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싶었어요] - KBS 신입PD 임종윤(정보사회ㆍ01학번)동문


세상에 ‘일’을 하고 있는 무수한 사람들 중에서 ‘하고 있는 일’ ‘좋아하는 일’ ‘남보다 잘 하는 일’ 이 세 가지가 모두 조화된 사람은 드물다. 특히나 이십대에 자신의 ‘일’에 있어 이 세 박자가 잘 맞물려 가는 사람은 더욱 찾기 힘들 터.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직업’으로 승화시킨 그를 만나 유쾌한 수다를 나눴다.

 


"이 정도 경로는 통해야 한다."


이 군을 만나 기자가 처음 건넨 말은 “정말 축하합니다”였다. 요즘처럼 유례없는 청년실업으로 우울한 대학가에서 그것도 언론고시에 합격한 PD라니 반가움은 배가됐다. 그의 학창시절이 궁금했다. 흔히들 PD하면 ‘창의력’과 ‘친화력’ ‘열정’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더욱이 ‘언론고시 취업’에 부합할 만한 ‘화려한 스펙’을 예상했다. 허나 기자의 예상과는 달리 그는 ‘학과공부’와 ‘연예’에 충실(?)했던 학생이였던 것. ‘화려한 스펙’을 지향하는 요즘의 대학생들이 들으면 ‘김’샐 이야기지만 그는 오히려 ‘학과공부’가 가장 큰 ‘도움’이었고 ‘무기’였다고 말한다. 의아해 하는 기자에게 그는 이유를 풀어냈다.


그가 정보사회학과 01학번으로 입학했을 당시, 학교는 어윤배 총장 사건으로 연일 세간에 오르내렸다. 암울해진 학교 현실도 잠시, 그는 군입대라는 선택을 하게됐다. 입학을 하고 군에서 제대를 할때까지도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몰랐다. 교수님들은 강의에서 ‘사회를 볼 줄 아는 게 공부’라며 학생들과 함께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았는데, 그것이 그가 전공에 빠지게 된 계기였다. 이미 대학가 리포트가 ‘Ctrl+C와 V’로 종식돼 갈 때 그는 발표와, 프레젠테이션, 리포트를 위해 이와 관련된 서적이나 자료, 필요하다면 외국논문을 이용하며 “이 정도 경로는 통해야 한다”는 그 만의 철칙으로 차곡 차곡 쌓아갔다. ‘학과공부’를 통해 그는 자신만의 ‘무기’를 쌓아갔다. 이런 경로를 밟으며 준비했던 모든 과정들을 언제 어디서나 경로에 따라 논리적으로 말하는 과정으로 풀어낼 수 있었단다. 그는 이렇게 학과공부가 재밌어서 학과공부에 빠졌고 정말 후회 없이 사랑도 했다.


 

변화... 그리고 새로운 모색


4학년 1학기를 정점으로 그에게는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늘 함께였던 여자친구와의 이별을 받아들이면서 공허한 시간을 잊기 위해 그는 일상에 변화를 주기 시작했고, 변화는 새로운 모색이 되었다. 배우고 싶은 게 있다는 게 처음이었다는 게 이를 말해주는 걸까. 하고 싶은 건 다 해보자는 생각으로 하모니카도 배워보고 영상제작아카데미에서 독립제작다큐과정의 수업도 들었다. 영상을 제작하면서 사회학을 전공하며 익혔던 이론들을 영상이라는 실체에 적용하면서 그 두 가지 부류가 수렴돼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4학년 그 당시 너도나도 ‘취업’에 매달리고 있을 때 그는 홀연히 근 4개월 동안 영상을 찍었다. ‘나를 고발하라’는 데에 착안을 얻어, 당시 대선 선거법 관련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블랙코미디와 같은 형식으로 제작된 이 영상은 그의 생활을 바꿔 놓았다. 그는 자신이 제작한 독립영화가 상영되는 곳에서는 늘 관객들 바로 옆에 앉아 관객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 그가 제작한 영상은 진주영상미디어페스티벌에서 상영이 됐고 이슈가 되는 쾌거까지 거머지게 됐다. 이런 과정에서 그는 관객과 감독 사이에서 오는 ‘소통’의 맛을 알아챘다. ‘영상을 찍어보자’고 시작한 ‘재미’가 그를 이끌었고, 그는 ‘영상 제작’이라는 매료에 빠지게 됐다. '독립영화‘가 주는 매력도 좋았지만 독립영화의 성향은 매우 뚜렷했다. 그는 자신이 제작한 영상물이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일반적인 시선을 담길 원했다. 결국 방송국 PD라는 직업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는 기회는 자연스럽게 다가올 수 있었다.


영상제작과정 아카데미를 다니면서 그가 배울 수 있었던 가장 큰 것은 “나와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이해 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같이 제작하는 사람들 중에는 성적 소수자, 독립영화 감독 등 각계 각층 의 사람들이 어울린 곳이었다. 그는 이곳에서도 조금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던 것이다. 사회적 대 다수가 아닌 소수들과 어울리면서 그는 ‘우리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경험이었다.

 

언론고시에 돌입하다

그가 PD의 꿈을 꾸고 본격적인 언론고시에 돌입한 시기는 4학년 1학기, 언론고시반에 입실한 뒤 부터였다. 그는 당장 기본적인 토익점수를 만들고 글쓰기 준비를 했다. 본교 언론고시반 가온누리 사람들과 팀을 꾸려 각 언론사의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심야토론 프로그램, 기획프로그램들의 이슈들을 뽑고, 이 중에서도 겹치는 부분을 제외했다. 그러고나면 보통 20개 정도의 큰 맥락만이 남는단다. 이 주제를 가지고 찬반 입장을 서로 토론하고 논술로 직접 써보는 방법을 택했다. 필요하다면 중요한 사안은 그 사건의 배경부터 수치자료까지 조사했다. 1차가 붙고 2차가 한꺼번에 합격하면서 언론고시반 'WarRoom'을 만들어 3개월간 이 ‘WarRoom'안에서 철저한 준비했다.

 

자신만의 '무기'에 집중하라


언론고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는 그가 전공한 ‘사회학’이 ‘무기’였다고 강조했다. 어떤 학문이든 4년간 갈고 닦은 자신의 학과만의 특징을 차별화 시킨다면 언제 어디서든 적용할 수 있단다. 예를 들어 물리학과는 ‘카오스 이론’을 사회에 적용시키면 되는 것이고, 경영학은 제품수명주기이론을 사회에 적용해 보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는 마지막 최종 면접이 있는 날에도 4년간 모아 두었던 리포트와 강의 노트를 보고 시험장으로 갔다. 놀랍게도 질문의 내용이 지난 4년간 수업시간에 교수님과 함께 이야기 해 본 내용들이었고, 외국 논문이나 해외 자료등을 이용하며 과제나 리포트를 준비했던 그 만의 ‘노하우’는 빛을 발했다. ‘KBS만의 전략이 무엇인가?’라는 면접관의 질문에 수험생들은 모두 ‘공영방송으로서의 KBS가 국민들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고 말했을 때’ 그는 영국의 BBC의 사례를 들어가며 전략을 제시했다. 결과는 명쾌한 답변이었다. 그는 모든 시험에 있어 ‘영리하게’ 준비하라고 말한다. 자신이 똑똑해서, 영리해서가 아니라 자신만의 ‘무기’를 가지고 준비하란 뜻이다. 그게 바로 ‘하고 있는 일’ ‘좋아하는 일’ ‘남보다 잘 하는 일’ 중, 남보다 잘 하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다.

피디는 그들이 제작한 프로그램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인정받듯이 그도 “KBS의 이종윤PD하면 사람들이 인정하고 신뢰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승부를 거는 PD가 되고 싶다”고 말 한다. 그는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내딘 막내PD다. 이 말은 조직내에서 ‘활력’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단다. 조직의 ‘활력’이 되고 밖에서는 신뢰할 수 있는 PD가 되는 것이 그의 꿈이다. 다큐, 시사, 토크쇼 등 그가 만들어 내는 프로그램은 언제나 ‘수습’의 마음가짐으로 가지고 자신만의 ‘색깔’과 ‘열정’이 녹아나길 바란다. 그가 바라보는 사회의 모든 사람들의 색이 잘 조화롭게 뒤 섞여 아름다운 색을 내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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