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는 ‘기초연금’에 관한 기사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65세 이상의 노인에게 매달 20만 원씩 기초연금을 지급하기로 약속했었죠. 그러나 지난 26일(목)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이 공약을 파기하고 재정부족으로 인해 기초연금 지원 규모를 축소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우선 65세 이상 노인 중 소득 하위 70%까지만 일정 금액이 지급되고 나머지 30%는 어떤 금액도 지원받지 못하게 됐습니다. 따라서 소득 하위 63%에 해당하는 노인에게는 기존에 지급하기로 약속했던 금액인 20만 원이 지원됩니다. 반면 소득분위 64%에서 70%까지의 노인들은 국민연금 가입 기간에 따라 차등지원을 받게 되는데요. 국민연금에 가입한지 11년 미만인 노인의 경우에는 20만 원이 지급되지만,
베어드는 한국에서의 초기 선교 사역의 방향을 크게 4가지로 정하는데, 그 중에서도 지역주민들과 광범위하게 접촉하며 한국인의 생활과 정서를 이해하기 위해 순회전도여행을 가장 중시했다. (이 여행을 그는 일기에서 ‘현지답사와 복음전도여행 (exploratory and evangelistic journey)’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 한 예로, 1896년 한 해에 279일 동안 1000마일이 넘는 거리를 8번에 걸쳐 여행한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순회 전도여행을 강조했는지를 알 수 있다. 베어드는 29세의 나이에 조선에 입국해서 이듬해 봄부터 바로 순회전도여행을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부산을 출발하여 김해를 거쳐 진해에 도착한 베어드는 그곳에서 하루 밤을 자고 다음 날 창원과 마산의 여러 곳을 돌아
사람들은 이 넓은 세상에 자신의 마음을 진정으로 나눌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다고, 그래서 외롭다고 호소한다. 그것은 우리가 서로의 마음을 잘 알아주지 못하고 진정으로 나누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과 연결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은 ‘그냥 들어주는 것’이다. ‘그냥 들어주는 것’ 이야말로 다른 사람을 향해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보여주는 가장 큰 관심의 표현이다. 말을 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말이 잘 받아들여지기를 원한다. 이것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우선적인 것이다. 그 사람 자신이 잘 받아들여진다는 것, 그가 말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잘 듣고 있다는 것, 또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중요하게 여겨지고 세심하고 주의깊게 받아들여진다는 사실이, 자신이 ‘이해되는 일’보다도 훨
지난달 30일(금) 국사편찬위원회의 검정 심사에 합격한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가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교과서가 지나치게 친일·독재를 미화하고 각종 사실을 왜곡했다는 이유 때문인데요. 지난 12일(목) 민주노총을 포함한 465개의 단체가 결성한 ‘친일·독재 미화 교과서 무효화 네트워크’는 성명서를 통해 “교학사 교과서는 정확성·공정성·보편성을 갖추지 못했다.”며 “이 교과서를 시장에서 퇴출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죠. 교학사 교과서에 대한 검정 취소 요구가 계속되는 가운데 교육부의 대응에도 비난이 일고 있습니다. 서남수 교육부 장관은 지난 11일(수)에 교학사뿐 아니라 검정에 합격한 8종의 교과서 모두를 수정·보완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습니다. 그런데 이방침이 교학사 교과서 문제를 전체 교과서
부산에서 통영까지 (2) 한국에 올 때부터 자신의 일생을 한국 선교
며칠 전 한 경제신문 일간지에 ‘복지 축소 없는 예산안, 벌써 파행’이란 제목으로 기사가 난 것을 본 적이 있다. 우리나라 정부의 예산 편성이 파행을 낳는 이유는 복지 지출 대폭 확대와 사회간접자본 투자의 확대가 동시에 이뤄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즉, 복지 지출을 늘리기 위해서는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를 줄여야 하고, 사회간접자본 투자를 늘리기 위해서는 복지 지출을 줄여야 가능하다. 물론 복지 지출과 사회간접자본 투자를 동시에 늘릴 수 있는데 이 경우에도 어느 쪽을 더 늘려야 하는지에 대해 논쟁이 일어날 수 있으며 어떤 경우에든 정부의 세수가 늘어나지 않는 한 정부의 재정 건전성은 악화될 것이다. 어쨌든 복지냐 투자냐 하는 문제가 발생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경제학에서 말하는 ‘사용 가능한 자원
부산에서 통영까지 (1) 베어드는 한국의 첫 선교지였던 부산에 머문 4년 동안 모두 4번에 걸쳐 한강이남 지역의 선교 답사 여행을 한다. 그중에서, 첫 번째 순회 전도여행은 1892년 5월 18일(수)에 부산을 출발해 통영까지 갔다가 6월 13일(월)에 부산으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이 순회 전도 여행에는 베어드를 돕기 위해 불과 3일 전에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온 서상윤(통역 겸 매서인), 박재용 (도우미 겸 보호자) 그리고 마부(옷, 음식, 판매용 책등을 운반하는 말 관리인)까지 세 명이 함께 동행한다. 당시의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이러한 소수의 인원으로 아무런 사전 정보도 없는 미지의 지역들에 대해 개신교 선교사로서의 최초의 선교답사 여행을 한 것은 극히 모험적이었다. 특히,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이번주에도 계속해서 뉴스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국회와 국가정보원부터 경찰과 검찰에 이르기까지 ‘이석기 사건’의 내막을 밝히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있죠. 지난 4일(수) 국회에서는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이 289명 중 258명의 찬성으로 통과됐고, 같은 날 이 의원은 국정원에 의해 구인되었습니다. 다음날 사람들은 이 의원이 국가보안법 7조(찬양·고무) 위반 혐의로 구속 수감되었다는 사실을 전해 듣게되었죠. 한 마디로 일사천리였습니다. 이에 대해 이 의원 측은 이번 사건이 국정원에 의해 조작된 것이자 정치적 공작이 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진보당은 “국회에 이어 법원까지 무분별한 색깔론과 마녀사냥, 신매카시즘 광풍에 자기 역할을 포기했다.”며 반발했고, 지난
블레즈 파스칼(1623-1662)은 어린 시절부터 수학과 물리학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 조숙한 천재였다. 이십대 초반에 학계에 떨친 명성 덕분에 궁정과 당대 지식인과 교류하던 그는 우연히 얀센주의에 감명받은 후 성경을 천착했다. 몇 차례의 기적을 체험했다고 믿은 그는 자연과학 연구와 더불어 기도와 고행으로 점철된 경건한 삶을 살았다. 평생 병마에 시달려 목발에 의지했던 그는 임종을 앞둔 마당에도 가난한 환자들에게 집을 내줄 정도로 실천적인 사상가였다. 수학을 접어두고 파스칼이 남긴 글 중에서 일반 독자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팡세』다. 그는 주변 사람들이 세련된 교양과 지식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앙과 구원의 문제에 무심한 데 크게 놀랐다. 『팡세』는 그들에게 개심을 권유하려고 쓴 단
지난달 29일(수) 국가정보원이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사무실과 자택을 압수수색 하면서 이 의원에 대한 많은 이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이 의원에 적용된 혐의는 내란음모죄와 국가보안법위반죄다. 국정원은 이에 대해 공식적으로 구체적인 설명을 않고 있다. 그러나 이 의원이 지난 5월 마포구 합정동 인근에서 산악회로 가장한 조직 'RO(Revolution Organization)'의 회원 130여 명이 모인 자리에서 △경찰서 △무기고 △통신시설 △유류시설 등의 파괴 및 인명살상 방안을 모의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의원은 29일(목) 국회에서 열린 통합진보당 최고의원 연석회의에서 “나에 대한 모든 혐의는 날조로 국정원의 상상력에서 나온 상상 속의 소설이다.”라고 혐
서울 마포구의 고즈넉한 한강변에 위치한 양화진. 그곳에는 외국인 선교사의 묘지가 있다. 숭실의 설립자 윌리엄 베어드도 그곳에 잠들어 있다. 베어드 선교사의 묘지를 바라보며 우리는 그의 100여년 전 행적을 떠올렸다. 숭실대학교의 설립자 윌리엄 베어드는 한국에 건너와 40여년 동안 이 땅의 복음전도와 문명 계도를 위해 헌신해 왔다. 베어드는 1891년 1월 29일 부인과 함께 일본을 거쳐 부산에 도착하였다. 한국에 온 지 1년 여 후인 1892년 5월 18일부터 부산을 중심으로 그 주변지역으로 전도여행을 떠났다. 전도여행은 약 3년에 걸쳐 총 4차례에 걸쳐 이루어졌고, 베어드는 이를 일기로 남겼다. 일기의 날짜는 총 80일에 불과하나 그 내용은 순회선교여행기라고
‘입에서 젖내 나는 꼬마’라든가 ‘젖 먹던 힘까지 다 한다’ 등 우리 속담을 보면 예로부터 젖이란 어렸을 때나 먹는 거라는 의식이 깔려 있다. 요새야 그럴 일이 없겠지만 옛 기억을 더듬어보면 서너 살 이후에도 엄마 젖을 물고 있는 아이들이 있었고, 어른들은 이런 아이를 덜 떨어진 놈이라 골려주어 아이가 엄마 젖을 떼도록 유도하 곤 했으니, 이 역시 젖이란 어렸을 때나 먹는 거라는 우리 내면의 의식이 나타난 것이라 할 것이다. 사실 젖을 먹는 동물, 즉 포유류에 속한 어떤 동물도 어릴 때 이후에는 젖을 먹지 않는다. 어느 나이 이후로 먹는 젖은 설사나 복통을 일으키는 해로운 물질일 뿐이다. 사람만이 어른이 돼서도 가축의 젖을 먹는다. 사람도 원래 젖이란 아직 소화기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