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오는 상업영화의 틈바구니 속, 잘 만들어진 독립영화의 탄생은 언제나 빛이 나기 마련이다. 영화 은 독립영화가 갖고 있는 저예산의 한계를 연출력과 연기력으로 극복한 모범적인 사례이다. 이 갖는 특별함은, 첫 번째로 플롯에 있다. 성장 영화의 플롯을 따르고 있지만 전형적이지 않다. 제2의 엄석대(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를 복제하지 않는다. 21세기에 걸맞은 청춘들이 등장한다. 영화는 정처 없이 흔들리는 십대 소년들의 우정과 오해, 상처, 그 속에 담긴 죽음과 진실을 소재로 한다. 자칫 식상해질 수 있는 플롯을 탈피하기 위해 감독은 아들의 죽음을 파헤치는 아버지의 시선으로 영화를시작한다. 아들과의 관계가 소원했던 아이들에서부터 출발해 아들과 가까웠던 두 명의 인
며칠 전 첫눈이 왔다. 눈이 내리는 모습을 보고야 겨울이 다가왔음을 실감했다. 자각의 순간은 짧았지만 여운은 길었다. 마치 영화 처럼 말이다. 는 산악 사고로 연인을 잃은 여자 ‘히로코’가 죽은 연인의 중학시절 주소로 편지를 보내면서부터 시작된다. 영화는 이 과정에서 철저한 우연성을 따른다. 죽은 연인과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에게서 오는 답장, 답장을 쓰는 여자와 주인공의 얼굴이 닮았다는 설정은 자칫 잘못하면 허무맹랑한 판타지로 보일 수 있는 요소였다. 감독은 이 함정을 피하기 위해 첫사랑을 사용한다. 누구나 가져본 적 있는 절대적인 감정은 1인 2역을 완벽하게 소화해낸 ‘나카야마 미호’의 열연과 조화를
시대와 사회구조 속에서 개인의 운명은 휩쓸리기 마련이다. 자아도 그렇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안에서 학습된 모습으로 나타나곤 한다. 은 태어나서부터 교육된 체제에 길들여진 모습을 자아라고 생각하며 사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1984년 분단 독일, 동독 비밀경찰 ‘비즐러’의 임무는 국가 이념과 상반된 사상을 가진 인물들을 도청하고, 증거를 잡아 신고하는 것에 있다. 임무에 있어 철저한 냉혈한인 그는 자신의 감정보다 국가 이념에 충실한 삶을 산다. 이야기는 비즐러가 동독 최고의 극작가 ‘드라이만’과 그의 애인이자 인기 여배우 ‘크리스타’를 감시하기 시작하며 가속화된다. 감독은 이 과정에서 ‘훔쳐보기 모티브’를 사용하는데, 연극-비즐러-관객에 걸친 액자식 구조는 이를
‘스탠퍼드 감옥 실험’을 영화화한 는 인간 본성에 내재된 폭력성을 사실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100분이 넘는 러닝타임 속, 스릴러 고유의 특수 효과는 없지만 영화가 실화라는 자체만으로도 관객들의 시선을 잡는데 부족함이 없다. 현존하는 가장 우월한 생명체인 인간 본성 통제에 대한 실험은 시대를 가리지 않고 이슈화되고 있다. 영화는 인간의 이성이란 생물학적 우월성과 관계없이 환경에 따라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심리학자 ‘톤’은 인간의 본성을 실험하기 위해 2주간의 모의감옥 체험자를 모집한다. 톤 박사의 실험에는 택시기사부터 회사 중역까지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참여한다. 그 곳에서 사람들은 ‘죄수’와 ‘간수’의 신분으로 나뉘게 된다. 영화가 우리에게 더 섬
빛을 소재로 한 영화는 많다. 주로 넋을 잃을 만큼의 풍광을 보여주거나 빛의 상징성에 초점을 둔 작품들이다. 오늘은 빛을 가장 독특하게 다룬 영화 한 편을 소개하려 한다. 빛을 응축한 스웨덴 공포영화 이다. 영화는 연출에서부터 빛을 극대화한다. 감독은 스웨덴 설산의 서늘함을 위해 회색 일광을 잡아 스프레이-라이트(물안개 같은 빛)를 제작해낸다. 이로써 렌즈는 애잔하면서도 외로운 분위기를 담아낸다. 캐릭터 역시 빛과 연결된다. 영화는 동급생에게 폭력을 당하는 소년 오스칼과 뱀파이어 소녀 이엘리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다. 영화는 공포와 사랑 이야기를 적절하게 배합하고 있다. 뒷골이 오싹해질 만큼의 공포와 차라리 울면 속이 시원해질 것 같은 먹먹함을 동시에 준다. 이 낯설음을 하나로 묶는 것
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마크 레비’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원작에 충실한 이 영화는 마크 레비 소설 특유의 착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로맨틱 코미디 특유의 억지스러운 갈등도 존재하지 않는다. 자극적인 영상 대신 알콩달콩한 연애담으로 90분의 러닝타임을 채워 나간다. 훼방꾼이 존재하지 않는 로맨틱 코미디는 지루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영화는 시종일관 무공해의 웃음을 선사한다. 이 모든 것은, 영혼이 든 집마저 훈기 도는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마크 워터스의 연출력에 있다. 사실 영혼과 집의 키워드는 우리에게 친숙하다. 브루스 윌리스의 부터 니콜 키드먼의 까지. 영
‘우디 앨런’의 시간 여행은 구형 푸조 한 대로부터 시작된다. 열두 시 종이 땡 하고 울리면 나타나는 이 요술마차는 주인공 ‘길’을 1920년대의 파리로 안내한다. 다분히 판타지 요소가 넘치는 설정이지만 그 과정은 의심스러울 만치 평범하다. 타임 슬립을 이뤄주기에 한 대의 푸조는 너무도 소박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우디 앨런은 파리를 통해 이 일상적인 판타지에 낭만을 더한다. 밤의 파리를 걷고 있는 그 누구라도 길처럼 과거로의 초대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환상을 심어준다. 단, 길처럼 낭만을 믿고 있는 사람에 한정해서 말이다. 푸조의 도착지는 1920년대 예술만능주의가 팽배한 파리였다. 작가 길이 살고 있는 물질만능주의 사회와 정반대되는 공간이며 동시에 전형적인 현실주의자 ‘이네즈(길의 약혼녀)’에
영화 는 프리즘과 같다. 어떤 빛을 투영하든지 간에 시선을 끄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를한 장르로 정의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영화는 때에 따라 구구절절한 멜로가 되기도 하며, 피와 살인이 난무 하는 전통 스릴러가 되기도 한다. 뱀파이어가 된 사제 ‘상현’의 관점에서 본다면 부활과 영생을 다루는 종교 영화로도 감상할 수 있다. 거기다 블랙 코미디의 요소까지 담고 있다. 영화 속 태주의 대사에서 나왔듯 상현의 뱀파이어는 제법 귀여운 구석을 가지고 있다. 엄연한 뱀파이어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이다. 성직자로서의 신앙심을 놓지 못한 뱀파이어는 확실히 새롭다. 살인을 금기시하며 링거 속의 피를 빨아 마신다. 송곳니조차 없다. 완전무결한 이 뱀파이어는 옛 친구 강우의 아내 ‘태주’를 만나
은 결핍에서부터 시작된다. 또한 그 결핍은 ‘완벽함’을 종착점으로 삼고 있다. 영화의 서사는 비교적 간단하다. 한 명의 발레리나가 백조에서부터 흑조로 변모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단순한 서사와 달리 영화는 혼란스럽다. 흑조와 백조, 선과 악, 소녀와 여성, 순수와 타락으로 분류할 수 있는 이분법적 구성은 진부함이나 단순함을 표현하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과 환상 속에 교차되며 시시각각 숨통을 죄여온다. 현실과 환상의 붕괴는 주인공 니나가 ‘결핍’을 깨달으면서 시작된다. 엄마로부터의 세계에 갇혀 있던 니나는 자신의 결핍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단장 토마스로 인해 니나는 본능 속 흑조와 조우한다. 얼핏 볼 때, 토마스와 엄마는 니나에게 있어 극명히 대비되는 인물로 느껴진다. 그러
2009년 ‘디스트릭트9’이 등장했을 때 모든 영화 평단과 SF마니아들은 이 영화를 새로운 형식의 SF라고 말하며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 영화가 돋보이는 것은 익숙한 것을 새롭게 느껴지도록 만드는 것에 있다. 시작부터 모큐멘터리 형식을 취하는 영화는, 남아공 출신의 감독의 손을 통해 재창조된다. 가장 정치적인 특색을 잘 나타낼 수 있는 장르가 SF라는 말처럼 감독 역시 ‘아파르트헤이트’를 영화 속에 녹여 내며 그들의 부끄러운 역사를 은유적으로 드러낸다.또한 영화는 남아공을 주 배경으로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여타 SF에서 느낄 수 없었던 을씨년스럽고 처연한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뿐만 아니다. 그들의 나라에서 자행되었던 차별과 폭행을 보여주기 위해 선택한 것이 새로운 형태의 외계인이다. 흔히
쉼 없이 달리는 열차가 있다. 그들에게 열차는 공간을 넘어선 세계이자 존재 그 자체다. 125분의 러닝타임 속, 영화는 인류의 역사와 순환, 계급투쟁, 나아가 생태계 문제까지 다루고 있다. 이 복잡한 내러티브를 납득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바로 ‘열차의 칸’에 있다. 꼬리 칸을 시작으로 엔진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은 하나의 인류와 꼭 닮았다. 주목할 점은 열차를 유지시키는 모든 것이 ‘균형’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영화는 열차의 균형을 유지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인물들마저 소모품처럼 이용한다. 즉, 영화 전반을 끌어가는 혁명 역시 개체 수를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해피뉴이어’ 이벤트에 그치지 않는 다는 것이다. 후반부에 가서 이 빈틈없는 세계는 크로놀 한 줌에 인해 막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