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에 학교 앞 노점상 문제를 둘러싸고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특히 그 중에서 노점상 측이 주장하는 생존권이 나의 눈길을 끌었다. 생존권을 보장하라며 학교 측을 상대로 투쟁하겠다는 노점상 측의 입장을 보며 그 생존권에 대한 의구심을 지울 수 없었다. 국민의 권리를 밝히고 있는 헌법에는 생존권이라는 단어가 없다. 다만 노점상 측이 학교 앞에서 노점 상행위를 함으로써 수익을 얻을 권리를 주장한다면, 가장 가까운 개념은 헌법 제32조의 근로의 권리인 듯하다. 근로의 권리를 자신의 의사와 능력에 따라 노동을 하여 그 대가를 취하게 하는 권리라고 했을 때, 노점상 측이 생존권이라 부르는 근로의 권리는 합당한 것이라 할 수 있을까? 문제는 우리 학교 앞에서 벌어지는 노점상의 상행위는 불법성 논란에서 자유롭
세상이 변하고 있다. 변해도 너무 빨리 그리고 크게 변하고 있다. 동서냉전의 구도도 붕괴되고, 이념의 대결이 순식간에 무너졌으며, 나라나 민족의 구분도 흐릿해 가고 있다. 농경사회에 살고 있다고 하더니 산업사회가 도래했다고 하고, 산업사회에 살고 있다고 하더니 지식정보사회에 살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는 너무나 짧은 기간에 엄청난 변동을 겪었고 또한 겪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떤가. 북한 지도자들이 언제 들이닥쳐 우리를 삼켜버릴 악마와 같다고 교육을 받은 것이 어제 같은데 오늘에는 서로 웃고 얼싸안으면서 형제처럼 지내고 있다. 어제까지 우리 민족의 ‘은인’이라고 추앙하던 맥아더 장군이 조롱의 대상이 도고 있고, 이런 저런 학교의 설립자나 총장으로서 존경받던 인물들이 ‘친일파’라는 너울을 쓰고 ‘
이번 신물 잘 읽었어요. 특집면을 통해 숭대시보의 과거와 현재를 잘 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또한 창업지원금을 받았다는 소식에 숭실 자랑스러웠습니다. 중간고사를 앞두고 앞두고 도서관 이요에 관한 기사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우선 숭대시보의 창간 90주년을 축하드립니다. 다사다난했던 지난 역사속에서도 꿋꿋이 대학신문으로써 자존심을 지켜오며 여기까지 온 것에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5면을 통해 보도된 학생들의 평가를 겸허히 받아들여 좀 더 노력한다면 우리학교의 자랑스런 얼굴로 숭대시보가 자리잡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학생을 위해서 열심히 뛰어다녀 주시길 기대합니다.
대한민국 헌법 개정의 역사는 독재정권 유지를 위해 필수불가결한 요소였다. 그 과정에서 이를 거부했던 많은 민중들이 피눈물을 쏟는 아픔을 겪었다. 때문에 주로 이러한 것들을 공부하는 ‘정외인’인 난 독재라는 말만 들어도 치가 떨렸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지난 30여 년간 싱가포르를 장기 집권했던 리콴유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아무리 좋은 미사여구가 그에게 붙어 있어도 그의 오랜 장기집권에는 분명 뒤가 구린 구석이 있을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 첫 장을 열 때 마음은 마지막 장을 덮을 때의 마음과 달랐다. 그는 누구보다 영민하고 유연했으며, 진정한 싱가포르인으로써 자신의 조국을 사랑했다. 총리가 된 후 리콴유가 보여주는 리더십은 가히 본받을 만하다. 필요하다면 신념을 지키
다음주면 본격적인 중간고사에 체제에 돌입한다. 이 기간만큼 도서관의 행렬이 바빠지는 때도 없다. 갑작스레 맞이한 듯한 1학기 중간고사에서 자신의 실력을 ‘점수’로 잘 평가받고 싶은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허나 시험은 자신의 노력의 결과를 정당하게 평가받고 그 평가를 토대로 더욱 학업에 매진하는 것에 주된 목적을 두고 있다. 덧붙여 여기에는 자신의 실력과 동시에 ‘운’이 더해져 가장 최고의 기대치를 바라는 것도 시험이다. 대학에서의 시험 장학금이나 취업, 대학원 진학 등 자신의 미래에 적지 않은 연관성을 지니고 있기에 그 부담이 크다. 더욱이 상당수의 대학이 상대평가제를 도입하면서 같은 소속의 또래들과 경쟁을 하는 부담은 배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 언제부턴가 ‘노력’만 가지고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
주지하다시피, 본보는 올해로 창간 90주년을 맞이하였다. 90년 역사의 전통과 위업을 경축하기 위하여 회고강연회와 기념식을 성대하게 치를 예정이다. 90주년기념강연회는 1956년 10월 10일 속간 이후 반 세기 이상 희생과 봉사의 정신으로 숭실대학신문을 일구어온 역대 편집국장들이 자리를 함께 하여 본보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신문방송국의 주간을 역임한 교수가 제시하는 과제와 전망을 들어보는 자리이다. 본보는 일제강점기 민족독립운동에 앞장서며 대학 신문 이상의 역할을 다하였을 뿐만 아니라 광복 후 속간 이후에도 이 나라 산업화와 민주화 갈등기에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올바른 길이 무엇인지 투철한 비판정신으로 현장에 온몸을 던져 항거하면서 전해주었다. 그 주역들이 한 자리에 함께 한다. 학교를 재건한 뒤
부활절이다. 기독교 최대의 명절. 예수의 부활이 없었으면 기독교도 존재하지 않았다.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최후의 만찬’을 행하신 세족목요일과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성금요일이 있는 고난주간을 지난주에 보내었다. 죽음의 깜깜한 사흘이 지난 후 새로운 역사의 아침이 동튼 것이다. 예수의 십자가 사건은 단순히 2천 년 전 유대 땅에서 일어났던 역사적 큰일에 머물지 않는다. 오늘 우리에게서 일어나고 있는 살아있는 생생한 사건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매년 반복해서 성탄절을 지키고 사순절과 성금요일과 부활절을 지키는 것이다. 이런 절기는 단순히 옛날에 있었던 일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일어난 일로서, 거기에 우리가 참여하면서 체험하는 사건이다. 숭실은 부활학교이다. 다른 학교는 십자가
이번호 숭대시보는 메인 기사부터 기분이 즐거워졌습니다. 우리학교 생활체육과의 수영대회 선전한 소식이 참 반가웠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들의 커뮤니티를 상세하게 소개해준 ‘유어슈’ 이야기도 꽤 좋았습니다. 4컷만화 ‘숭무’는 늘 시사적인 내용과 학생 입장에서 보는 세상을 잘 나타내주어서 즐겨읽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불발될 수도 있었던 학생회 선출 소식이 참 다행스러운 소식이라고 느꼈습니다. 학생을 위한 학생회는 더욱더 분발해 주길 기대합니다.
매주 읽었던 숭대시보가 창간 90주년을 맞았다니 축하드리구요. 앞으로도 변함없이 학내소식을 재빨리 알려주는 숭대시보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핀수영이라는 새로운 종목을 알게 되었고, 학교커뮤니티를 위해 노력하는 유어슈의 존재도 알게되어 좋았습니다. 총학생회가 아슬하게 50%의 투표율을 넘겼지만 앞으로의 활동을 잘 해나갔으면 하고 숭대시보가 이를 비판·감독하는 역할을 해주기를 바랍니다.
어느덧 개강한지도 5주가 지났다. 3월의 분주함과 4월 캠퍼스의 봄내음을 맡고 나면 소리없이 찾아오는 중간고사. 특히 봄에 찾아오는 1학기 중간고사는 봄을 채 만끽하기도 전에 도서관으로 향하게 한다. 중간고사가 다가오면서 점점 도서관을 이용하는 학우들이 많아지는 건 당연하다. 요즘에는 굳이 시험기간이 아니더라도 도서관을 찾는 학생들이 많아지고, 다양한 개성(?)을 지닌 학우들이 많아 지면서 도서관의 에티켓에 대한 문제가 학우들 사이에서 화두가 되곤 한다. 열람실 내에서 음악을 들으면서 공부를 할수도 있고 동영상 강의나 영어청취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어폰 혹은 헤드폰에서 새어나오는 소리는 다른 학우들의 집중력을 놓기도 하고, 여학우들의 하이힐 소리와 쿵쿵쿵 뛰어다니시는 바쁘신 학우님, 열람실 문을 활
본보가 올해로 창간 90주년을 맞이하였다. 한국 최초의 대학신문이라는 오랜 역사성과 더불어 일제강점하에 신문을 통해 과감히 항일운동을 펼치며 민족의 개화 및 계몽에 앞장섰던, 그야말로 대학신문 성격 이상의 의미를 가진 신문이었다. 일제강점하에서는 민족정론지의 역할로, 과거 독재정권하에서는 대학생들의 민주화의 쟁취를 감당했던 민주화의 현장에 대학신문은 학생들과 늘 함께였다. 70, 80년대의 민주화 운동속에서는 검열 및 학내 언론탄압으로 인해 기사가 삭제되고 신문의 휴간 및 배포금지, 기자들의 해직이 일어나기도 했고, 90년대 초에는 학내의 여론 뿐만 아니라 사회와 연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허나 지금의 대학신문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일제강점기도 독재정권하도 아닌 지금, 과연 대학신문이
한국 최초의 대학, 국내 최초의 대학신문, 뿐만 아니라 국내 최초 생명정보학과 학부과정 신설 등에 이르기까지 숭실의 역사는 ‘최초’에 해당되는 다양한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가치 있는 역사적 사건으로서의 ‘최초’는 그 다음에 이어질 것들에 대한 출발점이며 전범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우리 숭실이 교육의 산실로서 ‘최초’라는 다양한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 만큼 선구적이었음을 의미한다. 이는 우리의 긍지와 자부심의 토대라 할 수 있다. 아울러 미래를 이끌 원동력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이 같은 긍지와 자부심이 ‘최초’라는 역사적 사실만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는 자주 숭실이 ‘최초’의 타이틀을 가지고 있음을 언급하고 기념한다. 우리의 자긍심을 불러일으키는 이 같은
요즈음에는 돈이 최고인 것 같다. 돈으로 못하는 게 없는 것 같다. 거의 모두가 돈에 목숨을 매달고 살아가고 있다. 학문적 가치를 숭상한다는 교수들도 월급이나 연구비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며, 돈과는 가장 거리를 두고 살 것 같은 종교인들 또한 돈 때문에 싸우고 송사도 한다. 돈은 정말 모든 것을 지배하는 것 같다. 돈으로 돈을 벌기도 하지만, 돈의 일차적 기능은 물품 구매이다. 돈이면 뭐든 살 것 같다. 인간의 활동을 그 내용에 따라 분석해 보면, 생존을 위해 먹는 음식물과 같은 소비재를 만드는 노동과, 책상이나 집이나 자동차 같이 생활을 위한 사용물을 만드는 작업, 그리고 각 사람의 개성적 가치에 따라 공동의 삶을 도모하는 정치적 행위 등이 있다. 돈으로 밥을 사고, 차를 사고 집을 사는 것은
최근 학내에 이슈가 되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시원하게 긁어준 기사들에 저절로 신문평에 손이 가게 됐다. 특히 학내공간 대여 문제는 실질적인 대안이 없는 단순 제재에 불과해 학내 학생 자치 활동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분명 지성의 요람인 대학에서 수업에 방해되는 일은 없어야 하겠지만 반쪽짜리 지성인을 양성하는 대학은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학기 총학생회 선거공청회 기사를 보고 후보들의 공약에 대해서 알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요즘 학교 내의 문제점들을 기사화하고 해결방안까지 제시하여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국제 광고제에 한국 대표로 선발된 우리학교 학우에 대한 기사를 보면서 부러움과 자긍심을 느낄 수 있었다.
최근에 가장 이슈가 되었던건 바로 WBC가 아닐까 생각된다. 우리들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희망을 안겨준 야구대표팀, 대한민국 야구대표팀이 메이저리그의 선수들이 즐비한 여러나라와의 경기들을 보면서 우리는 희망과 용기를 얻었다. 대회 초반엔 우리나라가 4강이상 만 들어도 정말 잘 한거라고 여론에서 떠들어 댔다. 결론적으로는 우리나라 선수들은 4강 이상인 준우승의 정말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1회전에서 한일전에서 콜드게임 패배를 보면서 기분이 안좋았지만, 2008 베이징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대한민국의 실력은 일본에게 다시 승리를 거둠으로써 2회전에 당당히 진출하였고 또다시 멕시코와 일본을 완파 한후에 4강에 오르게 되었다. 4강에서도 대부분의 선수들이 메이져리거인 베네수엘라를 맞아 여유있게 승리하고 결승전에
지난 26일(목) 나흘간의 선거를 끝으로 총학생회를 비롯한 공대·IT대·정보통신전자공학부의 학생회장단이 선출됐다. 이는 작년 11월, 총학생회 선거가 무산되면서 재선거를 통해 이뤄졌으며, 선거 투표율은 48대 학생회 선거에 비해 1.87%나 떨어진 수치였다. 지난 11월에 확정돼야 했을 총학선거는 후보자가 없어 무산되었으며, 공대를 비롯한 세 단대 투표율을 50%를 넘지 못해 연장투표까지를 했지만 결과는 재선거였다. 허나 총학생회 선거를 재선거 하는 곳은 비단 우리학교 뿐만이 아니었다. 서울 관내 대학 대부분이 단과대를 비롯한 총학생회 선거가 투표율에 미치지 못해 다음해로 연장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대학가가 이러한 현실에 부딪힌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총학생회에 대한 학생들의 무
본보는 올해로 창간 90주년을 맞이하였다. 국내 최초의 대학신문으로서 현존하는 신문 가운데에서도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1920년에 창간된 조선, 동아 등의 일간지들보다도 1년 앞서 창간하여 일제강점기 민족독립운동의 기수가 되었고, 1938년 학교가 신사참배 거부로 자진 폐교할 때까지 숭대시보, 숭실잡지, 숭실타임즈 등으로 이름을 바꾸어가면서 민족정론지로서의 역할도 감당하였다. 광복 후 서울에서 학교가 재건된 뒤 1956년 10월 10일 개교기념일을 맞이하여 창간 당시의 제호에 따라 ‘숭대시보’ 속간호를 발간하여 대학신문으로서의 위상을 우뚝하게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숭대시보의 역사를 스스로 돌이켜봐도 자긍심이 차오르고 대학언론으로서의 사명감도 더욱 엄숙하게 느낀다. 오늘날 대학신문은
자본주의는 모든 것이 돈으로 평가되고 계산된다. 돈이 없으면 궁핍할 수밖에 없고 최소한의 품위 유지도 어렵다. 물론 돈을 초월하여 살아가는 이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 초월된 무엇으로부터 권위를 인정받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들 역시 돈 없으면 최소한의 생활을 해나갈 수 없다. 돈이 없으면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그 과정에서 비굴함과 무력함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시간과 돈의 관계를 생각해 본다. 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첫 시간에 “여러분이 한 학기에 내는 등록금의 가치를 생각해본 적이 있나?”라는 질문을 받은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한 한기 등록금 400만원 가량, 18학점을 신청하였다고 하자. 그렇다면 한 학점당 대략 22만원, 3학점짜리라면 66만원이다. 한 시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