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이 넓은 세상에서 자신의 마음을 진정으로 나눌 이가 단 한 사람도 없다고 호소한다. 어쩌면 우리들의 문제의 핵심은 서로의 마음을 알아 주지 못하고 나누지 못한 데 있다. 그래서 우리는 외로운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한, 다른 사람과 연결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은 ‘듣는 것’이다. ‘그냥 들어 주는 일’이다. 또한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관심을 가져 주는 일’이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세심하고 주의 깊게 받아들여진다는 것 자체가 ‘이해되어지는 일’ 보다도 훨씬 중요하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은 우리들 대부분이 자기 자신의 진정한 가치와 사랑의 위력을 과소평가하거나 아예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고통스러워할 때 ‘참 안됐군요. 그 말을 들으니 저도 마음이 아파요.’라고 단순히 건네는 말 한마디의 위력이 사실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를 오랜 세월을 보낸 후에야 나 자신이 깨닫게 되었다.

  내가 상담했던 어떤 분은 그분이 사람들에게 자신의 얘기를 하려고 할 때, 자신의 할 말을 다하지 못한 채 도리어 상대의 얘기만 듣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불평했다. 그로 인해 그 분은 말수가 적어지고 사람 만나는 것을 회피하게 되었으며 마음이 점점 얼어붙게 되었다.


  들음으로써 우리는 서로를 연결시킬 수 있다. 듣는 사람은 또한 말하고 있는 사람에게 그가 말하는 것을 잘 듣고 있음을 알려 줘야 한다. 듣는 것의 초점은 말하는 그 사람 자신이다. 잘 들어주면 상대방은 자신이 중요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경험하게 된다.

  대개의 경우 고통의 근본적인 원인은 그 사람에게 일어난 고통 그 자체보다도 그 고통을 누군가와 나누지 못하는 데 있다. 즉, 누군가가 들어주는 경험을 갖지 못했다는 데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얘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고통이 격감되었다고 고백한다. 비록 우리는 우리에게 닥치는 불행과 아픔을 오지 못하게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고통의 결과가 달라지며, 이는 문제의 핵심이 된다.


  단지 들어주기만 했는데도 눈물을 터뜨리는 사람들을 종종 대하게 된다. 나는 울고 있는 사람에게 티슈를 건네 주는 일조차 그 사람의 아픔과 고통이 터져 나오는 중요한 순간을 방해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후로 그저 듣는 것에만 더욱 집중하게 되었다.

  매우 쉽게 느껴질지도 모를 이 일을 배우는 것이 나에겐 쉽지 않았다. 이것은 내가 배워 온 대부분의 지식들과는 반대적인 것이었다. 한때 나는 듣기만 하는 사람들은 말하는 데 자신이 없거나 대답할 말을 몰라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울고 싶은만큼 다 울고 난 뒤에, 그 사람은 거기에 자신과 함께 있었던 나를 발견한다. 따뜻한 사랑으로 침묵하며 그냥 들어주는 일은 청산유수의 말보다도 훨씬 치유하는 힘이 클 뿐만 아니라 서로를 깊이 연결해 준다.

저작권자 © 숭대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