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의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원전설비는 2029년도까지 3만 8,329MW로 증설되어 전체 전력설비 용량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28.2%로 높아질 전망이다. LNG 발전설비(24.8%)를 추월하는 수준이다. 정부의 계획이 순조롭게 달성될지는 미지수다. 사회적으로 반원전 분위기가 만만치 않으며, 후쿠시마 사고, 경주 지진 등으로 원전에 대한 부정적 기류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야권 대선주자를 중심으로 탈원전 주장도 늘고 있다. 하지만 솔직히 우리의 여건에서 원전을 대체할 만한 전원이 존재하는가. 무엇보다 우리나라가 온실가스를 2030년에 시장전망치(BAU) 대비 37%(3억 1,500만t) 줄이겠다고 한 국제적 공약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를 생각해 봐야 한
조선에서의 근대교육에 관한 연구는 흔히 서울의 배재학당과 경신학당으로 대표되는 교육과 평양에서 펼쳐진 숭실학당에서의 교육으로 나뉜다. 1885년 조선에 들어온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선교사는 복음전도의 자유가 허락되지 않자, 곧바로 서울에서 교육사역을 시작했다. 감리교의 아펜젤러는 1885년 11월 고종황제로부터 학교설립 허가를 얻어 두 명의 학생으로 한국 근대교육의 효시인 배재학당을 시작했고, 장로교의 언더우드는 이듬해 5월 자신의 사랑방에서 고아원 형태의 교육기관인 ‘구세학당’을 설립했다. 이 가운데 ‘구세학당’은 교육정책이 뚜렷하지 못해 교사(校舍)와 예산의 미비로 1897년 10월 폐쇄됐다. 평양에서는 서울보다 10여 년이 늦은 1897년 10월에 와서야 장로교 선교사 윌리엄 베어드가 자신의 사
우리나라는 뛰어난 가인이 넘쳐난다. 역사 자료를 훑어보아도 우리 민족의 음악성은 어렵잖게 고증할 수 있다. 이러한 탁월성은 현대에도 여전하다. 오히려 한국의 문화적 자산으로 대표되고 있다. 전 세계로 위세를 확대하는 한류가 ‘아이돌’ 가수들의 활약에 기인한 것이기에 우리 민족의 음악적 재능은 세계적이라 할 수 있다. 우리 민족의 음악성을 이야기하려고 글을 시작한 건 아니다. 지난 15년도 가을에 끝난 유명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가했던 음악인의 노래를 들었던 기억이 떠올라서다. 이십대 초반 나이의 참가자가 예선에서 불렀던 `양장점`이라는 제목의 자작곡을 들었을 때 꽤나 놀랐었다. 갓 스물을 넘긴 가수가 `양장점`이라는 말을 아는 것도 신기했지만, 더 놀라웠던 것은 노래가 담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이 파면되었다. 측근이 국정농단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사익을 추구하며 이를 비호했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촛불집회를 시작으로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종료된 대통령 탄핵정국을 돌아보면서 몇 가지의 생각을 하게 된다. 우선 자기성찰과 깨어있음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게 된다. 대통령이 되면 권력에 취하게 된다고 한다. 주변에 아름다운 말만 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이들의 말만 믿고 귀를 닫아버리는 것이다. 이후 초심을 잃고 독선적이 된다. 자기성찰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객관화하여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노력해 나가야 한다. 물론 사람은 실수할 수 있다. 실수해야 인간적이다. 하지만 실수한 후에 성찰과 객관화가 중요하다. 실수한 후의 자기성찰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보고 실수를 고백
어느 날 문득 현실과 마주할 때가 있다. 오랫동안 교육현장에서 학생들을 가르쳐 온 사람으로서 2년여가 지나도록 바다 속에 가라앉아 있는 세월호가 가슴시린 현실로 다가온다. 학생이 갖고 있는 잠재력과 능력을 지속적으로 성장시켜 자아실현을 가능하게 하고 사회 및 국가 발전에 기여하는 인재로 키워보고자 많은 날들을 고민해 왔던 그간의 노력이 세월호와 함께 차디찬 바다 속에 처박혀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역량기반 교육이니, 자기주도 학습이니, 쌍방향 온라인 강의니 하며 다양한 교육이론과 교육방법을 떠들어댔건만 왠지 공허한 메아리처럼 느껴진다. 행복교육이라며 정부가 쏟아냈던 교육정책들은 갈등과 혼란 속에 세월호처럼 침몰하고 있다. 그리고 대학입시 개혁, 사교육 경감, 창의‧인성교육
‘시평(時評)’에 대한 글 부탁을 받고 보니, 요즈음 어지럽고 혼란스런 시국과 연관하여 세상 돌아가는 ‘세태(世態)’에 대한 소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국민의 주권을 위임받아 권력을 행사하는 자나 그 주변에 있는 자들이 부린 무소불위의 농단과 후안무치한 언행으로 인해 우리는 ‘인간이란 무엇이며, 나는 누구인가’를 새삼스레 다시 묻게 된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인간의 능력과 행동 및 태도에 관한 근원적인 물음으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란 무엇이며, 해야만 하는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이란 무엇인가를 묻는다. 이는 ‘가능성과 한계’의 문제와 맞물려 있다. ‘가능성’은 능력의 문제요, ‘한계’는 겸손함의 문제이다. 합리론과 경험론으로 나뉜 이른바, 서구 근대의 인식론을 비판적으로 종합한
복음서의 기사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성에 들어가셔서 가장 먼저 하신 일은 그리고 자신의 공적인 생애(public life)의 마지막 일주일 동안에 하신 일은 바로 성전을 청결하게 하신 것(막 21:12-17)이었습니다. 누군가 어떤 일을 가장 먼저 처리한다는 것은 그리고 생애의 마지막 시간에 그 일을 한다는 것은, 그 일이 그 만큼 시급하고 중요하며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고 인식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성전청결사건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질문이 생기는 것은 성전을 청결하게 할 때의 예수님의 행동이 지나칠 정도로 과격하게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파는 사람
벌써 12월이다. 이제 저물어 가는 한 해를 정리하면서 2017년을 준비해야 할 시기이다. 어지러운 시국과는 달리 캠퍼스는 차분하다. 학생들 마음 또한 차분한 걸까? 그랬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올 가을도 취업 시장에는 찬바람이 분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안 좋은 소식들 중에서도 유독 내년 경기전망에 대한 뉴스에 신경이 쓰인다. 2017년부터 본격적으로 생산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하는 우리나라의 경우 장기 경기 침체가 시작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수출은 미약하게나마 반등하겠지만 계속되는 내수부진으로 저성장이 전망된다. 또 산업별로는 전자, 철강, 건설은 비교적 호조를 보일 것으로 예측되나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분야는 부진
어린 시절에 나는 진(眞), 선(善), 미(美) 중에 무엇이 으뜸일까 생각해 본 적 있다. 그때는 최소한 미가 으뜸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착하게 살라는 부모님 말씀 때문에 어렸을 때는 선을 으뜸 가치로, 대학에 들어온 이후로는 진리를 으뜸 가치로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3년 전, 몸이 안 좋아 우울감에 빠져 있을 때 우연히 눈길이 간 화초에서 미의 가치를 발견했다. 이름도 모르고 언제 내게 주어졌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초라한 화초였는데 마침 처음으로 꽃을 피워 낸 순간을 포착한 것이었다. 그때 나는 분명, 생명의 힘과 아름다움이 주는 기쁨으로 깊은 우울을 걷어낼 수 있었다. 독일의 신학자 폴 틸리히는 인간의 삶이 신에 의해 가장 선한 길로 인도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
2015년 11월 숭대시보 기사에 의하면 기업인이 보는 숭실대 졸업생들의 가장 모자란 점은 영어 능력과 자신감이다. 영어를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뭔가를 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그런데 몇몇 영어 교과 교수들의 이야기에 머리끝이 쭈뼛 섰다. “이렇게 수준 낮은 학생들에게 영어를 어떻게 더 수준 높게 가르치라고, 무슨 커리큘럼을 어떻게 바꾸라는 소리냐? 어떤 식으로, 뭘 하라고 우리를 괴롭히느냐?” “한글로 된 글쓰기도 못하는 학생들에게 영어에 투자하게 하는 것이 효용성이 있느냐?”란다. 본교에서 수년 혹은 십 년 이상 가르친 교수라는 직함을 가진 사람들이 학생들에게 이러한 태도를 가졌었단 말인가? “우리 학생들은 뭘 해도 예쁘다. 잘해도 예쁘고, 잘 못하고 나서 인정하고
최근에 회견 중 대통령이 울먹이는 모습과 총리지명자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회견하는 모습을 보던 이들이 짠하게 생각했을 것으로 여겨졌다. 아마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가는 국민의 지탄과 분노, 한숨에 대한 대처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중차대한 시기에 만감이 교차하여 나온 행동이라 여겨진다. 그런데 왠지 나는 공감이 가지 않았다. 특히 후자의 경우 생뚱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시청자들은 다 공감을 하는데 나만 이러한 생각을 하는 것일까. 시인 김현승은 ‘눈물’을 “더러는 옥토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저…, 흠도 티도 금가지 아니한 나의 전체는 오직 이뿐, 더욱 값진 것으로 드리라 하올제 나의 가장 나아 종 지닌 것도 오직 이뿐”이라 노래했다. 이 시는 시인이 어린 나이에
가을비가 내리더니 하루아침에 아침 기온이 뚝 떨어지고 사람들은 여름의 기억을 추억으로 간직하고 두꺼운 옷을 꺼내며 겨울을 준비한다. 이렇듯 계절은 어김없이 바뀐다. 할렐루야! “학생, 졸지마!” 흔히 100분 강의에서 내가 두세 번 하는 말이다. 숭실대에서 벌써 10년째 전공기초에 해당하는 물리 및 실험과목을 가르쳐오며 매 수업시간 어김없이 하는, 하여야 하는 말이다. 모르니 재미없고 재미없으니 졸리고…. 대한민국의 입시시스템의 문제로도 지적되고 있는 이공계 신입생들의 고교물리교육의 부재! 그러나 이 교육의 문제점을 여기서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물리 지식보다 더 없어 보이는 것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바로 ‘자존감’이다. 너무나도 안타까운 것은 많은 학생들이 노력을
노벨상의 계절이 오면 한국은 몸살을 앓는다. 일본은 올해까지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22명이나 배출했다. 우리는 그걸 부러워하며 우리가 못 받는 걸 안타까워하다가 곧 잊는다. 노벨상 계절마다 반복되는 현상이다. 씨앗을 뿌리지 않고 거둘 생각만 하는 것이다. 1957년 10월 소련이 최초로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하자 깜짝 놀란 미국은 서둘러 그해 12월 뱅가드 호를 발사했다. 그러나 실패했다. 실패 원인 조사 보고서 마지막 쪽에는 “중·고교 수학교과과정을 바꿔야 한다”는 글귀가 나온다. 학교 교육을 제대로 시켜야 우주경쟁에서도 이길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미국은 1958년 우주항공국(NASA)을 출범시키고 온갖 노력을 쏟은 끝에 1969년 최초로 사람을 달에 보내는데
정의와 불의가 싸우면 정의가 이길 것 같지만 실제로는 불의가 거의 매번 이긴다. 불의가 아흔아홉 번쯤 이기면 정의는 멋쩍은 듯 한 번 정도 이긴다. 이처럼 정의는 무력하다. 정의에는 목숨까지 내놓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택하기는 쉽지가 않다. 거기에 돌아오는 이익마저 별로 없으니 당장 눈앞에 콩고물이라도 떨어지는 불의를 택하기 쉽다. 사람은 습관의 동물이라 불의도 자주 저지르면 양심이 마비되어 불의하다는 인식조차 없는 확신범이 되기도 한다. 2016년, 세상에는 의자가 부족하다. 의자가 절대 부족하니 앉지 못하고 쉬지 못한다. 그러니 앉을 곳을 찾아 유령처럼 어둠을 헤매기도 한다. 의자가 부족해도 세상이 정의로우면 번갈아 앉는 지혜로운 배려가 작동하지만 불의하면 설령 의자가 남아도 한 사람이 서너 개
지난 6월 한 백화점에 고급 레스토랑이 문을 열었다. 이 레스토랑에서는 300유로(약 38만 원) 를 지불하면 세계 3대 진미라는 송로버섯, 캐비 어, 푸아그라 요리를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최상류층의 식탁이 화려해지는 이런 사회 적 흐름을 고려해보면 얼마 전 청와대 오찬 메뉴 로 송로버섯과 캐비어, 샥스핀이 등장한 사건은 일회적인 해프닝만으로 볼 수 없다. 이 사건은, 우리 사회의 최상류층이 손님들에게 예우를 갖 춰 식사를 대접할 때 동서양 귀족의 식탁을 흉내 내는 일이 일반화되고 있음을 방증한다. 그런데 이런 최상류층의 소비행태를 과소비로 규정하면서 비난하는 것은 그리 적절해보이지 않는다. 언뜻 보면 한 끼 식사비로 38만 원을 쓰 는 것이나 1kg에 몇 백만 원 하는 송로버섯
나는 올 여름방학에 학생들과 해외 교육기행을 두 번 다녀왔다. 학생서비스팀과 학생복지위원회가 주관한 ‘2016 통일시대를 대비한 하계 동유럽 교육기행’에 인솔단장으로 다녀왔으며, 금융경제학과에서 진행한 ‘글로벌금융기관 견학 및 문화체험 UCC 경진대회’에 학과장으로서 블라디보스토크와 우수리스크를 여행했다. 모두 ‘통일과 역사’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폴란드, 체코, 그리고 오스트리아에서는 중세 건축물과 예술품을 21세기에 생생하게 엿볼 수 있었고, 베를린에서는 2차 세계대전 때 폭격으로 인해 파괴된 중세 유물들이 아직까지도 복원되는 모습은 우리나라가 숭례문을 단기간에 부실 복원하는 모습과 대비되었다.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의 28개 민족 4백여만 명의 인종 학살
오래된 물건 중에 몹시도 소중한 추억이 담긴 것들이 있다.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지 않더라도개인적으로 특별한 무엇인가를 내포한 것은 잘 보관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지금은 그 기능과 유행을 뛰어넘는 새로운 것들이 있음에도 옛것이 더 가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선진국 중에 문화적 유산을 소중히 여기는 서유럽의 프랑스, 영국, 이태리 등을 방문하여 보면, 길가에 옛 흔적이 담긴 건물들은 새로 보수보강의 리모델링이 필요하더라도 법적으로 외부의 경관은 바꿀 수 없도록 금지하고 있다. 유럽 여행을 가서, 관광지에서 방문 인증 샷을 찍을 때, 우리는 손쉽게 주변의 환경과 매우 조화로운 시간적 흔적이 담기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들은 보존해야 할 문화적 유산을 잘 지키고 있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숭실대에는 고쳐야 할 폐단이 3가지 있다. 첫째는 일부 졸업생의 연고주의적 주인의식이다. 주인의식이란 자신을 사물의 소유자 곧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자의식으로서 집단의 구성원에게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바람직한 정서적 태도이다. 그러나 학교를 졸업했다는 지극히 사적인 연고를 내세워 강박적으로 주인행세하는 것, 동료구성원 위에 군림하고 공적 의사결정시스템을 무력화하는 무도한 행태는 그저 모방갑질, 진상일 뿐이다. 직장이라는 공공성은 의도적으로 배제한 채 사적연고를 매개로 각종 이권과 권력의 향배에만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연고주의적 주인의식은 오지랖을 넘어 위장된 사익추구이다. 둘째는 기독교의 범람 혹은 무분별한 예수타령이다. 가끔 예수대학이니 하나님대
강남역 화장실의 묻지마 살인사건과 같은 자극적인 뉴스로 가득 찬 신문 한 모퉁이에 실린 기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90년대 베스트셀러 시집 중의 하나인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저자 최영미 시인이 빈곤층에게 지급되는 생활보조금 수여대상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예술가들이나 퇴직한 전문가들이 생활고를 겪는 것은 허다한 일이니 중요한 뉴스거리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현재도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국내 최고 수준의 작가가 생활보조금을 받는다는 것이 가슴을 아리게 했다. 그녀의 시를 좋아했던 나에게는 정운호 법조비리 사건보다 더 충격적이다. 그래서 다시 한 번 그녀의 시들을 읽어보면서 그녀의 시를 통해 우리 사회를 음미해 보았다. “우리가 변화시킨 세상이, 세상이 변화
얼마 전 한 통계조사에 따르면 대학생의 하루 공부시간은 10년 전에 비해 40분 정도 늘었고, 쉬는 시간은 50분이나 줄었다고 한다. 이는 취업난이 심해지면서 학점 관리와 자격증 취득 등에 쏟는 시간이 증가한 결과다. 또 다른 조사에서는 20대가 행복하다고 느낄 때가 여가를 즐길 때라고 답한 비율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생들은 여가의 중요성은 인식하고 있으나 취업 앞에 여가를 즐길 여유는 없는 것으로 볼 수 있다.진정한 여가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시간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프로그램, 비용, 기술과 함께 즐길 파트너가 필요하다. 고교까지 입시 지옥을 겪으며 학업에만 매진해 온 대학생들에게 이러한 조건들을 단시간에 갖추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대학생들에게 4월부터 올해 시즌을 시작한 프로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