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난 대학생활 동안 참가했던 다양한 대외활동 중에서 미국 하버드 대학교에서 열린 Harvard Pacific Asia International Relationship(HPAIR) 컨퍼런스에 참석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HPAIR는 오랜 역사를 가진 유명한 컨퍼런스다. 총 나흘에 걸쳐 Health, Education, Energy 등 여러 분야의 주제로 나뉘어서 이뤄진다. 컨퍼런스는 각 분야에서 저명한 교수와 전문가들을 모셔 강연을 듣고 그룹별로 토론한 뒤, 최종 프레젠테이션을 발표하는 과정으로 구성돼 있다. 전 세계의 다양한 대학생들이 참여하는데, 영문 자기소개서, 이력서, 관심분야에 대한 essay를 제출해야 하고 심사를 거쳐 최종적으로 선발된다. 나는 Health 분야에
이 땅 최초의 근대 대학이 될 숭실은 1897년 10월 10일 윌리엄 베어드의 사랑방에서 문을 열었다. 이른바 ‘사랑방 학교(Sarangbang Class)’였다. 그 열기가 어찌나 뜨거웠던지, 이듬해인 1898년 가을,‘ 시랑방 학교’학생 모집을 공고하였더니 60여 명이 지원할 정도였다. 관리가 되어 남 위에 군림하려는 젊은이들이 이 사랑방 학교에 모인 것이 아니라 민족의 앞날을 걱정하며 개혁 일꾼이 되려는 이들이 찾아온 것이다. 베어드는 이 가운데 건강상태와 가정형편, 학업성취능력을 고려해 18명을 선발하였다. 여기에서 그는 성경, 산수, 한문, 역사, 음악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교육 방식도 새로웠다. 서당에서 무릎 꿇고 앉아 회초리 든 훈장이 ‘하늘 천(天) 따 지(地)’하면 학생들이 따
인간을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면 자연에 대해 궁금해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넓은 의미의 자연은 인간을 포함하지만 좁은 의미에서의 자연은 인간과 함께 하는 주변 환경을 의미한다. 자연의 서양어 표기인 nature는 다음과 같이 두 가지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원래 타고난 성질을 뜻하는 본성과 스스로 그러한 상태나 모습을 일컫는 자연이라고 말이다. 자, 이제 다음과 같은 물음을 던져 보기로 하자. “우리 인간들의 피부에 와 닿을 수 있는 가장 구체적이고도 생동적인 자연의 모습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자연의 넓은 의미대로 이야기 한다면 우리들 인간은 분명 자연의 일부일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들이 지닌 스스로 그러한 상태나 모습은 과연 무엇일까
다독다독 베니
다른 음식, 다른 문화, 다른 사람들이진아(금융학부·3) 처음으로 다른 나라에 가족들과 떨어져 혼자 지내게 됐다. 본교의 교환학생 프로그램인 SHP를 통해 뉴욕 주립대에서 공부하게 된 것이다. 어릴 적부터 항상 외국에서 살아보고 싶었는데 그 기회를 잡게 돼 기뻤다. 내가 선택한 미국은 경제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의 중심인 나라였다. 그만큼 큰 나라였고 한국과는 사소한 것부터 많은 것들이 달랐다. 음식도 달랐고 학생으로서의 생활도 달랐고 사람들도 매우 달랐다. 가장 처음으로
왜 하필 평양 숭실인가 예부터“사람은 태어나면 한양으로 보내고, 말은 태어나면 제주로 보내라”고 했다. 한양, 곧 서울은 예나지금이나 모든 것의 중심이다. 정치·경제·문화·교육 등 우리 사회 전반을 움직이는 중심지가 한양이라ㄴ,는 말이다. 19세기 말 서양 선교사들 역시 각지에서 선교활동을 펼쳤지만, ‘선교 본부’는 당연히 한양에 두었다. 그런데 숭실대학을 설립한 윌리엄 베어드는 이 땅 최초의 대학이 될 학당을 한양이 아니라 평양에 세운 것이다. 우연한 선택일까. 단지 기독교가 다른 지방에서와는 달리 서북지방에서 빠른 성장을 하고 있기 때문에 평양을 선택한 것일까. 구한말 조선은 유교(주자학) 사회였다. 1392년, 이성계는 조선왕조를 창건하고 주자학을 통치 이데올로기로 삼았다. 그 후
허명숙 교수의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그자체로 큰 질문이다. 두 가지 의미에서 그러하다. 학문의 출발점이자 종점이 되어야 할 정의라는 점에서이고,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생이란 무엇인가’와 같이 인간의 본원적인 문제에 닿아 있다는 점에서이다. 거칠게 정리한다면 전자는 문학을 개념적으로 접근하는 것이며, 후자는 문학을 문학적 체험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둘을 분리해서 생각한다는 것은 사실상 난처한 일이지만, 이 강의는 후자에 보다 무게를 둔다. 문학에 관심이 있든 없든, 문학 전공자이든 아니든, 문학에 대해 보다 개방적으로 다가가는 방법이 후자이기 때문이다. 이는 문학의 본질, 문학의 기능, 문학의 구조 등과 같은 추상화된 개념으로 문학을 천착하기보다는 문학
석지영은 우리에게 불완전함을 사랑하고 도전하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그녀의 메시지를 통해 우리가 기억해야할 것은 실패에 연연해 도전을 포기하기보다는 끊임없이 도전함으로써 자신의 길을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석지영이 보고 싶었던 세계일 것이다. 또한 이것이 우리가 앞으로 보아야 할, 그리고 볼 수 있는 세계가 되길 바란다. 송고은(사학·2)우리 청년들이 바라보는 세계는 사회구조와 기성세대의 시선 속에 삶의 이정표가 상실된 세계였다. 반면 석지영교수가 과거에도 봐 왔고, 지금 보고 있으며 미래에도 바라볼 세계는 뜨겁지만 아름다운 열정이 이끄는 삶이었다. 두 삶의 차이는 무엇일까? 환경? 능력? 아니다. 그것은 바로 도전을 할 수 있는 용기다. 당신은 날아오르기 위해 도전할 용기가 있는가
평범했던 어느 날, 친한 후배가 보낸 탄자니아에 가자는 문자 한통이 계기가 돼 나는 1월 7일부터 23일까지 사회대‘탄자니아로 글로벌 현장학습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어릴 적부터 아프리카와 흑색 인종의 사람들을 동경한 나는, 떠나는 나에게 봉사하러 가냐며 불쌍한 눈빛만 보내던 주변 사람들에게 TV로, 글로 배운 탄자니아가 아닌, 보고 듣고 경험한 진짜 탄자니아를 보란 듯이 고스란히 전달해주겠노라 다짐했다. 덕분에 할 수 있는 모든 최선을 다해 탄자니아를 배우고 돌아왔다. 탄자니아의 미래는 희망적이고, 자신감 넘쳤다. 여러 기관과 대학을 방문하며 그들에게는 명철하고 분명한 미래관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비록 누군가의 눈에는 조금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대학들이 있다. 구한말에 시작된 우리나라 근대 대학의 역사를 보면,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읽을 수 있다. 이를 해석하기 위한 열쇠는 누가 무슨 목적으로 대학을 세웠는지 헤아리는 일이다. 먼저 일제식민통치세력이 세운 경성제국대학이 있다. 이 대학은 일제식민세력의 통치 목적에 따라 그들의 자금으로 설립되었다. 친식민지식인들이 약육강식의 논리에 터하여 관료를 배출하기 위해 설립했다는 뜻이다.
건축이란 무엇을 하는 것입니까? “조물주가 만든 창조물 가운데 가장 위대한 것은 인간이요, 인간이 만든 가장 위대한 창조물은 건축이다.” “창조물은 건축이다.” 건축은 영어로 아키텍쳐 Architecture‘( arche’는 원리,으뜸, tecture’는 기술)로직역하면 원리가 있는 기술, 혹은 원리를 아는 기술이라는 뜻으로 요약된다. 건축가는 사람이 살아가는 모든 원리는 물론이고 역사의식과 인본주의에 대한 소양을 갖추고 친환경적인 안목까지 있어야비로소 원리를 적용한 기술을 창출할 수있다. 현대는 경제 논리에도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니 실로 복잡한 작업이 아닐 수 없다. 결론적으로 건축이란 인간이 만드는 생산물 중 최고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