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싶었어요] - UNDP(유엔개발계획)근무, 기경석(전기ㆍ99학번) 동문

 

 요즘 대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미래’의 모습은 대개 모호하다. 인생에 한번쯤은 기회가 온다지만 무엇이 기회고, 어떻게 잡을지 도통 쉽지가 않기 때문에서랄까. 이런 힘든 시국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힘들지만 ‘뻔한 길’을 택하거나 ‘전환점’을 묵묵히 기다리는 것이 그 방법이다. 어느 것도 쉽게 장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여기, 그 힘든 일을 해낸 자랑스러운 동문이 있다. 바로 기경석(전기ㆍ99학번) 군이다. 그는 25살의 늦은 나이, 한국국제협력단(KOICA)을 통해 네팔에서 2년 6개월 동안 봉사활동을 하면서 군 복무를 대체했다. 봉사활동의 연장선으로 주 네팔 한국대사관에서 1년 6개월 간 활동하기도 했다.


또한 현재 그는 “저개발 국가의 발전을 위해 국제기구 근무를 목표로 했다”던 꿈을 반쯤은 이룬 상태다. 다음 달 1일부터 UNDP(유엔개발계획)에서 일하게 됐기 때문이다. 재충전을 위해 잠시 한국을 방문했던 그는 새로운 도약을 위해 이미 네팔로 떠났다.


비록 그와의 만남은 짧았지만 남기고 간 메시지는 우리에게 큰 귀감이 될 터. 이제부터 그만의 특이한 이력과 여정을 들어보고, 우리 스스로의 미래를 그려보는 건 어떨지.



- 네팔과 인연이 깊으신데, 첫 시작이 궁금합니다.


네팔에 가게 된 건 군 복무 때문이에요. 군 복무를 평범하게 현역으로 보내기에는 ‘시간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피할 수 없으면 최대한 나에게 도움이 되는 쪽으로 해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몇 군데 나에게 맞는 곳을 찾아 지원했던 방위산업체에서 모두 떨어졌어요. 아쉬운 마음에 막연히 있던 중, 한 친구가 한국국제협력단(KOICA)에서 시행하는 ‘해외원조사업’이란 것에 대해 알려줬어요. 군 복무를 대체할 수 있다는 점도 좋았지만, 그보다도 늦게나마 찾아온 ‘기회’일거란 생각이 문득 들더라구요. 그래서 지원 마감일 하루 전에 무작정 지원했는데 덜컥 합격한거죠. 합격 후, 2004년 10월부터 2년 6개월 동안 네팔에서 봉사활동을 하게 됐구요. 그렇게 네팔과 저의 인연은 우연히 시작됐답니다.



- 네팔에서의 봉사활동, 주로 어떤 일을 하셨나요?


전공을 살려서 주로 전기공학 분야와 관련된 일을 했어요. 처음에 제가 맡은 일은 교육이었는데 부담이 많이 되더라구요. 그래서 교육에서 연구로 전향해서 ‘소수력 발전’과 관련된 연구 프로젝트를 맡아서 진행했어요. 보통 연구하고 왔다고 하면 많은 분들이 ‘봉사로 간 것이 아니고 자기개발을 위해 간 것이 아니냐’며 오해를 많이 하세요.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연구도 봉사의 한 부분이에요. 네팔의 경우 보통 수력발전을 통해 전력을 생산하는데, 그 생산양이 턱없이 부족해요. 보통 저소득층이 모여사는 동네들은 하루 평균 16시간의 정전을 겪더라구요. 제가 본 최대 정전시간은 20시간이었어요. 하루가 24시간인 것을 감안하면 하루 생활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전력양이 부족한 셈이죠. 그래서 제가 소속된 연구프로젝트 팀의 목표가 전력 출력양을 높이고 전력을 다양한 방법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어요. 최근에 저희의 ‘소수력 발전’ 연구 결과를 네팔 전력청에서 실제로 활용하여 전력량을 높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너무 뿌듯했죠. ‘뭐 하나 이루고 왔다’는 생각에 당당하게 어깨피고 다녔답니다.



-그 외에도 기억에 남는 활동이 있으시다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의료캠프를 했던 것이 유독 기억에 남아요.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의료봉사를 위해 사람들이 모였고 자발봉사단이 만들어졌어요. 그렇게 모인 사람이 총 40여명이었고, 물론 전문 의료진도 있었지만 저를 포함한 대부분이 의술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는 사람들이었어요. 거창하지는 않지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갔었죠. 의료캠프는 총 2박 3일 간 진행됐고, 그 기간동안 저희가 치료해준 사람들이 300여명 정도 되요. 지금 생각해도 다들 봉사에만 몰두해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봉사를 위해 방문한 곳이 오지여서 ‘오히려 돕는 사람들의 건강이 나빠지지는 않을까’하는 걱정도 많이 했었는데 큰 탈 없이 봉사를 마치고 온 것이 너무나도 다행이에요.



-반면에 네팔에서의 가장 힘들었던 기억은 무엇인가요.


몸이 힘들었던 건 견딜만 했는데 심리적으로 너무 힘들었어요. 제가 네팔에 있었을 당시에, 때마침 네팔에 이례적인 쿠테타가 발생하고 민주항쟁이 일어났거든요. 정치적인 혼란이 매우 심했던 시기죠. 지금은 웃으면서 할 수 있는 이야기이지만, 실제로 “밖에 돌아다니면 총기 맞아 죽는다”는 소문이 떠돌기도 했어요. 혼란스러운 시기가 2달 동안이나 지속됐어요. 심리적으로 무서운 것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했던 일들을 포기하고 ‘일시귀국’ 명령으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된다는 생각이 가장 큰 스트레스였죠. 그러나 하늘의 뜻인 지 귀국을 몇 일 앞두고 정치적 혼란이 잦아들면서 다시 네팔 사회가 안정을 찾더라구요. 그래서 2년 반을 모두 채울 수 있었고 대사관에서도 일할 수 있었구요. 이정도면 ‘운명’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6월부터 UNDP(유엔개발계획)에서 일하시게 됐다던데?


매번 새로운 기회가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인간관계라는 것이 참 중요한 것 같아요. 네팔에 처음 가게 된 것도 가까운 친구의 권유가 큰 영향을 미쳤고, 주네팔 한국대사관에서 1년 반동안 일할 수 있던 것도 봉사단에서 알게 된 지인이 추천해주셨기 때문이었거든요. 마찬가지로 UNDP에서 일하게 된 데도 대사관에서 알게 된 지인의 추천이 큰 도움이 됐어요. 국제기구나 국제활동에 대한 관심은 예전부터 많았지만 그만큼의 능력을 제가 다 갖췄다고 볼 수는 없거든요. 어쨌든 기회가 주어진 만큼 제가 목표했던 분야이기에 최선을 다하려구요. 올 6월부터 UNDP에서 ‘환경보호?에너지공급?의료지원’ 등을 목표로 한 프로젝트에 참여할 예정이에요. 지금은 확신보다는 설렘이 강하지만, 2년 전 처럼 ‘뭐 하나 쯤은 하고’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계획이에요.



-해외원조사업이나 국제기구활동에 관심이 많으시고 목표하신 바가 뚜렷하신 것 같습니다. 국내에도 도움이 필요한 곳이 많은데 국내활동은 아직 계획이 없으신가요?


‘팔도 안으로 굽는다’고 한국에서도 활동하고 싶은 마음이 커요. 하지만 아직 제가 이제 시작 단계이고 자리를 잡으려면 일정 기간의 경험과 고생은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길게 내다 볼 생각이에요. 비록 몸은 해외에 있지만 마음은 항상 한국에 있는거죠. 향후 10여년 간은 경험을 쌓는 기간으로 여기고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볼 생각이에요. 해외에서 활동하면서 저만의 전문성을 인정받으면, 그 뒤에 귀국해 한국을 위해서 전념하려고 해요.



-인터뷰기사를 학생들이 접할 때쯤이면 이미 네팔에 계신 상태일텐데, 후배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먼저 자신의 아득한 미래를 너무 성급하게 단정짓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또 자신이 정한 목표가 있다면 조급해하지 말고 차분히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충실히 하는게 중요해요. 저도 재학생 시절 때 전기공학부라는 이유만으로 ‘한국전력공사’와 같은 안정적인 곳에 취업하는 것을 꿈꿨어요. 나에게 맞춰진 것이 아닌 주변 사람들의 생각을 좇은 막연한 계획이었죠. 하지만 지금의 제 모습은 그 때 제가 계획했던 모습과 너무 다르거든요. 그리고 만족하고 있구요. 그러니 후배들도 자신의 이상을 다양한 분야에 열어놓았으면 해요. 분명 어디선가 기회가 찾아올 테니까요.


마지막으로 사회에서 제시하는 기준에 너무 얽매이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학점이나 토익, 봉사활동과 같은 뻔한 스펙들이죠. 저는 사실 이런 기준에는 한참 미치지 못했거든요. 제가 두려움없이 네팔에 갈 수 있었고 해외에서 자연스레 활동할 수 있었던 데는 동아리에서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됐어요. 아이섹(AIESEC)이라는 동아리에서 활동했는데 UN과 성격이 비슷한 동아리였고 외국학생과 함께 하는 세미나에 참여할 기회가 많이 주어졌거든요. 제가 전기공학부임에도 불구하고 국제기구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던 것도 같은 이유에요.


다시 말해,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다음에 한국에 돌아왔을 때 다들 각자의 길을 찾아 애쓰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저도 항상 마음으로 응원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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