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검색을 하면 프랑스를 소개한 서적은 얼추 서른 권이 넘는다. 우리 수업의 첫 일거리는 그 서적들의 목차를 함께 살펴보는 일이다. <프랑스 테마 기행>(이하 프테기)에서는 그 목차들이 다루고 있는 ‘테마’들을 다루지 않기 위해서 그것들을 참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무엇하러 숭실대학교에서 강의를 듣는가. 돈 주고 개론서를 혼자 사보거나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되지. <프테기>에서 ‘기행’은 기차를 타고 가든 여객선을 타고 가든, 탈선을 하든 난파를 하든, 상도동에서 프랑스로 한 번도 가지 않은 방식으로 길을 가보는 거다. 당신들이 초행길로 들어선 탓에, 결국 프랑스에 이르지 않아도 좋다. 프랑스 문화가 무슨 용가리 통뼈인가. 그러고 보니 강의계획서에 올려져 있는 강의 목표도 하나의 물음, 프랑스 현대 시인 르네 샤르의 시 한 구절이다. “자신 앞에 미지의 것이 없다면 어떻게 살아갈까?”그래, 그렇다.


  “프랑스 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엇인가?” 첫 수업에 하는 질문이다. 언제나 한결같은 대답이 나온다. 그래서 당신들이 귀엽다. “뭐긴 뭐여, 에펠탑이지.”이제는 비주얼 시대이니, <프테기> 수업에서도 재빨리 에펠탑을 스크린에 깔아 준다. 하지만 강의 스크린에는 에펠탑의 철근 한 조각만 달랑 등장한다. 그리고 나머지는 온전하게 파리의 텅빈 하늘만 보인다.


  그 영상을 목격하고 나면 당신들의 절반은 웃고, 절반쯤은 비웃는다. 에펠탑의 근사한 사진들이 검색만 하면 여기저기 지천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무슨 프렌치 과자 봉지에도 앙증맞게 에펠탑이 그려져 있지 않은가. 그러니 에펠탑의 철근 한 조각만 삐죽이 보여 주는 영상은 <프테기>에서만 만날 수 있다. 당신들이 에펠탑의 매표구 앞에 서서 그것을 올려다보면, 사실 너무나 큰 몸집 탓에 그 전체를 결코 볼 수 없다. 프랑스의 대문호 모파상은 에펠탑의 모습이 파리의 순결성을 해친다며 지독히도 싫어했다. 그런데 그는 에펠탑의 2층에 위치한 식당에서 자주 식사를 하곤 했다. 사람들이 의아해하자 모파상은 그 철근 덩어리가 전혀 보이지 않는 장소가 이 식당뿐이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파리의 드넓은 하늘을 손가락을 들어 가리킨다. 에펠탑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그 철근 한 조각과 텅 빈 하늘이 스크린에 펼쳐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한 ‘현장’의 영상에는 또 다른 ‘이야기’들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이제에펠탑을 <세상의 기원>이라는 제목의 꽤나 야한 그림 한 점과 비교할 차례이다. 프랑스의 사실주의 화가 쿠르베가 그린 이 여인의 누드화는 정신분석학자 라캉이 자신의 집에서 혼자서만 감상하다가, 그가 죽고 나서야 세상에 본격적으로 알려진다. 지면에 싣고 싶지만, 여인의 하체 묘사가 세밀해서 충격받을 이들도 많을 것 같기에 삼가 하기로 한다. 하지만 <프테기>에서 보여드리는 이유는 이 그림이 에로틱한 누드화에 신화나 성서 속의 개념들을 버무려서 체모 없는 누드화들만 생산했던 당시의 신성성과 예술적 권위에 대한 어퍼컷 펀치였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사랑에 빠진 연인들이 왜 기를 쓰고 에펠탑 밑의 잔디밭에서 뒹굴려고 하는지, 진보 성향의 집회는 왜 으레 에펠탑 앞에서 시작되는지, 그 일상적인 현상들을 한 편의 누드화와 비교해서 생각해 보기로 한다. 와, 비교해보니 에펠탑이 너무 야해요, 누드화의 모습과 생긴 게 너무 닮았어요, 크크. 그렇다. 이 학생의 비교도 괜찮다. 에펠탑의 모습이 야하다는 발언은 아직 없었으니. 와, 거시기는 거시기인데, 여인의 두 다리가 그림 속에서 허벅지 아래부터 생략되어 있네요, 크크. 그렇다. 이 학생은 <프테기>에서 에펠탑의 철근 한 조각만 보여 준 연유를 이제 응용해서 시선의 중요한 비밀을 알아채기 시작한다. 에로틱함은 사실 생략된 부분 때문에 강렬해지는 것이니. “에펠탑, 파리의 상징물, 높이 324미터, 1889년 건립, 구스타프 에펠 설계”수업시간에 에펠탑에 대한 각자의 추억이 생기기를 바란다.


  이제부터는 에펠탑의 전체 모습이 스크린에 나타난다. 그리고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 영상도 더불어 나타난다. 당신들은 시공간을 뛰어넘는 이 거대한 두 건축물의 차이점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마침내 한 학생이 묻는다. 피라미드는 왕의 무덤으로 만들어졌는데, 에펠탑의 용도는 무엇인가? 그렇다. 그 에펠탑은 “난 그냥 거대한 구조물을 만들고 싶었어.”라는 설계자의 증언처럼 용도가 없다. 아무런 용도도 없이 피라미드에 필적하는 거대한 건축물을 만드는 인간의 헛된 힘, 용도 없음을 도시가 허락하는 힘, 그것이 모더니즘의 힘이다. 이제 예술은 파리의 지붕 밑에서 급격하게 다채로워지기 시작한다. 파리의 어디에서나 에펠탑이 보이기 때문에 그것이 파리의 상징물이 아니라, 우리의 수업시간에는, 그것이 용도 없는 거대한 철근의 집합체로서 모더니즘의 수도 파리를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Paris’하면 어떤 개념어가 떠오르는가? 당신들은 서슴없이 “문화, 예술, 낭만, 문명의 도시 뭐 그런 것들 아니겠소.”하고 대답한다. 그렇다.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도 1927년 파리에 머물면서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가 ‘예술’과 ‘문명’이었으며, “누구든지 유쾌히 살 수 있는 곳”이라고 증언한다. 그러니 우리는 이제 그 반대를 이야기해 볼 것이다. 요컨대, 파리의 야만(野蠻)에 대해서다. 20세기 초반까지 파리에 인간 시체들을 전시하고, 그것들의 모습과 냄새를 모든 시민들이 즐겼던 거대한 공시소가 백년 가까이 지속되었던 연유부터 알아보자. 자, 우리는 이제 파리의 낭만적 신화들을 낱낱이 해체시키기 위해 떠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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