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인생 노잼 시기’라는 단어를 아시나요? ‘인생 노잼 시기’란 인생, NO, 재미가 결합된 일종의 합성어로 최근 2030세대를 중심으로 인생이 재미없게 느껴질 때, 무기력함을 나타낼 때 사용되고 있습니다. SNS에서는 인생 노잼 시기의 특징을 다음 6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1) 뭘 해도 재미없고 딱히 흥미도 안 생김. 2) 지금 하는 일에 회의감이 듦. 3) 앞으로 뭐 해야 할지 걱정됨. 4) 시답잖은 일로 감성이과하게 풍부해짐. 5) 인간관계까지 회의감이 들면 다 때려치우고 집에만 있게 됨. 6) 나가기도 귀찮음. 어
최근 우리는 푸른 하늘을 보는 날보다 미세먼지로 가득한 하늘을 보는 날이 많아지고 있다. 우리는 미세먼지로부터 안전하기 위해 미세먼지 차단율이 높은 등급의 마스크를 구매해 착용하며 학교를 다니고 있다. 하지만 사회의 관심의 변두리에 자리하고 있는 저소득 노인들은 마스크를 구매하는 것에 대한 경제적인 부담으로 인해 미세먼지의 위협에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있다. 미세먼지는 신체가 가장 기능적인 청년기의 건강에도 큰 위협을 끼치지만, 호흡기의 기능이 저하되는 노인에게는 치명적이다. 또한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2013년 보고서에 따르면, 노인
지난 15일(금) 뉴질랜드의 크라이스트처치에 위치한 이슬람 사원에서 총격 테러가 발생했다. 테러범들에 의해 49명이 숨지고 40명 이상이 부상당했다. 자신을 백인 우월주의자로 밝힌 테러리스트들은 범행 수 시 간 전 자신들의 계획을 담은 온라인 선언문 을 올렸으며, 17분 동안 자신들의 범행을 생중계했다. 테러범들은 선언문에서 “우리의 땅은 결코 그들의 땅이 될 수 없고, 우리의 고국은 우리 자신의 고국임을 보여주기 위해 공격하기로 했다”고 목적을 설명했다. 특정 문화권 출신의 사람들에 대한 혐오가 극 단으로 치달은 결말이다. 그렇다
사람이 어떠한 것에 에너지를 쏟는 정도를 10이라는 수치로 표현해보자. 누군가는 인간관계에 10중에 2정도의 에너지를 쏟을 수도 있고 5만큼의 에너지를 쏟을 수도 있다. 사람마다 삶에 있어 인간관계를 이어나가는 것에 대한 중요도는 다를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고, 만남을 이어가고, 마음을 주고받는 것. 인간관계를 잘 이어나가는 것이 어려움은 분명하다. 사람의 마음은 노력한다고 얻어지는 것도 아니고 돈을 주고 살 수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태어나 지금까지 20년 이상을 해왔지만 나에게 사람을 사귀는 것은 늘 새롭고, 어렵다. 새로운
몇 달 전 대법원에서 소위 말하는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서 무죄 판결을 내렸다. 이들의 신념에 대해서 인정한다는 게 취지인데,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다. 이들에게 대체복무를 하도록 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있다. 그러나 일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현역병의 2배 정도의 기간에 해당하는 36개월가량의 복무기간에 대해서 징벌적이라는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 누리꾼들의 갑론을박도 상당하다. 우리가 여기서 고려해야 할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는 현역장병 및 입대 예정 장병의 입장을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아주 먼 옛날, 우리 사회는 동성애를 배척하지 않았다.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부부생활 내의 성생활만을 인정하고 다른 성을 배척하여 바라보는 이 분위기, ‘성의 억압’은 자본주의의 발전과 맞물려 등장했다. 유독 자본주의가 등장한 18C말~19C 말에 동성애를 네거티브한 관점에서 그리는 책들이 많다. 왜? 이유는 단순하다. 자본가 입장에서, 동성애는 생산성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농경사회에서는 정신병을 가진 사람을 오늘날과 같이 배척하지 않았다. 함께 생활했는데, 어느 순간 그들이 격리되어 수용당하는 정신병원마저 등
며칠 전 기상천외한 사진이 담긴 기사를 봤다. 서울의 한 아파트 단지의 주차장이 철제 펜스로 가로막힌 것이다. 이것의 정체는 ‘임대동’ 단지와 ‘분양동’ 단지의 구분을 위함이었다. 이 아파트 단지는 1개 동만 임대 아파트고, 나머지는 모두 분양·매매 아파트라고 한다. 단지 내 출입구는 두 개인데 분양 주민이 주로 다니는 정문과 임대 주민만 다니는 통로로 나뉜다고 한다. 한국사회의 계층 간 문제를 정면으로 보여준 것 같아 몇 초간 벙쪘다. 기사의 요지는 “임대동에 사는 사람과 분양동에 사는 사람은 다르다”는 세태를 지적한다. 또한 수
바라거나 그리워하는 마음이 몹시 간절할 때 ‘굴뚝같다’는 표현을 쓴다. 우리는 굴뚝같은 마음으로 무엇을 바라는가? 소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 생각난다. ‘난장이’인 아버지는 굴뚝 위에 위태롭게 앉아 달나라로 편지를 띄운다. 최선을 다해 살아도 의식주조차 해결되지 않는 이 땅이 아닌, ‘희망의 공간’ 달나라로 가고자 한다. 아버지는 지금 달나라에 공을 쏘아 올리는 중이다. 평소 노동 문제에 관심이 거의 없었다. 나는 노동자가 아닐뿐더러 그 내용 역시 복잡하고 어려워 공감하기 힘든지라. 얼마 전, 기도회가 있다는 말에 파인
최근 이수역 폭행사건이 일어난 직후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비난을 하거나 판단을 보류하거나. 사실 최근 일어나는 대부분의 사건에 대한 반응이 이렇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되었는가? 정 반대처럼 보이는 이 두 반응은 판단이라는 공통분모로 엮여 있다. 판단은 기본적으로 우리에게 어느 정도의 쾌감을 제공한다. 그러나 최근 판단이 가지는 부담과 제공하는 쾌감의 양은 변화하고 있다. 현대사회가 거대하고 복잡해지면서 판단이 요구하는 능력이 개인의 그것을 초월해 버렸다. 가짜 정보는 이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 가짜 정보는 최저임금과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다.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인지, 우리는 길거리에서 맨투맨을 입은 사람부터 롱 패딩을 입은 사람까지 다양한 옷차림의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필자는 정말 이 세상에는 가지각색의 옷들과 사람들이 있음에 새삼 놀라곤 한다. 필자는 평소 이른 수업에 아침 일찍 집을 나선다. 학교를 가기 위해선 시장을 통과해야 하는데, 그 시간엔 가게 문을 열기 위해 준비하는 사람들로 분주하다. 새로 들여온 싱싱한 수산물을 확인하는 횟집 사장님, 어젯밤 가게 안에 들여놓은 진열 상품들을 다시 꺼내 놓는 슈퍼마켓 아
누군가에게 힘든 일을 털어놓을 때, 마지막을 장식하듯 꼭 돌아오는 대답이 있다. ‘힘내, 넌 잘할 수 있어. 열심히 하면 될 거야.’ 한마디로 클리셰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우울에 빠질 때, 슬럼프를 겪을 때, 자신이 먼저 ‘힘을 내야겠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팔을 다친 사람이 글씨를 쓸 수는 없다. 상처가 잘 아물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고, 통증이 있을 때는 약을 먹어야 한다. 우리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마음이 다쳤을 때 억지로 감정을 뒤흔든다면, 배로 통증이 느껴지고 더욱 아물 것이 분명하다. 사실 누구나 아는 사실이기는 하다
요즘 인터넷과 현실세계에서 공통적으로 유행하는 말이 있다. ‘꼰대’라는 단어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꼰대라는 뜻은, ‘늙은이’를 은어로 이르는 말이라고 되어있다. 어쩌면, 아니 확실하게 그 뜻대로 쓰이고 있는 단어다. 소위 말하는 현재 20대보다 윗세대들의 가치관과 현재 10대, 20대들의 가치관의 차이를 말하고자 하는 ‘구간’에서 앞세대들이 뒷세대들에게 불만을 표시하려 할 때, 요긴하게 쓰일 말이다. 그런데 요즘 그 ‘꼰대’라는 단어가 너무 남용되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어른이 말씀하시는데…’라는 식의 말이 아니
저출산은 출생률이 저하되는 현상을 말한다. 초창기에는 남성의 경제력 부족, 경제적인 문제만으로 인식되었으나 점차 개인주의, 가치관의 다원화, 성격문제, 인간관계 스트레스 등 다양한 원인이 존재하는 것이 확인되었다. 특정 종교와 사상에 입각한 결혼 강요, 가부장제가 사라지면서 수면 위로 등장했다.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2005년 역대 최저치인 1.08명으로 떨어졌다. 이후 2013년에는 1.18명, 2014년은 1.21명에 이르렀다. 우리는 이와 같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정부에서 수년간 출산율 저하의 급증을 막기 위해 다양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에브리타임(이하 에타)’은 대표적인 대학생 커뮤니티이다. 높은 접근성을 가진 ‘에타’의 가장 널리 이용되는 기능은 강의 시간표를 구성하는 것이었지만, 현재는 각 학교의 학생들이 일상을 공유하는 장소로 자리잡았다. ‘에타’의 큰 특징은 해당 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만이 가입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아이디 생성 후 인증해야만 게시판 활동이 가능한 시스템이다. 또 내부 게시물을 외부로 노출해서는 안 된다는 규칙이 존재한다. 이는 특정 그룹 내의 비밀을 유지해주는 규칙이지만, 집단을 폐쇄적으로 만드는 규칙이라고 볼 수도
우리는 가끔 예기치 못한 감정과 맞닥뜨리곤 한다. 본인이 생각해도 어이없는 실수를 저질러 얼굴이 새빨개질 정도로 수치스러워지거나,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상황에 부아가 치밀기도 하며, 난데없이 찾아온 비보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우울해지기도 한다. 반대로 너무 기뻐 폴짝폴짝 뛰기도 하고 취향과 딱 맞는 유머에 배를 잡고 구르기도 한다. 우리는 보통 그렇게 생각한다. 때때로 좋은 감정도 찾아오고 나쁜 감정도 찾아오는 법이라고. 하지만 최근 읽은 안드레아스 크누프의 『내 감정이 버거운 나에게』에서는 감정을 어떠한 척도로도 구분해서
한국에게는 익숙한 말이 있다. 고령화·초고령화 사회라는 말이다.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국민들이 빠르게 늙어가는 중이라는 것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노인에 대한 배려는 아직 우리 사회에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 또 저출산이 매우 심각한 상황인 것을 우리 모두가 알지만, 어린이들에 대한 배려 역시 많은 부분에서 부족해 보인다. 꼭 노인과 소아를 위해서가 아니어도, 건강을 위해서 가장 간단하게 할 수 있는 운동으로 여러 매체에서 얘기하는 것이 걷기 운동이다. 하지만, 길거리마다 있는 횡단보도는 노인과 어린이 등을 비롯한 취
누구, 아니 무엇을 위한 숭실인가. ‘어느 분’도 알고 있을 것이다. 기독교에서 모든 인간은 신의 현상으로, 하나님의 현현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을. 인간이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을.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가져야 할 존엄성의 기초라는 것을. 무엇보다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고 순종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다른 모든 사람을 하나님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바로 이것이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완성이자 인간다움의 발현임을 ‘어느 분’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숭실은 인간
대한민국 헌법 제11조 제1항에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명시돼 있을 뿐 오늘날에 지켜지고 있지 않은듯하다. 지난 1일(화) 홍대 누드 크로키 몰카 범죄가 큰 논란이 됐다. 이 사건은 수차례 속보와 특집기사로 심도있게 언론에 보도되었다. 따라서 비교적 빠른 기간에 몰카를 찍은 몰카범이 검거되었다. 몰카범이 잡힌 순간 내 머릿 속에 떠오른건 ‘몰카범이 이렇게 잡기
요즘 내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바로 ‘사랑’에 대한 단상들이다. 이번 학기 에로스와 아나토스 철학 강의를 듣게 되었고, 고대 사람들의 사랑관에 대해서 공부하며 사랑에 대한 단서들을 모았다. 사랑에 대한 의견들은 분분했다. 사랑에 대해 70퍼센트 정도는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을 때에도, 사실 사랑은 여전히 더 짙은 미지의 공간이었다. 사랑은 세계의 모든 것을 은유로 바꾸고, 시인이 아닌 사람도 시인으로 만든다.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이 사랑이라는 마법, 사실은 이 세상에 거짓말처럼 내려온 광대 하나가 퍼뜨린 소문 같은 것
신문 경제면에서 1년내내 보이는 뉴스는 바로 신용불량에 대한 것이다. 비단 카드 사용만의 문제가 아니다. 카푸어, 하우스 푸어 등 일단 보이지 않는 돈으로 구매를 한 뒤 나중에 이것이 실체가 되면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해 이를 만회하기 위해 2차, 3차 범죄로 이어진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돈은 상당히 가벼운 돈으로 보이지만, 사실 내면의 무게는 내가 갖고 있는 돈보다 무거운 경우가 상당히 많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를 쉽사리 체감하지 못한다. 당장 19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가 보이지 않는 돈이 전세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