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수상
부모님께 드리는 편지
- 홍은정(국제통상)


헤매는 조개 같은 나를 품어준 바다 같은 엄마께


5월이에요.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백합이 어울리는 달이죠. 2달 전에 뵈었지만 함께하는 4일은 너무나 짧아 못해 드린 것만 생각이 나네요... 유난히 작고 부끄러움도 많고 어리기만 하던 막내가 서울에 홀로 왔고, 그렇게 지낸 게 벌써 4년째 접어들었어요. 정말 세월을 실감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요.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좁은 고향을 떠나 넓은 세상을 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막상 오니, 사실 많은 것이 낯설고 복잡해서 많이 힘이 들었어요. 하지만 애교 없는 저보다 오히려 먼저 걸려오는 엄마의 전화에 하루의 소소한 일상을 나누고, 부릴 곳 없던 투정도 부리면 자신의 일처럼 반응하고 다 받아주셨죠.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가족과 고향에는 예외인 것 같아요. 그리고 떨어져서 보면, 오히려 잘 보이기도 하는 것도 있고요. 전 이 사실을 떠나오니 깨달았어요. 학창시절 한 학년씩 올라갈수록 집보단 학교에서 있는 시간이 더 늘고, 그래서 아침한번 같이 먹기가 힘들어지고, 잠이 유난히 많고 약했던 전 밤에마저 얼굴 마주보고 얘기 할 시간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때는 그저 생활이라고 생각해서 느끼지 못했는데, 지금은 가족이라는 단어만 떠올려도 마음이 저릿해요. 많이 부딪치기도 하고 모든 것을 털어놓을 수 는 없었지만 “함께”인 자체가 참 소중하다는 것을 알아가요. 서울에 올라오고 나서 어버이날이 되면 매번 선물도 못 드리고 이번에도 가까이서 카네이션조차 직접 달아드리지 못한 섭섭함에 이렇게 편지로 마음을 대신 듬뿍 담아 보내요.


방금 다큐멘터리 한편을 보고 왔어요. 엄마는 무엇으로 사는가 라는 주제였죠. 정신지체인 아들을 둔 50대의 어머니 얘기에요. 그 과정에서 어머니의 삶과 가족의 단절과 소통을 보여주기도 했고요. 엄마라는 존재를 인지하지 못하는 아들을 앞에 두고 그래도 그녀는 포기하는 대신 다시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아들을 타이르고 바르게 이끌어요. 비록 아들은 그것도 인지하지 못할지라도, 그리고 인터뷰도중 힘들 때도 있다며 그녀가 흔들리는 목소리로 눈물을 보일지라도요...


보면서 어쩌면 엄마라는 존재는 많은 여성들의 이름보다 더 많이 불려 진다는 슬픈 생각이 들었어요. 그녀들은 자신의 많은 에너지를 희생하고 그 연료로 가족을 따뜻하게 만드니까요.


엄마, 슬픔을 너무 크게 받아들이는 제가 늘 걱정이셨죠? 한동안 전화도 받지 않고 힘이 없는 목소리로 대호조차 뚝뚝 끊겨 더군다나 가까이서 볼 수 없는 저를 걱정하실 거란 걸 알면서도, 제가 처한 상황이 너무나 힘이 들어, 나눌 수가 없었어요. 그러다가 제게 나지막이 물으셨죠. “도대체 뭐가 널 그렇게 힘들게 하는거니? 왜 그리 괴로워하는 건지...말해주렴” 그때 제가 힘들다는 이유로 오히려 더 걱정 끼친 것 같아 죄송스럽기도 하고, 엄마의 눈에 비치는 게 괴로워하는 나라는 사실이 강하게 느껴져 전화도중 흐르는 눈물을 결국 쏟아버렸어요. 제가 가려는 길이 아직 막연해서 불투명하고, 엄마께서 원하는 길과 조금 다른 길이 되는 것 같아 속상하신 거 알아요. 전 강하지도 독하지도 적극적이지도 못하고....대신 낮은 시선으로 세상과 소통하려고 해요. 제 장점인, 말하는 것보다 다른 이의 말을 듣는 것으로요. 그러니 남보다 걸음이 느리고 답답해보여도 지금껏 지켜봐 주신 것처럼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제가 행복해지고 , 그 모습을 어서 보이면 부모님도 행복해지시겠죠?


가끔 먼 길을 올라오면, 청소며 빨래며 모든 것을 다 해결하려고 하시는 모습을 보고, 왜 오면 일만하냐며 이왕 온 거 놀러도 가고 친구 분도 만나시고... 일해 주는 사람도 아니면서 왜 그러냐고 소리 지르며 말렸잖아요. 그런 제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엄만 이거 해주러 온거야. 그동안 못해줬으니까 해주러 온 거니까 걱정 말어. 점심은 뭐 해줄까? 하곤 또 열심히 집안일을 하시고 맛있는 전복죽을 끓여주셨죠.


전 정말 놀러가거나 친구 분 만나셨으면 했어요. 집에서도 매일하는 집안일을 여기 와서도 하는 엄마모습에 죄송스러움과 함께 내가 제대로 일을 못해서 이렇게 된 걸까 하는 생각에 오히려 화가 난거죠. 혼자 살게 되고 집안일을 하면서 엄마의 일이 얼마나 방대하여 끝도 없고 반복되는 일이라서 지루하기도 하고 힘이 드는 건지 알았기 때문이에요. 그러다가, 엄마가 가고 나신 뒤, 장롱에 차곡차곡 쌓인 뽀송뽀송한 이불, 고이 접힌 빨래, 깨끗해지고 몇 개 더 는 반찬통으로 채워진 냉장고 , 며칠간은 거뜬히 먹을 수 있게 보이는 3층으로 쌓인 맛있는 김밥....을 보며 아, 내가 말렸지만 엄마가 해주신 일들은 단순히 집안일이 아니라 이게 바로 엄마의 걱정 어린 애정이구나, 이 생각에 감동이 밀려왔고, 같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짧았던 게 아쉬워 다음 만남은 언제가 될지 그리워졌어요. 다음에 만나도 우리 모녀는 어쩌면 똑같은 일로 실랑이를 벌일지 몰라요. 그렇지만 비록 더디지만 엄마를 이해하게 되고 고마움을 조금씩 표현하게 될 거라 믿어요.


걱정 끼쳐 드릴 일 만들지 않을 테니까 아빠와 함께 그동안 우리들 때문에 미뤄왔고 포기했던 일들을 하나씩 하셨으면 해요. 물론 지금도 여러 가지 봉사활동을 포함해 바쁘게 생활하시는 것 알지만요. 학창시절 문학소녀였던 여고생의 모습을 저에게 보내주시는 편지에서 조금씩 만날 수 있으니까 지금부터 다시 그 꿈을 꿔 나가셨으면 하고 바라요. 다음에 만날 때는 우리 가족 모두 더 건강한 모습으로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행복한 공기로 가득 채우기로 해요. 그날이 어서 빨리 오길 달님께 빌면서 그럼 이만 줄일 게요.


다시 만날 때를 기다리며, 항상 바다 같은 엄마의 고마움을 느끼는 막내 은정올림.


 

우수상
스승님께 드리는 편지
- 유정인(경제ㆍ4)

정치외교학과 문수언 교수님께


안녕하세요. 교수님을 알게 됐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두 학기가 다 되어가고 있습니다. 왜 교수님 수업을 좀 더 일찍 듣지 못했을까 싶을 때도 있지만, 늦게나마 교수님을 알게 되었고, 두 번이나 강의를 들었다는 생각을 하면 저는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사실 국제정치학과 외교사 수업은 대학 입학할 때부터 들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외교관이 되는 것이 꿈이었는데, 외무고시를 보려면 두 과목이 필요했거든요. 하지만 2학년 때까지만 해도 다른 학과의 수업을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수강신청을 할 용기를 못 내다가, 3학년이 되어서야 여유가 생겨서 겨우 신청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학기 ‘세계외교사’ 첫 수업을 들어갔을 때, 긴장을 많이 했던 기억이 납니다. 보고서를 두 번 이상 써 내는 과목은 처음 수강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수업을 들으면서 괜한 걱정을 했음을 느꼈습니다. 한 학기 내내 유럽의 옛날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국제정치의 이해’ 수업 역시 정말 즐겁게 듣고 있습니다.


두 번의 수업에 걸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인식의 중요성’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예전에는 물 반 컵을 두고 ‘반이나 남았네.’ 라고 생각하는 것과, ‘반 밖에 안 남았네.’ 라는 것의 차이를 막연히, 혹은 피상적으로 받아들였었는데 이러한 생각의 차이가 국제 사회에 적용되는 것을 보니 사람이 보는 ‘시각’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특히 독일에 대한 인식을 조금만 달리 했더라면 2차 대전이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는 사실은 매우 충격적이었습니다.


교수님께서 저에게 주신 것은 이런 가르침뿐만이 아닙니다. 제가 얼마나 걱정을 많이 하는 성격인지도 깨닫게 해 주셨지요. 교생실습을 가는 동안 중간고사 기간과 겹치는데 교수님께서는 “중간고사는 반드시 봐야 한다.”고 하셨지요. 그 때만큼 걱정이 됐던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교수님께서는 중간고사를 볼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그 때 가서 부딪혀보자고 하셨습니다. 아, 앞일이 어떻게 될지는 알 수가 없는데 지레 못 볼 것이라고 단정 지어 버리고는 혼자 걱정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참으로 제가 부끄럽게 느껴졌습니다.


결국 저는 중간고사를 제때에 보지 못하고 그 뒤에 보게 됐지만, 번거로우실 텐데도 저를 위한 문제를 따로 출제하시고 시험을 보게 해 주셨습니다. 시험 보느라 경황이 없어 말씀은 못 드렸지만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배려는 처음이라서 그 때 참 감동을 많이 받았습니다.


요즘 교사와 외교관이라는 직업 사이에서 고민이 많습니다. 교직과정은 어머니의 권유와, 미래에 대한 대비책 중 하나로 신청을 했던 것인데 막상 교직이수자로 선발이 되고 교생실습을 갔다 오면서 교사라는 직업에 대한 매력을 알고 나니, 제가 지금까지 꿈꿔 왔던 외교관과 교사 사이에서 어떤 것을 선택을 해야 하는지 갈팡질팡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젊을 때 몇 년 준비한 것이 앞으로의 인생을 결정하기 때문에 지금부터 고민을 하고 준비를 시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신 교수님의 말씀이 더욱 더 저에게 깊이 있게 와 닿는 것 같습니다. 지금 시작하는 것이 절대 늦은 것이 아니고, 몇 년 동안 준비 과정은 힘들 수 있겠지만 그 시기를 지나면 인생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말씀은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하고, 원하는 직업을 갖는 것이 행복이라고 하셨지요.) 제가 직업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습니다. 선택의 기준이 되었다고나 할까요.
저에게 있어 감사한 분들을 생각하게 하는 5월입니다. 특히 올해는 제가 대학생으로서 보내는 마지막 해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교수님께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더 샘솟는 것 같습니다. 편지지에 제 무한한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다 담지 못함이 그저 안타까울 뿐입니다. 하지만 최대한 마음을 담아 여기에 적습니다.


교수님. 좋은 수업 듣게 해 주셔서, 그리고 저의 부족한 점을 깨닫게 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남은 한 학기, 최선을 다해 유종의 미를 거두겠습니다. 그리고 교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미래를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노력하겠습니다.


항상 행복하시고, 안녕히 계세요.


경제학과 유정인 올림.

 


 

  우수상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이수연(산업정보ㆍ4)

 

 

 내 소중한 친구, 진아 에게


 오늘같이 비오는 날, 꿀꿀한 날, 내 마음을 달래줄 내 친구 진아.
진아야, 이렇게 편지 쓰는 거 정말 오랜만이다. 그치? 우리 예전에는 편지 자주 주고받고 그랬는데 이제 그게 참 어렵네.


 우리가 친구가 된지도 벌써 9년에 접어든다. 이야~ 시간 정말 빨라. 우리가 알게 된지 그렇게 오래 되었다는 게 새삼 신기하다. 우리 처음 만났을 때 기억나? 중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이 되면서 너를 알게 되었지. 같이 심부름을 갔었나?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무언가를 같이 제출하러 갔을 때 이었던 것 같아. 그 때 너랑 처음 이야기를 했는데 너는 그 때 너무 밝게 반갑게 나를 안아주면서 친하게 지내자고 했었나. 그 때 조용하고 소극적이었던 나는 놀라기도 하면서 네가 너무 고마웠어. 밝고 명랑한 성격인 너랑 친하게 지내고 싶었는데 네가 그렇게 먼저 내게 다가와 줘서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너와 친해질 수 있겠구나, 진아도 나랑 친해지고 싶었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그렇게 친구가 된 우리는 항상 같이 다녔지. 너랑 나랑 또 함께 친해졌던 나와 이름이 같은 수연이. 이렇게 3명이서 항상 같이 다니면서 세 자매라고 불렸고 그만큼 우린 더 친해진 거 같아. 너무나도 좋은 친구를 만난 것 같아서 행복했고 감사했어. 그리고 사실 그 땐 너무 어려서 셋이서 다니는 데 있어서 네가 나보다 수연이랑 더 친해 보일 때 둘 사이를 질투하기도 했고 서운하고 가끔은 미운 마음도 들었던 것 같아. 정말 어렸나봐. 그치? 지금 생각해 보면 우습기도 하고 재밌는 기억이기도 하지. 항상 씩씩해 보이고 웃는 모습이 너무나도 해맑고 예뻤던 네가 참 부럽고 좋았었나봐. 또 그 밝고 예쁜 얼굴만큼 마음도 너무 착했던 진아. 지금도 물론 여전하지만. 아직도 어떻게 그리 변하지 않을까 신기할 만큼 순수하고 착한 내 친구 진아. 그 때 내게 먼저 다가와서 친하게 지내자고 손 내밀어 줘서 너무 고마워 진아야. 그 때 네 덕분에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법도 배울 수 있었던 것 같아. 고마워.   그렇게 짧게만 느껴졌던 중학교 2학년 생활을 너와 함께 보내고 우린 3학년이 되면서 서로 다른 반으로 가게 됐어. 또 너와 같은 반이 됐음 했는데 그렇지 않아서 속상하고 아쉬운 마음이 들 뿐이었지. 그래도 우린 점심시간이나 방과 후에 종종 만났고 서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면서 고민거리나 이런 저런 수다를 나누면서 계속 친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 같아. 네가 그 때 친구 문제로 엄청 고민하면서 나한테 상담하던 거 생각난다. 그 때 엄청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하면서 나한테 이야기하곤 했었는데. 모든 문제들이 어렵게만 받아들여져서 너무 심각하게 걱정했던 우리. 작은 일 하나에도 예민하고 고민했었던 우리였지. 아직도 그 때의 우리 모습이 생생하다. 언제 우리가 이렇게 대학생이 됐는지 놀랍기도 하고.


 그리고 우리가 서로 다른 고등학교에 배정 받으면서 서로 쫌 멀어졌었던 것 같아. 서로 공부하기 바쁘고 각자의 고등학교 생활을 하다 보니 만나기도 힘들었고 연락도 자주 하지 못했지. 같이 학교에 다닐 때는 오히려 전화 통화도 많이 했던 것 같은데. 가끔 네가 생각나고 궁금하고 보고 싶었지만 선뜻 난 또 먼저 너에게 다가가지 못했던 것 같아. ‘바쁜데 귀찮게 하는 게 아닐까. 너무 오랜만에 연락하면 어색해 하지 않을까’ 혼자 고민하면서 전화를 걸어볼까 하다가도 그렇게 하지 못했었어. 그러다가 먼저 네게 너무 반가운 전화가 걸려왔고 내가 걱정했던 바와 달리 전혀 어색하지 않았어. 오랜만에 중학교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과 너와 친하게 지냈던 그 때의 추억들이 떠올랐어. ‘난 왜 먼저 너에게 연락하지 못했을까.’ 이런 생각에 미안하기도 했고.


 그러다가 서로 대학에 합격하고 난 후에 그 전보다 자주 연락을 했었지 아마. 고등학교 이 후 3년 동안 너무 연락이 뜸해서 멀어질 것만 같아서 두려웠었는데 너무도 다행이었고 신기했고 ‘친구란 이래서 소중하구나. 언제 어느 때이든 친근하게 다가 올 수 있고 다가 갈 수 있는 것이 친구구나.’ 라고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아. 그 때도 좋은 소식을 가지고 너에게 전화가 걸려왔었어. 조심스럽게 대학 이야기가 나왔고 서로 대학에 합격 했다는 소식을 전했지. 그 때 너무도 신기하게 우리 둘 다 수시로 대학에 미리 합격했어. 그 때 너에게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얼마나 기쁘고 신기 했나 몰라. 한창 대학 입시 준비로 인해 예민하고 자칫하면 기분이 상할 수도 있는 시기였는데 그 때 우리 둘 다 그렇게 수시 대학 합격이라는 좋은 소식을 서로에게 전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어.


 그리고 그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연락을 하면서 지내는 우리. 오랜만에 만나도 어색하지 않고 너무 즐거운 우리. 언제나 할 이야기가 너무 많아 시간이 모자란 우리. 물론 중학교 때처럼 매일 볼 수도 없고 그리 자주 연락을 하진 못하지만 그래도 이젠 우린 정말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친구고, 이제 없어서는 안 될 친구고, 너무도 소중한 친구라 확신해서 멀어질까 두렵지 않고, 언제 어느 때 다가가도 어색하지 않고, 함께 하면 즐거워. 그리고 언제든지 고민을 털어놓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친구고, 어떤 이야기도 귀 기울여 들어주는 친구고, 언제든 내 편에 서 줄 수 있는 친구인 네게 너무 고마워. 내 옆에 너라는 친구가 와 줘서 너무 든든하고 행복해. 아직 눈이 너무도 맑고 웃는 모습이 마냥 어린 아이 같은 내 친구, ‘이진아’ 너무 착하고 여리고 순수한 마음을 간직한 내 친구, ‘이진아’


 ‘친구’라는 말은 너무 좋은 것 같아. ‘친구’는 평생 마음이 함께 할 수 있는 존재이고 언제든지 내 모든 고민을 털어 놓을 수 있는 존재이고, 친구이기에 모든 것을 이해하고 용서해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런 ‘친구’가 있다는 건 너무도 축복받은 일이겠지?


 진아야, 그런 내 ‘친구’가 되어줘서 너무 고마워. 우리 앞으로도 지금처럼 변함없이 오래 오래 평생 좋은 친구로 남자. 언제든지 힘들 때 먼저 달려와 줄 수 있고 힘이 되어줄 수 있는 그런 친구로.
 너무 고맙고 사랑해 진아야. 항상 건강하고 언제나 지금처럼 밝은 네 모습 잃지 않길 바라면서 이만 줄일게. 항상 행복해.


사랑해 친구야!
                                       
                                          From. 언제나 네 옆에 있는 친구, 수연이가.
                                                            

 


 

우수상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답장)
유은정(경영ㆍ4)

 

은정이에게

 정아 4월은 좀 고단했지. 고등학교 때 네 할아버지가 오토바이 사고를 당하셔서 많이 걱정하던 네가 생각나더라. 간간히 휴유증으로 고생하신 할아버지로 너희 엄마가 걱정 많이 해서 고민하곤 했었는데.

엄마가 얼마나 허전하실까. 만약 우리 아빠가 돌아가신다면 정말 생각한 해도 눈물난다.

 난 초등학생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어. 아기 때부터 늘 함께해서 엄청 울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눈물이 안났어. 근데 그때는 안 울었는데 늘 가끔씩 할아버지 생각에 찔끔찔금 눈물나. 진짜 슬프면 눈물도 안나온다는게 맞나봐.

그냥 일상속에서 이유없이 시간이 흐른 뒤에야 울게 돼. 아마 실감을 못해서 안 울었나봐.

 아니면 그런 걸 수도 있겠다. 언제부턴가 난 할아버지가 먹다버린 약봉지랑 뽑은 흰머리 그리고 목소리를 카세트에 녹음하기 시작했어. 돌아가실까 무서워서 기억할 걸 만들어 놨었어.

그래서 충분히 할아버지랑 헤어질 준비를 해둬서 그런걸지도 몰라. 근데 난 한번도 할아버지 목소리 녹음해놨던 테잎이랑 물건을 보관했던 상자를 열어보지 않았어.

두고두고 보려고 모아두었던 건데 정작 보질 않고 있었어. 내가 할아버지를 잊고 있던 건 아닌데 왠지 어느새 이렇게 돼있네.

오늘은 집에 가서 한번 상자를 열어볼까? 나 지금 천절타고 집에 가는 중이거든. 도착할 때까지 안 잊고 있을까? 무심코 생각난건데 난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엄마 아빠를 걱정해주지 못한거 같아. 힘이 돼줬어야 하는데 철이 없었어. 넌 철든 어른이니까 제대로 챙겨드리겠지. 장례식때 속상한 일이 많아 마음이 무겁지?얼른얼른 떨쳐내 고민을 들고 있어봤자 답이 나오지 않으니까. 전화로 목소리가 안좋아 나까지 마음이 무거워지더라. 돌아가신 할아버지 생각도 많이 나고 그리고 우리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정말 남는건 형제. 친구 뿐이란게 참 허전해. 엄마 아빠가 없이 진짜 살아질까?

 며칠 전 취업 준비를 위해 우리집에 며칠간 묵게 된 내 친구 상아얘기를 해줬지? 난 솔직히 엄마가 귀찮아할까 걱정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고 다 챙겨주셔. 그 모습을 보니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 상아한테 잘 해주는 건 엄마보다도 더 오래 내 곁에 있어 줄 수 있는 친구기 때문일거란 생각.

엄마가 돌아가고 나서 날 챙겨주고 함께 살아갈 친구니까. 널 위로하고 싶어서 쓴 편지인데 횡설수설 하고 있네. 위로 되는 말을 해주고 싶은데 막상 하려는데 어떤 게 좋을지 떠오르지 않아. 굉장히 산만한 편지가 됐지만 이해해주길 바라고 정말 네가 기운 냈으면 좋겠다. 사랑해.

희가

 

 

희에게

 

희야. 편지 고마워. 힘든일이 있은 후에 받은 편지여서 그런지 정말 많은 힘이 됐어.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밤에 접하고 사실 우리 가족 모두 믿지 않았어.먼저 시골로 내려가신 부모님 뒤로 내 동생이랑 나랑 기차를 타고 내려가는 중에내 다이어리를 봤는데 다이어리 주말 칸에 시골에 내려가기 라고 적혀 있었어. 시험이 끝나고 꼭 찾아뵈야 겠다고 생각했었거든.그 말을 보는데 할아버지가 아프신 상황이니까 그 주말이 되기 전에 평일 날 수업을 다 듣고 저녁에라도 갈 걸 그랬으면 할아버지를 한번 더 볼 수 있었을 텐데하는 생각이 정말 계속 머릿속에 후회로 남아.

 사실 후두암이라는 진단을 받은 할아버지에게 병원에서는 영화에서만 보던 것 처럼 남은 삶의 기한을 정해줘서 할아버지 자신도 또, 자식들도 조금 더 할아버지의 죽음이라는 것을 준비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어. 그래서 그랬을까?  그날 할아버지의 죽음보다도 할머니의 울음소리가 더욱더 슬펐어. 미망인이란 그 세글자... 남겨진 사람의 슬픔이 너무나도 크게 느껴졌어. 

한 평생 함께 삶을 살면서 사랑했던 사람을 잃는다는 그 마음이 난 상상이 안가. 할아버지는 보내면서 우리 엄마랑 정말 많이 울었는데 앞으로 남겨진 할머니를 더욱더 챙겨드려야 할 거 같아. 또 너를 비롯한 내 주변에 있는 친구들도 정말 잘 챙겨서 후회 남지않도록 살아 가고 싶어. 정말 항상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 사랑해. 

 

은정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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