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온 남자 필우신(기계·1)

男 “한국은 고등학교 때부터 전공이 나눠지나봐~”

현재 본교 외국인 학생들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국적이‘중국’이라는 것은 두 말하면 잔소리다. 여기에 필우신(기계·1) 군도 한몫 거들었다. 그가 처음으로 한국 땅에 발을 딛은 것은 지난 2006년 10월, 중국에서 고등학교 1학년을 다니던 중이었다. 이미 그의 어머니는 10년 전에, 친누나는 그보다 앞선 1년전에 한국에 와서 수원에 거처를 마련한 상태였다.

중국에서는 9월에 새학기가 시작하는 반면, 한국은 3월에 시작해 그는 한국 학생들이 다니는 실업계 고등학교에 다시금 1학년으로 입학했다. 그는 실업계 고등학교가 일반적인 고등학교인 줄 알았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과 같이 학과가 나뉘는 줄만 알았단다. 실업계 고등학교는 여러 과가 있어 선택할 수 있고, 그의 집 주변에는 실업계 고등학교만 4개가 자리잡고 있었으니 그런 오해를 했을 수 밖에.

일본에서 온 여자 카나이 마리에(기독교·1)

女 ‘선교’하러 왔다가‘공부’하고 가지요

카나이 마리에(기독교·1) 양의 나이는 올해 스물 넷. 지난 학기까지만 해도 기독교학과의 유일한 외국인 학생이었다. 그녀는 2008년 6월,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한국 방문의 주목적은 다름 아닌 캠퍼스 내 일본 유학생‘선교’였다. 그렇다. 0.6%도 채 되지 않는 일본의 개신교 비율에 그녀도 포함된다. 그녀의 어머니는 목사이기까지하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 그녀는‘유학’에 대한 마음이 없었을 뿐더러 한국어도 전혀하지 못하는‘초짜’였다. 연세어학당을 다니면서 한국어를 조금씩 배워나가기 시작했다. 1급부터 시작해 6급이 마지막 단계인 한국어 교육과정에서 그녀가 5급까지 마쳤을 때, 일본으로 돌아가 신학을 공부하려 했었다고. 그러나 어느새 한국에 정들었는지 한국어 실력도 더 늘려야만 할 것 같고, 왠지 더 남아 있고 싶은 마음이 들더란다. 그렇게 그녀의 한국 유학기는시작됐다.


男 한(韓)족이 아니라 한(漢)족이라고?

그의 한국어 구사 능력은 수준급이다. 한국에온지어언 4년여가 지났으며, 그동안 한국 학생들과 함께 고등학교 생활을 하면서 많이 배운 덕일 것이다. 이 말은 분명 맞기도 하지만 충분한 설명은 될 수 없다. 그는 중국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한(漢)족이다. 그런 그가 처음 한국에 올 때부터 연변말을 구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이면에 감춰진 특별한 사연이 있었다. 이야기는 그가 유치원 다닐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머니가 그를 한(漢)족 유치원에 보내면 자꾸 울기만 하더란다. 그러다 한 번은 조선족 유치원에 보내봤단다. 그러자‘유치원에만 가면 자꾸 울던 애 맞아?’라는 배신감이 생길 정도로 그의 태도가 180도 바뀌는 게 아닌가. 그는 한족 유치원에서와 달리 울지도 않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려 놀고 공부도 열심히 하더란다. 결국 그 이후로 그는 100% 한(漢)족임에도 초ㆍ중ㆍ고 모두 조선족 학교에 다녀야했다. 한(韓)족이 아닌 한(漢)족이라는 게 신기하면서도 의심될 정도다.


女 받침 Oh, No!

역시나 타국에 오면 언어가 제일 속을 썩인다. 그녀도 그랬다.그중에서도 일본인인 그녀가 제일 힘들었던 건 단연‘받침’이 들어간 단어의 발음이다. 일본에는 받침이 없기 때문에 항상‘받침’은 그녀의 한국어 발음에 있어 발목을 잡는 주적이었다. 초창기 때는 발음이 좋지 않다보니 전화통화도할수없었다. 그런 그녀의 발음이 달라졌다. 효과 만점인 살아서 움직이는 교재로 공부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책상에 앉아 책을 펴놓고 공부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녀는 길을 다니면서 혹은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면서 한국 사람들이 서로 나누는 대화를 가만히 듣는다. 그 방법은 은근히 발음과 표현을 배우는 데 있어 많은 도움이 된다고.


男 ‘이딴 식’ 아니죠~ ‘이런 식’ 맞습니다!

한창 고등학교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한국어를 배우는 시기인 고등학교 2학년 때였을 것이다. 그가 잊지 못할 말 실수를 한 것이. 영어 선생님이 시험 범위를 알려주셨고, 한 친구가 손을 들어 선생님께“여기부터 여기까지 공부하면 되는 거예요?”라고 질문을 했다. 선생님께서 친절히 답변해주셨다. 그도 손을 들어 질문했다.“이딴 식으로 복습하면 돼요?”순간 그가 중국 학생이라는 것을 모르셨던 선생님의 표정은 일그러지셨고, 그를 제외한 모든반친구들은 폭소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때까지만 해도‘이딴 식’이라는 말이 나쁜 말인 줄 몰라‘친구들이 왜 웃지? 내가 뭘 잘못했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친구들이 옆에서“선생님, 얘 중국에서 왔어요.”라고 선생님께 말씀드리며, 그에게는“넌 선생님한테‘이딴 식’이 뭐냐?”라며 말해줬다. 그제서야 그는 자기가 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전한다. 그 전까지는 친구들이‘이딴 식 이딴 식’하니 나쁜 말이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당시 그의 반에 반항아 기질을 가진 친구들이 많았던 터라 그때의 말 실수로 그 또한 반항아 중 한 놈이라고 낙인찍힐 뻔했다.


女 “마리에, 아시겠어요?” “네. 아시겠어요.”

그녀의 귀여운 실수담 시리즈는 우리로 하여금 슬며시 미소짓게 한다. 하숙집에서 지낼 당시, 하숙생들이 다같이 둘러앉아 밥을 먹곤 했단다. 밥을 실컷 배부르게 먹고는 너무나도 당당하게“잘 먹겠습니다!”라고 인사해 모두를 포복절도하게 만들었다고. 그녀의 실수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에게는 존댓말을 쓴다. 외국인들에게는 특히나 존댓말이 어렵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녀라고 다르겠는가. 교회에서 한 집사님이 그녀에게 어떤 것에 대해 설명을 하신 후“마리에, 아시겠습니까?”라고 묻자 그녀는 바로“네. 아시겠습니다.”라고 자신을 높여버리는 실수를 했다. 또한 나이 많으신 분께 실수로 존댓말이 아닌 반말을 해버린 적도 있다. 바로 전에 친구와의 통화를 마치고 난 후 그분과 말을 하려니 반말에서 바로 존댓말로 바꾸지 못했던 것이다. 그녀는 그분께“밥 먹었냐?”고 물어보자마자 황급히“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라며연신 사과를 드렸다는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단다.


男 ‘기계’는 내 운명?

수원공고 기계과였던 그는 기계가 본인과 맞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는‘기계 쪽으로는 절대 가지 않겠다.’고 굳은 다짐을 했다. 허나 현재 그의 소속은‘기계공학’. 문제는 인터넷으로 순수외국인 전형 지원서를 접수할 때 시작됐다. 원래‘정치외교학과’를희망했던 그가‘기계공학과’로 잘못 체크한 것이다.더큰문제는 이를 면접을 보기 위해 학교에와 대기를할때까지도 전혀 몰랐다는 사실이다. 신청을 해놓고 제대로 확인도 안 해보고는 분명‘정치외교학과’로 잘 됐겠지 라고 넘어갔던 게 화근이었다. 국제교류팀에도 사정을 설명하며 문의해봤으나“학생이 신청할 때 기계공학과로 신청한 거라 어쩔 수 없다.”는답변뿐이었다. 어쩌겠는가.그냥 운명이겠거니 하고 받아들이는 수밖에,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여지는 없었다.


男 “응.  난 수원 ‘필씨’야.”

그가 듣는 강의의 출석 시간마다 반복되는 똑같은 레퍼토리가 있다.“필우신.”그의 이름을 부르시면서 이미 고개를 옆으로 갸우뚱하는 교수님의 다음 말은 이렇다.“한국에‘필’씨가 있었나?”그는“중국에서 왔습니다.”라고 말한다.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교수님은 고개를 끄덕이시며“수업은 따라갈 만 하느냐.”,“어려운 건 없느냐.”등 친절하게 이것저것 물어봐주신다. 앞선 교수님의“한국에‘필’씨가 있느냐?”는 질문에 답을 하자면 한국에는‘대흥필씨’와‘전주필씨’가 존재한다.

한국어도 좀 되겠다 그는 대학에 다니면서는 중국 학생인 것을 말하지 않으려고 했단다. MT까지만 하더라도 학생들은 그가 중국인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물론 학생들이 그의 성이 특이하고 신기하니“진짜 성이‘필’씨야? 어디‘필’씨야?”라고 많이 물어봤더란다. 그럴 때마다 그가 그저 담담하게“응. 수원‘필’씨야.”라고 한마디만 하면 열이면 열“아, 그렇구나~”라며 별 의심 없이 넘어가곤 했다. 그러나 그의 계획은 곧 수포로 돌아갔다. 바로 학과장님께서“필우신이는 중국 학생이니까 다들 많이 도와주도록”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아직도 그는“학과장님만 아니었으면 다들 몰랐을 텐데그말한마디 때문에 내가 중국인 학생인 것을 들켰다.”고믿고 있으며, 아쉬워한다.


男 한국까지 공부하러 와서‘C·F’찍어요

외국인 학생들이 우리학교에 입학해서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바로 전공공부요, 학점이다. 그 또한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지난 1학기는 참 어려웠다. 수강신청부터 삐걱거렸다. 학교측의 시스템 문제로 인해 외국인 학생들은 제때에 수강신청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학점은 채우고 강의는 들어야 하니 억지로 한 명씩 이반 저반으로 분산돼 들어가야 했다. 그는 운도 지지리도 없었다. 한국어 강의와 교필인‘읽기와 쓰기’빼고는 모두 재수강반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교수님은 재수강반이라고 진도를 엄청난 스피드로 나가시고, 그는 자꾸만 뒤처졌다. 학교와 교수님께 사정을 말씀 드려보기도 했으나 언제나 돌아오는 답변은 한결 같았다. “어쩔 수 없다.”미적분 강의 같은 경우는 첫 시간부터 시험을 봤다. 한국 학생들은 다들 잘 풀어나갔다. 그러나 실업계 고등학교에서 수학 미적분이나 물리를 깊이 배우지않았던 그는 혼자 백지 시험지를 내고 나와야 했다. 결국 그 과목은‘F’였다.

전문용어의 경우, 같은 것을 지칭하더라도 중국과 한국에서의 말이 달라 고생한 적도 많다. 예를 들어 수학강의 때‘극좌표’라는 개념을 배우는데, 중국 학생들은 바쁘다. 서로 그 단어가 중국어로 무엇인지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어를 잘 하는 그에게 중국 학생들은 많이 물어본단다. 그러나 그 또한 중국에서 고등학교 과정을 다닌게아니기 때문에 중국어로는 어떻게 말하는지 모르기는 마찬가지다. 결국 그림을 그려 설명해주면 그걸 이해한 친구가 다른 친구들에게 중국어로 통역해준다. 매 강의가 거의 이런 식이다. 그러다보니 잘 해야‘C’, 못 하면‘F’까지도 찍는다고.


女 “이것도, 저것도 죄다 외국어잖아!”

지난 1학기는 그녀에게 참 힘든 시간이었다. 전공 수업 중에서 영어로 진행되는 강의를 들었다. 가뜩이나 한국어만으로도 힘든데, 또 다른 외국어인 영어까지 신경써야 하니 이해도 어렵고, 힘에 부쳤단다. 게다가 1학기 때는 아무것도 모를 때고,기독교학과에 외국인이 그녀 혼자니 그 고충은 더 했다.‘내가 4년간 여기서 잘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으로 가득찼던 시기이기도 했다. 공부를 하면서 진짜 아무리 봐도 이해가 안 되고 모르는 게 있을 때면“아, 못 하겠다.”“, 힘들다.”“, 일본에 가고 싶다.”고 어머니에게 전화도 많이 했다고. 그때 한 교수님께서 그녀에게 같은 학과 선배를 1:1 튜터로 소개해주셨다. 그녀는 튜터와 함께 공부를 하고, 혼자 책을 볼 때도 모르는 단어가 있으면 즉시 문자를 보내 물어보기도 했다. 이제 그녀가 튜터의 역할을 해주고 있다. 이번 2학기에 중국 학생 한 명이 새로 기독교학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내가 1학기때겪었던 것들이니그친구의 힘듦을 이해할수있다.”며 많이 도와주려고 노력하는그녀의 모습이아름답다.


우리학교는 이전까지 외국인 학생에 대한 경험이 전무했다. 올해가 처음이다. 이런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이해하려는 그다. 그런 그가 마지막으로“학생은 학교를, 학교는 학생을, 특히 외국인 학생을 조금 더 이해해줬으면 좋겠다.”고 전한다. 여전히 불공평한 사회인 그의 모국 중국을 변화시키고 싶다는 그의 꿈이 반드시 이뤄지길 소원해본다.


일본 사람들 중 젊은이들은 과거 일본이 한국에 어떤 나쁜 짓을 저질렀는지 모른다. 배우지 않기 때문이다.‘독도’도 마찬가지다. 일본땅이라고 배우기에 그저 그런 줄 안다. 그런 일본이 더 나쁘다는 그녀다. 한국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어머니의 가르침에 따라 그녀의 마음은 그런 것들로 가득하기만 하다. 또한 그녀는 이번 여름방학 때 일본에 갔다가 NHK 방송에서 우리학교 교수가 토론 패널로 나오는 것을 보고는“이분이 우리학교 교수님”이라고 자랑하는 우리학교 학생이다. 지금 이 모든 게 다 감사하다는 그녀, 한국 학생들과 많이 친해지고 싶다는 그녀다. 4년간 많은 공부를 하며,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발견하는 그녀가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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