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아누 호나우두가 볼을 몰고 상대방 골문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돌진한다. 그리고는 강력한 슈팅을 날려 결승골을 만들어 낸다. 그는 포효하고 관중들은 모두 일어나 겅중겅중 춤을 추며 열광한다. 이 모습은 마치 15세기 대항해 시대를 열고 승승장구하는 포르투갈의 이미지와 무척이나 닮았다. 대항해 시대의 영광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되었지만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에는 아직도 한 시대를 풍미했던 번영의 발자국이 서려 있다. 대항해 시대를 개막하기 이전의 포르투갈은 침체되고 우울했다. 이베리아 반도 서쪽 끝에 붙은 이 작은 나라는 오랜기간 로마의 지배를 받았고, 그 이후 몰려들어 온 이슬람 세력의 손아귀에서 신음했다. 대서양을 바로 눈앞에 두었건만 바다로 나갈 생각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반도에 사는 사
중국에서 가장 크다는, 아니 아시아에서 가장 크다는 싱하이(星海) 광장에서 바닷가를 바라본다. 처음에는 아름답기 그지없던 광장에서의 바다 조망이 점점 애처로움으로 변하고 작은 파도소리는 슬픈 음악처럼 들린다. 눈을 감고 밀려들어 오는 침략자들의 악랄한 고성을 머릿속으로 상상해본다. 침략자들이 상륙해 제멋대로 마구 뜯어 고쳐 버린 건물과 장소들이 그 본래의 이름을 잃고 슬퍼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이런 것이 역사의 아픔이던가. 광장 주변에서 다롄의 스카이라인을 매일 바꾸고 있는 최첨단 고층 빌딩과 고급아파트는 역사가 되어버린 과거의 아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청나라 말기의 중국은 세계 열강의 먹이와 같았다. 영국은 아편 전쟁에서 승리한 후 청나라의 국권을 유
지리적으로는 너무 가깝지만 정신적으로는 지극히 먼 나라 일본, 역사적으로는 너무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그 밀접한 역사 때문에 오히려 잘 알고 싶지 않은 일본. 그 일본을 나는 참 많이도 갔다. 우리와 닮은 듯하면서도 절대로 같지 않은 일본 문화에 대한 관심이 시작된 1998년부터 근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일본의 도시를 여행했다. 큐슈 지역은 비행기로 한 시간도 채 안 걸릴 정도여서 주말을 이용하여 1박 2일로 다녀온 적도 있다. 일본을 계속해서 다니다보니 자연스럽게 일본 친구도 많이 생기게 되고, 심지어 주변 사람들에게 친일파(?)라는 소리마저 들은 적이 있다. 방문해 본 도시의 수가 늘어나면서 나는 단순히 일본을 맹종하는 의미로서의 친일파를 넘어 지일파(知日派)로 변해가는
라스베가스의 화려한 밤거리를 걷는 사람치고 우울한 사람이 있을까. 아니 카지노에서 하룻밤 사이에 엄청난 금액의 돈을 탕진한 사람이 아니라면 사막 속의 별천지인 이곳에서 누구나 유쾌해질 것이다. 영화에서 많이 봐왔던 초호화판 럭셔리 호텔의 네온사인은 거리를 대낮처럼 밝게 만들고, 그 불빛 속으로 나의 오감(五感)은 몽환(夢幻)적인 느낌으로 빠져 버린다. 오늘 밤이 나의 마지막인 것 같은 착각 속에서 가는 곳마다의 형형색색을 즐긴다. 오감 중 특히 시각을 특별대우해주는 라스베가스의 밤거리를 나는 좋아한다. 인간의 눈은 그어떤 스크린보다 완벽하게 도시의 색깔을 구현해 낸다.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나의 횡재를 꿈꾸고, 로맨스의 주인공이 되게 만드는 도시가 라스베가스다. 별안간의 횡재와 염원하던 로맨스가 일반
코르코바도(Corcovado)산 위에 있는 그리스도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운도 좋아야 한다. 갑자기 쏟아지는 비바람에 우산은 무용지물이 되고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려야 한다. 주님을 만나러 가는 길은 이처럼 험해야 하는 것인가. 퍼붓던 비가 잠잠해지면 그리스도의 모습을 더 가까이 보기 위해 몸을 움직인다. 산 정상에 서린 안개 속에서 두 팔을 벌리고 계신 그리스도의 모습이 나의 힘든 여정을 위로한다. 그것은 마치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형에 처해진 구세주의 모습처럼 서서히 눈앞에 나타난다. 모태신앙을 가진 나에게 주는 감동이란 평상시보다 수백 배라고 말하면 과장일까. 해발 704미터의 코르코바도 산꼭대기에서 세계 삼대 미항 중 하나인 리우데자네이루를 내려다보며, 온 도시를 축복하는 예수의 조각상과 코파카바나
멈추어버린 중세의 시계 브뤼헤 중세 유럽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마차가 다니고 높은 교회의 첨탑과 주말에만 열리는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팔며 수다를 떠는 아낙네들의 모습. 그런 모습을 자아내는 도시의 한가운데로 흐르는 실개천 위에는 백조들이 한가로이 노니는 모습. 관념적으로만 존재하는 중세가 나의 머릿속에는 얼핏 이런 광경들로 이어지는 것은 왜일까. 유럽을 많이 다녀 봤지만 중세 유럽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도시는 찾기가 쉽지 않다. 유럽에 있지만 정말 오래전에 있었던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존된 유럽다운 도시를 찾는 것이 힘든 이유는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폭격으로 피해를 입은 도시가 의외로 많기 때문이다. 파괴된 건축물이 원형대로 복원된 경우도 있지만 완전히 다
동양과 서양을 가르는 보스포루스 해협이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이 해협을 가로지르면 유럽 대륙이 시작된다. 이 해협의 폭이 가장 좁은 부분은 불과 750미터 남짓. 수영에 정말 자신이 있는 사람이 맘먹고 건너면 충분히 횡단할 수 있는 거리다. 수도 서울의젖줄 한강의 평균 폭이 대략 1킬로미터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 작은 해협이 아시아와 유럽대륙을 나눈다는 사실이 자못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아시아의끝에서 유럽의 웅장함을 느끼고 유럽의 끝에서 동방의 신비한 대륙 아시아를 한꺼번에 눈으로 만끽할 수 있는 유일한 도시 이스탄불에 선다. 그러나 잠시후면 동양과 서양의 차이는 엄청난 것 이라는 머릿속 고정관념이 에게 해와 흑해의 통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