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바로 탕수육이다. … 인생은 B(irth)와 D(eath) 사이의 C(hoice)라는 경구처럼 탕수육은 집으로 온 순간부터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 페이스북 페이지 “인문학적 개소리” 탕수육 소스를 부어 먹을 것이냐, 찍어 먹을 것이냐는 짜장면이냐 짬뽕이냐에 맞먹는,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꾸준하게 논쟁이 벌어지는 소재다. 이러한 논쟁은 부먹이 그나마 볶먹이라는 이데아와 가깝다고 생각하는 부먹파들이 찍먹파들을 고려하지 않고 탕수육에 소스를 부어버리는 독단에서 온다. 그렇다면 기독교는 이 논쟁을 어떻게 볼까. 성경적인 방법은 찍먹이라고 말할 수 있다. 기독교는 성찬을 통해 오랜 찍먹의 전통을 이어왔다. 예수는 빵을 포도주
제주도의 방언인 제주어는 소멸 위기에 처해있다. 제주어는 지난 2010년 유네스코로부터 소멸 위기 언어 4단계인 ‘아주 심각하게 절멸 위기에 처한 언어’로 지정되었다. 제주어가 판정 받은 4단계는 ‘이대로 두면 소멸될 게 확실한 언어’라는 의미로, 다음 5단계가 ‘소멸 언어’인 것을 보면 얼마나 심각한 위기에 놓여 있는지 알 수 있다. 제주어가 소멸 위기에 처한 핵심적인 원인은 ‘변종 제주어’에 있다. 최근 제주도의 젊은층이 주로 사용하는 ‘-멘’ 접사를 비롯한 ‘-ㄴ’ 접사 등은 모두 변종 제주어이고, 유네스코에서는 변종 언어 사용자들을 모두 언어 사용 인구에서 제외시킨다. 변종 제주어를 사용하는 10대와 20대 계층의 대다수가 제주어 사용 인구에 포함될 수 없는 것이다. 이들은 제주도 인
요 근래 가장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종을 묻는다면 답은 편의점이 될 것이다. 버스카드 충전은 이미 기본적인 서비스화가 됐으며, 계절별로 다양한 음식들을 만들고 서비스하는 것은 물론, 카페나 음식점처럼 꾸며진 곳도 많으며, 은행처럼 ATM 서비스를 구비하고 있는 곳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약국과 비교 할 정도는 아니지만, 상비약을 구비하고 있는 곳도, 또 최근에는 포켓몬 고라는 게임과 연동된 편의점까지도 나타났다. 이제 편의점은 단순히 물건을 파는 24시간 영업하는 그저 평범한 장소가 아니게 되었다. 당연하게도 그 안에 고용되어있는, 피고용인들도 이제 물건을 팔아주기만 하면 되는 인력이 아니게 됐다. 판매하는 물품에 대한 이해는 기본이고, 어느 정도 조리를 할 줄 알아야 하며, 택
3월 2일 한국경제학회에서 첫 정책 세미나가 열렸다. 주제는 ‘절대 위기의 한국 경제, 어디로 가야 하나’였다. ‘절대 위기’라는 단어가 쓰일 정도로 지금의 경제 상황은 물가상승과 실업 문제, 저출산, 고령화 등으로 인해 악화되고 있다. 작년 2016년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상황이 전형적인 ‘불황형 저물가’라며 디플레이션 공포가 커지고 서비스 물가만이 상승하여 서민들의 고통만 늘어났다. 이때 경상수지 흑자가 월간 기준으로 사상 최대 금액이라고 했지만, 이는 수출이 준 것보다 수입이 더 크게 감소하여 발생한 수입축소형 흑자라고 한다. 즉, 이 때문에 국제 사회로부터 무역 압박을 받는 거 아니냐며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곤 했다. 하지만 올해 2017년은 작년과는 상반되는 모습을 보였다. 한국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사이에 축음기, 전보, 방송 등이 등장하면서 소통 기술이 급격하게 발전했다. 이에 따라 본래 미학, 논리학, 물리학, 심리학 등에서 해석되어 온 ‘미디어’가 ‘정보를 전송하는 매체’라는 의미로 확장되었다. 그리고 1984년 ‘클로드 셰넌’과 ‘워런 위버’가 ‘셰넌-위버 모델’을 제시하여 미디어의 전달자 및 수용자 사이를 선형 관계로 이해하고 부호화 및 해독 과정을 이론화했다. 하지만 최근 ‘모바일 온리 시대’가 도래하고 미디어를 소비하는 습관이 페이스북의 확산과 함께 급격하게 변화하면서 미디어의 선형성이 사라지고 있다. 그리고 과거와 다르게 미디어에 비선형성이 나타나고 있다. 이에 국내 언론사들은 부랴부랴 페이스북 환경에 적합한 뉴스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저널
취업이라는 분야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는 아마 스펙일 것이다. 영어 단어 ‘Specification’의 준말로 직장을 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학력·학점·토익 점수 등을 합한 것을 이르는 말이다. 그런데 요즘에는 여기에 더해 자격증, 공모전, 제2외국어, 대외활동, 사회봉사, 어학연수, 워킹홀리데이, 지난 몇 년간은 독특한 경험이라고 해서 스킨스쿠버를 비롯한 레포츠 경험까지도 스펙이라는 거대한 범주 안에 들어간다. 또 최근에는, 인턴경험이라는 스펙이 가장 중요해졌다고 한다. 매섭던 겨울바람이 지나가고 봄바람과 함께 기업들의 채용 시기도 다가오고 있다. 기업들의 채용시기가 다가오면서 이른바 취업카페의 스펙평가 게시판 역시 분주해졌다. 희망직종 및 자신의 스펙을 올려 피드백을 받기 위해서이다.
금요일 오후 6시, 경복궁역. 역사는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로 붐볐다. 항상 그렇듯이 에스컬레이터의 왼쪽은 빨리 걸어 내려가려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종종 걸음을 치던 사람들이 불편한 표정으로 멈춰선 때는 바로 오른쪽에 서 계시던 한 할머니가 왼쪽에 지나가던 사람들을 손으로 막으며 욕설을 하는 순간이었다. 그 할머니는 지나가던 사람들에게 “에스컬레이터를 왜 걸어서 내려가느냐”며 그들을 멈춰 세웠다. 그 모습을 보던 많은 사람들은 수군거리기에 바빴다. 서울에서 오랫동안 살다 보면 지하철에서 젊은 사람들에게 큰소리를 내는 어르신들의 모습을 꽤 자주 볼 수 있다. 화장을 하고 있던 사람에게 화를 내거나, 큰 소리로 통화를 하고 있던 직장인의 휴대전화를 뺏어 전화를 끊어버리는 등 평소 지하철
“반갑습니다” 수업을 시작하기 전 학생들이 선생님께 인사를 할 때 흔히 쓰는 표현이다. 하지만 요즘 학교폭력, 교권붕괴 등의 여러 뉴스 기사들과 소식들을 접하다 보면 학교에서의 교사와 학생 사이, 학생들끼리의 만남이 그다지 반갑지만은 않아 보인다. 서로의 눈을 마주 보며 사회로 나아갈 준비를 하는 곳이 학생 인권이라는 방패 뒤에서 서로를 향해 무작위로 총질을 해대고 있다. 한국교육은 세계 여러 나라들의 긍정적인 평가와 모방에도 불구하고 내적으로는 끊임없이 바뀌어야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가장 큰 문제가 되는 체벌은 학생 인권이라는 이름하에 많은 학교들에서 금지되었고 이는 교권붕괴라는 또 다른 구멍으로 이어졌다. 청소년 보호를 위한 정부의 솜방망이식 처벌은 이들에게 튼튼한 방패가 되어 주었고,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현지시각 17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을 만났다는 뉴스다. 일본은 이렇게나 기민하게 움직이는데, 한국은 현재 내부의 문제로 외교에는 신경을 쓸 처지조차 못 된다.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다. 최순실 게이트로 정국이 시끄럽다. 100만 명이 넘는(주최 측 추산) 시민들이 서울 광화문에서 매주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외치는 시위를 하고 있고, 최근에는 이에 반대하는 보수단체들의 시위도 발생하고 있다. 여기에 일부 정치인들이 가세해 정국이 더욱 혼란해지는 모양새다, 여러 언론 매체에서는, 하야의 가능성, 탄핵의 가능성 등에 대해 연일 보도하고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빠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바로 하야, 탄핵 등 조치가 취해지고 난 후에 대한 논의다. 여당
‘싸바이디’란 라오스어로, ‘안녕하세요’라는 뜻이다. ‘평안하다’는 뜻의 ‘싸바이’와 ‘좋다’는 뜻의 ‘디’가 합쳐져 ‘평안하게 잘 지내냐’는 의미를 지닌다. 라오스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올해 1학기에 7+1 중장기해외봉사프로그램으로 라오스에 파견 나가 영어 교육 봉사를 했고, 여름 방학에도 라오스 단기봉사팀 스태프로 파견 나가 2주 동안 네일아트 재능기부 봉사와 노력봉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지금도 겨울 방학 동안 라오스 단기봉사팀에 파견될 준비를 하고 있다. 꽤 오랜 시간 라오스에 있으면서 가장 많이 하고, 들었던 말은 아무래도 ‘싸바이디’일 것이다. 순박한 라오스 사람들, 특히 어린 학생들은 늘 온화한 미소와 밝은 목소리로 ‘싸바이디’라고 인사를 건넸다. 그러
백만이 모인 거리는 놀라웠다. ‘박근혜 대통령의 즉각 사퇴’라는 구호를 백만이 외치는 것은 그 자체로 민심(民心)을 보여줬다. 그럼에도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박근혜 없는 세상’이 우리가 원하는 전부가 아니기에, 아직 끝나선 안 된다. 민중총궐기는 이미 끝나 버린 87년 체제를 넘어 새로운 체제를 만드는 발판이 되어야만 한다. 지금처럼 70만의 촛불이 광화문 광장을 밝혔던 적이 있었다. 2008년에도 촛불은 한 달이 넘게 타올랐다. 광우병 쇠고기에 대한 반감이 시작이었으나, 그것만으론 설명이 불가능하다. 그것은 87년 체제의 파열음을 온 국민이 들은 탓이었다. 민주화가 되었지만 버젓이 군부 독재 세력이 청와대와 국회를 차지하고 있는 것과 우리의 삶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 그 파열음이
10년 전만 해도, 아이들이 돌멩이 하나로 운동장 바닥에 선을 죽죽 긋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고, 거실 책장에는 두꺼운 전화번호부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해가 저물기 전 돌멩이가 담당했던 놀이 시간은 각종 학원이 차지하고 있으며, 두꺼운 전화번호부 역시 손가락만 까딱하면 알 수 있는 세상에서 자취를 감췄다. 우리가 타고 있는 이 열차는 끊임없이 전진하고 있다. 그 안에서 우리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창밖 세상에 적응하기 바쁠 뿐이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 교정에 아름답게 합창하던 은행나무 무리는 여름방학을 지내고 돌아오니 어느새 사라졌고, 옆 동네 출판도시에 있던 갈대밭은 괴물처럼 거대한 아웃렛에 자리를 내줘야만 했다. 우리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슬퍼했다. 그러나 머지않아 은행나무
최근 숭실대의 대표들은 한자리에 모여 시국선언을 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 그 현장을 지켜보았다. 분위기는 다소 차분했고 내용도 절제되어 있었다. 시국을 향한 분노가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 시국선언은 지켜보는 내내 아쉬웠다. 한국 최초의 대학이었던 숭실대는 1938년 자진폐교했다. 일제가 숭실의 정체성을 위협했기 때문이다. 숭실은 대학으로서 정체성이 위협받을 때 결사의 각오로 폐교도 마다하지 않았다. 17년간 폐교의 역사는 숭실의 정신을 지켜냈다. 다시 한 번 대학생의 정체성을 확인해 볼 시간이 왔다. 대학생의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대학생은 미래의 대한민국을 맞이할 선봉에 서 있다. 대학생은 앞으로 다가올 대한민국을 어떤 모습으로 맞이할지 질문하고 결정하는 역할을 감
태풍에 휩쓸려 고립된 마을에서 유일한 식료품 가게를 운영하는 당신은 가격을 무한정 높여도 좋은가? 에는 흥미로운 딜레마가 나타난다. 수요가 동일한 상황에서 공급이 줄면 가격을 올려야 한다. 그러나 어려운 사람을 만나면 손해를 보더라도 도와야 한다. 양자택일의 상황에서 어느 한 쪽도 쉽게 선택할 수 없다. 어떠한 행위도 윤리와 완전히 결별할 수는 없다. 요즘 우리 사회도 딜레마에 빠졌다. 윤리적 명분으로 경제적 행위를 제한해도 좋은가? 이른바 김영란법이라 불리는, ‘청탁금지법’은 ‘3(식사) 5(선물) 10(경조사)’으로 요약된다. 청탁금지법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꽤 있었는데, 대체로 ‘부패를 용인하자’가 아니라 ‘이 정도면 인심이다’라는 논지였다.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는 데 수
‘일코’라는 말을 들어보았는가. 일코는 일반인 코스프레의 약자이며, 연예인이나 만화 등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현실에서는 그것들을 좋아하지 않는 척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전에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욕을 하거나 혐오를 표하는 사람이 많았던 반면, 차별에 대한 경계가 이전에 비해 높아지면서 우리는 ‘취존’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취존은 취향 존중의 줄임말, 즉 남과 차별화된 취향을 가지고 있거나 일반적이지 않은 언행을 하는 사람들을 존중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여기서 ‘일반적’이라는 것은 사회적으로 보편화된 인간군상을 의미한다. 나는 남들 앞에서 쉽게 드러내지 않는, 남과 다른 취미와 취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드러낼 때마다 ‘취존’을 받아왔다. 그런데도 나는 가끔 그것이 정말 취존인가, 하는
요즘 들어 아침과 밤이 제법 쌀쌀해졌다. 그렇다. 가을이 왔다. 날씨는 선선해지지만 나의 마음은 여전히 덥고 습해서 하루 종일 기운이 없다. 내 마음속 날씨는 항상 폭염주의보다. 소위 ‘헬조선‘이라 불리는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마음은 항상 뜨거운 지옥불인 것만 같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의 냉수를 뿌려보지만, 불은 더욱 커진다. 그렇다. 아프면 흉터와 정신적 충격만 남기 마련이다. 그렇게 답답한 나의 마음을 어찌할 바 몰라 ‘대통령이 저 모양이니 나라가 이 모양이지’, ‘청년은 살기 힘들다’, ‘이민 가고 싶다’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내뱉는다. 지친 나에게 선물을 주고자 ‘밀정’이란 영화를 보았다. 영화의 재미를 떠나 그것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곳에는 지금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
이대 미래라이프 대학 설립 문제에서 보인 시위 참가자들의 자발적인 노력은 ‘느린 민주주의’ 의 사례로 언론의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학교의 일방적인 의사결정과 산업 수요에만 치중한 정부 정책에 대해 재학생은 물론 졸업생과 학부모까지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나선 아름다운 모습이라 는 평가다. 하지만 참가자들의 소위 ‘느린 민주주 의’가 진정 아름다운 것이었는지 말하고 싶다. 그들의 농성은 학교의 설립 계획 철회라는 매 우 중요한 성과를 이뤄냈다. 하지만 교내 시위가 시작되면서 참가자들은 특정 정치적 신념을 가 진 이들을 배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들이 연단 에 오르면 공공연히 조롱하고 야유했다. 또 그러 한 행위를 통해 자신들의 순수성을 강조했다. 시위 참가자들에 의해 배제된 이들은 운동권이라 불리며,
최근 힙합 프로그램 ‘언프리티 랩스타’는 왕따랩, 인신공격, 신체접촉 등으로 큰 논란이 있었다. 이 프로그램의 특징을 아는가? 바로 경연프로그램(출연자들이 경쟁하는 프로그램)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극심한 경쟁을 통해 자극적인 모습을 만들어 내는 경연 프로그램’이라는 것이 진짜 이 프로그램의 특징이다. 하지만 논란만큼 인기와 관심도 높다. 이 작품이 벌써 3번째 후속 작이며 점점 치솟는 시청률이 그것을 증명한다. 아마 많은 이가 이런 자극적인 경연프로그램에 눈을 떼지 못하는 건 극심한 경쟁에 공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대한민국의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악착같이 경쟁하여 대학에 입학했다. 대학에 들어와서는 얼어붙은 취업문을 열기 위해 경쟁적으로 어학점수를 높이며, 각종 공모
우리는 종종 특정 젠더(성별)에게만 어울리는 말과 행동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차별이라는 인식 없이 아무렇지 않게 그런 언행을 받아들이곤 한다. 이미 우리 사회의 고착화된 젠더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우리 사회에 만연하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아직까지 남성위주의 사회에 가깝다고 본다. 따라서 젠더문제는 여성에 관한 사항일뿐 남자들은 젠더문제에 대해 고민하거나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과연 젠더문제가 비단 여성만의 문제로 축소될 수 있을까? 결코 축소될 수 없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논의되는 페미니즘은 여성의 생존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그러나 거기서 그쳐서는 안 된다. 페미니즘은 차별받는 젠더의 권익을 되찾는 것을 넘어서
한 여름이 푸르게 다가오고 있는 6월, 대학생들은 바쁘다. 축제와 과제, 그리고 공부로 몸이 열 개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다. 내일 마감인 레포트를 밤새 쓰고, 지하철에 몸을 기대 잠깐 눈을 붙이고, 겨우겨우 강의실 책상에 앉아 있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대학생이니 이곳저곳 축제에 가서 친구들도 만나고 캠퍼스 라이프를 신나게 즐기기도 한다. 이렇게 공부도 하고, 즐길 줄 아는, 하루를 꽉꽉 채워 열심히 사는 우리들이다. 그런데 1시간 이상 아무 것도, 정말 아무것도 안 해본 적이 있는가? 스마트폰이나 게임 말고 가만히 앉아서 이런저런 생각들을 해 본 적이 있는가? 생각의 꼬리를 물고 심연의 끝까지 깊숙하게 들어가 본 적이 있는가? 취업을 하기 위해 온갖 대외활동, 학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