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영이의 독후감 :《도가니》를 읽고

  안개의 도시인 무진에서 안개 속에 가려진 것처럼 드러나지 않았던 진실과 그 속에서 묻혀가는 소리 없는 아이들의 절규. 폭력의 도가니 속에서 상처 입는 아이들.


  이 소설을 읽고 가장 먼저 느낀 것은 분노였다. 아마 이 책을 읽은 모든 사람들이 가장 먼저 분노를 느꼈을 것이다.


  광주 인화학교에서 실제로 있었던 성폭력 사건을 다룬 이 소설은 실제 있었던 사건의 일부에 불과한 이야기라고 한다. 가벼운 마음으로 이 소설을 읽기 시작했던 나는 책을 읽고 나서 순수한 눈망울을 가진 연두와 유리의 공포와 치욕을 생각하며 분노와 함께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 아이들이 특별한 아이들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이들이라는 점에서 그 분노와 부끄러움은 더욱 커졌다.


  실제로 나는 1학년 2학기 때 국제 장애인 축제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장애를 가진 학생들을 만났었다. 자원봉사자 가운데는 스펙이나 인맥을 관리하기 위해 온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 아이들은 호루라기펜 하나에도 감사해하며 얼굴이 붉어질 만큼 순수하였다. 그런데 그런 순수한 아이들에게 손을댄소설속무진의 더러운 연고주의와 어른들의 추악한 욕망은 그 무엇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이 큰 사건이 밝혀지게 된 것은 강인호의 작은 호기심, 혹은 관심 때문이었다. 우리는 이 일의 책임을 이기적이고 더러운 욕망을 지닌 사람들에게만 돌리지만, 사실 그 상황 속에서 아이들을 가장 궁지에 몰아 넣었던 것은 우리의 무관심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제 곧 사회에 진출하게 될 내가 얼마나 많은 부당한 일들을 보게 될 것인지, 나도 어느새 내 주변의 부당한 일들에 대해 눈감고 못 본 척 하게 될 것인지 두렵기도 했다.


  책 속에서 무진을 떠났던 강인호와 남아 있던 서유진은 ‘나에게 정신 바짝 차려라. 세상은 그렇게 아름답지도, 만만하지도 않아.’라고 말해 주는 것 같아서 낭만적이고 평화로운, 그렇게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있었던 나의 속마음을 그들에게 들킨 기분이 들었다.


박현영 (독어독문과·3)

 

 

박현영 학생에 대한 멘토평

  이 소설은 인화학교에서 실제로 있었던 사건을 소재로 한 것이다. 당시 인화학교의 교장과 교직원들이 청각장애를 가진 학생들에게 성폭력을 행사하는 등 온갖 종류의 비리를 저지르고 있었음이 드러났지만, 이들은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고 사건은 빠르게 잊혀지고 말았다. 그러나 공지영은 이 사건을 소설로 재구성해냄으로써 대중들의 공분을 불러 일으켰으며, 주요 인물이 구속되고 학교가 폐쇄되는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


  이 소설의 문학적 완성도에 대해서는 사실 그렇게 긍정적인 평가를 할 수만은 없다. 그러나 현영 양이 잘 기술하고 있는 것처럼 이 소설은 독자들에게 분노와 부끄러움을 느끼게 한다. 이런 점에서 이 소설이 그 어떤 문학 작품보다 소중한 가치를 가졌다고 생각한다. 문학은 보통 사람들이 미처 몰랐던 세상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 하지만, 눈감기 쉬운 사회의 부조리와 인간의 추악함에 대해서도 당당히 이야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조리와 추악함에 대한 고발이 실제로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대중들의 분노가 공분(公憤)으로 조직화돼야 한다. 사회학자 밀즈(W. Mills)는 국가나 언론에서 제공하는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는 ‘대중(the mass)’과 적극적인 비판과 토론을 통해 스스로의 의견을 형성하며 실천하는 ‘공중(the public)’을 구분했다. 너무나도 명백한 소설 속 부정과 비리가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던 근본 이유는 이에 대한 분노가 대중들의 개인적 분노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차원의 분노는 당사자의 마음을 잠시 흔들어 놓을 수는 있겠지만, 곧 무력화되고 만다. 그러나 이것이 공분으로 조직화되면 세상을 변화시키게 된다. 현영 양의 고백처럼, 앞으로 많은 부당한 일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현영 양이 이러한 일들에 대해 분노하고, 공분으로 조직화해내기 위해 노력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세상이 현영 양 덕분에 더 좋아졌다는 소식을 듣게 되기를 바란다.


백병부 (베어드학부대학 학사지도교수)

저작권자 © 숭대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