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의 한 단면을 슬프면서도 아름답게 함축한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1871]. 프로이센에게 패배하여 더 이상 프랑스어 수업을 할 수 없게 된 아멜 선생의 슬픔과 그저 들판에서 뛰어 노는 게 좋은 프란츠의 반성이 이어지며 한 편의 시처럼 그려진 소설이다. 또 하나의 ‘마지막’은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1905]. 죽음을 눈 앞에 둔 여류 화가 존시는 창밖으로 보이는 담쟁이의 마지막 잎과 자신의 운명을 동일시하게 된다. ‘저 이파리만 떨어지면 나도 죽겠지?’라고 절망한 존시. 비바람 세차게 불던 밤을 지
어제 나는 우주에서 행실이 좋지 못했다.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고,그 무엇에도 감탄하지 않은 채꼬박 24시간을 살았다.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부주의」 부분 언제 우리는 부주의하다고 평가 받을까. 유리를 깼을 때, 물을 엎질렀을 때, 그리고 무엇에도 감탄하지 않고 살아갈 때. 꼬박 24시간을 질문도 없이 움직이며 살았을 때. 숨 쉬고 내뱉고 생각 없이 다시 잠을 청할 때. 나는 어제의 빗방울이 다른 각도로 떨어지는 걸 느끼지 못한 채 시간을 보냈다. 그 사이에 이 세계는 많이도 바뀌었다. 한 학생이 수업 시간에 말했다. “저는 복학을
2월 24일 러시아가 이웃 우크라이나를 전격 침공함으로써 유럽대륙에서 2차대전 이후 최대규모의 군사적 충돌이 발발하였다. 푸틴이 내세운 우크라이나 침공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먼저 1990년대 초 소련의 해체와 냉전 종식 이후 지속되어 온 NATO의 확장으로 동유럽 국가들이 속속 회원국이 되면서 러시아의 국경에 가깝게 동진하는 것이었다. 서방국가들은 NATO가 러시아에 어떠한 위협도 되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으나 푸틴은 심대한 위협이라고 받아들였다. 그리고 2014년 이후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분리독립을 추진하던 우크라이나 동부
아직은 추위가 다 물러가지 않았으나 3월의 개강 날의 모습은 활기가 넘친다. 새로운 희망을 품고 입학한 신입생들이 학교 여기저기에 많이 보인다. 꿈을 안고 들어온 신입생들에게도 그들의 꿈이 현실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개강 수업에서 신입생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독서의 중요성이다. 대학 시절에 가능하면 부지런히 책을 읽으라고 권한다. 독서는 우리에게 성찰과 통찰을 가능하게 한다. 성찰은 자신을 반성하고 음미하는 것이라면, 통찰은 독서와 사색의 결과로 나타나는 미래에 대한 예지이다. 특히 고전을 읽어야 한다. 고전(古典)이란 말을
이 영어 문장은 종교에서 자주 사용하는 상용구인 “There is a life after death.”를 조금 바꾼 것이다. 사람들이 죽음 이후의 생을 믿지 않거나 죽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이런 문구가 만들어졌을 것이다. 유사하게, 많은 대학생들이 졸업 이후의 생을 걱정하거나 불안해한다. 이로 인해 졸업 유예나 휴학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젊은 대학생들에게 미래에 대한 염려나 불안은 피할 수 없는 삶의 항목처럼 여겨지는 것 같다. 더구나 어려운 경제상황과 코로나 19로 인해 취업이나 창업이 이전보다 훨씬 더 버거워졌기에 이런 염려나
“이번엔 OO이 문제여서, 다음주에는 OO을 바꿔서 실험해 보려고 합니다.” 10년 전 처음 대학원에 들어와 실험을 접한 지 이제 어언 10년째, 실험 물리학자로서 실패는 늘 공기처럼 함께해 왔다. 학생으로서, 포닥으로서 그리고 교수가 된 오늘에서도, 대부분의 일상은 안 되는 실험을 하고 왜 안 되었는지 이유를 찾는 과정의 연속이다. 매번 기대와 실망의 반복이지만, 저 훌륭한 에디슨도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말했다니 이를 위안 삼아 계속 나아갈 뿐이다. 하지만 모든 실험이 실패하는 것은 아니다. 신기하게도, 10번쯤 실험을 하면
쌀쌀한 날씨 탓에 온몸을 움츠리는 나를 보면서 이번 학기도 점점 후반부를 향하여 간다는 것을 느낀다. 너무나도 다행인 것은 우리 학교가 서서히 대면강의를 늘리면서 캠퍼스 곳곳이 다시금 숭실 학우들의 온기로 채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우리 삶이 급격히 변화되면서 캠퍼스에서의 낭만을 즐기기는커녕 같은 학과 동기들이나 선후배들, 나아가 같은 학교 동문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도, 함께 웃으면서 식사하는 것도 매우 어려운 요즘이다. 코로나 블루, 이제는 코로나 레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우리의 육체와
지금, 대한민국은 초월(Meta)과 현실세계(Unaiverse)의 합성어로 탄생된 메타버스(Metaverse) 신드롬에 푹 빠져 있다. 성큼성큼 다가오는 위드 코로나 시대(The With-Corona Era)는 메타버스가 가속되는 시점이기 때문에, 우리들은 정신 바짝 차리고 변혁에 슬기롭게 대처해 나가야 한다. 더불어 글로벌 무한 경쟁에서 메타버스 주도권을 장악해 나가기 위해서는 가상세계와 현실세계의 경계를 허물고 있는 환경에 어떻게 K-콘텐츠를 접목해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 역시 심도 있게 생각해야 한다. 네덜란드의 역사가이자 철학
※ 주의: 본 글에는 드라마 D.P.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안준호 이병: “서, 석봉이 형, 제발” 조석봉 일병: “준호야, 나 이제 봉디쌤 못하겠지?” “뭐라도 바꾸려면, 뭐라도 해야지...” ‘탕!’ 가끔 아니 꽤 자주, 미디어를 통해 우리는 정부가 발표하는 정책을 보고 듣는다. 교육정책이 그랬고 부동산 정책이 그랬다. 정부는 보도 자료 또는 기자회견으로 우리에게 정책을 설명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우리의 생활이 정책에 영향을 받고 있다고 느낀다. 사실 이것은 정책의 전체 과정 중 후반부만 이야기한 것이다. 전반부에는 우리가
좀처럼 멈출 기세를 보이지 않는 역병으로 인해 우리는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살도록 내몰리고 있다. 더군다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 나라의 내일을 책임지겠다는 사람들은 내일은커녕 한 치 앞도 안 보고 이전 투구를 하는 모양새이다. 그들이 쏟아내는 거칠고 험악한, 듣기 민망한 말들은 그러잖아도 역병으로 속이 상(傷)해진 우리들 마음에 황사를 끼얹는 격이다. 이럴 때, 김현승 시인의 시, 를 읽고 싶어진다. 이 시는 시인의 고전주의자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고전주의자는 시간이 흘러 속절없이 사라지는 것
고백하건대 중학생 시절, 나의 심성은 바르지 못했다. 학교 성적이 좋다는 이유로 기고만장했고 모난 성격 탓에 툭하면 친구들과 싸움을 일삼았다. 운동장에서 친구와 싸움을 벌이다 크게 불리해지자 선생님들의 비호를 받기 위해 교무실로 도망갔던 수치스러운 기억도 있다. 우수한 성적을 구가하던 나는 3학년에 올라가며 치렀던 반장선거에서 떨어지며 큰 충격을 받았다. 당시엔 주로 공부 잘하는 학생이 반장이 되는 것이 당연시되던 때였기 때문이다. 이유를 살펴보니 공부는 별로 못했지만 유독 유머가 뛰어나고 사교성이 높아 항상 인기 좋았던 한 친구가
“여러분! 공부가 많이 힘들지요?” 제가 이렇게 뜬금없는 질문을 하고 보니 아마 여러분 중에는 “지금 누구 약 올리는 건가?” 하고 언짢아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지금 저는 이 공부에 대한 이야기부터 좀 해볼까 합니다. 공부는 기본적으로 ‘호기심’의 영역입니다. 인류의 문명은 어쩌면 이처럼 ‘새롭고 신기한 것을 알고자 하는 마음’에서 시작됐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하루하루 새로운 지식과 미지의 세계를 배우고 알다 보면 우리의 호기심은 나날이 커가고, 그 호기심은 다시 또 다른 지식과 세계를 발견하고
2000년대 중반, ‘Ubiquity of Internet Access’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이 개념은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왔지만, 사실 과거로부터 꾸준히 발전돼 온 결과다. 예를 들어 몽고메리와드는 60년대 중반에 ‘우편 주문서비스’ 라는 유통구조를 모색함으로써 발전한 대표적인 온라인 소매업체이다. 이들은 미국 전역을 마치 거미줄처럼 관통하는 철도망과 수신자 부담의 전화 서비스를 이용했는데, 이는 지금의 온라인 유통구조와 매우 흡사하다. 또한 1972년에 도입된 프로토콜 TCP/ IP는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인터넷 통신 기술
이 구절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용비어천가』 2장 원문이다. 현대어로는 “뿌리가 깊은 나무는 바람에도 흔들리지 아니하므로, 꽃이 좋고 열매도 많으니.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도 그치지 않고 솟아나므로, 냇물이 되어 바다에 이르니.”이다. 비유적으로 쓰인 ‘불휘’와 ‘ᄉᆡᆷ’, 즉 뿌리와 샘을 추상화한 표현은 ‘본원(本源)’이다. 그 본원을 찾는 행위는 자신의 존재를 탐구하는 일이며 미래로 가기 위한 발판이기에 의미가 있다. 우리 학교 한국기독교문화연구원에서 간행한 시리즈 도서로 ‘불휘총서’가 있다. 숭실의 뿌리를 찾아보자는 기획하에
문득 “아! 내가 분단국가에서 살고 있지!”라는 것을 깨닫는다. 분단국가에서 태어나 자라고 50대 후반에 이르면서 유럽에 갈 때는 당연히 비행기를 타는 것이, 마치 라면에 김밥을 먹으면 맛있다는 생각처럼, 익숙해져 있다. 숭실대입구 전철역에서 시작하여 영국 스코틀랜드 에든버러까지 기차를 타고 갈 수 있다는 것은 낯설고 다른 나라에서나 가능한 것처럼 느껴진다. 사실, 통일되면 기차로 유럽까지 가는 것이 가능하고 교통수단을 비행기와 기차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북한 최고지도자가 대한민국 대통령과 판문점에서 경계선을 넘어가고 넘어오고
“내 꿈을 팝니다. 사주세요.” Caveat Emptor. 예전에는 종종 꿈을 꾸면 그 꿈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다가 좋은 꿈이라 생 각하는 사람이 꿈을 꾼 사람으로부터 그 꿈을 사기도 했다. 이제는 그 꿈을 동전(coin, token)으로 만들어 팔기도 하고, 컴퓨터 시스템을 이용해 발행(mint)하기도 하며,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장부(blockchain)에 적어 공개하고 공유하기도 한다. 그래서 필자는 이 동전을 ‘꿈동전’이라고 부른다. 이런 ‘꿈동전’이 현 시점에서 전 세계적으로 10,111가지(coinmarket
작년 1월부터 세계화된 코비드 19팬데믹은 호흡곤란을 일으키는 치명적 감염병이 되어 ‘모든 종류의 거리두기’를 강제하고 있다. 코로나는 ‘대면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자영업자들과 대면접촉형 노동자들의 경제적 호흡활동을 마비시키고 있다. 그 결과 코로나 19팬데믹은 그동안 우리나라 보수정파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외친 경제정책들을 좌초시키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공공일자리 창출과 민간기업 고용 노동자들의 임금소득 상승을 통해 경제민주화를 이루려고 했으나, 코로나 때문에 기업 자체의 고용창출 능력이 소멸되어 이 정책이 아무 소용이 없음
우주항공의 역사를 새롭게 쓴 ‘스페이스 X’의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는 가전제품에 들어가는 소형 리튬 이온 배터리 수천 개를 연결하는 기발한 방법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전기차를 만든 ‘테슬라’의 CEO이기도 하다. 그는 몇 년 전 테슬라가 보유한 모든 전기자동차 특허를 모든 사람에게 무료로 공개해 극찬을 받았다. 또한 인간의 뇌에 인공지능 칩을 심어서 컴퓨터와 연결하는 공상과학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위한 ‘뉴럴링크’라는 회사를 세우기도 했다. 영화 ‘아이언맨’ 주인공의 실제 모델이기도 한 그는 ‘
소설 창작 시간에 ‘최초의 기억’에 대한 수업을 하고 있다. 흐릿하기도 하고 강렬하기도 한 감각과 이미지로 남아 있는 최초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에서 나아가 당시의 날짜를 연상해 검색한 뒤 눈에 띄는 신문 기사를 찾아 연결해 짧은 글을 쓰는 것이다. 지극히 사적인 순간과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순간의 조우를 통해 사실과 허구, 기억과 서사의 의미를 되묻는 글쓰기 과정을 체험한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떠올리는 최초의 기억은 정말 사실에 닿아 있을까, 우리의 사적인 일상은 과연 세계적 사건과 무관한 것인가, 라는 질문을 학생들과 공유하고 싶었
여러분은 자신의 감정을 얼마나 존중하며 살아오셨습니까? 매 순간 느끼는 감정을 잘 알고 표현할 수 있나요? 자신의 감정을 구체적으로 잘 표현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제가 가족 상담을 하게 될 때 내담자의 과거 어린 시절 경험을 물어보곤 합니다. 대체로 좋은 추억들은 구체적으로 얘기하는 편이지만 힘들었던 상황과 그 당시의 감정에 대해서는 두루뭉술하게 표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어린 시절 부모에게 부정적 감정을 표현했을 때 이해받지 못하고 거부당했던 경험이 있었고, 그 이후 부정적 감정을 솔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