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국민일보 제공

만화계가 뿔났다
  지난 2월 27일(월), 부천에 위치한 한국만화박물관에서 만화계 인물들이 공청회를 열었다. 이들이 한자리에 모인 이유는 최근(2월7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가 24개의 웹툰(△네이버 13개 △다음 5개 △야후 3개 △파란 2개)을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정, 4개의 포털 사이트 앞으로 ‘청소년유해매체물 결정 관련 사전 통지 및 의견 제출 안내’라는 공문을 발송했기 때문이다. 이에 한국만화가협회와 우리만화연대 등은 2월 18일(토)‘범만화인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를 구성하고 기자회견과 공청회, 노컷 블로그 개설 및 서명 운동 등의 활동을 통해 방심위의 결정에 대응하고 있다. 만화계는 이 사건을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방심위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웹툰이 ‘청소년유해매체물’?
  방심위의 이번 결정은, 최근 불거진 학교폭력이 웹툰에 의해 조장된다는 조선일보의 기사에서 비롯됐다. 1월 7일(토)자 조선일보는“열혈초등학교, 이 폭력 웹툰을 아십니까”라는 제목으로 웹툰이 폭력을 유쾌한 짓으로 합리화해 학교폭력을 조장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1면 톱으로 보도했다. 방심위는 이 기사에 즉각적으로 반응해‘웹툰의 모니터링’을 강화하겠다(2012.01.09.)’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바로 다음 날, 보도가 난 웹툰은 연재가 중단됐고, 조선일보는 “학교 폭력 희화화 웹툰‘열혈초등학교’연재중단”(2012.01.11.)의 기사를 보도했다. 일방적인 조선일보의 기사로 난데없이 학교폭력의 원인이 돼 버린 웹툰계는 분노에 휩싸였지만, 웹툰 ‘열혈초’의 중단으로 사건은 일 단락되는 듯 했다.


  그러나 지난 7일(화) 방심위는 포털사이트에서 연재되는 24편의 웹툰에 대해‘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정할 계획이 담긴 공문을 보냈다‘. 잔혹한 살상 또는 폭행등의 장면을 자극적으로 묘사하여 폭력을 조장하거나 미화할 수 있는 내용의 정보를 제공’했다는 것이 그 이유다. 만화계는 학교 폭력의 원인을 엉뚱한 데로 돌리고 있다며 방심위의 이번 입장에 반발하고 있다.


웹툰의 운명은
  방심위에 의해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정된 웹툰에는 19세 금지 마크가 표시되고, 이미 배포된 출간물에는 소위 ‘빨간 딱지’가 부여된다. 또한 홍보 금지 조치 때문에 포털 노출이 불가능해지고 실명 성인 인증을 거쳐야만 해당 웹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된다. 방심위 관계자는 만화의 폭력성에 대한 검토는 청소년들을 위해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방심위 조치는 과연 유효한가
  방심위는 공문에 “전기통신회선을 통해 잔혹한 살상 또는 폭행 등의 장면을 자극적으로 묘사해 폭력을 조장하거나 미화할 수 있는 내용의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청소년보호법 제10조 제1항 제3호 및 제4호 등에 해당해 청소년의 건전한 인격 형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에 대해 만화계는 ‘먼저 방심위는 과연 웹툰을 심의할 법적 권한이 있는가’라는 의문을 던졌다. 전기통신회선을 통해 유통되는 정보를 방심위에게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정할 권한을 부여하는 법률은 어디에서도 찾아볼수없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또한 유해매체를 선정하는 기준에 대해 모호하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23개 작품 중에는 2011년 대한민국 콘텐츠 어워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수상작인 ‘더 파이브’와 2011년 오늘의 우리 만화 수상작인 ‘살인자ㅇ난감’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또한 웹툰의 3D화로 유투브를 통해 해외에서 화제를 모았던 ‘옥수역 귀신’과 ‘봉천동 귀신’이, 영화화되어 주목을 받은 ‘전설의 주목’ 또한 포함돼 있다.

 

 

 

  이번 사건과 직결되는 웹툰 작가들의 입장은 어떠할까. 그들의 의견을 직접 듣기 위해 네이버에서 <본초비담>을 연재중인 비대위 집행위원 정 철 작가와 전화 인터뷰를 했다.


편집자

  이번 방심위의 권고를 접했을 때 웹툰을 포함한 만화계의 반응은 어떠했는가
  공분 그 자체였다. 15년 전 청소년보호법 시행과 관련해 만화계 전반이 침체되는 큰 바람이 불었는데 그 사건이 다시금 살아나는 것이 아닌가 느꼈다. 왜 하필 웹툰이 지목을 받게 된 것일까? 영화나 게임 산업물은 이렇게까지 경고 받은 사례가 없었는데. 학교폭력의 원흉으로 만화를 지적하는 것은 어찌 보면 보수 세력 입맛에 맞는 편의주의적인 일이다. 이는 조선일보의 기사를 보면알수있다. 만화계는 오래 전부터 이런 취급을 받았다. 객관적인 연구 혹은 데이터 없이 폭력의 원인을 웹툰으로 돌린 보수 세력 조선일보의 입장은 옹졸한 주장이다.


  방심위의 이런 결정 전, 웹툰 작가들은 어떻게 수위를 조절하였는가
  작가가 자정 작업을 하거나 혹은 독자가 일정 작품에 대해 해당 웹툰이 연재되는 포털사이트에 클레임을 걸어 담당자가 19금으로 전환하는 등의 방법으로 운영이 되어왔다. 이렇듯 만화의 연령별 제한 구독에 대해서 만화계 내에는 자율적인 시스템이 갖춰져 있기 때문에 방심위가 직접 나서 유해매체물을 지정하는 행동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더 나아가, 법에는 명시되어 있지만, 방심위에게는 ‘관리권한’만 존재하지 ‘지정권한’은 없다.


  그렇다면 이번 방심위의 등급제 심의 자체를 부정하는 것인가
  그렇다. 유해매체지정을 부정한다. 구독의 등급제는 당연히 필요하다. 연령별 구체적인 가이드는 이미 영화나 게임 등에서도 시행되고 있다. 만화계도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현재 웹툰의 서비스 형태는 독자군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이미 장르와 취향, 성별, 나이대로 대별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는 12세 구독이냐 15세 구독이냐가 자연스럽게 구분되고 있는 추세로 이해된다. 따라서 웹툰의 독자는 무분별하게 만화를 보지 않으며 선택적으로 자신의 연령, 취향, 장르를 구분해 구독하고 있다. 방심위는 이에 유해매체라는 칼을 들이밀어 자유롭게 구성돼 있는 자율적 콘텐츠 소비문화 전체를 상처 내는 것이다.


  몇몇 부모들은 “아이들이 즐겨 보는 만화에 욕설과 폭력이 난무하여 표현의 자유라고 하기엔 도를 넘는 자극적인 묘사가 많다. 청소년들은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모방을 할 수 있다. 그래서 규제가 필요하다고 본다.”며 방심위의 입장을 찬성한다. 이에 대한 의견은 어떠한가?
  학부모의 입장에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학생들의 자율적이고 탄력적인 가치관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것은 교육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으며, 사회 시스템이 갖춰져야 할 것이다. 단지 폭력의 원인을 창작가에게 돌리는 것은 불합리한 일이다. 부모들이 청소년에게 유해하다고 생각되는 웹툰에 대해 방심위에 의견을 제출하는 것은 당연한 자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방심위는 부모님들의 입장뿐만 아니라 작가의 입장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해한 부분에 대해 그 표현이 유해하다고 판단된다면 방심위는 작가들에게 구체적이고 정확한 기준으로 그 표현에 대한 가이드를 제시하고 만화가들과 합의한 후 제재를 해야만 하며, 유해매체물 지정의 경우에도 작가와 의견을 조율하여 수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현재 방심위의 일방적인 공문 발송은 웹툰에 대한‘폭력’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폭력물, 성인물, 자극물은 전체 만화 분야에서 극히 제한적인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을 규제한다는 것이, 지금 만화시장 전체의 활로를 방해한다고 할 수 있는가
  현재 규제를 받은 23개 작품에는 장관상이나 우리만화 수상작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신선한 기술을 접목시켜 독자의 사랑을 받거나, 영화화되는 등의 큰 주목을 끈 작품도 있다. 이렇게 안팎으로 인기성과 작품성을 인정 받은 컨텐츠를 제재한다면, 당연히 만화계 전체의 생산성에 경직을 가져오게 되어 만화시장의 발전이 가로막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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