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동문인터뷰] 변호사 김성만(법학ㆍ68학번)동문

 

판사 출신 변호사로서 현재 우리학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인 김성만(법학ㆍ68학번) 동문은 우리학교가 배출한 1호 판사였다. 76년 연수원을 수료하고 대전지방법원으로 발령 나 판사생활을 처음 시작한 그는 86년 서울지방법원에서의 판결을 끝으로 판사로서의 역할을 마쳤다. 김 동문은 지난해 12월 5백 4십여 만원을 발전기금으로 전달했으며, 교수로 임용된 9월부터 봉급 전액을 출연하고 있다.


정의롭고 논리적인 것이 좋아 당연하게 법학과를 오게 됐다는 김 동문. 오랫동안 강단에 서서인지 후배들을 바라보는 눈은 그 누구보다 따스하고 인정이 넘쳤다. 학교에 대한 자부심이 부족한 것이 늘 안타깝다는 김 동문은 자칫 말하기 꺼릴 수 있는 후회조차 허심탄회하게 풀어 놓았다. 강의에 들어가기 전 만난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지난해 봉급 전부를 장학금으로 출연하셨습니다.


지금은 겸임교수를 맡고 있지만 86년부터 01년까지 근 16년 간을 강사로서 민사소송법을 가르쳤다. 학교와의 인연이 정말 오래된 셈이다. 그러던 차에 로스쿨을 위해 전임교수를 맡게 됐다. 교수직을 맡은 것은 맡은 것이고, 나날이 발전해 가는 모교에 무언가 도움이 되고 싶었다. 후배와 학교를 위해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크지 않은 액수지만 봉급을 다시 돌려주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 혼자만 결심한다고 되는 일은 아니었고, 집안 식구들도 흔쾌히 동의를 해줘 할 수 있었던 일이었다.



사법시험을 어떻게 준비하셨는지 듣고 싶습니다.


사법시험 준비는 3년 동안 했다. 그 때는 숭현관이 없었고 지금은 법학관인 인문관 지하에 있는 법률연구실에서 사시를 준비했다. 지하에 위치해 있어 습기가 많고, 좁은 곳이라 공부할 환경으로는 정말 좋지 않았다.


그 많은 과목을 공부한다는 게 정말 쉽지가 않다. 이론을 응용하고 적용하면서 법적 마인드를 훈련하려고 애썼다. 각 조항에만 얽매이지 않고 여러 판례와 학설을 익혀 나갔다.


지금은 그 때의 기억이 희미하긴 하지만 몸이 망가질 정도로 공부해서 그 때 얼마나 힘들었는지 또렷하게 느껴진다. 눈에 결막염이 생겨서 눈이 부신 적도 수차례였고, 결핵 증상까지 나타나 고생을 많이 했다. 가난했던 시절에 못 먹으면서 공부하려니 몸이 견디지 못했던 것이다. 다행히 16회 사법시험에 중간정도의 성적으로 합격했고, 경쟁률은 100:1 정도로 기억한다. 우리학교 규모가 지금보다 더 작았던 때여서 합격자를 기대하기 어려웠는데, 붙어서 정말 좋았다.

 



판사라면 여러 사건을 접하셨을 텐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입니까.


사람이 좋았던 일은 오래 기억에 남지 않더라. 나 역시 판결을 내린 것 중에 잘 한 것보다는 못한 것, 후회 남는 것 밖에 생각이 안난다. 지금까지 아쉬움을 남기는 것은 무죄판결을 내렸어야 했는데 유죄판결을 내렸던 사건에 대해서다.


내가 맡은 재판이 10년 전 아이를 살해한 사건이었다. 사건의 전말은 한 어머니가 농약 탄 물로 4살짜리 아이를 목욕시켜서 결국 아이가 죽었다. 농약 탄 물로 목욕을 시키니 눈으로 그 물질이 투입되고, 목욕 중인 아이가 먹었던 과자에 농약물이 닿아 신체 내부로 들어갔다. 결국 아이가 죽어 재판에 서게 된 것이다. 아이를 죽이려 한 원인은 그 어머니가 다른 남자와 재혼하기 위해서로 밝혀졌었다. 그런데 그 어머니가 아이를 가진 상태여서 출산을 위해 가석방시켰다. 가석방으로 나간 어머니가 출산 후 도주했고 10년 후 잡혀 재판이 다시 진행된 것이었다.


10년 전 사건을 당시 조사기록에 의해 재판해야 했는데, 기록상으로는 정황상 어머니가 범인이 확실해 보였다. 나는 징역 10년으로 유죄판결을 내렸다. 그랬던 것이 2심에서 무죄, 3심에서도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2,3심에서 무죄를 내린 이유는 ‘농약병이 나왔다고 해서 그 물로 묙욕시킨 게 납득이 안간다’‘증거가 부족하다’였다.

 



선배님 소신대로 결정을 내린 것일텐데 왜 후회를 하십니까.


그 때 주변사람의 의견을 들은 것이 문제였다. 기록이나 자료를 토대로, 오로지 내 생각으로만 내 책임 하에 판결을 내렸어야 했던 것이다. 사건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내 설명만으로 답을 요구했고, 그것을 통해 나 자신을 쉽게 설득시켜 버렸다. 그 때 그 일을 두고두고 후회해서 그 후로는 판결할 때 신조로 삼았다.

 

판사를 그만두신 계기는 무엇입니까.


변호사를 하게 된 것은 사실 가정형편의 원인이 컸다. 아버님이 목사셨는데 뺑소니를 당하셨다. 언제나 정직하고 열심히 하시는 분이셨는데 아버님이 그리 되시니 집안 형편이 어려워졌다. 장남으로서 동생들도 책임져야 하다 보니, 조금이라도 돈을 더 벌 수 있는 변호사로 직업을 바꾸었다. 변호사 자체에 대한 거부감은 없다. 변호사도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를 뿐 법을 다루는 사람이다.

 



지금은 우리학교 법률 고문을 맡고 계시지요.

 
그렇다. 실제로 학교로 들어온 몇몇 소송을 맡기도 했는데, 그 중에서는 상가를 철거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우리학교 앞 상가 철거와 관련해서 5년 동안 재판을 진행한 적이 있다. 그 긴 시간 동안 상가 사람들과 의논하고 합의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결국 우리학교가 재판에서 승소했다. 지금의 신정문이 있기 된 것도 그 때문이다. 정문은 곧 학교의 얼굴인데 훨씬 보기 좋아졌다. 우리학교 소유의 임야에 외부인이 통행을 요청해 재판을 한 적도 있었다. 통행권에 대해 승소하긴 했지만 그 임야를 개발하지 않고 놔두니 소송이 계속해서 들어온다.

 


로스쿨 때문에 교수직도 맡으셨고, 또 법학과 선배로서 로스쿨이 선정되지 못한 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로스쿨 선정은 인가나 절차 등에 있어 제도적으로 객관적이지 못하고 불합리한 측면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내부적으로는 우리학교에서 준비가 부족하기도 했다. 다른 대학은 일찍부터 예산을 조달하고 교수를 확보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는데 그에 비하면 우리학교는 많이 불충분했다. 지금의 건물도 올해 들어서야 완공되고 법학관이 되지 않았나.
기회는 아직 있으니, 학교 당국와 법대가 함께 로스쿨을 위한 별도의 위원회를 구성해 준비해야 한다. 남의 탓은 남의 탓이고, 우리 내부에서도 이제는 내실을 갖춰 준비에 나서야 할 때다.

 

강의를 통해서 후배를 만나시기도 하지만 숭현관에는 자주 찾아가시는지요.


그러고보니 예전에는 몇 번 찾아가기도 했었는데 요즘엔 잘 가지 못했다. 사시를 준비할 수 있는 곳이 이렇게 버젓이 있으니 좋다. 하지만 학교의 지원이 더 필요한 것 같다. 우리 때는 힘들게 공부했지만, 기왕에 연구실이 있을 것이면 학교에서 더 지원을 늘여야 하지 않을까. 우리 연구실 뿐 아니라 다른 연구실도 그렇고 충분히 지원을 해서 끌어줘야 합격률도 높아질 것이다. 물론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도 집념을 갖고 독하게 공부해야 하는 것은 두말 하면 입 아픈 소리다. 뜻이 있다면 어떤 환경에서도 열심히 해야 한다. 하루 1~2센치 조금씩 성장하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고, 지루하겠지만 그것이 나중엔 누구나 알아볼 정도로 큰 성장으로 이어지는 것 아니겠나.

그러고보니 예전에는 몇 번 찾아가기도 했었는데 요즘엔 잘 가지 못했다. 사시를 준비할 수 있는 곳이 이렇게 버젓이 있으니 좋다. 하지만 학교의 지원이 더 필요한 것 같다. 우리 때는 힘들게 공부했지만, 기왕에 연구실이 있을 것이면 학교에서 더 지원을 늘여야 하지 않을까. 우리 연구실 뿐 아니라 다른 연구실도 그렇고 충분히 지원을 해서 끌어줘야 합격률도 높아질 것이다. 물론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도 집념을 갖고 독하게 공부해야 하는 것은 두말 하면 입 아픈 소리다. 뜻이 있다면 어떤 환경에서도 열심히 해야 한다. 하루 1~2센치 조금씩 성장하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고, 지루하겠지만 그것이 나중엔 누구나 알아볼 정도로 큰 성장으로 이어지는 것 아니겠나.

 

후배들에게 한말씀 해주신다면요.


옛날과 비교하면 학교에 대한 자부심이나 자긍심이 많이 사라진 것 같다. 학교 규모가 크진 않았어도 당시 학생들에겐 자긍심이 있었다. 학교가 많이 좋아졌는데도 학생에게서 자부심을 찾기가 힘들다. 그 때는 자신감, 패기, 열정이 넘치던 캠퍼스였는데 학교에 대한 자긍심과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을 찾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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