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울 성북구에 소재한 용문(龍文)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경기도 양평(楊平)에 있는 용문(龍門)고등학교와 구별하기 위해 누군가 출신 고등학교를 물어볼 때면 늘 ‘서울에 있는’ 용문고등학교를 나왔다고 말하곤 했다. 사람들은 이상하리만치 용문고등학교라고 하면 양평에 있는 용문고등학교를 먼저 떠올렸는데, 그건 아마 천년 고찰 용문사(龍門寺)와 해발 1,157미터의 고산(高山) 용문산(龍門山)이 워낙 유명하기 때문일 것이다. 용의 문을 뜻하는 이 절과 산의 입구에 천년의 생명력을 자랑하며 서있는 은행나무는 스토리텔링의 보고(寶庫)가 아닐 수 없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의상대사가 땅에 꽂은 지팡이에서 싹이 돋고 가지가 생겨 은행나무가 되었다는 전설일 것이다. 마의태자와 관련되었다는 설도 있고, 한
세계 최초로 영화를 만들어 상영한 사람은 형제인 루이 뤼미에르와 오귀스트 뤼미에르였다. ‘사람은 이름대로 간다’는 말은 맞는 것인지 뤼미에르(lumière)는 불어로 ‘빛’이라는 뜻이다. 영화를 필름에 투영되는 빛의 양으로 특정한 모습과 동작을 연속적으로 담아낸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면 그들은 정말 이름에 걸 맞는 일을 한 것이다. 선택적 지각오류(selective perception)겠지만 이름에 관(官)자나 성(星)자가 들어있는 고위 공무원이나 장군(將軍)을 보고 그들이 이름값을 했다고 느끼는 상황과 흡사하다. 그러나 우연의 일치도 이런 우연의 일치가 없다. 중요한 것은 ‘뤼미에르’의 이름을 딴 이 도시의 극장에서 매년 기라성(綺羅星)같은 배우들이 영화 축제를 벌인다는 것이다. 올 해로 70주년을
1981년 9월 30일 고(故)사마란치(Samaranch) IOC 위원장의 입을 한국인들은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었다. 그가 단상에 올라 맑은 스페인어 어조로 쎄울(Seúl)을 발음했을 때, 조금 과장하여 표현하면 한반도는 흔들렸다. 전 국민은 환호했고 언론은 하루 종일 서울이 올림픽 개최지가 된 것을 찬양했다. 어렸을 때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 법인지 아직도 내 머리 속에는 14, 2, 1이 각인되어있다. 대한민국은 근대 올림픽을 개최한 열네 번째 국가가 되었으며, 아시아에서는 두 번째 국가, 개발도상국가에서는 첫 번째 국가로 기록
나치 독일이 항복한 후에도 일본은 전쟁의 야욕을 거두지 않았다. 전범국 일본은 점령 지역의 곳곳에 숨어서 반인륜적 학살행위를 저지르고 있었다. 일본의 무모한 행동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1945년 7월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 영국의 처칠 수상, 소련의 스탈린 서기장은 이 도시의 체칠리엔호프 궁전(Schloss Cecilienhof)에서 만나 전후 세계질서를 논의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국사시간에 수없이 외웠던 포츠담 회담(The Potsdam Conference)이다. 이 회담에서 한국의 독립은 재확인되었고, 일본의 무조건적인 항복이 요청되었다. 회담 후 발표된 선언은 독일의 작은 도시 포츠담을 한국인에게는 그 의미를 간과할 수 없는 ‘큰 도시’로 만들어 버렸다. 유럽인은 로코코 양식의 웅장하고 아름다운
베트남은 미국을
삼백연(三栢淵) 원안풍(願安風)은 노적봉 밑에 님 자취 완연하다 애달픈 정조 유달산 바람도 영산강을 안으니 님 그려 우는 바람 목포의 노래. 국민가수로 추앙받는 고(故) 이난영 선생의 의 가사 중 일부다. 원래 ‘삼백연 원안풍’이라는 부분은 ‘삼백 년 원한 품은’이라는 가사로 만들어졌는데, 일제가 1933년 선포한 ‘공연과 흥행에 관한 취체령(取締令)’을 통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바뀌었다고 한다. 일제의 식민지배 방식은 가끔 소름을 돋게 만들 때가 있다. 유달산의 노적봉은 이순신 장군이 왜군의 장기간 포위 작전에 대응하기 위해 군량미처럼 보이게 할 의도로 짚으로 위장하여 적군의 사기를 떨어뜨렸던 곳이 아니던가. 노적봉은 단순한 산위의 바위가 아니라 제갈량도 울고 갈 전쟁 전술의 현장이었
일본을 작은 섬나라라고 생각하는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을 것 같다. 일본 열도의 전체 크기는 한반도의 약 1.7배에 이르고, 한 여름에도 서늘함을 유지하는 홋카이도(北海道)의 크기는 대한민국의 3분의 2에 달한다. 일본을 작게 생각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막연한 역사적 우월감’이 그 기저(基底)에 있다고 본다. 역사에 대한 인식을 머릿속에서 조금 걷어내고 보면 일본은 모든 것이 갖추어진 여행자 천국에 가깝다. 밤에도 안전한 치안, 친절한 사람들, 전국을 실핏줄같이 연결한 철도, 그리고 맛있는 음식. 특히 천편일률적으로 ‘맛의 효율’을 강조하는 프랜차이즈 레스토랑보다는 ‘그 지역의 그 식당’에서만 맛 볼 수 있는 맛집이 많아서 너무나도 좋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던 지난 7월 말 북국(北國
덴마크라는 나라는 국가 자체가 브랜드다. 수많은 유제품 앞에 ‘덴마크’라는 수식어를 붙이면 프리미엄 제품이 된다. 덴마크 요구르트, 덴마크 우유, 덴마크 치즈는 청정(淸淨)하다는 이미지를 부여받아 고가 제품군으로 분류된다. 비단 유제품뿐만이 아니라 ‘Danish Design’ 이라는 말은 군더더기 없고 미적 감각이 뛰어난 디자인을 통칭하는 것으로 인식된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좋은 국가 이미지를 가질 수 있을까. 그것은 아마도 원칙을 지키고 정의(正義)를 수호하려는 덴마크 국민들의 노력의 결과일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고 각 정부 부처의 수장(首長)을 검증하려는 인사청문회가 진행 중인데, 덴마크의 원칙과 정의가 한없이 부럽다. 우리나라에서의 정의는 마치 거짓말을 열 번한 사람이 스무
알퐁스 도데의 은 프랑스어로 더 이상 수업을 하지 못하는 선생님과 학생들의 모습을 담아낸 명작 단편소설이다. 이 작품이 특히 한국에서 인기를 구가(謳歌)했던 이유는 우리도 일제강점기 당시 한글을 사용하지 못했던 아픔을 겪어서일 것이다. 이 소설에서 독일은 점령군임과 동시에 프랑스어 사용을 금지시키는 무뢰한인 것처럼 묘사되었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은 그와는 다르다. 의 배경이 되었던 알자스로렌(Alsace-Lorraine) 지방은 중세시기 이후 줄곧 독일의 영토였으나, 2차 세계 대전에서 패한 독일은 전범국으로서 프랑스에게 이 지역을 양도했다. 알자스로렌 지역의 원래 언어는 알자스어(Elsässisch)로 독일어의 방언이다. 언어는 문화와 국경을 나누는
울리히 츠빙글리(Ulrich Zwingli)는 이 도시의 상징과도 같은 그로스뮌스터(Grossmunster) 교회에서 타락할 대로 타락해버린 종교의 개혁을 설파했다. 그는 ‘마녀사냥’이 횡행하던 시기에 언제든 화형(火刑)에 처할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고, 국민 위에 군림하는 성직자들이 자기 멋대로 정해 놓은 교리가 아닌, 성서(聖書)에 근거하여 행동할 것을 주장했다. 츠빙글리는 비록 카톨릭 군과의 전쟁에서 종군목사로 활동하다 47세의 젊은 나이에 전사하였지만, 그의 사상과 행동강령은 요한 불링거(Johann Bullinger)로 이어져 스위스를 종교개혁의 중심지로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위대한 종교개혁가의 도시 취리히에 개혁이라는 이름의 신선한 공기를 흡입하고자 수도 베른과 카펠 다리가 있는 루체른
난 신앙이 깊은 사람은 아니지만 모태 신앙을 가진 기독교인이다. 그래서 일까 불교는 왠지 신비스럽다. 해탈(解脫)이나 열반(涅槃) 같은 말을 들으면 과연 어떻게 해야 그런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지 매우 궁금하다. 오랜 세월 지독한 고통을 감내해야 이를 수 있는 경지라면 죽어서 어떻게 되든 편하게 살다 생을 마감하고 싶기도 하다. 나아가 대입 학력고사에도 종종 나왔던 팔정도(八正道) 같은 불교 수행 용어를 들으면 신비감은 극에 달하게 된다. 그에 반해 기독교는 보다 명쾌하게 다가온다. 예수께서 선물로 주신 구원에 대한 믿음을 가지면 누구나 천국에 간다는 논리다. 고행을 통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생각보다는 의심 없이 믿으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생각이 나를 더 편하게 하는 것은 부정하지 못한다.
중국 저장성(浙江省)은 예전부터 거상(巨商)들이 많기로 유명했다. 큰 비즈니스맨들이 넘쳐나니 부자들도 당연히 많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2016년 중국의 후룬(胡潤)이라는 사이트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 돈으로 3,700억 원 이상을 가진 중국 부자 2056명 중 248명이 저장성 출신이라고 한다. 물론 순위로는 단연 1위. 저장성의 성도(省都)인 이 도시는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렸다. 행재(行在), 임안(臨按)으로 불리다가 마르코 폴로와 이븐 바투타 등의 외국 여행가들에 의해서 ‘킨자이(Kinzai)’라는 이름으로 유럽에 소개되었다. 특히 마르코 폴로는 이곳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칭송했다. 부자가 많으니 자연스럽게 미인들이 모여든 것인지 아니면 원래 이 지역의 물과
사람이 사는 곳에는 마치 꼭 그래야 하는 것처럼 악당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상하리만치 약한 사람을 괴롭히고 온갖 전횡을 일삼던 악당은 결국 법의 심판을 받거나 영웅에 의해 단죄(斷罪)된다. 이런 인간사의 이야기들은 전설이나 신화라는 이름으로 후세에 전해진다. 심지어 도시의 이름으로도 남는다. 이 도시에서는 안티곤(Antigoon)이라는 거인 악당이 통행세를 강제로 징수하였는데, 이를 거부하는 사람들의 손을 잘라 강물에 버렸다고 한다. 겁에 질린 사람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세금을 내야만 했고, 간혹 객기(客氣)를 부리는 사람들은 어김없이 손목이 잘려 나갔다. 이런 와중에 실비어스 브라보(Silvius Brabo)라는 영웅이 등장하여 안티곤의 손목을 잘라 이 도시를 휘감아 돌아 나가는 스헬데(Schel
내가 내는 세금이 적재적소에 나와 내 가족을 위해 쓰인다는 것을 몸소 느낀다면 조세저항(租稅抵抗)이 훨씬 줄어들 것이다. 반면에 세금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대를 얻지 못한 곳에 낭비되거나 심지어 위정자들의 축재(蓄財)수단으로 변질될 때, 사회적 신뢰는 무너지고 누구나 기회가 생기면 탈세행위를 하려고 할 것이다. 여러 도시를 방문하면서 목도하는 것이지만 ‘필요한 곳에 필요한 것’이 있는 도시는 시민의 세금이 잘 쓰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같은 국가에 있는 도시라도 어떤 도시는 시민을 무척이나 배려한 느낌이 든다. 승강기가 있어야 하는 곳, 점자(點字) 안내가 필요한 곳, 쓰레기를 버릴 수 있는 곳, 유아들이 안전하게 놀 수 있는 곳, 남녀노소 모든 시민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 이런 모든 장소가 효
동남아 국가들이 가진 이미지는 대부분 ‘낙후(落後)’라는 오명으로 채워져 있다. 싱가포르나 홍콩같이 이미 선진국의 반열에 오른 경우를 제외하고는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여행하기 전에 ‘작은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비포장도로 위를 활보하는 미터기조차 없는 택시, 현지인보다 열 배를 더 받는 외국인 요금, 그리고 콜레라나 장티푸스 같은 전염병 등은 심약해진 마음에 큰 공포를 일으켜 여행을 포기하게끔 만들기도 한다. 지금에는 스마트폰으로 수많은 블로거가 올린 도시 정보를 생생하게 얻을 수 있기에, 오직 가이드북 한 권에 의지하여 여정을 짜던 시기에 열정과 불안이 마음속에서 요동쳤던 일이 새롭게 느껴진다. 17년 전인 2000년 5월. 어감이 생소하여 개그 코너의 소재로 사용되기까지 했
1945년은 한반도가 일제의 탄압에서 해방된 해이기도 하지만 인류에게는 씻지 못할 충격을 안긴 최악의 참사가 벌어진 해로 기록되었다. 미국의 B29 폭격기에서 투하된 원자폭탄은 13만 5천여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리틀 보이’로 명명된 원자 폭탄은 이름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빅 몬스터’였다. 넓은 섬이라는 뜻을 가진 히로시마(廣島)는 인간의 사체와 파괴된 건물의 잔해로 뒤덮였다. 인간의 생명에는 귀천(貴賤)도 없고 경중(輕重)도 없지만 원폭으로 인한 조선인 사망자의 수가 2만여 명에 달한다는 사실은 한국과 일본의 어두웠던 과거를 대변하고 있다. 1996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원폭 돔(原爆ド―ム:Genbaku Dome)에 2016년 5월 27일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방문하여 헌화하
이 세상에는 계획대로 되지 않은 것이 참 많다. 원래 세운 계획대로 모든 것이 순조롭게만 된다면 인간 세상에는 갈등과 슬픔이 없어질 것이다. 보통 사람들도 아닌 수재(秀才)들이 계획한 일들이 수포(水泡)로 돌아갈 때 사람들은 신의 뜻이라며 푸념을 늘어놓기도 한다. 7백만 불이면 충분하다던 공사비는 14배가 늘어나 1억 2백만 불이 투입되었고, 3년이면 된다던 공사기간은 14년이나 걸렸다. 단순히 신의 뜻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다른 결과였다. 이 도시에 이 건축물이 없다면 우스갯소리로 ‘앙꼬 없는 찐빵’이 된다. 2007년 6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앞에 섰다. 오페라 하우스는 어느 도시에나 하나씩은 있지만 이곳은 단순히 오페라를 공연하는 장소로서의 의미를 뛰어넘어 문화를 창조해내
사람들이 모여들어 도시는 만들어 진다. 사람의 왕래가 많은 곳에는 자연스럽게 시장이 형성되어 물품이 거래되고, 도시를 통치하려는 사람들은 탁 트인 곳에 시청사를 세워 권위를 자랑하려 한다. 한 도시 안에도 잘 사는 동네와 못 사는 동네가 분리되어 각기 다른 문화의 형태가 발원(發源)한다. 심지어 가장 음습(陰濕)한 곳에는 이상하리만치 정확하게 홍등가가 구성되어 도시의 치부(恥部)가 된다. 도시에는 아름다움과 추함이 공존하고, 권력과 계층, 부귀와 빈곤, 욕망과 속죄가 섞여 있다.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이 혼재되어 있는 도시라는 공간은 정말 종이 한 장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도시마저도 계층적인 순위로 순서를 매긴다. 많은 도시를 여행하다보면 인생의 말년을 보내고 싶
나에게 맥주는 최고의 술이다. 와인은 많이 마시고 공부도 해봤지만 여전히 잘 모르겠고 소주는 너무 독한데다가 왠지 ‘철학’이 없어 보인다. 실명을 거론할 수는 없지만 잘 아는 연예인 선배는 “와인은 말 오줌 냄새가 나서 싫다”고 한다. 내가 소주에서 영안실 냄새가 난다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맥주는 어렵지도 않고 ‘빈티지’를 따지지 않아도 될 뿐만 아니라 지역마다 각기 다른 품종을 논하지 않아도 된다. 더구나 곁들이는 음식으로 값비싼 치즈나 소위 ‘품격 있는 안주’가 없어도 된다. 땅콩이나 오징어만 있어도 어디서든 따서 마실 수 있다. 잔이 없다면 병째 마셔도 되고 캔에 든 것은 가지고 다니기도 편하다. 독일에서 체류한 경험이 있는 나는 자타가 공인하는 맥주 예찬론자다.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에게 헤겔, 야스퍼스, 하이데거는 반드시 넘어야 하는 큰 산이다. 비단 철학뿐 아니라 문학과 역사학, 그리고 거의 모든 사회과학에서 이들의 말과 사상은 인용(引用)된다.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에서 교편을 잡거나 연구 활동에 몰입했던 이 철학자들은 휴식이 필요할 때마다 산책을 다녔다. 사람들은 위대한 철학자들이 걸었던 길을 ‘철학자의 길(Philosophenweg)’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하이델베르크(Heidelberg)’라는 발음 자체만으로도 뭔가 ‘독일스러움’이 느껴지는 이 대학 도시에 온 가장 큰 이유는 철학자들이 거닐었던 길을 몸소 걸어보기 위해서였다. 이 길을 걸으면 내 머릿속으로 위대한 사상가들의 생각이 순식간에 다운로드 될 것 같은 즐거운 상상을 하면서. 독일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