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제국주의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슬픔을 안겨주었다. 인도차이나 반도까지 진출한 일본군은 태국을 넘어 미얀마까지 넘봤다. 그들은 군수품을 안정적으로 수송하기 위한 도로와 다리가 필요했고, 전쟁 포로들은 노동력을 착취당하며 일본군의 침략을 위한 인프라 건설에 동원되었다. 포로들이 혹독한 인권 유린에 탈진하여 죽어가면서 만든 ‘죽음의 철도(Death Railway)’의 일부는 이제 관광지가 되어 방문객들에게 2차 대전의 참상을 알리고 있다. 전쟁 포로 6만여 명, 인도차이나 반도의 전역에서 강제로 끌려온 노동자 20만여 명이 동원되었는데, 이 중 11만 6천여 명이 영양실조, 질병과 부상으로 사망하였다고 하니 일본이 주장한 허울 좋은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
스웨덴의 예테보리에서 덴마크의 프레드릭스하운으로 가는 여객선 위에 있다. 여객선 안에 면세점이 없었다면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했을 것이다. 배 안의 식당에서 독일어 같기도 하고 러시아어 같기도 한 스칸디나비안 언어들이 마구 섞여 날아다닌다.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3개국 사람들은 서로의 언어를 반 이상씩 알아듣는다니 ‘언어 효율성’을 따지지 않을 수 없다. 적어도 3개 외국어를 기본적으로 먹고 들어가는 셈이 된다. 북해의 찬바람을 갑판 위에서 느꼈나 싶더니 벌써 프레드릭스하운 항구에 도착했다고 안내 방송이 나온다. 후진국과 선진국의 차이는 불안감의 정도라고 생각한다. 후진국에서는 어느 곳에 있어도 무슨 일을 당할지 걱정하게 되는데, 선진국에서는 어디에서도 그런
“당신이 샌프란시스코에 방문한다면 머리에 꽃 장식을 한 온화한 사람들을 만날 것입니다. 거리에서는 사랑을 외치는 사람들의 회합(會合)이 열리니 당신도 머리에 꽃 장식을 하는 것을 잊지 마세요” 스콧 매켄지의 노래 ‘San Francisco’는 중·고등학교 때 뜻도 잘 모르면서 흥얼거리던 팝송 중 하나였다. 그러나 노래의 멜로디는 최루가스가 난무하던 1980년대 한국의 상황과는 전혀 다른 신세계가 샌프란시스코에 펼쳐져 있음을 알려주기에 충분했다. 왠지 무한한 자유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거리에 가득한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로마 올림픽에서 우승한 무하마드 알리는 인종 차별에 항의하며 그에게 수여된 금메달을 강물에 던져버리고, 얼마 전 노벨문학상을 받은 밥 딜런이 그의 노래 ‘Blowing in the
터키 이스탄불에서 오전 10시에 탄 버스가 해가 뉘엿뉘엿 떨어질 즈음 국경을 통과하여 그리스 알렉산드로폴리스에 도착했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그어놓은 국경은 언어와 문화, 인종과 종교, 그리고 사람들의 성향마저 구분짓는 경계선이다. 터키에서는 형제의 나라에서 왔다며 가는 곳마다 악수를 청했는데, 국경도시인 이곳에서는 동아시아에서 온 사람을 신기한 듯 쳐다볼 뿐이다. 식당에서는 일흔이 족히 넘어 보이는 노인이 나에게 와서 젓가락 쓰는 법을 가르쳐 달라며 박장대소(拍掌大笑)를 한다. 지금이야 그럴 리 없겠지만 23년 전에 벌어졌던 유쾌한 에피소드였다. 알고 보니 노인은 그 식당의 주인이었고 젓가락 사용법을 가르쳐 준 대가로 음식 값을 받지 않았다. 인심 좋은 도시는 여행자의 발을 묶어 다음날 데살로니카행 기차
이탈리아의 나폴리,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 호주의 시드니는 세계인이 알아주는 미항이다. 여기에 일본의 고베, 네덜란드의 로테르담, 중국에 반환된 홍콩, 그리고 한국의 목포와 부산까지 열거하면 항구의 아름다움을 견주는 용호상박(龍虎相搏)의 대전(對戰)이 상상된다. 여행객은 아름다운 항구에서 도시의 숨결을 느끼고 바닷바람이 도시를 감돌 때 생기는 각기 다른 소리를 감상한다. 마치 코르크에 배인 와인의 향기를 느끼는 것과 비슷하다. 그동안 여러 항구도시를 다녀봤지만 난 이 도시를 미항의 으뜸으로 올리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미국의 MIT공대와 견주어도 꿀림이 없는 이스라엘 IT 스타트업의 산실 테크니온(Technion)공대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발걸음을 재촉했지만, 카르멜
해변, 그것도 신선한 바닷바람을 온 몸으로 느끼며 푸르디푸른 해변을 거닐 수 있다는 것은 큰 행복이다. 푸른 해변에서 각기 다른 포즈로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은 모두들 예술가처럼 보인다. 유명한 화가들이 그림 그리는 것을 잠시 멈추고 망중한을 즐기는 것 같다. 사실 이 도시에서 샤갈, 마티스, 피카소 같은 세계적 화가들이 마지막 여생을 즐겼다. 전 세계 부호들과 예술가들은 왜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살고 싶어 할까. 저 멀리 보이는 수평선 위에 ‘돈의 지도’를 그리거나 예술적 상상력을 펼쳐 놓고 싶어서 그런 것일까. 미국의 마이애미 해변에도 부호들의 집이 넘쳐나지만 지중해 최고의 휴양도시로 꼽히는 이 곳에도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부자와 예술가들이 둥지를 틀고 있다. ‘쪽빛
대도시의 부유한 지식인을 주된 독자로 하는 영국 잡지 은 이 도시를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10위에 올린 바 있다. 일단 머릿속에 비엔나, 밴쿠버, 코펜하겐, 헬싱키 등 유럽이나 북미에 있는 도시의 이름이 떠오른다. 서울에 사는 사람으로서 도시 서울은 언감생심(焉敢生心) 순위를 바랄 수가 없고, 나의 편견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시아의 다른 도시들도 10위권에 이름을 올릴 만한 도시는 없어 보인다. 넘쳐나는 쓰레기와 ‘지옥철’, 매연과 인파(人波) 앞에서 삶의 질을 확보할 수 없는 것이 아시아 도시의 현주소이다. 그러나 일본에서 아홉 번째로 크다는 이 도시는 당당히 그 이름을 올렸다. 이상하리만치 무더웠던 올해 8월의 중순, 나의 피서(避暑)지는 여유 있는 사람들이
이곳은 현세에 존재하는 지옥과 같다. 누군가 지옥을 그리고자 한다면 이곳에 와봐야 한다. 원칙으로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고 동물과 인간이 뒤엉켜 혼돈의 극치를 만들어 낸다. 소는 제왕처럼 느긋하게 거리를 활보하고 아무데나 배설물을 흘려댄다. 그 사이를 오토 릭샤(Auto Ricksaw)가 경적을 울리며 오고 간다. 새장에 갇힌 조류가 울어대고 앵벌이 하는 어린 아이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표정으로 구걸을 한다. 그리고 외국인을 노리는 치한들과 야바위꾼이 곳곳에 포진해 있다. 그들은 짧은 치마나 바지를 입은 외국인 여성들에게는 불손하게 계획된 신체접촉을 시도하고, 외국인 남성에게는 은밀한 제안을 해댄다. 이런 모습은 작열하는 한낮의 햇살이 없어질 때까지 계속된다. 이곳을 지옥이라고 표현하지 않는다면
소리글자인 한글의 가장 큰 어려움은 동음이의어를 때에 따라 문맥에 맞게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외국어에도 동음이의어는 있지만 우리말에는 유독 많은 것 같다. 도시 전주(全州)와 돈을 빌려 준 전주(錢主), 그리고 전봇대를 의미하는 전주(電柱)는 조금의 다름도 없이 모두 ‘전주’로 표기되지만 각 상황에 따라 뜻이 완전히 달라진다. 누군가 “나의 고향은 광주입니다.”라고 말을 하면 사람들은 으레 경기도 광주(廣州)인지 전라남도 광주(光州)인지를 묻는다. 내가 오늘 말하려는 광주는 ‘빛’ 광자를 쓰는 빛고을 광주다. 아직도 다 치유되지 않은 민주화를 위한 항쟁의 아픔을 간직한 광주이기도 하다. 1980년 5월 18일, 아무런 정통성을 확보하지 못한 채 정권을 탈
인도차이나 반도는 불상(佛像)을 모시는 사원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원에 관한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미얀마를 필두로 하여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은 저마다 자국(自國)의 사원 스타일을 뽐낸다. 유럽의 도시들에서 성당과 교회가 그런 것처럼 인도차이나 반도에서는 사원이 도시의 미를 규정하고 각기 다른 사원의 역사는 스토리텔링을 만들어 관광객들에게 감동을 선사한다. 하지만 이 도시에 있는 왓 프놈(Wat Phnom) 만큼 극적인 이야기를 가진 사원도 드물 것 같다. 메콩강은 이 지역을 먹여 살리는 젖줄이기도 하지만 매년 범람 하여 사람들을 수장(水葬)시키는 공포의 대상이기도 했다. 범람한 메콩강 위를 떠내려가는 4개의 불상을 펜(Penh) 이라는 여인이 건져내었
1870년대부터 세계 2차 대전이 종결될 때까지의 시대를 풍미한 사회진화론은 제국주의를 옹호하는 뒷받침이 되었다. 사회진화론에 따르면 우등한 민족이 열등한 민족을 지배하고 착취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무엇이 우등하고 열등한 것의 경계선이 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제국주의자들의 눈에는 그들이 만든 무기와 군함이 우등한 것의 상징이었을 것이다. 열강(列强)이라고 불리는 국가들은 아프리카 평원에서 사자가 얼룩말을 사냥하듯 순박하게 자연과 더불어 살던 사람들에게 폭력을 가하기 시작하였다. 북마리아나 제도(Northern Mariana Islands)를 구성하는 이 섬도 스페인에게 점령당한 후 독일에게 매매되었고, 일본은 독일을 힘으로 밀어내고 이곳에 전쟁 기지를 만들었다.
영국의 BBC는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 50곳을 선정했는데 이 도시를 빼놓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인구가 1만 3천명에 불과한 이 도시에 몰려드는 연간관광객 수는 1백 3십만 명에 이른다. 상주(常住)인구의 백배에 달하는 외부인들이 찾는 도시가 전 세계에 과연 몇 개나 될지 의아할 뿐이다. 여행을 하면서 부지불식(不知不識)간에 도시별로 각기 다른 통계 자료에 집착하게 되었는데, 빨리 근처의 피씨방에라도 들어가서 자료를 검색해 보고 싶었다. 물론 스마트폰이 없었던 시절 나의 말릴 수 없는 조바심이었다. 여행도 오래 많이 하면 미세하지만 의미 있는 정신질환을 수반하는데, 나는 이것을 ‘직업적여행병’이라고 규정한다. 여행이 직업이 아니라서 직업병은 아니지만 마치직업처럼 느껴지는 여행 중
부정부패에 빠진 고려왕조를 멸하고 조선을 개국한 혁명가 이성계는 자신의 본관(本貫)이 전주임을 잊지 않았다. 왕위에 올라 태조가 된 그는 전주를 한양, 개성과 함께 3경으로 승격시켰으며, 그의 아들 태종 이방원은 이 도시에 경기전(慶基殿)을 건립하여 이성계의 어진(御眞)을 모셨다. 세계적으로도 드문 500년 왕조의 발원지 전주에 도착하여 도시에 감도는 영웅의 힘을 느낀다. 도시는 영웅을 배출하고 영웅은 자신의 고향에 권력을 불어 넣는다. 전주는 한고조 유방의 고향인 풍패처럼 제왕의 도시가 되고 지금까지 풍패지향(豐沛之鄕)이라 불린다. 제왕의 도시는 불의에 저항하지만 온화하며 강렬한 힘을 표출하지만 품격을 잃지 않는 이미지를 지녔다. 이런 품격은 예술로 승화되어 예도(藝都)로서의 전주
아프리카 대륙에 사는 수많은 부족 중에서도 마사이족은 용맹하기로 유명하다. 마사이 전사는 사자의 공격을 제압하고 고기를 얻기 위해 코끼리 사냥도 한다. 그들의 움직임은 치타처럼 강인하며 임팔라 영양처럼 우아하고 날렵하다. 생존하기 위해 채집과 사냥을 하고 가축의 배설물로 집을 짓는다. 산업화된 선진국의 눈으로 볼 때 그들의 생활은 미개하고 비위생적이다. 그러나 그들은 대자연의 순리에 반(反)하지 않으며, 단지 뿔과 가죽을 얻기 위해 코뿔소와 표범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하는 만행도 벌이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사는 지구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원흉(元兇)들은 다 어디서 오고 있는가. 순간의 편리를 위해 사용하는 화학세제와 각종 가스들, 그리고 내성이 생겨 인간의 면역력을 파괴시켜버리는 슈퍼박테리아는 어디에
카리브 해의 온화한 바람은 플로리다 반도의 끝단에 호화로운 휴양도시를 탄생시켰다. 오대호(五大湖)의 칼바람 에 지친 미국 북동부의 부자들은 이 도 시에 별장과 요트를 사놓고 겨울 휴가 를 즐기러 먼 길을 내려온다. 1997년 동성애자 친구에게 피살된 지아니 베 르사체(Gianni Versace)의 집도 여기에 있다. 세계의 부호들은 카리브 해의 날 씨와 대도시의 안락함, 그리고 미국이 라는 나라가 주는 상대적 안정성을 즐 기기 위해 이곳을 휴양지나 인생 말년 (末年)의 정착지로 선택하는 데 주저 하지 않는다. 지금은 중국인 큰 손들이 가장 비싼 해변가의 부동산을 쇼핑하 러 몰려온다니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부자들은 가장 살고 싶지만 서민들은 돈이 많지 않으면 제대로 즐길 수 없다 고 여겨 살기를 꺼려한다는
스웨덴의 동쪽에 핀란드를 향하고 있는 스톡홀름이 있다면 서쪽에는 덴마크를 바라보는 예테보리(Göteborg)가있다. 스웨덴어의 발음법을 전혀 모르는 나로서는 왜 ‘Göteborg’가 ‘예테보리’로 읽히는지의아해 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직항이 없어 항공사에서 제공하는 바우처를 이용하여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1박을 하고 다음날 아침 제일 빠른 비행기 편으로 예테보리 랜드베터(Landvetter)공항에 도착했다. 무색무취의 공기가 이토록 맛있게 느껴지다니 역시 이 곳은 청정한 북구(北歐)다. 말로만 듣던 빨간 머리 미인들이 주변을 지나가고 저 빨간머리 한 가닥을 얻고 싶은 이상야릇한 감정이 솟구친다.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던 TV드라마 ‘말괄량이 삐삐’의 주인공 잉거
모나코, 리히텐슈타인, 안도라, 산마리노 등 작은 도시국가의 이름을 나열할 때면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얼마나 큰 나라인지 실감하게 된다. 한반도가 통일이 된다면 우리 민족은 동북아의 대국(大國)에 사는 주인이 될 것이다. 하물며 우리에게는 많이 낯선 투발루, 신트마르턴, 아루바와 같은 작은 나라와 비교하면 한반도는 지도상에 큰 존재감을 나타내는 장소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수도(首都)의 이름과 국가의 이름이 동일한 룩셈부르크도 우리에게는 작은 나라가 아닐 수 없다. 면적은 제주도의 1.2배 수준이고 인구는 55만 명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나라는 무시할 수 없는 지표와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1인당 GDP는 세계 1위이고, 내가 강의하는 무역경영론에도 등장하는 세계 최대의 철강회
야생동물이 저마다의 색깔을 뽐내는 밀림의 한 가운데에서 불현듯 나타난 외계인 무리가 큰 바위산을 만들고 있다. 외계인들은 산 정상에 수영장과 연회장을 만들어 놓고 한동안 실컷 웃고 떠들다가 비행체를 타고 유유히 사라졌다. 입구로 걸어 들어갈수록 점점 크게 다가오는 암석을 보는 순간 머릿속은 온통 상상(想像)하는 즐거움에 빠졌다. 이 평평한 대지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융기(隆起)된 괴석(怪石)이 자리 잡을 수 있었는지 학력고사 시험과목이었던 지구과학 시간에 배운 지식을 총동원해 보지만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사람들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없는 삼라만상(森羅萬象)을 목도할 때인간이 아닌 신성(神性)을 생각하게 되는데 외계인은 신성을 어렴풋하게 묘사하는 도구가 된다. 싱할리 말로 ‘사
자동차가 내뿜는 매연을 스쿠터를 개조해 만든 ‘툭툭’의 뒷좌석에서 한껏 들이마실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급히 오느라 미처 준비하지 못한 항균 마스크가 못내 아쉽다. 에어컨과 문이 달린 ‘진짜’ 택시를 타고 싶건만 그 많은 택시들은 어디에 숨었는지 모르겠다. 택시의 형태를 갖춘 ‘탈 것’을 발견하더라도 운전사와 치열한 가격 ‘협상’을 벌여야 한다. 미터기가 버젓이 달려있는데 협상을 벌여야 한다니 좌절의 연속이다. 내가 여행자라는 사실을 처음부터 눈치 챈 택시기사는 터무니없는 가격을 제시하며 흥정의 서막을 올린다. 여행자는 이 중생(衆生)들의 지갑을 채워주는 물주(物主)이고 보시(普施)하는 불자(佛子)인 것인가. 불교의 나라 스리랑카의 수도 콜롬보에 도착했지만 몸과 마음이 좌불안석(坐不安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Roma)를 영어 식으로 ‘로움(Rome)’이라고 발음하면 우리의 김치가 아닌 일본의 ‘기무치’를 먹는 느낌이 든다. 마치 이탈리아 셰프가 손수 구워낸 피자를 먹고 싶은 사람에게 공장에서 기계로 찍어 낸 냉동피자를 던져주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이 도시의 이름만은 왠지 영어로 발음하고 싶다. ‘Vientiane’을 현지 사람들은 불어식으로 발음하여 ‘위앙짠’이라고 한다는데, 이 발음은 도무지 너무 생소하여 내 머릿속의 메모리 카드에 입력되지 않으려고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프랑스인들이 ‘Viang Chan’ 이라고 명명한 것이 라오스 식으로 변형되어 다분히 괴물스러운 위앙짠이 되었다고 한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위앙짠보다는 비엔티엔이 더 품격 있는 소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