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번째 썰 “나는 지금 행복한가?” 이는 우리를 난감하게 하는 질문이다. 우리는 보통 그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잘 하 지 않는다. 누군가가 내게 “행복하십니까?”라고 물을 때 비로소 그런 질문을 내게 던져보게 된다. 그런데 이 질문은 잘못된 질문이라고 하버드 대학의 꼰대 ‘벤-샤하르’는 말한다. 왜 그럴까? “나는 지금 ~하다”라는 말은 현재의 상태를 묻는 말이다. 마치 현재가 정지되어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시간은 정지하지 않는다. 우리의 시간은 항상 흐른다. ‘지금’ 혹은 ‘현재’라고 불리는 순간은 변화하지 않고 그대로인
일곱 번째 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마음에 드는가? 이 세상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 계속해서 열심히만 살면 행복해질 것이라 기대가 되는 세상인가? 내겐 그렇지 않다. 특히 청년들 가운데는 아니라고 대답하고픈 사람이 많을 것 같다. 바꾸고 싶다. 확 바꾸고 싶다. 세상을 확 바꾸는 것을 ‘혁명’이라고 한다. 그런데 있는 세상을 두들겨 부순다고 그것이 혁명이 되는가? 애꿎은 물건들을 부셔봤자 세상은 조금도 바뀌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질서를 바꾸어야 보이는 세상이 바뀐다. 혁명은 존재하는 질서를 존재
살다보면 이런 일도 저런 일도 겪게 된다. 억울한 일도 당할 수 있고, 험한 꼴을 당할 수도 있다. 아무 잘못도 없는데 욕먹을 때가 있고, 잘못해서 욕먹을 때도 있다. 세상살이가 평탄하지가 않다. 뒤로 넘어졌는 데도 코가 깨질 때가 있다. 기다리면 다 잘 될 때가 올 것 같았는데, 가도 가도 태산인 경우를 살다 보면 경험한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는 힘들게 보내야 한다. 힘들게 지나가야 하는 과정을 쉽게 가려다 보면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른다. 힘든 상황을 외면해 버리면 조금 지나 똑같이 힘든 상황이 다시 다가온다. 그러니 외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이 있다. 내가 어떻게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세상을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고 부정적으로 볼 수도 있으니, 늘 긍정적이고 밝게 마음을 먹고 남을 비판하지 말고 주어진 삶을 성실하게 살아가면 행복해진다는 말이다. 흔히 이런 태도를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로 표현한다. 그런데 이 말은 항상 미심쩍은 말이다. 사회의 구조적인 악으로 피해를 보고 제도적 문제로 인해 삶이 곤고해진 사람을 두고 “그게 모두 당신이 제대로 마음을 먹지 않아서 얻게 된 결과야”라고 말을 한다면, 그것은 기만적이기 때문이다.
이 칼럼의 제목에 ‘꼰대’라는 말을 넣은 것은 달짝지근한 행복을 말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글을 읽는 순간 잠시 행복감을 맛보지만 우리에게 행복의 길로 이끌어주지는 않는 그런 글들은 참 많다. 우리를 속이는 글들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행복의 노예가 되어 있는지 모른다. 우리는 행복해야만 한다는 강박에 빠져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떤 점에서는 행복의 강박에서 벗어나 뭔가 할 수 있는 일, 행동할 수 있는 무엇을 찾는 것. 그것이 행복의 길일 수 있다 싶어서 썰을 풀기로 했던 것이다. 노예는 행복할 수 있는가? 이는 아주 오랜 과거에
세 번째 썰 유튜브에서 ‘프란츠 리스트’의 을 찾아서 들어보자. 헝가리 출신의 위대한 이 피아니스트의 음악은 17분 정도의 시간을 통해, 우리가 홀로 있음 가운데서 얼마나 큰 축복을 얻을 수 있는지를 들려준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홀로 있음을 축복으로 여길 수 있는가? 고독이 과연 축복이 될 수 있는가? 축복이 어떻게 고독 가운데 내리는가? 신은 어떤 축복을 고독 가운데서만 주시는가? 우리는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 때때로 외로움을 느끼고, 또 군중 속에 서도 고독을 느낀다. 그런데 외로움과 고독은 비슷하지만
두 번째 썰 “의병이 되고 싶니, 친일파가 되고 싶니?” 이라는 드라마가 끝난 뒤에 어느 엄마가 유치원생과 초등학교 저학년인 자녀에게 물었다. 그 엄마는 의병들의 삶이 얼마나 고생스러웠고, 친일파는 얼마나 오랫동안 벌 받지 않고 떵떵거리면서 살았는지를 말해 주어 아이들의 고민을 더 깊게 했다. 여러분이라면 어떤 대답을 할까? 한참 고민을 하던 한 아이가 이렇게 대답했다. “난 의사가 될래” 넉넉하고 편하게 살면서도 위험 부담이 없는, 나름 영리한 대답을 찾아내었다. 하지만 그 답은 선택지에는 없다. 강의 시간에 학생
첫 번째 썰 누구나 행복하기를 원한다. 그런데 행복을 좇아가다가는 반드시 행복을 놓치게 된다. 이를 행복의 역설이라 부른다. 이 상황을 두고 내가 선승(禪僧)이라면 “행복을 원하면 행복을 죽여라”라고 말할 것이다. “부처가 되려면 부처를 죽여라”라는 선문답을 흉내 낸 말이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대답은 다양하겠지만, 어떤 결론이든 그것은 내게 행복함을 안겨주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행복을 ‘행복감’과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한다. 만일 행복이 행복감과 같은 것이라면 나는 내게 가장 직접적이고 강렬하게 행복감을 줄 수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