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는 우리가 사는 인생의 질과 수준을 결정한다. 거룩한 책을 읽으면 거룩한 사람이 되고, 아름다운 책을 읽으면 아름다운 사람이 된다. 증오심과 투쟁심에 가득 찬 사람이 쓴 책을 읽으면 증오심과 투쟁심으로 가득 찬 사람이 된다. 니체처럼 연약한 것을 멸시하고 강하고 초인적인 권력 의지를 찬미하는 책들을 읽으면 허무주의적이고 자기파괴적인 인생을 살게 된다. 희랍인 조르바는 이런 니체적인 인생관을 삶에서 실험하고 실현한 인물이다. 그러나 미국 대공황기의 사회선교사였던 도로시 데이처럼 가난한 자와 불쌍한 사람들을 동정하는 사회소설을 많이 읽은 사람은 사회적 동정심과 책임감이 넘치는 인생을 살게 된다. 도로시

데이가 일생 동안 곁에 두고 읽은 책들은 톨스토이, 찰스 디킨스, 업톤 싱클레어, 그리고 성경이었다. 그녀는 특히 성경과 19세기 영국 사회소설가 챨스 디킨스가 자신의 인생의 등

대와 같았다고 고백한다(도로시 데이의 The Long Loneliness). 대학생활 성공의 제일 조건은 자신의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어 줄 원시림 같은 지성적 동아리를 만나느냐 못 만

나느냐에 달려 있다. 지적 동아리란 지식과 상상력의 시야를 넓혀 주는 대화와 가르침이 수수되는 동아리다.

적도의 성자라고 불리던 독일의 신학자 알버트 슈바이처가 쓴 자서전 물과 원시림사이에서는 원시림에 대한 근원적인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성경 읽기는 원시림을 탐험하는 여정이다. 성경은 경쟁과 각축으로 얼룩지고 부서진 인간이 하나님의 집으로 돌아가는 귀로다. 감미로운 하나님의 사랑과 창조주다운 위엄이 빛나는 야훼의 토라를 읽는

행위는 힘을 소진시키면서도 힘을 공급하는 역설적 노동이다. 성경을 읽는 행위는 하나님의 자애로운 다스림에 우리 존재를 맡기는 행위다. 하나님의 다스림이 끼치는 효과는

세상의 어떤 역경에도 빼앗기지 않는 평화다. 야훼의 토라는 즐겁게 읽을 뿐만 아니라, 낮은 목소리로 읊조릴 만한 영감 넘치는 내재율로 가득차 있다. 성경 암송이 가능한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음보와 리듬, 입체적인 멜로디로 연주되는 음악의 형태로 독자의 영혼에 타전되기 때문이다. 성경은 청년의 때를 야훼의 토라 전체를 암송하는 과업을 이룰

때라고 격려하는 책이다.

저작권자 © 숭대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