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보디아'팀 동계 해외봉사를 다녀와서

캄보디아 해외봉사단 1기 ‘숭보디아’팀이 설날 마지막 연휴였던 지난 1월 27일(화)부터 11박 12일의 일정으로 캄보디아 프놈펜 호산나 어린이센터에 다녀왔다. 두 줄로 서서 “안녕하세요”라며 우리를 반갑게 맞아줬던 아이들과의 첫 만남부터 버스 창을 사이에 두고 출발하는 순간까지도 작별 인사를 나눴던 아쉬운 헤어짐까지. 한 달여가 지난 지금까지도 그 곳을 잊지 못하는 꿈만 같았던 그들의 추억을 꺼내보자. 편집자

 


 

 


안녕.


장장 5시간의 비행 끝에 캄보디아의 수도인 프놈펜에 도착했어. 공항에서 내리는 순간 확 느껴지는 후덥지근한 공기와 낯선 향기에 내가 다른 나라에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 도착하자마자 모기에게 물렸던 흔적도.


우리는 다음날 프놈펜에서도 빈민지역에 있는 ‘호산나 어린이센터’로 갔어. 한인 선교사님이 현지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세운 학교인데, 유치원부터 중학교까지 운영하고 계시더라고. 여기는 우리나라와 달리 같은 학년에서도 나이가 모두 제각각 인거야. 19살 아이도 중학교 1학년이지 뭐야.


처음 학교 문 안으로 들어갔을 때 아이들이 두 줄로 서서 통로를 만들고 “안녕하세요”하며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는 모습에 놀랐어. 그 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선생님들 소개를 받고 학교를 한 번 둘러봤지. 필리핀, 한국, 캄보디아의 타 지역에서 온 몇 명의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어. 학교는 유치원생과 초등학생들이 사용하는 3층짜리 건물과 여기서 2분정도 거리에 떨어져있는 중학생들이 사용하는 2층짜리 건물 이렇게 두 개로 이뤄져있더라고. 전교생을 동시에 수용할 수 없어서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눠서 수업한대. 우리나라 옛날 학교 모습 같지?


모든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나서야 우리는 짐을 풀고 다음날부터 진행할 교육준비를 할 수 있었어. 우리는 과학교육과 예체능 교육을 준비해갔거든. 해가 지고 준비를 다 끝내가고 있을 때, 세 명의 소녀가 우리가 있는 학교 2층으로 올라왔어. 그 아이들의 이름은 니따, 레아까나, 캇빅찌까야. 미녀삼총사지. 곧이어 남자애들도 올라오더라고. 우리는 동그랗게 둘러 앉아서 캄보디아 아이들이 하는 놀이를 했어. 몇 번 안했는데도 금세 따라할 수 있었어. 언제 한번 가르쳐줄게.


내일부터 시작될 교육과 아이들과의 만남이 기대되기도 하고 긴장되기도 하네. 잘 할 수 있겠지?

 

 


 

 


 




쩜므립 수어. 이게 캄보디아 말로 ‘안녕하세요’라는 뜻이야. 그새 배워서 써먹는다.


아참, 걱정과 달리 수업은 성공적이었어. 한국에서 공수해간 하드보드지, 검은 도화지, 볼록렌즈, 기름종이를 가지고 상이 거꾸로 맺히는 바늘구멍사진기를 만들었지. 짧은 영어 실력과 약간의 한국어, 그리고 손짓과 몸짓을 동원하여 아이들에게 설명하려 애썼지. 아이들도 그걸 알아듣는지 잘 따라오더라고. 완성된 바늘구멍사진기로 바깥을 보는 아이들의 눈은 신기함으로 가득했어. 바깥세상이 기름종이에 거꾸로 맺혀 보이니 그럴 수밖에. 어떤 아이는 계속 돌려보기도 했어. 거꾸로 보이는 것을 바로 잡기라도 할 것인 마냥. 선생님들도 좋아하셨지. 선생님들도 신기해하셨거든. 아주 성공적이었어. 한국에서의 준비기간 때도 과학교육의 에이스라고 불렸었으니 당연한 결과랄까?


또, 글라이더도 만들었어. 초·중학생 때 과학의 달 행사로 한 번쯤은 만들어봤던 그 글라이더 말이야. 아이들이 하나하나 자르고 살을 붙이고 해서 완성한 것을 들고, 학교 근처에 있는 공터로 갔어. 자신이 직접 만든 것을 날려보는 시간을 갖기 위해서였지. 니따의 비행기가 그만 나무 위로 올라가고 말았어. 다른 아이들 것도 나무에 걸리긴 했지만 신발을 던져서 빼낼 수 있었지. 그러나 니따의 것은 너무 높이 걸려있었어. 니따는 한참동안 나무 위의 비행기를 올려다 봤고, 결국 선생님이 만든 비행기를 니따에게 건네줬어.


역시 뭐니뭐니해도 해외로 봉사나가서 하는 교육은 태권도 아니겠어? 그런데 이게 웬걸. 이 아이들의 태권도는 수준급인거야. 호산나 아이들이 캄보디아 전국 태권도 대회에 나가서 상탈 정도의 실력이라니…. 태극 1장부터 가르치려했던 계획을 급히 수정해 문화공연 때 보여줄 태권무를 가르쳤지 뭐야. 아이들의 우렁차고도 인상적인 기합을 잊을 수 없을 거야.


종이접기, 모자이크, 그림그리기 등 미술교육도 실시했지. 아이들이 열심히 하는 모습이 정말 예뻤어. 2학년 아이들에게 ‘곰세마리’ 노래와 율동도 가르쳤는데 우리를 볼 때마다 달려와서 잘 되지 않는 한국어 발음으로 노래를 부르며 율동을 할 때는 귀여워서 깨물어주고 싶더라. 아이들이랑 함께할 시간이 점점 줄어드는 게 아쉬울 따름이야.

 

 


 

 


 



 


엽서가 늦었지? 쏨또. 이건 ‘미안하다’는 캄보디아 말이란다. 한국은 지금 어때? 여긴 정말 더워. 햇빛이 아주 쨍쨍 내리찌지.


우리는 아침부터 간단한 짐만 챙기고 프놈펜 외곽의 시골마을로 갔어. 한인 선교사님이 세우신 교회에서 그 마을 아이들에게 과학·예체능교육을 하고 문화공연을 하기 위해서였지. 주말만 잠시 호산나 어린이센터를 떠나있는 거였는데 장난꾸러기 아담과 일명 건방진 꼬마라고 불리는 아이가 우리가 한국으로 가버리는 줄 알고 우는 거야. 연신 다시 올 거라고, 두 밤만 자고 다시 볼 거라고 설명을 해주니 그제야 울음을 그치고 웃더라. 귀여운 녀석들.


교회에 가서도 우리는 그 마을 아이들을 불러 모아다가 호산나 어린이센터에서 했던 것처럼 교육을 하기 시작했어. IT 교육도 하고, 바늘구멍사진기도 만들고 말이야. 이 곳 아이들도 엄청 신기해하더라고.
풍선아트도 미리 준비해서 마을 아이들에게 칼, 푸들, 왕관, 꽃 등을 만들어줬어. 인기만점이었지. 아이들이 줄서서 서로 달라고 안달이었어. 또 한쪽에서는 비누방울 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비누방울을 터뜨리려고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그렇게 순수해보일 수 없더라. 우리나라 아이들이든 캄보디아 아이들이든 비누방울만 보면 터뜨리고 싶은 건 똑같나봐. 서로 비누방울을 만들어보겠다며 나서서 가운데서 골고루 기회가 돌아가도록 중재하기도 힘들었어.


또, 우리는 두 마을을 돌면서 준비해온 문화예술 공연을 마을 사람들에게 보여줬어. 우리가 갈 때마다 꽤 많은 사람들이 모이더라고. 아마 외국인이어서 더 그랬을지도 모르지. 떠나기 마지막 날, 호산나 어린이센터에서 할 문화예술 공연의 리허설이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했어. 태권도 공연 때는 마을 아이들도 앞에 나오게 해 격파시키기도 했지. 몇 번 실수도 했지만 마을 사람들과 호흡한 공연이었어.

 

 


 

 


 

 



 


벌써 아이들과 헤어져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11박 12일이 처음엔 마냥 길게만 느껴졌었는데 그 많았던 날들이 그새 어디 도망이라도 가버린 거 같은 기분이야.


오늘은 우리가 아이들을 위해 그리고 아이들이 우리를 위해 서로 공연을 준비했어. 우리는 이 공연 준비 때문에 방학도 반납했었지. 물론 교육 준비 때문도 있었지만. 사물놀이로 아이들에게 우리의 가락을 알려줬어. 꽹과리, 북, 징, 장구 소리에 어느덧 학교 주변에 사는 동네 사람들이 모여들었어. 학교 문 밖에서 공연 모습을 보고 있더라고. 그렇게 하나씩 우리가 준비해 간 것들을 보여주고 있었어. 남자들의 율동과 여자들의 율동, 댄스, 핸드벨…. 태권도를 선보일 때는 긴장도 많이 했지. 호산나 아이들도 태권도 공연을 준비했었거든. 우리는 무에서 유를 만든 거라면 그 아이들은 정말 실력자들이니까. 아이들이 우리를 위해서 캄보디아의 전통 무용도 보여줬어. 음악과 옷차림, 그리고 아이들의 단아한 몸동작들이 예쁘더라고. 공연의 마지막 순서는 합창과 수화였어. 곡명은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처음엔 웃으면서 노래를 시작했지. 점점 아이들이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하는 거야. 그러다 서로를 마주보는 눈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지. 결국 우리는 다같이 학교 앞마당에서 그 노래를 부르며 서로에게 다가가 안기 시작했어. 공연이 모두 끝난 후에도 우리들은 오랫동안 작별의 인사를 나눴지.


그날 밤, 아이들은 우리를 위해서 작은 송별파티를 열어줬어. 우리는 신나게 춤추고, 노래부르고, 캄보디아의 전통 춤을 추기도 했어. 서로 케이크를 얼굴에 묻히기도 하면서…. 마지막 날 밤은 그렇게 깊어 갔어.


아, 아직도 실감이 안나.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이 말이야. 한국으로 돌아가면 이 모든 게 꿈처럼 느껴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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