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는 한민족(韓民族)이 사용하는 말이다. 이는 조선어, 조선족(朝鮮族)이라고 해도 같은 뜻이다. ‘한(韓)’은 고대 한반도의 남쪽 부족에서 기원한 말이고 ‘조선(朝鮮)’은 북쪽의 단군이 세운 고대의 나라에서 비롯된 말인데, 한과 조선을 다른 민족으로 보기는 어렵다. 고대로부터 크게 다르지 않은 언어를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민족’의 개념을 구성하는 주된 요소는 혈통(血統)이다. 일제 강점기에 한국인(조선인)의 배타적 독립성을 주장하고자 하는 정치적인 목적과 맞물려서 ‘단일민족’을 순혈주의적
건축물의 아름다운 모습은 구조에 의해 탄생하는데, 지구상에서 그 구조를 이루게 하는 중요한 힘은 중력이다. 중력은 건축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이나 기술에 당연하게 작용하며 우리는 이를 의식하고도 있지만, 중력을 학술적으로 다루게 된 것은 근대에 이르러서다. 언어는 중력처럼 당연한 원리로서 작용하여 실생활과 학문을 가능하게 하지만, 정작 언어 자체는 본격적인 연구의 대상이 아니었다. 현대적인 의미의 분과 학문으로서 언어학은, 수사학처럼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와 같은 문제가 언어에 대한 연구로 생각되었던 시절로부터 분리되는 것에서 출발한
이 연재의 앞에서 오스틴(J. L. Austin)의 화행의 개념을 소개한 적이 있다. 말이 사물이나 사상을 가리키는 직접적인 지시나, 은유와 같은 이차적인 지시의 차원과는 다르게, 말하는 행위 자체가 발휘하는 힘에 대한 것이었다. 예를 들어,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의 핵심적인 내용이 무엇이고 이것이 각종 산업 및 교육에 미치는 영향을 정확히 모르는 인물이라도 그 중요성을 설파할 수는 있다. 사람들이 그것의 지시내용이 정확히 무엇인지 따지지 않을수록 그 인물의 화행은 성공적이어서 중요한 일을 맡을 수도 있다. 화행의 효과도 은유와 마찬
코드(code, 부호)란 기호를 해석하기 위한 규약이나 그 체계를 말한다. 예컨대 로마자는 그것을 사용하는 각 국에서 읽는 방식대로 읽어야 그 나라의 언어가 된다. 한글의 경우에도 물론 그것을 어떤 소리로 읽어야 할지에 대한 규약이 있는데, 는 그 코드의 생성 원리까지 밝히어 적어 놓았다. 물론 코드는 문자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코드는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전언(message)에 대해서 같은 의미로 파악하도록 하는 약정이다. 그런데 코드화(coding, 부호화)된 층위에 따라서 실제 의미는 달라질 수도 있다.
세상에 나 이외에 아무것도 없다고 가정해보자. 이 가정에는 모순이 있다. 배경으로 설정한 세상은 이미 나 이외의 것이기 때문이다. 말장난은 삼가고 계속해보자. 오로지 나, 즉 주체만 있다면 나는 나를 인식할 수 있을까? 무엇을 인식한다는 것은 이 세계의 것을 알아차린다는 뜻이다. 우리의 감각은 이 세계를 인식하는 데 쓰인다. 내 밖의 세계가 없다면 감각이 발생하지 않으며, 따라서 인지적 내용도 없다. 우리의 살갗과 시각을 통해 발생하는 감각 자체도 세계와의 소통에 쓰이는 것이지, 그 자체로 주체는 아니다. 라캉(Jacques Lac
성능이 좋다는 마우스를 새로 구입해서 컴퓨터에 연결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예전에는 수직 또는 수평으로 이동하는 커서의 움직임을 손의 감각에 맞추기 위한 프로그램을 사용했었지만, 요즘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커서의 움직임이 어색할 수 있는데, 몇 시간만 사용해보면 내 뜻대로 정확하게 움직여 주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의 뇌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모니터 화면에 맞추어서 손의 동작을 조절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뇌는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런 일들을 해나간다. 다초점 렌즈를 장착한 안경을 쓰게 되면, 렌즈 위와 아래의 굴
오래전에 숭실대학교에서 한 외부인사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한 적이 있는데, 한글을 세종이 만들었다고 볼 수 없고 오랫동안 민간에 전해지면서 형성되었던 것이라는 다소 이념화된 가르침을 주고 있었다. 강단의 뒤에 앉아 있던 필자에게는 그것이 난감했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물론 그는 국어학자가 아니었다. 한글, 즉 훈민정음은 세종이 만들었다. 같은 표음문자인 로마자는 그야말로 수백에서 수천 년간 사람들과 지역 간의 쓰임새에 따라서 변화되어 온 글자이다. 그래서 유럽의 나라마다 읽는 방식에 차이가 나고, 같은 문자라도 단어에 따라 다
노엄 촘스키(Noam Chomsky)는 알려진 바와 같이, 현대언어학에 혁명을 일으켰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로 그의 생성문법은 1950년대 후반 이후 21세기 초까지도 이론언어학을 장악하였다. ‘촘스키 언어학’은 미국 외의 국가에서는 한국에서 가장 화려하게 꽃을 피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자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도 촘스키 언어학을 다루지 않고서는 언어학에 접근하기 어려웠다. 미국에서는 그가 특강을 할 때마다 학생은 물론 일반인들까지 구름처럼 몰려들어 인파를 이루는, 그야말로 대석학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많은 수강자를 끌어모으던
문법학에서 서법은 명제에 대한 화자의 관점과 태도를 담아내는 문법형식을 일컫는다. 서법은 인구어에서 비교적 명료하게 드러나지만, 국어에 적용하는 데에는 이론(異論)이 많다. 국어 서법의 예를 들면, “강아지가 뛰어가더라.”라는 문장에서 ‘강아지가 뛰어가-’까지는 명제가 되고, ‘-더라’는 그것을 회상하는 화자의 관점과 청자에게 전달하는 태도까지 들어 있는 서법이다. 많은 문법학자들은 문장의 기본적인 요소를 명제로 보고, 서법은 그것에 덧붙는 별도의 양식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다음을 생각해보자. “호랑이는 노루를 잡아먹는다.”와 “호
무리가 있는 가정이겠지만, 지구에 말을 배우기 전의 영아만 살아남게 되고 인간이 모두 사라졌다면, 과연 영아들은 언어를 구사할 수 있을까? 오늘날의 인류와 같은 수준의 언어를 구사하게 되려면 얼만큼의 시간이 걸릴까? 인간의 진화가 그러했듯이 수십만 년이 걸릴까? 필 자의 생각으로는 두어 세대가 채 걸리지 않을 것이다. 이른바 대항해의 시대에서 시작된 서구의 식민지 개척 시절에 보고되는 두 가지 종류의 언어 현상이 있다. 하나는 피진이고 하나는 크레올이다. ‘피진’의 기원은 배를 타고 온 영국인과 교류하던 중국인이 ‘business’
제인 구달(Jane Goodall, 1934~)은 침팬지와 고릴라 등의 유인원을 연구하러 아프리카의 숲속에서 생활하던 영국의 동물학자이다. 그녀는 다른 종에서 발견하기 어려운 특성을 침팬지와 고릴라에게서 발견한다. 일반적으로 동물은 생존을 위해서 다른 종을 살해하거나 동료를 다치게 한다. 그런데 영장류가 같은 종에게 행사하는 폭력은 종종 그런 이유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주로 힘이 센 개체가 약한 개체에게 뚜렷한 이유 없이 행사하는 폭력의 양상은 집단화가 되어 ‘왕따’ 현상을 보이도 한다. 이 집단폭력은 잠재적으로 힘을 가지게
단층 건축물의 평면구조를 글이나 말로 설명할 때, 화자가 각 구역을 걸어가면서 탐색하듯이 방향과 위치를 묘사하여 전체를 완성해 나가는 기술 방법이나, 반대로 전체적인 형상을 먼저 말하고 구역별로 위치를 제시하며 세부적인 설명을 해나가는 방법 중에 어느 것이 더 청자에게 건축물의 구조를 잘 이해할 수 있게 할까? 후자가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그런데 수년 전 필자는 공과대학 교수님의 제안으로 공학 글쓰기에 관한 공동연구를 수행한 적이 있다. 건축물의 평면도와 자동차의 부품인 워터펌프(water pump), 그리고 인체의 소화
미국의 로저 브라운(Roger Brown)은 영어를 모국어로 습득하는 아동의 언어발달 과정에 대하여 완성도 높은 연구결과를 제시한 사람이다. 1950년대 후반부터 언어발달을 연구하던 브라운은, 1970년대 초 그의 제자들과 수년 동안 세 아이의 언어발달을 추적하고 세밀하게 분석한 결과를 내놓은 일로 유명하다. 아이들은 보통 12개월 정도에서 첫 단어를 말하고 한 단어로 의사를 표현 하다가 18개월쯤 되면 두 단어로 말하기 시작한다. 두 단어 이상은 서로 문법관계를 형성하기 때문에 문법요소도 이때 발화되기 시작한다. 영어뿐만 아니라
우리는 정삼각형이 무엇인지를 안다. 그런데 실은 정삼각형을 본 적이 없다. 오차 때문에 변의 길이와 각이 세상에 존재하는 방식으로는 제대로 그려질 수 없기 때문이다. 수는 존재하는가? 우리는 수를 본 적이 없다. 다만 수를 표현한 숫자를 본 적이 있을 뿐이다. 또는 사과가 한 개인 것과 두 개인 것을 구분할 때 수를 이용할 수 있을 뿐이다. 사용하고 있지만 실은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우리는 당연히 안다고 생각한다. 감각적으로나 심상적으로도 존재하지 않지만 원리로는 있어야 하는 것, 그것이 관념이다. 관념은 아주 어렵게 배워야 할 플
“우리들은 모두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김춘수의 시 ‘꽃’의 마지막 연을 편집해보았다. 눈치 빠른 독자는 앞의 두 문장에서 ‘눈짓’이 ‘꽃’과 맥락화되고 있다는 것을 파악했을 수 있다. ‘눈짓’이든 ‘꽃’이든 그 원래 의미가 무엇일까. 은유(metaphor)는 문학적 해석의 대상이었다. 학교 교육에서 이루어지는 은유 해석은 롤랑 바르뜨(R. Barthes)의 은유 원리와 맞닿는다. 이 연재의 첫 호에서 소쉬르가 기호를 ‘표시체’와 ‘표시대상’의 결합으로 설명한 것을 소개한 바 있다. 바르뜨는 그 기호가 하나의 표시체로 전환되고
기억은 사고 작용의 기반이다. 인간의 기억체계에 대해서 오늘날까지 가장 영향력 있는 가설은 1960년대 후반에 애트킨슨(Atkinson)과 쉬프린(Shiffrin)에 의해 제시된 다중기억 모형(multistore model of memory)이다. 인간의 심리를 하나의 정보처리 체계로 간주하고, 감각적 정보가 감지 장치에 의해서 단기저장실로 전이되었다가 필요한 것은 다시 장기저장실로 전이되어 영구화한다는 이론이다. 컴퓨터가 인간의 사고 과정과 비슷하다는 생각도 이 모형에서 비롯되었다. 그런데 정작 인간의 기억은 하드디스크처럼 특정
브로카 영역(Broca Area)은 독자 여러분의 왼쪽 옆머리의 볼록한 부분과 앞쪽 뇌 사이를 만져봤을 때 다소 골이 지거나 평평한 부분 속에 있는 뇌의 구역이다. 어떤 사람은 이 언어영역이 오른쪽에 있기도 한데, 왼손잡이 일수록 그 확률이 높다. 뇌과학의 시작은 브로카(Paul Broca) 박사(1824-1880)가 대뇌 좌측 전두엽의 손상이 실어증을 가져온다는 것을 밝히면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어휘는 잘 말했지만 정상적인 문장을 구사할 수 없었던 환자가 죽은 다음에 뇌를 해부해 본 결과, 뇌경색으로 해당 구역의 세포가 죽
구조주의 문법과 생성문법의 차이를 국어의 예로 간단히 들어보자. 예컨대, ‘잡고’, ‘잡아라’의 ‘잡-’은 ‘ㅂ’이 언제나 온전하게 소리가 나지만, ‘굽고’, ‘구워라’에서 ‘굽-’은 ‘ㅂ’으로도, ‘우’로도 소리가 난다. 구조주의적 관점에서는 ‘굽-’이 불규칙적으로 변화하는 현상을 객관적으로 관찰해서 기술을 해야 한다. 그러나 생성문법에서는, ‘굽-’의 ‘ㅂ’을 /ß/라는 기저음으로 설정한 다음 이것이 뒤에 자음을 만나면 자음성이 강화된 ‘ㅂ’으로 도출되고, 모음을 만나면 모음인 ‘우’로 도출된다는 일종의 동화규칙으로 설명한다.
복잡한 거리에서, 사람들은 차들이 다니는 대로 앞에 서 있다가도 푸른 신호등이 켜지면 횡단보도로 들어서 대로를 건너기 시작한다. 신호등은 푸른색일 때와 붉은색일 때의 의미가 다르다. ‘푸른색’과 ‘건너기’, ‘붉은색’과 ‘멈추기’는 어떻게 맺어지게 되었을까? 기호학자 퍼스(C. S. Peirce)는 이렇게 표시체[signifiant]와 표시대상[signifié]이 ‘자의적(arbitrary)’으로 맺어지는 기호를 상징(symbol)으로 규정한다. 인간의 언어가 다른 동물의 의사소통 체계와 결정적인 차이는 바로 상징의 일종이라는 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