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인터넷으로 손쉽게 항공권을 구입하고 시간만 낼 수 있다면 언제든갈 수 있는 제주도지만 내가 대학에 다닐 때만 해도 비행기를 안 타본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다. 비행기로 제주도에 갔다 왔다는 사실은 여행 좀 해봤다는 자신감 같은 것이었다. 여행 자유화가 되기 이전의 제주도는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마음 설레는 장소였다. ‘산넘고 물 건너’ 세계인이 인정한 자연유산 제주도가 우리에게 있었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같은 반이 된 친구가 제주도에서 서울로 유학 왔다는 말을 했을 때 더 큰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질렀던 기억이 새롭다. 육로로 갈 수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한반도의 마침표 같은 이 섬은 이국적이다. 남국의 정취를 머금은 청정(淸淨)한 구름은 이 ‘섬 도시’를 영원히 지켜나갈 수호신처럼 보
프랑스의 대문호(大文豪) 빅토르 위고는 이곳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 이라고 했다. 그가 극찬한 이 곳의 아름다움은 이 도시에 살고있는 사람들의 자부심이다. 이 장소는 ‘광장’이라는 이름이 붙은 다른 도시의 그것들에 비하면 너무 작아 보인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곳을 그랑 플라스(La Grand Place)라고 부른다. 무엇이 한눈에 들어오는 크기의 광장에 ‘Grand’라는 수식어를 붙여 준 것일까. 그것은 문화대국인 프랑스와 경제강국인 네덜란드 사이에 끼인 작은 나라 벨기에지만 이 광장만큼은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음을 알리는 벨기에 사람들의 열망과 노력의 산물이 아닐까 싶다. 그랑 플라스는 사시사철 꽃과 관광객들로 장식된다. ‘국제기구의 도시’로 알려진 브뤼셀에 광장을 뒤덮은 꽃 장식과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는 이 도시 의 하급무사 집안에서 태어났다. 일본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사무라이 중 한 명인 그는 메이지 유신을 성공시 키는 과정에서 눈부신 공(功)을 세웠 다. 아직도 용암을 분출하는 활화산인 사쿠라지마(櫻島)는 그의 활약을 목도한 이 도시의 상징이다. 사쿠라지마 가 아직도 활화산인 이유는 혁명을 이 끈 지도자의 탄생과 일본 근대화의 발단으로부터 엄청난 에너지를 받아서 가아닐까. 큐슈 지방의 남단에 위치한 작지만 큰 도시 가고시마(鹿兒島) 에 국적기(國籍機)를 타고 당당히 도 착했다. 당당히 도착했다고 느끼는 것은 우리가 겪은 식민지 시대의 아픔과 파란만장했던 근대화 과정이 묘하게 교차해서 일어난 감정반응은 아니었을까. 일본이 말하는 근대화와 우리가 겪은 근대화는 무슨 차이가 있
이 도시에 있는 사람들의 표정은 암울해 보인다. 무언가에 시달리는 듯 피곤해 보이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협박을 받는 듯 어깨는 무기력하게 처져 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유럽의 다른 도시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이는데 왜 이곳의 구성원들은 이렇게 시들고 나약해 보이는 것일까. 이 질문의 답을 찾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희대의 독재자 니콜라이 차우체스크의 망령(亡靈)이 아직도 곳곳에 서려있기 때문이다. 차우체스크는 25년간이나 권좌에 있으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잔인한 방법으로 고문하고 처형했다. 그의 아내는 측근들을 감시하기 위해 도청을 일삼았고, 국민으로부터 강제적으로 거두어들인 세금으로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궁전을 건설했다. 궁전의 벽을 금
포르투갈어로 된 간판이 낯설다. 영어 와는 사뭇 다른 철자법은 그나마 우리 주변의 곳곳에 브랜드라는 이름으로 포진(布陣)된 이태리어도 아니고 독일 어도 아니다. 음성으로 들리는 포르투 갈어는 남미대륙의 나라들에서 넓게 통용되는 스페인어도 아니고 그렇다 고 불어 같지도 않다. 15세기 대항해 시대를 개막했던 포르투갈이 영국에 게 주도권을 잃고 이베리안 반도의 작 은 국가로 전락했음에도 청제국은 이 나라에게 광동 지방의 알토란같은 이 섬을 할양해주어야 했다. 중국에 이미 반환되었지만 중국 정부가 일국이체 제(一國二體制)를 유지함에 따라 홍콩 에서 배를 타고 가도 새롭게 입국심사 를 거쳐야 한다는 사실이 이채롭게만 느껴진다. 라틴 유럽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마카오에 도착했다. 쾌속선에서 내리자마자 눈앞에
만남의 광장 격인 시부야역은 하치코(ハチ公) 출구로 나와야 제 맛이다. ‘하치’라는 충견(忠犬)의 이름에 존칭으로서의 공(公)를 붙여 ‘하치코’라고 한다는데, 일본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이 개에 대한 이야기는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졌고 역 앞에 동상을 세우기까지 했다. 작은 것 하나에도 소홀하지 않고 무언가 의미를 부여하는 일본인들의 습성에 정감을 느낀다. 그러나 역 광장에서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반한시위’ 모습을 목도하였을 때는 만감(萬感)이 몰려왔었다. 새롭게 창조된 문화가 활활 타오를 것 같은 이 거대 도시의 한 복판에서 그들은 무엇이 두려워서 외국인에 대한 증오를 표출하고, 특히 한국에 대한 노여움을 뿜어내고 있단 말인가. 아이러니한 것은혐오 발언을 외쳐대는 그들의 얼굴이 왠지 단일(單一)한 사람들
항구도시인 시애틀의 연안에 서식하는 고래들이 바다로 스며든 카페인의 영향으로 불임(不姙)이 되었다는 외신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글로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지적하는 이 기사의 본의(本意)보다는 고래가 커피에 취해있다는 것이 더 재미있었다. 고래가 불임이 되어 멸종의 위험에 직면하고 있다는데 왜 이 도시에 있는 스타벅스 커피 1호점만 생각나는 것인지. 지금 전 세계를 뒤덮고 있는 이 거대한 커피 회사가 시발(始發)했던 곳에서 마셨던 ‘의미 있는’ 커피의 향기가 지구에서 가장 거대한 포유류가 직면한 고통보다 더 낭만적으로 느껴져서 그런 것일까. 마이크로소프트 본사가 지척의 거리에 있고 보잉(Boeing) 또한 이 도시에 있지만, 커피 마니아 축에도 끼지 못하는 내가 다분히 관능적으로 보이는 인어 모양을
150 킬로미터를 택시로 이동한다면 얼마의 요금을 지불해야할까. 서울에서 대전까지의 거리를 택시로 이동하는 셈이 되는데, 한국에서는 이 정도의 거리를 택시로 이동할 엄두를 내본 적이없기 때문에 요금 계산을 굳이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방콕에서 이 도시까지 버스로 이동한다는 것은 상당한 인내심을 요구하기 때문에 택시 기사와 과감히 ‘요금 협상’을 해본다. 외국인인 나에게 터무니없는 가격을 요구하는 택시기사와 최대한 요금을 깎아보려는 나의 실랑이는 십 여분이나 계속되고 결국 1,000바트(약 3만 3천 원)선에서 작은 협상은 마무리 된다. 택시는 도심의 고가도로를 지나 총알처럼 달려 1시간 30분 만에 아시아최고의 환락도시라고 인정받는 파타야의 해변
벤구리온(Ben Gurion) 국제공항에 비행기는 착륙하고, 하나님 나라에 도착했다는 감동이 몰려와 기내에서 쌓였던 피로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승객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박수를 쳐댄다. 아랍 국가들의 영공을 통과하지 않은 자부심 때문인지, 아니면 단순히 무사 착륙에 대한 기쁨 때문인지 난 어리둥절할 뿐이다. 누구나가 형제자매와 이웃사촌인 듯 옆 자리 승객을 얼싸안고 나누는 히브리어 덕담은 전쟁에서 승리하고 개선한 병사들의 대화 소리처럼 들린다. 그들에게 이 박수는 안도(安堵)의 표시이며, 재탄생의 감동을 느끼는 것처럼 벅차다. 방콕 공항에서 이 도시로 들어가는 것을 끝내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이스라엘 보안요원들이 잘 정돈된 내 짐을 몇 번씩이나 들쑤셔댈 때는 입에서 욕이 터져 나올 뻔 했다. 그러
허락된 사람만이 드나들 수 있었던 ‘자주색의 금지된 공간’인 자금성(紫禁城)을 처음 봤을 때의 놀라움은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느꼈던 것과 비슷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흥선대원군은 황제를 알현(謁見)하기 위해 거쳐야하는 수많은 관문을 지나면서 조선 임금의 초라한 거처를 생각했으며, 조선으로 돌아와 백성들의 원망 속에서도 경복궁의 중건을 지시했다. 백성들이 담장 밖에서 지르는 소리가 왕의 침소까지 전해지며, 무뢰한들이 던지는 돌이 왕이 정사를 돌보는 궁궐의 앞에까지 이르는 것을 본 그는 큰 비통함에 빠졌을 것이다. 지금은 누구나 들어 갈 수있는 ‘Forbidden City’ 자금성을 뒤편의 경산공원(景山公園) 위에 올라 바라보는데, 도시를 감싸고 있는 짙
구약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바벨탑이 원형(原型)이라면 세계 최고 높이의 부르즈 할리파 빌딩은 원형의 유전자를 가지고 발아(發芽)한 복제다. 복제된 것은 원형이 가진 아우라(Aura)를 내뿜지는 못하지만, 하느님에게 도전하는 인간의 욕망은 사라지지 않고 이 거대한 건축물에 내재된 듯하다. 높이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인류의 태동과 더불어 시작되었고, 인간은 계속해서 하늘로 많은 것을 띄워 올리기까지하며 신의 영역에 도전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물보다 휘발유 값이 훨씬 저렴한이 사막 도시에 존재하는 수많은 마천루 안에서 신이 선물해준 원유(原油) 의 막강한 힘을 실감한다. 밖은 백미터만 걸어도 온 몸이 땀으로 젖는데, 빌딩 안에서 사람들은 추위를 막기 위해 긴팔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아랍 에미리트
베네수엘라에서 시작하는 안데스 산맥(Cordillera de Los Andes)은 콜롬비아를 거치고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를 지나 칠레의 최남단까지 이어진다. 총 길이는 7천 킬로미터에 달하고 최고 높이는 해발 6천 미터가 넘는 안데스 산맥은 남미 대륙의 등뼈와 같은 존재이다. 안데스라는 이름의 등뼈 위에서 잉카문명은 스페인 정복자들이 나타날 때까지 번영을 구가하였고, 아무나 범접할 수 없는 이 웅대한 대간(大幹)에 의해 아마존으로 대표되는 동쪽 지역과 태평양을 바라보는 서쪽 지역으로 양분된다. 그리고 에너지 문제로 늘 앙숙인 칠레와 아르헨티나의 자연적인 국경선이 된다. 칠레가 우파 정권이 오랫동안 득세한 반면, 아르헨티나에서는 좌파 정권이 이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산맥은 사람의 기질, 사상, 정치체제까
2001년 9월 11일 이후에 발행된 미국 여행 가이드북에는 이 도시에서 110층 높이를 자랑하던 세계무역센터(World Trade Center) 빌딩이 없다. 속칭 ‘9.11 테러’라고 불리는 참극(慘劇)의 발생으로 이 마천루는 붕괴되어 수 많은 희생자와 함께 사라졌으며, 다음에 뉴욕을 다시 방문하면 이 빌딩의 107층에 위치한 전망대에 오르려고 했던 나의 생각 또한 사라졌다. 영원히 존재할 것 같았던 것이 순식간에 없어지는 것을 목도한 후부터, 난 여행 중에 아무리 피곤해도 가볼 곳은 다음으로 미루지 않는 습관이 생겼다. 동경(憧憬)의 대상이 붕괴되는 참혹한 모습은 나에게 작은 트라우마를 남긴 듯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 마음 속의 로망이었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 사라지지
안산의 ‘다문화거리’를 걸어 내려가다 보면 오감(五感)이 즐거워진다. 베트남, 태국, 중국, 인도네시아, 네팔, 인도, 필리핀, 우즈베키스탄 음식점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고, 음식점 안에서 현란한 색깔을 뽐내며 손님을 기다리는 갖가지 음식들이 침샘을 자극한다. 이름을 알 수 없는 향료 냄새가 이곳이 어디인지 분간을 할 수 없게 할 때도 있다. 우리나라에는 없는 냄새들이 표현할 수 없는 이국적 잔상(殘像)을 끊임없이 생성해낸다. 한 가지 냄새가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이 곳이 범상치 않는 곳임을 직감한다. 여러 가지 언어가 뒤섞여 동시에 들려오니 그 뜻은 하나도 모르겠지만 집중할 때 도움이 된다는 ‘백색소음(White Noise)’ 같다. 하나씩 들으면 불쾌한 소음도 섞이면 이로
1993년 마이클 페이(Michael Fay)라는 철없는 미국 청소년이 민간인의자동차와 공공기물을 훼손한 혐의로 싱가포르 경찰에게 체포되었고, 법원은 태형(笞刑)을 선고하였다. 미국 정부는 자국민 보호와 인권을 내세우며 태형집행을 중지하라는 정치적 압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싱가포르 정부는 법 적용의 예외가 있어서는 안 됨을 강조하며 법원의 선고대로 집행하였다. 스스로 세계의 경찰국가임을 자처하는 미국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나라가 거의 없음을 고려할 때, 이 태형집행은 미미한 사회적 일
규수(九州) 지방의 관문 후쿠오카(福岡)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오이타현(大分縣) 방향으로 2시간 20분을 내려가면 유후인(由布院)이라는 도시가 나온다. ‘도시’보다는 ‘마을’ 또는 ‘고을’이라고 부르는 것이 유후인의 정감(情感)을 더 잘 나타낼 것 같다. 인구는 3만 5천 명 남짓하고 반나절이면 이 마을의 모든 것을 감상할 수 있을 정도로 작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엘리베이터가 필요한 높이의 빌딩이 하나도 없는 이곳이 마치 그림에서만 보아왔던일본의 중세와 비슷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의 역사를 잘 모르는 내가 ‘일본의 중세’를 그림에서 봤다고 여기는 것이 큰 착각이자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가이드북에 나오는 표현처럼 ‘일본의 젊은 여성들이 뽑은 최고의 온천’이 있는 마을답게 이곳에는
탁발(托鉢)을 보기 위해 먼 동이 틀 무렵 일어나야 했다. 인도차이나 반도의 젖줄 메콩 강이 뿜어내는 기(氣)를 받으며 오랜만에 맛있는 숙면을 취해서 인지 전혀 피곤하지 않다. 이상하리만치 머리가 가벼운 것은 한국에서의 ‘빨리 빨리’를 이 도시에선 모두 내려놓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도시에선 ‘빨리 빨리’가 없다. 무슨 일이든 빨리해야 하는 한국 사람에게는 이렇게 느린 도시가 또 있을까 싶다. 한국에서의 ‘빨리’는 좋은 뜻일지 모르겠지만 이 도시에서는 ‘빨리’라는 말이 설 자리가 없어 보인다. 잠깐 상념(想念)에 잠겨 있는 동안 창문 밖에서는 승려들이 만들어내는 탁발의 장관(壯觀)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들었는지 인기척이 들리고, 나는 고산지대의 서늘한 아침 바람을 막기 위해
전 유럽을 자신의 손아귀에 넣으려고 했던 황제 나폴레옹과 독재자 히틀러는
조급한 마음이라면 라오스 여행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없다. 아니 라오스 여행을 해서는 안 된다. 철도가 없는 라오스에서 육상으로 이동할 때는 자동차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데, 열악한 도로 사정은 여행객들의 시간을 잡아먹는 괴물이 된다. 포장도로와 비포장도로를 번갈아 가며 달리는 버스의 느린 속도 앞에서 조급한 마음은 스트레스의 원인이 될 뿐, 그저 그러려니하는 마음으로 인내심을 가지고 다음 행선지에 도착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150 킬로미터의 거리를 다섯 시간이나 가야 하는 상황에서는 모두들 어처구니가 없어져 오히려 숙연해질 뿐이다. 아침 식사로 열대 과일로만 배를 채우고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엔을 떠나 자연이 레저라는 인간의 유희(遊戱)와 하나가 되는 도시 방비엥에 도착했다.
난 영화광의 수준은 아니지만 영화를 보는 순간만큼은 모든 것을 잊고 몰입한다. 지인들의 주관적인 영화평을 무시하고, 또는 혹자들이 왈가왈부(曰可曰否)하는 ‘정치적인 요소’마저 모두 배제하고 본다. 영화는 영화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 내 지론이다. 관객 수 1,400만 명을 돌파한 영화 은 한국 현대사의 굴곡을 잘 보여준 수작이 아닐 수 없다. 영화 포스터에 새겨진 ‘그 때 그 시절, 굳세게 살아온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문구가 모든 것을 함축적으로 말해준다. 한국 전쟁을 직접 겪어보지 못한 나로서는 부모님의 이야기를 토대로 전쟁에 대한 이미지를 재구성할 수밖에 없지만, 1970년대 한국경제가 급성장하던 때의 모습과 1980년대 초반 이산가족 찾기 운동의 감동은 생생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