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실의‘곰돌이 푸’이영진 (문예창작·4) 학생

삭막하리 만큼 세상은 팍팍해졌다. 박장대소 하며 웃는 일도 잦아졌다. 더욱이 대학생이라고 해서
캠퍼스의 낭만을 만끽하기에 왠지 모르게 어색하다. 이런 삭막한 캠퍼스에 가끔은 누군가의‘엉뚱한
모습’으로 인해 입가에 한번쯤 미소지을 수 있다면 어떨까. 어느날 갑자기 왠 인형탈을 쓰고‘숭실’에
등장한 숭실의‘곰돌이 푸’.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는 숭실의‘곰돌이 푸’로 통하는 그와 만났다.
기자와 인터뷰가 있던 그날도 인형탈을 쓰고 와 기자에게 당혹감과 웃음을 안겨주었던 그를 만나보자.

  반갑습니다. 역시나 듣던 대로 신기하네요. 소개 좀 해주세요.

  - 쑥스럽네요. 보시다시피 제가 그 곰돌이 푸예요. 사람들의 일상 속 작은 추억, 웃음을 전하고 싶어 시작하게 된 일이 벌써 이렇게 오래됐네요. 지금은 마지막 학기를 다니고 있는 평범한 우리학교 학생입니다.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뭔가요.

  - 계기는 그리 복잡하지도 길지도 않아요. 제가 대학교 1학년 당시에는 2002년 월드컵 열기로 한창 달아올랐을 때였어요. 그때 친한 선배 소개로 명동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어요. 지방 고장 알리기 행사로 공룡탈을 쓰게 된 게 계기라면 계기랄까, 경남 고성이 공룡발자국 유적지로 유명해서 그 고장에 맞는 공룡탈을 쓰게 된 거죠. 당시 6월이라 날씨도 많이 덥고 잘 보이지 않는 시야 때문에 불편하기도 했지만 처음 제가 탈을 쓰고 누군가의 앞에 서게 된 첫 계기였죠.

  그 일이 있은 후 3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갔고, 제대 이후 집 근처 에버랜드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어요. 평소 내성적인 성격이었던 터라 성격도 좀 변화해 보고 싶었고, 사람들 앞에서 일하는 서비스업 같은걸 제대로 배워보자는 생각으로 일하게 됐죠. 제가 일하던 곳은 구슬 아이스크림을 파는곳이었는데, 왜 다들 아시다시피 구슬 아이스크림을 팔면서 두 손을 흔들잖아요. 계속 손을 흔들면서 서 있기가 너무 힘들어서 저도 모르게 웃음을 잃고 가만히 서 있었는데 그게 오히려 사람들 눈에는 신기하게 보였나봐요. 아마 제가 마네킹인줄 착각했던 사람들이, 저에게 다가오면 깜짝놀라는 경우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봐야 겠다고 생각하게 됐죠.

  그곳에서 마네킹처럼 가만히 서 있기도 하면서 사람들이 다가오면 로봇처럼 춤을 추고 판토마임을 하는제 모습에 손님들도 즐거워 하고 덕분에 저 역시도 즐거웠죠. 재미를 주거나 친절한 직원들에게 주는 일종의 엠베서드 카드도 당시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직원들 사이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죠. 제 내성적인 성격이 그 일을 하면서 많이 열리게 되고 사람들과 스스럼 없이 지내는 계기도 됐죠. 그때 느낀 것 같아요. 사람들이 즐거워 하는 모습에 저절로 저 역시 즐거워진다는 느낌이랄까.

  정확히 언제부터 시작하게 된 거죠?

  - 제가 4학년 1학기로 복학한 작년 봄부터일거예요. 사실 군대도 갔다오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오랫동

안 학교에 나오지 않았던 터라, 글 쓰기가 사실 쉽지 않았어요. 감각이 많이 죽은 거죠. 그때 무료한 일상에 뭔가 특별한 게 필요하다 싶었는데 때마침 당시‘프리허그’가 열풍이었죠. 게다가 남자친구가 사랑하는 여자친구에게 인형탈을 쓰고 고백하는 모습을 보고‘아 이거다’싶었죠. 결국 다람쥐 인형 탈을 사서 프리허그를 시작했는데, 일 주일도 안 되서 탈을 도난 당했어요. 그때는 학생회관에 벗어두고 다녔는데 어느날 와보니 잃어버린거죠. 그래서 처음 그‘다람쥐’는 사실 사람들이 기억도 못할 거예요.

  당시 제 나름대로의 취지는 좋았지만 저 역시 약간의 실망을 한 터라 한동안 쉬다가 다시 시작했죠. 한 학기를 마치고 저는 다시 휴학을 했고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했어요. 휴학을 했지만 일 주일에 한 번은 논문준비며, 학과와 관련된 일을 하느라 학교에 나올 수밖에 없었어요. 일 주일에 한 번 정도 올 때는 등하교 때도 탈을 쓰고 다녀서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제 모습에 놀라워했죠. 더욱이 집이 용인인터라 강남까지 버스를 타고 와서 다시 학교로 등교를 했는데 그 때도 탈을 쓰고 다녔죠. 버스타는 아저씨가‘탈을 왜 쓰고 다니냐’하시다가도 자주 봐서인지 그냥 사람들이 재밌어 하니깐 처음에는 어색해도 나중에는 적응됐죠.

  사실 학교에서만 하려던 이 일이 도심 속에서도 필요한 것 같았어요. 강남 도심,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히잖아요. 그런 숨막히는 일상 속에서제모습을 보고 환히 웃는 회사원들을 보면 괜히 저까지도 힘이 났죠. 탈을 쓰면서부터 약간의‘영웅심리’같은 걸 느끼는 것 같아요. 왜, 영화 슈퍼맨을 보면 일상에서는 아주 평범하고 사람들 눈에도 띄지 않지만, 슈퍼맨이 되면 영웅이 되잖아요. 제가 약간의 그런 느낌이라면 이해가 될는지.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 많은 일들이 있었어요. 처음 시작할 때는 정말 다리가 부들부들떨릴 정도로 많이 걱정했지만 지금은 자연스러워요. 모든 일들이 기억에 남지만 무관심하게 지나가는 사람들보다는 알아봐주면서 인사해주고 하는 사람들이 아무래도 기억에 남죠. 황당한 일도 있었는데, 어느날은 여학생 다섯명이 우르르 몰려오더니 제 탈을 벗기려고 하는 거예요. 저도 탈을 안 벗으려고 하다가 사실 여학생 다섯 명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탈이 벗겨졌거든요. 서로 그냥 웃으면서 이야기 나누고, 제가 여동생이 있어서 그냥 그런 모습이 화나기보다는 귀엽기도 하고 그랬던 것 같아요. 서로 전화번호를 주고 받고 오히려 관심을 가져준다고 생각하니깐 화나거나 당황스러울 건 없어요.

  또 어떤날은 한 여자분께서 조용히 걸어오시더니 저를 꼬옥 안아주시는 거예요. 너무나도 저를 따뜻하게 안아주셔서 저 또한 그분을 따뜻하게 안아드렸어요. 그때의 마음이, 뭐 랄까 오히려 제가 고맙기도 하고 따뜻하기도 하고 행복했죠. 제가 행복하게 해드리려고 시작했는데 오히려 제가 행복하다는 기분을 어떻게 표현할까요.

  4학년 2학기. 아무래도 부담이 많을 것 같은데요.

  - 사실 진로에 대한 고민이 없을 수는 없어요. 어떤 특별한 기술이나 자격증이 없어서 막연하기는 해요. 게다가 마지막 학기라 더욱더그렇죠. 하지만 에버랜드에서 일하며 사람들을 만나면서 많이 달라진 자신을 발견했어요. 내성적 인제가 사람들을 만나면서 또 다른 나의 모습을 발견했고요. 무미건조한 일상 속에서 저를 통해 다른 사람들이 웃는 모습이 오히려 제 자신을 더 기분좋게 만드는 것 같아요.

  게임을 좋아하는데 학과 전공을 살려 게임시나리오 작가도 생각해 봤어요. 하지만 당장은 사람들 만나는 일들이 좋고, 저로 인해 한번씩 고단한 생활에 여유를 줄 수 있고 추억을 줄 수 있는 일들이 좋아요. 아마 졸업 이후에도 당분간은 에버랜드에서 일을 할 것 같아요. 그게 언제까진지 모르겠지만요.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 돌아오는 축제 때 프리허그를 할 생각이예요. 에버랜드에서 선보였던 로봇춤이나 판토마임 같은 것도 보여드리고 싶은데 그건 아직 미지수예요. 꼭 하고 싶은 게 생겼는데, 어느날 TV프로그램에서 PD가 부산에서 서울까지 시내버스로만 이동하는 걸 보고, 저도 꼭 해봐야 겠다고 생각했어요.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날 테고 그 사람들이 저를 통해 일상의 작은 추억 하나 만들 수 있을거라 믿어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 제가 하는 일은 바로‘무언의 메시지’를 전해드리는 거예요. 잠깐이라도 저를 통해 웃을 수 있다면 그게 저에게는 큰 즐거움이에요. 제가 일상의 무료함을 잊기 위해 시작한 일이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어 기분도 좋고요.

  이제는 안 쓰면 제가 다 허전할 정도로 저에게도 많이 익숙해졌어요. 팍팍하고 힘든 세상에서 저를 보고 한번 미소지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지내요. 굳이 제가 아니더라도 모든 사람들이 많이 웃고 좋은 일들이 많았으면 하는 게 제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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