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전쟁’이라는 용어는 들어 보았을지 모르겠다. 이미 짐작은 하겠지만 우리가 보통 ‘임진왜란’이라 부르는 용어를 달리 부른 것이다. 이와 함께 병자호란도 ‘병자전쟁’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러한 용어의 사용은 왜 나타나게 되었을까? 동아시아라는 것은 국가의 틀을 넘어 동아시아를 크게 조망하고자 하는 것이다. 단순한 조망을 넘어 상대에 대한 배려도 담겨 있다. ‘왜란’과 ‘호란’이라 부르는 개념에는 이들 나라나 민족에 대한 비하의 의미가 담겨있다. ‘왜(倭)’는 일본이라는 국호를 사용하기 전까지 일본 열도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여기에
제국주의와 침략을 이야기하다 웬 ‘홍어 장수’냐고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다. 제국주의 침략의 과정에서 동아시아는 침략과 수탈의 상대가 되었지만 그 이전에는 문물의 왕래와 교역을 통한 교류가 있었다. 전근대 사회는 국가의 허락 없이 타국을 여행할 수 없었다. 교역도 국가의 허가가 필요하였다. 국가의 틀을 개인이 넘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한 인물은 여러 나라를 넘나들었다. 그 인물이 홍어 장수 문순득이다. 문순득은 19세기 초 인물로 오늘날 전남 신안군의 우이도에 살았다. 1801년 문순득은 흑산도에 홍어를 사러 갔다가 표류를 당했다.
1840년 영국 함대의 공격으로 아편 전쟁이 시작되었다. 청이 영국에 무너진 이후 동아시아는 세계에 문을 열게 되었다. 1853년 미국의 페리가 가나가와의 한 항구에 도착하면서 일본도 개항했다. 조선은 이보다 20년도 더 넘은 1876년 강화도 조약을 계기로 문호를 개방하였다. 동아시아의 개항의 공통점은 모두 위협 속에 마지 못해 열었다는것과 불평등 조약을 체결하였다는 것이다. 중국과 일본은 서양 세력에 개항을 하였던 반면 조선은 이웃 나라 일본에 개항 당했다는 차이가 있다. 본의 아니게 개항을 하였으나 이들은 그런 환경 속에서 변
최근 유니클로의 광고가 화제가 되고 있다. ‘80년 전 일을 어떻게 기억하는가’가 논란을 촉발시켰다. 최근 한일 관계와 관련지어 해당 기업에서는 광고를 내리기로 했다고 한다. 그것이 의도적이었는지 여부를 떠나서 가해의 편에 있는 사람들은 어떠한 상황에 있든지 자기 검열이 필요하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아베 정부가 툭툭 던지는 말이 자기들은 별생각이 없다고 해도 그들에게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가슴에는 비수가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발언을 처벌하는 독일과 대비되는 일이다. 18세기 유럽 열강의 아시아 침략이 전개되는 시기에 만국공법도 함
매년 8월 6일. 히로시마 평화 공원에서는 평화 기념식이 열린다. 1945년 히로시마에 원자 폭탄이 투하되었다. 아침 출근 시간에 떨어진 이 폭탄에 의해 20여 만의 희생자가 발생하였다. 다시 3일 후 나가사키에도 원자 폭탄이 투하되었다. 기념식은 이를 상기하며 핵병기의 축출과 항구적인 평화를 기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 행사에는 일본의 수상을 비롯하여 요인들이 참가하고 전국에 생중계가 된다. 2016년 5월에는 오바마 대통령이 이곳을 방문하여 위로의 말을 전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자 폭탄 또는 도쿄를 비롯한 대공습으로 인
요즈음 올림픽에서 욱일기 논쟁이 한일 간 갈등의 고리가 되고 있다. 욱일기의 연장 선상에 일본의 전후가 있다. 동아시아의 전후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냉전’이다. 냉전은 중화 인민 공화국의 수립, 한반도의 분단, 일본의 55년 체제로 상징된다. 중국 대륙을 차지하였던 장제스는 공산당을 섬멸시킨 후 온전한 통치자가 되고자 하였다. 그러나 농민을 지지 기반으로 마오쩌둥이 부패와 경제적 혼란을 수습할 수 없었던 국민당을 무너뜨렸다. 이 결과를 미리 예측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장제스도 상대인 마오쩌둥도, 미국과 소련까지. 패전국 일본은 연
서양 문명을 이끌었던 로마가 멸망한 후 세계 문명은 중국 대륙이 이끌었다. 세계의 4대 발명품이라 할 수 있는 종이, 인쇄술, 나침반, 화약 등이 모두 중국에서 유럽 지역으로 넘어갔다. 산업 혁명 이후 제국주의 침략을 경험했던 동아시아는 현재 세계 경제의 중심이 되고 있다. IMF에 따르면 2018년 무역액 최상위를 중국이 차지하고 있다. 2위는 미국이고 뒤를 이어 독일, 일본, 네덜란드, 프랑스가 있고, 7위에 한국이 있다. 한중일 3국은 자유 무역의 기조 아래 상대방을 5대 수출국 안에 포함시키며, 역내 교역은 비약적으로 증가하
다른 주제로 넘어가려 했으나 어떤 학생의 질문이 있어 이 부분을 바로 잡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최근 한일 갈등의 원인을 살펴보고자 한다. 일본 정부는 7월 수출 규제가 ‘징용 판결’문제와 관계가 있다느니 없다느니 말을 바꾸지만 이것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핵심은 징용 피해자에게 배상을 하도록 한 판결에 대하여 일본은 ‘국가 간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 ’ 이라 맹공을 하며 대국민 선전을 강화 하였고, 결과 일본인들은 ‘한국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 나라’ 따라서 ‘수출 규제’를 지지한다는 공식으로 연결되어 버렸
2019년의 여름은 아베 정권의 한국 공격으로 뜨거운 공방이 진행 중이다. 한국의 시민들은 자발적 불매 운동, 여행 자제 등을 통해 이에 맞섰다. 이러한 일은 이미 21세기 시작부터 있었다.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야스쿠니 신사 참배 및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지칭되는 역사 전쟁이 있었다. 20세기 식민 지배와 전쟁으로 얼룩졌던 과거를 극복하고 새천년을 맞이하려는 아침은 그렇게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를 극복하는 길은 이분법적 배타주의를 극복하고 우리들의 동아시아를 만드는 것이다. 유럽에서의 화해에는 독일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