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 체제 속에서, 우리는 자본주의가 끊임없이 진화하는 궁극의 체제라는 인식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경제학자들은 ‘자본주의’를 대전제로 수정자본주의를 표방하는 ‘자본주의 2.0’에서 공유가치 창출에 기반을 둔 ‘자본주의 5.0’에 이르기까지 늘 업그레이드 버전의 자본주의를 상정했다. 자유시장은 영원하고, 자본주의는 최종적인 형태로서, 세상에 어떤 변화가 와도 그것을 포용하여 나아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듯했다. 이 책은 이러한 관점을 과감하게 바꾼다. 영국 BBC의 경제 에디터를 역임한 ‘포스트 자본주의자’ 폴 메이슨의 생각은 다르다. “자본주의의 앞날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포스트 자본주의’, ‘자본주의 이후’가 꼭 자본주의의 업그레이드 버전일
책을 덮었을 즈음에 삶을 돌아봤다. 앉아있던 자리와 그날의 아침식사를 떠올렸다. 또 그보다 훨씬 이전을 기억했다. 무더운 여름날 놀이터에서 만졌던 흙더미, 그 흙으로 어떤 미래를 만들 수 있을지 생각했다. 청청한 가을날 밟아 흐트러진 낙엽이 어떤 미래를 만들 수 있을지 생각했다. 20살의 세월 동안 어떤 금을 만들어 왔을지 생각해 봤다. 고향을 떠난 날엔 드디어 무엇을 원하는지 보이게 됐다. 지금까지 맡아본 적 없는 새로운 향을 맡아 비로소 안 것이다. 어떤 것을 얻기 위한 노동을 했다. 어떤 것에 닿기 위해 수없이 걸었다. 그리고 또다시 새로운 풍경을 발견했다. 그렇게 새로운 언어를 만났다. 언어는 곧 만물이며 만물이 언어다. 어느 척박한 땅에 도달한 누군
정신과 의사 헥터의 행복 찾기 여정을 유쾌하게 풀어놓은 영화 은 프랑수아 를로르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정신과 의사라는 번듯한 직업, 아름다운 여자친구, 적당한 돈과 사회적 지위, 평온한 일상을 살고 있는 남자의 이름은 헥터(사이먼페그)다. 완벽에 가까워 보이는 그의 삶은 어느 날, 자신의 삶도 그다지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부터 균열이 생긴다. 그를 찾는 환자들도 그와 같은 증세를 보인다. 부와 명예를 가진 CEO, 중산층 부인, 부자 변호사 등 불행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불행한 사람들’이 헥터를 찾아와 슬픔을 토로한다. 치료할 수 없는 마음의 병을 두고, 헥터는 그 어떤 처방전보다 강력한 효과를 발휘할 ‘행복’을 찾아 떠나기로
나는 17살 때 이 책을 처음 읽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1년에 적어도 한 번 이상은 꼭 하루를 잡아서 이 책을 단숨에 읽는다. 이는 언제부턴가 내 삶에서 일종의 ‘의례’가 되어 삶에 1년치의 생기와 활력을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바로 가네시로 가즈키의 이라는 소설이다. 이 책은 5개의 짧은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이 5가지의 이야기는 각각의 주제에 걸맞은 문체와 분위기를 가지고 읽는 이들을 단숨에 몰입시킨다. 한번 읽으면 일단 적어도 하나의 이야기가 단락 지어질 때 까지는 빠져나올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인 책이다. 이 책을 단숨에 읽고 나면 마치 울림이 있는 영화 5편을 본 듯한 감동과 여운이 진하게 남는다. 그러면 나는 그 이야기의 깊은 여운을 먹이 삼아 삶을 살아갈 힘
낸시 마이어스 감독의 영화 은 전 세대의 판타지를 충족시키는 휴먼 드라마다.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젊은 세대가 갖는 ‘인턴’에 대한 판타지, 실버 세대를 위한 인정과 워킹맘들의 성공적인 정착 모두를 영화 속에 담으며 청년 실업과 경제 불황으로 지친 대중들의 마음에 판타지와 같은 힐링을 선사해준다. 영화는 시니어 인턴으로 회사에 들어온 70세 벤(로버트 드니로)이 인터넷 쇼핑몰로 큰 성공을 거둔 워킹맘이자 CEO 줄스(앤 헤서웨이)의 인생 멘토가 되어주며 공존하는 과정을 그린다. 동시에 척박한 경쟁에서 한 걸음 물러나, 인생에 있어 줄스 또한 벤의 인턴이 될 수 있음을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영화 은 이처럼 따듯한 휴먼 드라마를 아날로그 정서를
시민혁명을 통한 시민계급의 주체성 확립부터 흑인과 여성의 참정권 운동으로 얻어낸 보통 선거 제도까지, 서구권 국가들은 오랜 세월 동안 피를 흘리는 투쟁을 반복하여 그 대가로 민주주의를 얻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독립 후 민주주의의 기본가치들을 아무런 대가 없이 얻게 되었다. 우리는 헌법의 의미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사상의 자유를 얻었고, 양성평등 의제가 설정되기 전 보통 선거권을 손에 얻었다. 작가는 우리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라는 헌법 1조 1항에 대해 물음을 던지며 우리의 민주주의는 미숙한 의식 속에서 조기 정착된, 그 값을 온전히 치르지 못한 후불제 민주주의라고 말한다. 이 책은 헌법이나 법률 전문 용어를 몰라도 읽기 쉽게끔 대한민국의 헌법
시리즈의 스핀오프인 영화 은 소설가이자 시나리오 작가로 활약한 J.K. 롤링의 새로운 마법 세계를 엿볼 수 있다. 총 5부작으로 진행될 시리즈의 첫 발자국은 영국을 벗어나 1920년대의 미국에서부터 시작된다. 1926년의 뉴욕. 정체 모를 검은 존재가 거리를 쑥대밭으로 만든다. 미국 마법 의회 ‘MACUSA’는 그 어둠의 존재를 은밀하게 추적할 뿐이다. 이처럼 혼란으로 가득한 뉴욕에 영국의 마법사이자 동물학자인 ‘뉴트 스캐맨더’(에디 레드메인)가 찾아온다. 영화 속 주인공 스캐맨더는 훗날 호그와트 마법학교 교과서의 저자가 되는 인물로 와 의 연결고리로 작용한다. 또한 멸종 위기의 동물을 찾아 신비한 가방 속에 넣어 보호
실종된 아이들, 시간을 잡아먹는 요괴, 현실을 진실로 확신하는 어른들과 존재하지 않는 상상조차 확신하는 아이들. 저예산 독립 영화 로 존재감을 드러냈던 엄태화 감독이 신작과 함께 돌아왔다. 특별한 시간을 넘나드는 판타지 영화 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신비로운 영상미, 그럼에도 현실의 끈을 놓지 않은 엄태화 감독의 상상력은 초현실주의 동화로서의 영화를 완성시킨다. 그러나 엄태화 감독의 동화는 마냥 낭만적이지 않다. 인간이란 결국 혼자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믿음과 관계에 관한 이야기로 풀어낸다. 새아버지와 함께 화노도로 이사 온 수린(신은수)은 공상에 빠져 보육원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한다. 현실이 아닌 상상 속의 세계를 꿈꾸는 수린을 이해하는 것은 오직 성민(이효제)뿐이
현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 때문에 정보의 바다에 갇혀 있고 엄청나게 넓은 네트워크망에 포획된 거미의 먹이처럼 묶여 있다. 언제나 연락을 할 수 있는 네트워크망이 있다는 것은 인간관계망에서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어떤 앱이든 그 앱만의 목적이 있고 장단점이 있으며 아주 정확하게 개발자들이 만든 프로세스가 있다. 우리는 단순히 그 앱을 ‘터치’함으로써 실행시킬 수 있으며, 우리의 목적을 실현할 수 있다. 편리한 앱은 인간의 행동을 단순하게 만들고 많은 생각을 요하지 않는다. 모르는 길에서 길을 잃어버리면 옛날에는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그로 인해 정보를 얻고 올바른 길로 찾아갔다. 하지만 현대에는 지도앱이 매우 잘 되어있기 때문에 그런 노고를 겪지 않고도 단순하고 간편
과거에 비해 청소년 비행문제가 심각해졌다. 발생 건수도 높아졌으며 청소년들의 범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극악해졌다. 본 서적에서는 그렇게 된 원인을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다. 그중에서도 깊게 공감하는 것은 매체들이 유해한 내용을 아무렇지 않게 다루고 있다는 것과 학교체제에서 발생하는 문제였다. 먼저 현대사회에서 학생들은 스마트폰 등 매체에 장시간 노출되다 보니 인터넷 유해물이나 게임중독, 채팅 앱을 통한 만남 등에 쉽게 빠지게 되었다. 그래서 현실에서의 적응능력은 떨어지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비행에 더욱 집착하고 있다. 또한 TV에선 젊은 아이돌들이 자극적인 노출이나 폭력을 미화하고 합리화하는 모습을 그대로 방영한다. 이러한 것을 보고 자란 청소년들은 제대로 된 성인 의식을 갖지 못하
자신의 직업을 ‘거짓말을 파는 일’로 소개하는 두 남녀가 있다. 연기자 지망생 은희(한예리)와 일본에서 온 소설가 료헤이(이와세 료)의 첫 만남이 바로 그렇다. 영화 는 주인공 은희가 서촌부터 남산까지 걸어오는 길의 시뮬레이션과 같다. 그러나 이 길은 카메라를 통해 중계되는 여타 영화의 방식과 다르게 소설가 료헤이의 내레이션으로 그 시작과 끝이 완성된다. 속 은희는 연극배우이자 이 영화의 주연 배우이다. 동시에 그녀는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영화는 계속해서 은희를 오롯이 하나의 캐릭터로 고정시키지 않는다. 길에서 우연히 만난 일본인 소설가 료헤이, 동갑내기 남자친구이자 배우인 현오(권율), 과거의 연인이 되어 버린, 그러나 연을 끊어내지 못한 윤철(이희준)과 만나
인생은 선택의 과정인 것 같다. 점심 메뉴와 같은 사사로운 선택부터 대입과 취업 그리고 그 이후의 삶까지.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든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떠하든 모든 선택은 행복을 위한 것으로 우리 삶의 원칙은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이런 간단한 원칙들이 가끔은 어렵게 느껴진다. 여러 이해관계에 얽혀 혹은 자신의 욕망과 환상 때문에 가끔은 가는 곳 혹은 가야 할 곳을 모르고 그저 달리고만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을 갖기도 한다. 『꾸뻬 씨의 행복 여행』을 통해 행복이란 우리의 삶 아주 가까이에 있음을 알려준 작가는 꾸뻬 씨의 아들 ‘꼬마 꾸뻬’의 눈을 통해 세상을 다시 바라본다. ‘꼬마 꾸뻬’의 순수하고 순진한 호기심과 질문을 통해 그동안 우리가 쉽게 잊고 살 수 있는
영화 (이하 )은 한 편의 작품을 향한 타셈 싱 감독의 고백과 같다. 이 영화가 완성되기까지 수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는데, 불가리아 원작영화 의 판권을 구입하는 데만 15년, 총 28개국의 로케이션에 17년을 사용하였다. 캐스팅까지 7년이 걸렸으며 실제 촬영기간은 장장 4년 반이 소요 되었다. 인생을 걸었다는 말이 부족하지 않을 만큼 은 타셈 싱 감독의 모든 상상을 현실로 만든다. CG가 아닌 스코틀랜드·인도·볼리비아·중국·체코 등의 아름다운 자연 풍광도 영화 속 마법 같은 순간을 만드는데 일조한다. 영화는『아라비안 나이트』와 구조적으로 닮아있다. 스토리텔러와 청자가 등장하며 이야기 속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러나 병든
5.18 민주 항쟁,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적 사실이다. 글이나 사진 혹은 영화를 통해 그날의 참상을 종종 접했으나 이 책을 읽고 느껴지는 먹먹함과 슬픔은 한층 더 적나라하다. 등장인물의 치가 떨리는 통각은 작가의 언어를 통해 곧 나의 통각으로 치환된다. 그런 아픔의 책이다. 빗발치는 총알과 찢어지는 고함을 가로질러 두 눈을 감고 살이 뚫리는 감각을 잊는 날들이 보인다. 흙빛 살결이 숯덩이가 되고 그들은 죽음으로써 의미가 된다. 오히려 죽음만이 의미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각자의 죽음, 마지막 최고의 고통의 순간 생에 가장 큰 의미와 함께 희미하게 웃을 수 있는 것이다. 죽음 앞에 당당하다. 어떤 이의 죽음 이후, 남겨진 이들에겐 아직 죽지 않은 지옥이다. 미움 없는
2009년 1월15일 US 항공기 1549편이 뉴욕 허드슨 강에 비상 착수다. 사상자는 0명. 당시 비행기의 기장이었던 체슬리 설렌버거는 새 떼와의 충돌로 양 날개의 엔진이 손상되었음에도 155명의 탑승객을 생환 시킨다. 이 기적과 같은 실화는 리먼 브러더스 사태와 테러로 지친 미국에 한 명의 영웅을 탄생시킨다. 영화 는 이 인간승리의 신화로부터 시작한다. 영웅의 탄생, 그 뒤편의 딜레마가 바로 영화 의 주목할 만한 시선이다. 기적적인 생존 이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는 평범한 기장이었던 설리(톰 행크스)에게 쏠린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208초의 추락 순간은 다양한 항공전문가들의 견해를 통해 문제 제기 된다. 핵심은 회항 가능성에 있다. 그들은 엔진이 파
얼마 전 홍대에 갔다. 지하철역에서 지상으로 나오는 순간 평소와 다른 이질적인 자유로움을 느꼈다. 몸 여기저기에 문신을 한 사람들, 신기한 헤어스타일, 골목에서 보드를 타는 사람들 등등. 소위 ‘마이웨이’의 사람들이 모이는 곳 같았다. 사람구경만으로도 신기하고 재밌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한편으로는 부끄러웠다. 왜 그런지 명확하지 않았는데 이제와 생각해보니, 홍대에 간 나는 진짜 ‘나 자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가 입고 싶은 옷을 입지 않고, 남들이 괜찮다고 하는 화장을 하고, 전공 책들 때문에 책가방을 멨다. 외적으로 표현하고 싶은 내가 아니었다. 나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한 느낌이 들어 부끄러웠다. 그리고 부러웠다. 남들과 다른 자신을 당당하게 표현하는 그들이.
은 (2013)로 잘 알려진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2006년작 SF 영화이다. 십 년의 세월을 거쳐 비로소 국내 상영을 시작한 이 영화는 놀라울 만큼 우리의 현실과 닮아 있다. 물론 SF 장르에서 현실성을 찾는 일이 익숙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화는 그 흔한 외계인이나 로봇의 등장 없이 미래 사회의 디스토피아를 그린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2027년의 영국이다. 난민수용 거부, 이슬람과 기독교의 갈등, 인권 문제, 반복적인 테러의 발발로 세계는 종말을 향해 가고 있다. IS 테러와 브렉시트 문제를 눈으로 접할 수 있는 사회이기에 영화는 미래 속에서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그 중 ‘칠드런 오브 맨’이 현 시대와 구분되는 설정은 ‘불임’
인생에는 참 답이 없는 것 같다. 인간은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결정의 순간 갈등상황에 처하고 때로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혹은 자신이 자신에게 던지는 마음의 소리에 상처를 입기도 한다. 살아가면서 외적이거나 내적인 갈등과 실수가 반복될수록 우리의 마음은 다쳐가고 종종 우리의 선택에 대한 확신도 흔들리는 것을 볼 수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바쁜 만큼 가만히 앉아 사색에 잠기거나 모든 것을 손에서 떠나보내고 자신에게 투자할 수 있는, 자기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책은 110가지 질문에 대한 답으로 이루어져 있다. 관계에 대한, 인생의 목표에 대한, 혹은 마음의 상태에 대한 질문들은 눈치챌 틈도 없이 스쳐 지나가 버린 내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신작 는 그가 담아내는 가족 영화의 정수다. 영화는 자전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그 세계의 원형과 다름없는 아버지와의 관계가 작품의 스토리를 통해 비로소 완성된다. 시작은 납득에서부터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추억하며 고레에다 감독은 아버지를 이해한다. 그가 결코 닮고 싶어 하지 않았던 아버지 역시 그 스스로 되고 싶었던 어른이 된 것이 아니었음을 납득한다. 고레에다 감독이 써내려간 이 한 줄의 문장은 영화 의 시작이 된다. 영화의 주인공 료타(아베 히로시)는 아버지의 인생을 반복한다. 전당포에 집 안 물품을 저당 잡히며 살았던 아버지의 삶은 도박과 경륜으로 궁핍해진 료타의 인생과 닮아있다. 한때 문학상을 받았던 소설가였지
1962년, 누벨바그(새로운 물결)의 새로운 혁명이었던 프랑수와 트뤼포가 할리우드의 대중 영화감독, 알프레드 히치콕에게 일주일 간의 인터뷰를 신청한다. , 와 까지 당시 프랑스 누벨바그의 주인공이었던 신예 감독 트뤼포는 이 인터뷰를 통해 히치콕에 대한 평단의 고정관념을 바꾸는 데 성공한다. 과 을 거치며 명실상부 할리우드의 대표 스타감독으로 자리매김하던 히치콕은 일주일의 시간 이후 ‘작가’라는 타이틀을 부여 받는다. 그의 예술성과 대중성에 대한 인정의 결과로 말이다. 이 역사적인 기록들은 차후 ‘히치콕과의 대화’(Hitchcock/Truffaut, 1966)라는 책으로 발간된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켄트존스 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