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숨 쉬는 그림 속으로

오늘날 우리는 미디어를 통해 무한히 이미지를 받아들인다. 자극적인 이미지를 끝없이 대량 방출하는 미디어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볼 것이 너무 많은 나머지, 우린 정작 아무것도 보지 않게 돼 버렸다. 그런 와중에 이미지 하나로 세상을 바꿀 수 있던 특정 시대를 주목한 사람이 있다. 바로《명작, 역사를 만나다》의 저자이자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조교수로 재직 중인 우정아 교수다.


역사로 보는 미술이야기

“이 그림을 보면 너무나 극적이에요. 깜깜한 연극 무대 같죠. 실제론 벽에 지도도 하나 걸려 있고 집이니까 잡다한 게 있었지만, 그림에선 그걸 다 생략했죠. 마라는 마치 연극 무대에서 혼자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사람처럼 보여요. 여전히 손에 펜과 편지를 들고 있어요. 이런 걸 보면‘아, 저 사람이 얼마나 진실하고 성실한 사람이었는가. 코르데란 여자를 정말 도와주려고 했는데, 그러다가 죽었네.’이렇게 돼요. 사실 저 장면은 처참해서 눈뜨고 보기 힘들었겠지만, 다비드는 그런 디테일을 다

지우고 아주 성스러운 장면으로 만들죠. 늘어진 팔을 보세요. 예수 그리스도가 떠오르죠. 이런 걸 보면 다비드가 얼마나 계산을 많이 했는지를 알 수 있어요‘. 마라는 혁명을 위해 희생당한 순교자 같은 사람이야’라고 그림을 통해 보여 주는 것이죠.”

 그가 프랑스 역사화가 자크-루이 다비드의 <마라의 죽음>에 대해 강의했던 일부분이다. 이날 강연은 다비드를 비롯하여 혁명의 시대인‘신고전주의’시기의 미술을 주제로 했다. 이 강연에서는 왕에게 완전히 복종하고 있던 미술이 혁명적인 흐름 속에서 사회 변화에 어떤 역할을 했는가를 다뤘다.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우면서도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묘한 힘이 있었다. 그의 수업이 카이스트에서 최고의 교양 수업으로 꼽힌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강연에 참석한 사람들은 너도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집중했다.


미술과의 첫 만남

그는 어떻게 처음으로 미술과 접해서 고고미술학자라는 지금의 자리까지 이르게 됐을까. 어릴 적 그의 집 책장엔 루브르 미술관, 대영 박물관등의 화보집들이 있었다. 그의 부모님이 구독하던 월간 잡지에서 정기적으로 선물을 보내 왔던 것이다“. 책에 그림들이 많으니까 재밌는데, 아무리 봐도 무슨 얘긴지 모르겠더라고요. 어떤 사람들이 있는데 누군지는 모르겠고. 근데 굉장히 멋있어 보이고.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그때부터미술에 대한 호기심이 있지 않았나 싶어요.”

 그가 고교 3학년이 됐을 때 가장 좋아했던 선생님은 국어를 가르치는 담임선생님이었다. “국어 교과서에 고고미술사학자 김원룡 선생이 쓰신 십일면관음보살에 대한 글이 하나 있었어요. 그때 담임선생님이 이 분은 미술사를 하는 분이고, 서울대학교에 고고미술학과가 있다는 얘기를 해주셨어요. 그때부터 이런 분야의 일을 할까 하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이미지의 시대를 살아가는 방법

그는 카이스트 인문사회과학과에서 초빙교수로 재직하다 올해 3월에 포스텍 인문사회학부의 조교수로 부임했다. 포스텍은 공대인 데다가 미술사를 가르치는 사람도 그뿐인지라, 혼자서 고대부터 현대까지 미술사전부를 가르치고 있다. 고대부터 17세기까지, 신고전주의부터 19세기말까지, 그리고 현대미술을 주제로 세 개의 미술사 강의를 한다. 가끔은 다른 교수들과 협력해서 <현대 미술 미디어>와 같이 미술과 과학의 연관성을 탐구하는 수업을 특강 형식으로 열기도 한다.

 미술사 수업을 할 때 그가 중시하는 것은 작품 자체보다도‘과정’이다. 작품 개개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작품이 어떤 해석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도 무시할 수 없다. 당시 역사적 상황이 어떠했고, 이 그림은 어떤 역할을 했으며 누가 주문을 했는가 하는 과정 말이다.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배우지 않은 그림이라 할지라도‘, 어떤 과정을 거치면 이 그림을 이해할 수 있겠구나’라는 걸 알게 해주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학생들이 이미지가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의미를 만들어내는가를 이해하면, 이미지의 시대인 현재를 살아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거에요.”


미술은 역사의 산물

작품 해석에 있어서 역사적 배경을 중시하는 데에는 그의 미술에 대한관점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소개팅 할래?’물었을 때‘그래 좋아. 어떤 앤데?’하죠. 그런데 ‘미대 다녀.’이러면‘어?’약간 망설여지는 거 있잖아요. 이상한 사람일 것 같은 생각이 들죠, 종종. 미술가라고 하면 뭔가 자기 스튜디오에 혼자 틀어박혀서 자기만의 영역, 세계를 자유롭게 풀어내는 사람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러나 미술가가 그렇게 된 건 정말 최근의 일이에요. 미술가는 언제나 사회의 일원이었어요. 그리고 미술가가 만들어 내는 것 은 어떤 한 사회를 반영하는, 그 사회의 생산물이에요. 그러니까 그것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물론 창의적이고 주관적인 해석도 가능하죠. 하지만 당시 어떤 사회였고 그 주제가 당시에 어떤 의미를 가졌으며, 미술가가 어떻게 훈련을 받았고 그의 성장 배경은 어땠는지, 이런 것들이 늘 중요해요. 미술은 한 개인의 아무런 근거 없는 상상력에서 나오는 게 아니에요. 미술은 틀림없이 그 시대와 역사의 산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미술이 갖는 매력이 뭐냐는 질문에 그는“그냥 매력 있잖아요.”라고 답한다. 그는 현대의 작품들에서 작가가 가진 첨예한 사회적 의식을 보며 감동을 받는다. 그와 동시에 과거의 그림들에서는 평온한 아름다움에 매혹된다.


책 발간의 동기가 된 스승

사실 미술사학자로서 그의 전문 분야는 1960년 이후의 현대 미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18·19세기 미술에 대한 책인《명작, 역사를 만나다》를 쓰게 된 것은 그가 대학원에서 만난 한 교수의 가르침에 기인한다. 그가 로스앤젤레스의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미술사학과 대학원에 재학 중이었을 때, 특히 그 시기를 열심히 연구하던 알버트 보임이라는 교수가 있었다. 그의 지도교수는 아니었지만, 에너지가 넘치고 학생들을 아끼며 미술을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그때 보임은 60대 할아버지였지만, 300여 명이 가득 들어찬 대형 강의실에서 마이크가 고장 나도 별 탈 없이 강의를 마칠 수 있는 열정과 활기, 그리고 깜짝 놀랄 만큼 큰 목소리를 가진 교수였다. 학자로서 열정이 넘쳐 보이는 보임의 모습이 그는 몹시 존경스러웠다.

  보임은 20년 동안 유럽의 근대 미술을 치밀하게 연구하며, 미술과 역사를 바라보는 방식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그 이전까지 미술사의 주류는 작품의‘양식’을 분석하고‘미’를 논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보임은 정치적 사건과 경제 구조의 변화, 계급 인식의 발생과 인종 및 성별의 차이에 대한 대중적 인식 등을 입체적으로 고려한‘사회적 미술사’를 시도했다. 보임의 미술사가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이런 방법론은 결코‘표준’이 아니었으나 지금은 그의 미술사가‘표준’이다.

  교수님도 그런 세상을 바꾸는 미술학자가 되려는 것이냐고 묻자, 그는 웃으면서“난 공대생만 바꿔도 돼요. 그러면 세상이 바뀔 거야.”라고 했다.“만약에 미술사를 전공하는 학생들을 가르친다면 그런 생각을 안 했겠지만, 공대생들을 가르쳐 보면‘아, 정말로 큰 벽이 있었구나.’하죠.”


난해한 그림도 현실을 반영 한다

그가 강연에서 보여 준 신고전주의 시기의 그림들은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을 중심으로 한 작품들로, 그의 말대로 한 사회의 일면을 반영하는 것 들이었다. 그러나 사실 요즘에는 작가가 아닐 경우 이해하기 어려운 추상화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는 현대의 추상화 역시 결국은 시대적인 요소라고 말한다. "그것은 이해할 수 없는 오늘날 우리 사회를 반영하죠. 화가들이 어떤 새로운 시도를 하며 어떤 방식으로 의미를 전달하고 어떤 매체를 쓰는지를 공부하면, 그것이 그 시대를 반영한다는 걸 알 수 있어요. 현대미술 강의도 많이 했지만 강의가 끝나면 강의를 들은 분들이 화를 내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르겠다고. 그러나 제가 정말 확신을 가지고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그것은 이 시대에 나올 수밖에 없는 어떤 형태라는 것입니다.”

 “현대 미술은 여러 가지 이슈를 담고 있죠. 여러 가지 사회적·정치적인 문제를 담거나, 단순히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해요. 여전히 사회와 아주 밀접한, 사회의 어떤 산물이지 미술이라고 해서 고고한 심미적 영역이라 하는 건 절대 아니라고 생각해요.”


미술은‘외국어로 된 소설책’

이제 우리는 주변에서도 손쉽게 미술을 접할 수 있다. 그런데 그는 우리가 별 어려움 없이 마주치는 그 미술작품도‘아는 만큼 보인다.’라고말했다. 그림도 모르고 보면 무의미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미술이란 기본적으로 눈에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런 사전 준비를 하지 않고 그냥 바라만 봐도 그것이 나에게 감동을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현대미술의 경우‘작품을 오랫동안 보고 있으면 감동을 받겠지.’하고 그 앞에 하염없이 서 있기도 한다. 하지만 1분이 지나고 2분이 지나도 감동이 오지 않는다. 그러면 대체로 자기 자신을 탓한다. '그럼 그렇지 내가 무식하니까.’아니면‘뭐 이런 것을 작품이라고 만들었어.’라며 작가를 탓한다. 그는 미술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학생들을 위해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남긴다.

 “저는 미술은 외국어로 된 소설책이라고 생각해요. 외국어로 된 소설책을 읽으려면 외국어를 배워야 되잖아요? 알파벳부터 차근차근 배운 다음에 읽겠죠. 읽고 나면 내용이 눈에 들어와요. 이 소설가가 어떤 사람인가, 시대가 어땠는가를 알면 더 깊이 이해하고 더 많은 감동을 받겠죠. 미술도 마찬가지에요. 어떤 작가들이 있고 어떤 식으로 그림을 그리고 이 그림이 당시 무슨 의미를 가졌는가를 외국어 배우는 것처럼 차근차근 배워야 이해할 수 있는 것이지, 단지 눈에 보인다는 이유로 거기에 내가 가만히 있어서 나에게 감동을 주겠거니 하면 전혀 아무 일도 안 일어납니다. 저에게도 아무 것도 안 일어나요. 그래서 저도 공부 열심히 하거든요. 그러니까 여러분, 공부하셔야 돼요!”

도미경 기자 ehalrud@ss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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