서 그의 육체를 제거하여, 그것을 다시는 못 보게 하는 행위이다. 그의 육체는 그의 육체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환영처럼, 그림자처럼 존재한다…(중략)… 그의 육체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다 사라져 없어져버릴 때, 죽은 사람은 다시 죽는다. 그의 사진을 보거나, 그의 초상을 보고서도, 그가 누구인지를 기억해 내는 사람이 하나도 없게 될 때
인생의 중요한 순간이지만 다시 돌아보고 싶지 않은 때가 있는 것처럼 감동적인 작품이라고 생각되어도 다시 보기는 두려운 영화가 있다. 나에게는 이 영화가 그랬다. 영화의 두 주인공인 매기와 그녀의 매니저 프랭키는 호감 가는 성격을 두루 갖추고 있다. 삶의 소신과 전략이 뚜렷하고 자존심과 염치가 있으며 잇속 따지지 않는 애정도 넉넉히 지니고 있다. 웬만해선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까지도. 그러나 이런 두 사람이 결국 불행한 종말을 맞게 된다. 선수가 링에서 피 흘릴 때마다 전전긍긍하던 프랭키. 그랬던 그가 병상에서 호흡기에 의
엄격한 규율이 강조되는 공간에 따뜻한 마음과 음악성으로 무장된 주인공이 나타난다. 갖가지 사연을 가진 인물들은 차츰 숨어 있던 소질을 발휘한다. 주인공은 그들을 하나로 모으며 음악적 성취의 절정을 보 여주고 해피엔딩을 맞는다. 사운드 오브 뮤직, 시스터 액트, 하모니… 영화 코러스(Chorists)도 이와 같은 계 열의 소위 ‘힐링영화’로 분류될 수 있다.주인공(마띠외)은 2차 대전 직후 프랑스의 한 보육원에 음악교사로 부임한다. 돈만 밝히며 교사와 학생을 비인격적으로 대하는 교장. 책임감이나 열정과 거리가 먼 교사들. 그 사이에서
아내의 세속적이고 경박한 면을 알면서도 깊이 사랑했던 세균학자(윌터)는 아내(키티)의 불륜을 목격하자 콜레라가 창궐하는 중국 오지로 함께 떠날 것을 제안한다. 키티는 불륜 상대가 그녀와의 결혼을 거부하자 배신감과 수치심에 휩싸여 남편과 함께 떠난다. 죽음이 일상에 스며든 극한의 환경 속에서 키티는 뒤늦게 인생의 의미를 숙고하고 남편의 가치를 깨닫게 된다. 극적인 화해는 없었지만 부부는 상대방을 이전보다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게 되는데, 그러던 중 키티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신이 아버지일 가능성에 대해 묻는 남편에게 아
한국에서 아기는 태어나면 한 살이다. 새해가 되어 떡국을 먹으면 한 살 더 먹는다고 가르치는 것이 한국식 나이이다. 그렇지만 ‘만 나이’라는 것이 또 별도로 있어서 아기는 0세부터 생후 1년마다 차근차근 나이를 먹는다. 조금 영리한 애들은 생일날에 ‘나는 네 살인데 왜 케이크에는 초가 세 개인가’를 질문하고 또 조금 더 영리한 애들은 ‘1월 1일에 이미 네 살이 되었는데 설날(구정)에 왜 또 한 살 더 먹었다고 하는가’에 의문을 품는다. 아이의 예리한 질문에 애매하게 넘어가려는 어른들 앞에서 한국의 아이들은 일찌감치 생(生)과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