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식



‘우공이산’이란 고사가 있다. 우공은 집 앞의 산이 불편해 구십의 나이에 산을 옮기기 시작했다. 친구가 그 어리석음을 놀리자 우공은 자식과 손자 또 손자의 손자가 대를 이어 옮기면 언젠가는 산을 다 옮길 수 있다고 답을 해 옥황상제가 산을 옮겨 주었다는 내용이다. 눈앞의 현상에만 집착하지 않고 몇 천 년 뒤를 내다보는, 중국인들의 넓은 시각을 엿 볼 수 있는 고사라 하겠다.


현재의 중국에도 우공들이 참 많았다. 그 중,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는 우공은 청소부였다. 안타깝게도 산을 옮길 우공의 의지를 갖은 청소부도, 역시 우공의 의지를 가진 시민들을 당해내지 못했다. 한 쪽에서 치우면 한 쪽에서 버리고, 다시 이쪽 가서 치우면 다른 쪽에서 또 버리는 식이었다. 누가 우공이 산을 옮겼다고 말할 것이며, 누가 감히 이들 앞에서 시지프스의 형벌에 대해 말할 수 있겠냔 말이다.


우공의 철학이 익숙하지 않았던 나로서는 중국의 생활 방식에 낯설었다. 일례로 자유방임적인 교통법규가 그랬다. 횡단보도나 신호등 같은 것들이 일종의 장식품으로의 역할밖에 하지 못했다. 실제로 어떤 도로든지 지나갈 능력만 되면 건널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종종 목격 가능했던, 차가 인도로 주행하는 모습은 안타깝게도 볼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대중교통은 시민들의 감수성을 고려하기도 했다. 비가 오면 버스고 택시고 간에 전면적으로 승차를 거부했다. 아마 삭막해지는 도시인들이 비를 맞으며 회색 감수성을 씻어내고 태초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가게 하기 위한 중국 특유의 상도덕 같았다. 자연으로 회귀하려는 철학은 중국에서 특이한 것이 아니었다. 공원 호수에서 빨래를 한다거나, 웃옷을 벗고 다니는 모습을 볼 때면, 태초의 자연스러운 모습이어서 보기 민망했다.


이래저래 중국에서의 모습은 충격적이었지만, 한국인 특유의 학습성을 발휘해 현지에 곧 적응, 이래저래 죽을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더 충격적인 것은 귀국 후였다. 한국은 완전 다르겠거니 하고 입국했는데, 웬걸, 거리에 인분만 없었지 중국이랑 다를 게 없었다. 지나치게 많은 것을 기대했던 탓일까? 거리에 버려진 쓰레기를 볼 때마다 중국과 한국을 비교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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