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종종 특정 젠더(성별)에게만 어울리는 말과 행동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차별이라는 인식 없이 아무렇지 않게 그런 언행을 받아들이곤 한다. 이미 우리 사회의 고착화된 젠더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우리 사회에 만연하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아직까지 남성위주의 사회에 가깝다고 본다. 따라서 젠더문제는 여성에 관한 사항일뿐 남자들은 젠더문제에 대해 고민하거나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과연 젠더문제가 비단 여성만의 문제로 축소될 수 있을까? 결코 축소될 수 없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논의되는 페미니즘은 여성의 생존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그러나 거기서 그쳐서는 안 된다. 페미니즘은 차별받는 젠더의 권익을 되찾는 것을 넘어서
한 여름이 푸르게 다가오고 있는 6월, 대학생들은 바쁘다. 축제와 과제, 그리고 공부로 몸이 열 개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다. 내일 마감인 레포트를 밤새 쓰고, 지하철에 몸을 기대 잠깐 눈을 붙이고, 겨우겨우 강의실 책상에 앉아 있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대학생이니 이곳저곳 축제에 가서 친구들도 만나고 캠퍼스 라이프를 신나게 즐기기도 한다. 이렇게 공부도 하고, 즐길 줄 아는, 하루를 꽉꽉 채워 열심히 사는 우리들이다. 그런데 1시간 이상 아무 것도, 정말 아무것도 안 해본 적이 있는가? 스마트폰이나 게임 말고 가만히 앉아서 이런저런 생각들을 해 본 적이 있는가? 생각의 꼬리를 물고 심연의 끝까지 깊숙하게 들어가 본 적이 있는가? 취업을 하기 위해 온갖 대외활동, 학점,
대한민국은 학생을 자식으로 둔 부모들의 교육 강국이다. 대한민국의 1,400명의 기혼남녀에게 자녀가 어떤 직업을 가졌으면 하는지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16%의 응답자가 1위로 공무원을 꼽았다. 2위는 교사였으며 3위는 법조인이었다. 아이가 원하는 직업을 갖길 바라는 부모는 114명으로 10분의 1도 되지 않았다. 도대체 아이의 삶은 누구의 것인가 의문이 든다. 이는 비단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책에서는 19세기 미국 부모들의 교육열풍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이 책에 등장하는 웰튼 아카데미는 명문 중·고등학교로 75%의 아이비리그 대학 진학률을 가지고 있다. 이 학교 학생들은 자신의 생각 없이 부모님과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만 살아간다. 그 중에서도 연극을 하고 싶지만 부
저는 올해 8월이면 정든 학교를 떠납니다. 숭실대는 규모도 작고 그리 유명하지도 않지만 저는 이 학교에서 한국 최고의 교육을 받았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최고의 교육에는 법과대학의 강의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는 3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법학을 부전공으로 이수하고 있습니다. 그때부터 주전공인 정치학보다 법학에 더 흥미를 느껴 교수님께 청강을 부탁드리기도 했습니다. 지난 학기에는 강경근 교수님의 헌법 강의를 청강했습니다. 교수님께서 강의 첫 시간에 헌법학을 사회과학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교수님의 말씀처럼 넓게 보면 법학도 사회과학에 해당됩니다. 정치과정을 통해 법이 만들어지고 그 법을 집행해 사회를 규율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지금까지 배운 짧은 지식에 비춰봤을 때 법학은 사회
숨 쉬는 것조차 재미있다는 시험 기간, 가슴은 시간이 없다며 조급함을 호소하지만 처음부터 머리의 지시를 받아온 몸은 그 말을 들을 리 없다. 잡다한 생각들이 가득한 머리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판단에 끌리는 것부터 하자는 생각만이 몸을 지배한다. 손은 휴대폰으로 향하고, SNS를 실행시키는 과정은 자연스럽다 못해 인식할 거리도 되지 못한다. SNS 첫 페이지는 두어 번은 더 읽은 내용이고, 초 단위 내지 분 단위로 누르는 ‘새로고침’은 별 의미가 없다. 그러나 오늘은 ‘새로고침’은 눌러보지도 못하고 공부해야 할 듯싶다. SNS 첫 페이지에서 접한 게시물이 적잖은 혼란과 생각할 여유를 주었으니 말이다. 게시물을 요약하자면, 4월 20일 오전 10시 30분 문화 채플의 진행을 맡은 사회자가
얼마 전, 영화 를 보았다. 는 미국 3대 언론으로 평가받는 신문사 보스턴 글로브에 속한 스포트라이트 팀이 보스턴 주 신부들의 아동 성추행 사건을 파헤치기 위해 집중 취재하는 내용으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다. 영화 속에서 스포트라이트 팀의 끈질긴 취재 모습을 보면서 필자는 진정한 언론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언론은 강자를 경계하고 약자의 입장을 대변함으로써 약자에게 발생되는 피해를 예방해야 한다. 우리 주변에는 다양한 사건, 사고들이 발생하고 있지만, 이를 묵인하고 은폐하는 조직들로 인해 일반 대중이 이에 대해 알거나 접하기란 쉽지 않다. 영화에서 신부들이 은폐해 왔던 성추행 사건이 스포트라이트 팀에 의해 밝혀진 후에야 수많은 피해 제보가 쏟
K리그가 드디어 개막을 했다. 벌써 2라운드를 치렀다. 1라운드에 서울과 전북이 맞붙으면서 K리그 시작의 불을 붙였다. 전북이 지난 리그 챔피언답게 서울을 상대로 홈에서 1:0 승리를 가져갔다. 또한 포항과 광주는 3:3이라는 꿀잼 경기를 펼쳐 얼마나 K리그가 재미있고 화끈한지를 보여주었다. 이 경기들을 통해 K리그의 잠재력을 엿볼 수 있었다. 오늘 내가 언급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전설'에 관한 것이다. 기대되는 K리그 출신 선수들이 나타나고 있는 가운데 이들을 보고 나는 유럽 리그의 레전드들이 떠올랐다. 특히, 원클럽맨이라고 불리는 선수들이 생각난다. 나는 K리그가 더욱 성장을 하길 원하고 그러한 과정 속에 이재성과 권창훈 같은 선수들이 K리그의 원클럽맨으로 남아 전설이 되었으면 한다. 하지만
휴학 중에 일 년간 인터넷 언론사에서 파견직으로 일한 적이 있다. 그 과정에서 웹 포털의 수많은 뉴스와 댓글을 살펴보게 됐다. 그중 남녀평등에 관한 기사에는 눈에 띄게 댓글이 들끓었다. 댓글에는 남성·여성 혐오주의자들의 온갖 비아냥거림과 매도가 가득했다. 흔히 보는 현상이지만 이런 현상을 결코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 무엇이 그들을 이토록 혐오에 이르게 만들었을까? 필자는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두 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첫째, 남성과 여성을 각각하나의 진영으로 보고 남녀 불평등의 탓을 각 진영에게 돌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평등은 한 성별이 다른 성별을 핍박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다. 단순히 남성과 여성을 이익집단화하여 배려를 곧 손해로 인식하는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서연고서성한중경외시…’ 한국에서 수험 생활을 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대학교 순위다. 수험생이라면 한 번쯤 상위권에 속하는 대학을 꿈꾸고, 재수나 삼수를 해서라도 상위 대학에 가려고 하기도 한다. 실제로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에서 2011년 공개한 자료에 의하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루는 학생의 20%가 재학생이 아닌 졸업생의 신분으로 시험에 응시했다고 한다. 20%나 되는 학생들이 힘든 수험 생활을 또 한 번 반복할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좋은 대학을 나오면 사회에서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많아진다. 이것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필자는 좋은 대학을 꿈꾸며 열정을 고취시키는 이유가 사회적인 그룹의 생성과 그로 인한 열등감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사회는 높은 그룹에 속한 대학과
정확하게 2년 전, 필자는 본 지면에 학생들에게 선거 참여를 독려하는 글을 기고했다. 돌이켜보면 정말 부끄러운 글이었다. 정치에 왜 참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정치 참여에 대한 글은 어떻게 써도 당위성이 부족하다. 그런 당위성은 정치학과 같은 ‘이상한’ 학문을 배우는 정치학도만 공감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아무리 한가한 일상을 보내더라도 정치에는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정치학을 배운지 4년 만에 깨달았다. 역사교과서가 국정화되어 편향된 내용이 들어가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임금피크제가 시행되어 부모님의 월급이 깎이고 그게 내 생활에 영향을 줘도 그게 정치와 무슨 상관이 있냐고, 충분히 그렇게 말할 수 있다.
올 초에 학교 측이 일방적으로 지시한 ‘졸업생, 수료생, 휴학생의 3월 내 고시반 퇴실조치’는 가 혹한 측면이 있습니다. 최소 3년을 투자해야 하 는 각종 고시생의 현실을 무시한 처사이기 때문 입니다. 저 역시 학업을 다 마치고 27살에 고시공 부를 시작했습니다. 고시의 특성상 전공학업과 병행하기엔 현실적 어려움이 컸기 때문입니다. 저는 단지 고시반의 구성원으로서 정책 구성 에 참여할 최소한의 권리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수직적인 의사결정 구조, 참여가 배제된 정책 구성 과정의 폐쇄성과 불투명성은 당장에는 갈등 비용을 최소화하여 경영의 측면에서 매우 효율 적일 수 있지만 결국 학교 정책에 대한 정당성과 신뢰성을 상실하여 장기적 기회비용만 증가할 뿐입니다. 저는 정외과에서 4년을 수학하는 동안 구성원들
우리나라의 최초의 대학인 우리 학교는 민족과 사람을 사랑하는 수많은 애국자와 사람을 살리는 인재들을 양성해왔습니다. 요즘에는 특화된 합창수업, 독서 시스템 등을 통해 각 분야의 학문뿐 아니라 전인격과 창의성을 존중하는 교육의 맥을 잇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각종 스펙, 어학성적 등 청년이 직면한여러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학생이 있겠느냐마는, 숭실의 학우들은 꿈꾸고, 생각하고, 살며, 누리고 있습니다. 이는 고지와 미답지를 두루 섭렵할 수 있는 안목을 길러주는 통합적이고 창의적인 어떠한 메시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숭실대학교는 박애의 신앙을 신념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는 경천애인(敬天愛人)의 신념으로, 학생들을 서로 사랑하고 품어주며, 창의적인 주체적 사고를 가지고 각 분야로 진출하도록 하는
작년 12월, 5년 동안 라면 브랜드에서 1위를 지켜왔던 신라면을 진짬뽕이 왕좌의 자리에서 밀어냈다. 작년 상반기의 짜왕이 라면 브랜드 4위까지 올라왔지만 신라면의 벽을 깨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나 2015년 10월에 진짬뽕이 출시된 지 2개월 만에 라면 브랜드 1위에 등극했고, 올해 1월에도 굳건히 1위를 지켰다. 농심에서 진짬뽕의 대항마로 출시한 맛짬뽕도 3위로 높은 수준이지만 진짬뽕과의 격차는 크다. 짬뽕라면이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데는 '맛'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이와 함께 착한 기업에 대한 국민의 염원이라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2015년 12월 22일, 오뚜기는 대형마트에서 일하는 시식 사원 1,800여 명을 정규직으로 채용했다고 보도했다. 이로써 관련 업계에서 비정규직이 없는 유일
약 한 달 전, 대학 수학능력시험이 끝났다. 떨리는 마음으로 보았던 지난 2012학년도 대학 수학능 력시험이 생각난다. 시험지를 받아들고 정신없이 문제를 풀어내려갔던 그 시험 시간도 잊을 수 없 지만, 정말 기억에 남는 순간은 시험이 끝나고 고 사장을 나갈 때였다. 긴장이 풀림과 동시에 굉장 한 허무함이 교차하던 마음이 아직도 기억난다. 시험이 끝났다는 해방감도 잠시, 많은 수험생 들이 바늘구멍 같은 입시 문을 뚫기 위해 지금도 수많은 고민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리 고 어김없이 자신이 받은 수능 성적에 비관하며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일들이 발생한다. 사실 단 한 번의 시험으로 학생들의 능력을 평가한다는 것은 수험생들에게는 매우 잔인한 일이다. 특히 나 쉬운 수능일수록 수험생들은 자신의 점수에 민
우리는 어디에 살고 있나. 우리 손에 든 아이폰을 보면 2015년을 살고 있는 게 맞을 텐데, 주변을 둘러볼 때, 뉴스를 살펴볼 때마다 70년대를 살고 있는건지, 60년대를 살고 있는 건지, 아니면 그보다 훨씬 이전 홉스의 자연상태를 살고 있는지 혼란스럽다. 뭐, 확실히 혐오 속에 산다는 것 정도는 말할 수 있겠다. 정의라는 이름으로 왼쪽을 부정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소수자를 혐오하고, 자유의 이름으로 인간이 아닌 자본과 GDP를 숭배하는, '미친'이라는 말조차 진부한 사회에 산다는 건 확실하게 느낀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와 정부의 노동개혁, 그리고 마지막으로 동성애에 대한 다수 사람들의 시선을 보고 있으면 마치 나와 '다른'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틀린'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확신이 든다
나는 기독교인이다. 그리고 나는 기독교인으로서의 우리가 두렵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우리를 향해 칼을 들어올린다. 그 칼로 우리를 찌르고 쪼개고 판단하려고 한다. 최근 학교에서 있었던 한 사건은 내가 우리를 향해 칼을 들어올리게 만들었다. 동성애를 주제로 한 인권영화제가 행사 하루 직전, 학교로부터 일방적인 취소를 당했다. 그들은 베어드홀 앞 야외에서 밤까지 시위를 진행했다. 폭력이란 무엇인가. 그날 나는 우리 숭실대학교가 그들에게 폭력을 휘둘렀다고 생각한다. 기독교학교라는 이유로, 또는 기독교단체에 영향을 받고 있다는 이유로, 그리고 그 구성원의 대부분이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소수의 목소리를 일방적으로 막는 것은 폭력이기 때문이다. 나는 동성애에 대한 찬반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가을 밤은 깊어가는데 달밤에 웬 체조인가. 텅 빈 책상 위에 놓이는 모기는 끝이 없다.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하고 사체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일부는 내게 흡혈을 시도한 빨간 흔적이 보인다. 이제 여덟 마리다. 파리채에 압사당했음에도 생김새가 제각각이다. 주둥이가 긴 놈, 다리가 매끈하게 긴 놈 등 새끼손톱만한 것들이 오묘하게 다르다. 다음 날,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하였다. 비장한 마음으로 에프킬라를 들었다. 어제와 같이 여덟 마리다. 다른 점은 생김새가 제각각이었던 것들이 일망타진의 효과인지 똑같아 보인다는 것이다. 후련한 마음으로 광화문으로 밤 산책을 나섰다. 저 멀리 청와대가 보인다. 그 뒤로 북악산이 보인다. 산 속에는 모기 말고도 벌레가 많을 것이다. 전체 모양을 보면 그런 기운이
추석에는 온갖 이야기가 오가지만 그 중에서 빠지지 않는 이야기 주제가 바로 정치이다. 여러 지역에 퍼져 있는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만큼 여 러 가지 생각들이 오가는데 그것을 단숨에 제압 해버리는 말이 있다. “너 일베 하지?” 일베란 어느새 하나의 거대한 대명사가 되어 버렸다. 양심이 없는 사람들, 고인을 모욕하는 사람들, 철이 없는 사람들, 그리고 지금까지 설명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안 좋은 사람들. 이런 온갖 안 좋은 것들을 모으고 모아서 ‘일베’로 규정한다. 그런데 이런 패턴의 또다른 버전이 있다. “너 종북이지?” 진보에게는 이런 꼬리가 따라다닌다. 북한과 는 전혀 상관이 없어보이는 주장을 해도, 단지 진보적인 이념을 담았다는 이유만으로 종북의 꼬리표를 얼마나 오랫동안 달아왔던가
진짜가 나타났다. 9월 3일과 8일에 있었던 2018 러시아 월드컵 2차 예선에서 우리나라는 라오스와 레바논을 차례대로 8대0, 3대0으로 격파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 축구 대표팀은 귀한 보물들을 무수히 보여었다. 세상에서는 뛰어나고 장래성이 높아 보이는 사람을 가리켜 소위 ‘물건’이라고 표현한다. 현재 우리 대표팀에는 이 물건들이 상당히 많다. 특히 슈틸리케 감독 부임 이후 물건들이 속속들이 발견되고 있다. 이번 경기에선 권창훈이 단연 으뜸이었고, 아시안컵에서 최초로 슈틸리케의 물건이 된 이정협, 김진현, 이재성, 정우영. 이들이 슈틸리케가 찾아낸 원석이자 차세대 보석이 될 재목들이다. 슈틸리케는 이정협 말고도 또 다른 유형의 스트라이커를 찾고 있는 중이다. 박주영, 이용재, 이동국 등 많은 선
여름 방학의 시작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2학기가 시작됐다. 개강을 하니 설레는 얼굴을 한 학생들이 북적여 조용했던 교내 캠퍼스에도 활기가 돌고 있다. 이러한 교정을 거닐다보니 역시 학교에는 학생들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런 활기가 과연 얼마나 갈지 모르겠다. 개강의 설렘을 안고 분주하게 캠퍼스를 오가는 발 걸음도 점차 무거워질 것이다. 어쩌면 이는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매일 수업을 들으러 가야 하는 교실에는 언제부턴가 학우가 아닌 경쟁자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몇 점 차이로 성적이 갈리고 이에 따라 울고 웃는, 경쟁자로 가득한 교실로 향하는 학생들의 발걸음이 가벼운 것이 어쩌면 더 이상한 것이 아닐까. 최근 대학들은 ‘학사제도합리화’ 나 ‘성적제도개선’ 등의 제도를 공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