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6년 고종이 장로교 의료선교사로 내한하여 의료선교 활동을 펼쳤던 헤론(J. W. Heron,蕙論)에게 그 노고를 인정하여 종2품 가선대부라는 벼슬을 내린 교지이다.서양의학 기술은 조선후기 중국을 통해 조금씩 전해졌으나 본격적으로 서양의료기술이수용되어 치료를 시작한 때는 1885년 제중원의 설립부터이다. 한국에 최초로 내한한 알렌선교사가 조선 정부에 제안하여 제중원을 설립하여 질병으로 신음하는 가난한 자를 위해치료를 시작했고, 1885년 의료선교사로 내한한 헤론이 제중원의 운영책임을 맡아 병자 치료에 헌신하였다. 헤론은 1856년 영국에서 출생하였으며 미국으로 이주하여 메리빌대학과 테네시대학교 의과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였다. 1885년 6월 조선에 의료 선교사
한글 성경본으로 가장 오래된 것 중의 하나이다. 개화기 한글 성서 번역은 매우 독특한 역사적 특징이 있다. 한국인에 의해 자발적으로 번역 간행되었다는 점과 당시 기독교를 부정했던 조선정부의 통제에서 벗어나 외국, 즉 지금의 중국 선양과 일본 요코하마에서 번역되어 국내로 유입되었다는 점이 그것이다. 1882년 서상륜 등이 중국에서 을 최초로 번역 간행하였고, 1885년에는 이수정(李樹庭)이 일본에서 국한문의 를 번역 간행하였다. 이수정은 당대 매우 진보적인 가문에서 자란 개화파의 한 사람이었다. 그의 숙부 두 명은 천주교인으로 병인박해 때 십자가의 형틀에 처형당했다. 이수정은 1882년 임오군란 당시 군인들로부터 민비를 보호한 공로를 세웠는데, 이것이 계기가 되어
한글로 발간된 최초의 성서로 원 제목은 이다. 1882년 3월 만주 봉천(지금의 심양)에서 목활자로 3,000부가 간행되었는데, 그 중의 한 권이다. 이 한글 성서의 탄생은 세계 교회사에서 매우 주목할 만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외국 선교사의 입국 이전에 자발적으로 모국어로 된 성경을 번역하여 보급함으로써 자생적인 신앙공동체를 형성했다는 사실은 한국 교회사만의 특징이다. 의주 출신으로 중국을 오가며 상업 활동을 하던 서상륜, 이응찬, 백홍준은 중국에서 활동하던 스코틀랜드 출신의 선교사 로스(R. Ross), 매킨타이어(J. MacIntyre) 목사를 만나 신앙을 받아들이고 한글 성경 번역에 착수했다. 특히 이응찬, 백홍준은 1879년 한국 개신교
1816년 한국 서해안을 10여 일간 측량했던 영국의 리라(Lyra)호 함장 바실 홀(Basil Hall)의 항해기이다. 바실 홀은 영국으로 돌아가 1818년 서해안 탐사 내용을 등을 수록한 항해기를 출간했는데, 여기에는 한국기독교 역사와 문화사에 있어 매우 중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바로 한국 성서 전래의 효시에 관한 기록이다. 바실 홀을 함장으로 한 리라호와 맥스웰(Maxwell)을 함장으로 한 알세스트(Alceste)호가 1816년 9월 황해도 대청군도를 시작으로 해도 작성에 착수했다. 이들 함대에는 영국 해군의 제도와 관례에 따라 종군 목사가 동행하였고, 종군 목사에게는 군목 외에 외지 선교 임무도 부여되어 있었다. 이들 두 함대는 서천의 마량진(馬梁鎭)에 정박하여 측량을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