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eset KBS 국민만이 주인이다!”붉은 현수막이 목소리에 맞춰 흔들거리고 있다.

 

Reset KBS
“우리 투쟁은 국민의 마음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 국민의 품으로 돌아갑시다.”지난 7일(수), KBS 신관 로비에 언론의 자유를 외치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앞으로는 'Reset KBS'라 적힌 붉은 현수막이 목소리에 맞춰 위아래로 흔들린다. 구석으로 내몰린 커피 테이블과 사람들에게 점령당한 로비로 인해 구석에서 커피 가게를 운영하는 사장님이 안절부절 못하는 소리로 기자에게 말을 건넨다.“내일도 모인다면서요? 영업에 방해가 되는데….”KBS 측 경비원에게 둘러싸인 백여 명의 군중은 오른손을 높이 쳐들고 한 목소리를 냈
다.“리셋, KBS!"

 


여의도에 울리는 파업의 소리
봄비가 갠 여의도의 모습은 포근했다. 한국방송(이하KBS) 본관을 둘러싼 여의도 공원에는 이제 막 새싹이 돋아나기 시작하고 있었다. 싱그럽고 활기찬 분위기의 공원 맞은 편에 있는 KBS 본관에서는 적막감이 감돌았다. 6일(화) KBS본부 노조가 총파업에 돌입한 이후, 노조원의 출입을 막기 위해 KBS 측이 본관 앞을 대형버스 3대로 봉쇄해 버린 것이다. 사진을 찍기 위해 다가갔더니 KBS 측 경비가 가로막았다.“어이 거기, 함부로 들어가지 마요!” 경비의 눈을 피해 파업 농성이 예정된 KBS 신관으로 발을 돌렸다. 드라마 촬영을 마치고 편집실을 향해 달려가는 관계자들, 밤샘 작업으로 힘들다는 전화 통화, 10cm의 하이힐을 신고 달리는 여성등분주하게 일하는 직원들의 모습에서파업의 기미는 엿보이지 않았다. 오후 3시, 갑자기 로비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약백명의 사람들이 붉은 현수막과 북 두 개, 마이크 한 대와 커다란 앰프 두 개를 들고 쏟아져 나왔다.“리셋, KBS! 국민만이 주인이다.”총 파업이라 하기에는 조금 적은 듯한 수의 무리가 구호를 제창하며, 스티로폼으로 만들어진 형형색색의 조그마한 방석을 깔고 앉아 로비 앞에 자리잡았다.

 


‘국민의 방송’에서‘국민’을 외치다
전국언론노조 KBS 본부(이하 새 노조)는 7일로 파업 이틀째를 맞는다. 이들이 크게 주장하는 내용은‘김인규 사장의 퇴진’과‘공정 방송의 회복’이다. 슬로건으로 내세운 'Reset KBS'는 KBS를 바로 잡고 다시 세우자는 의미다. 2009년 11월, KBS에 큰 바람이 불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정연주 사장을 해임시키고 그 자리를 김인규 사장에게 넘겨 줬다. 이후 김 사장이 17대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의 방송 전략 실장으로 일한 경력이 밝혀지며, 김 사장은‘MB정권의 하수인’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또한 김 사장이 재직한 이후 〈시사투나잇〉·〈시사기획 쌈〉등 보도 프로그램이 폐지됐고,〈추적 60분 4대강 편〉등이 정상 보도되지 못했다. 이에
대해 KBS 본부는“김인규 체제하의 KBS는 정권 홍보 방송,편파 방송의 창구로 전락했다.”고 전했다.
뿐만 아니라 김 사장이 재직하면서 KBS는 친일파 백선엽을 전쟁영웅으로 방송했고, 이승만 찬양 방송 및 친일·독재찬양 방송을 제작해 비판을 받았다. 또한 부당징계 처리와 부조리한 예산 낭비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며 논란이 됐다. 이에 KBS 새 노조는 지난 2월 17일(금)부터 일주일 동안 진행된 투표에서 89%의 찬성으로 총파업을 가결시키고 지금의 상황에까지 이르게 했다. 새 노조는“국민의 기대를 져 버린 KBS의 부끄러운 나날”이라며 김 사장 체제를 비판하며“국민을 위해 끝까지 투쟁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들불처럼 번지는 방송사 파업
새 노조는 외롭지 않았다. 새 노조 파업 현장에 MBC 노조관계자 이 PD가 방문했다. 이번 연쇄 파업의 시발점인 MBC노조는‘김재철 사장 퇴진’을 주장한다. 김 사장은 관제방송과 부당징계의 비판을 받고 있다. 김 사장은 <W> 등 시사 보도 프로그램들을 폐지시켰으며, 법인카드를 개인의 용도로 7억 원을 사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물의를 빚었다. 이로 인해 파업을 시작한 MBC는 7일(수) 로 파업 38일째를 맞는다. 이 PD는“KBS를 시작으로 곧 YTN과 연합뉴스 측도 다음 주중으로 합류할 것.”이라며,“이것은 사장 대 방송의 싸
움이 아닌 MB정부 대 공영방송의 싸움이다.”라고 전함으로써 KBS파업을 지지하는 성명을 표했다. 이렇듯 많은 방송사들이 파업의 물결을 타기 시작했다. YTN 노조는 66%의 찬성으로 지난 8일(목) 파업에 돌입했
고, 연합뉴스 노조는 7일(수)부터 일주일간 파업 찬반 투표를 실시해 가결될 경우, 이르면 15일(목)부터 파업에 동참한다. YTN 노조는 2008년 이명박 대통령 방송특보 출신인 구본홍 사장 때 공정방송을 요구하다 해고된 6명을 복직시키지 않는 배석규 사장의 연임을 반대하고 있다. 또한 배 사장은 황제 골프 사건과 접대비 사용의 증가로 의혹을 받고 있어 노조의 반발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 노조는 “박정찬 사장 취임 이후 근로 여건 악화, 주요 사안의 보도에서 정권 편향적인 태도를 보여 왔다.”며 박 사장의 연임에 반대하며 파업을 결의했다.

 

 

▲ 지난 7일(수) KBS신관 로비에서 새 노조가 파업농성을 벌이고 있다.

 

 

 

연쇄 파업, 공통분모는?
현재까지 파업을 결의한 방송사들이 공통적으로 제기하는 문제는‘낙하산 사장’과 이로 인한‘현 정부의 언론장악’이다. 실제로 대통령 특별 보좌관 출신들이 방송사 수장이 됐고, 이후 권력을 감시하는 보도 프로그램들은 폐지됐다. 노조 측은“정권을 홍보하는 관제 프로그램들이 넘쳐 났다.”고 전했다. 4대강 사업과 한미 FTA를 홍보하는 광고가 방송되면서 친정부적인 성향이 지나치게‘티’가 난 것이다. MBC·KBS·YTN 방송 3사 노조는 지난 5일(화),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서 파업 공동 선포식을 열어“우리가 요구하는‘낙하산 사장 퇴출’은 해고 언론인 복직과 공정방송 복원을 위한 출발점이다.”라고 선언했다.

 

 


유머가 있는 현장
“힘차게 투쟁합시다. 감사합니다람쥐~”“하하하….”파업현장의 분위기는 다소 유쾌했다. 예능중앙위원 조합원 문 씨는 가벼운 농담을 섞으며 파업을 지지했다. 실제로 새 노조 중앙위원에서 파업 상황을 보고할때걸그룹의 노래가 흘러 나왔다.“너는 내 별빛 내 마음의 별빛”새 노조원들은 파업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부담감을 잊으려는 듯, 함께 따라 부르기도 했다. 새 노조 측은“이제는 파업이 바뀌어야 할 때”라며“재미있는 파업을 준비중이다. 의미 있고 뜻 깊을 것 같다.”고 전했다. 파업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가벼울 수 있는 이유는 소수인원의 참여다. KBS의 노조는 제1노조와 새 노조(제2노조)로 구성 돼있다. 하지만 이번 파업에는 3000여 명으로 구성된 제1노조는 동참하지 않는다. 기자와 PD 등 약 1000여 명이 가입해 있는 새 노조만 파업을 결의했다. 이에 중앙위원회 정씨는“현재 녹화된 방송분은 잘 나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파업이 타격을 주든 안 주든, 수오지심을 알기 때문에 우리가 행동을 결단한 것”이라며,“이 자리에 모인 것만으로도 승리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실무 인력이 새 노조에 다수 포함돼 있어 파업이 장기화될 경우, 방송 파행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파업 선언서 낭독 후, 새 노조는 썰물처럼 로비를 빠져나 갔다. 파업을 선언한 그들은 자신의 일터로 돌아가지 못한다. 열기가 채 빠져나가지 않은 로비 중앙,‘파업특보’·‘노조특보’가 이곳저곳 흩어져 있었다. 하지만 아직 파업 이틀째, KBS는 방송가답게 여전히 분주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백윤주 수습기자 yzuu@ss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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