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월) 본교 한국기독교박물관에서는 <서양인이 본 근대전환기의 한국·한국인>이라는 특별전이 열렸다. 이 특별전에서는 서양인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근대전환기의 한국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데, 이 희귀 자료들은 한 개인이 기증한 자료다. 35년 동안 모은 675점의 자료들을 기증한 강정훈 전 조달청장. 그가 젊었을 시절부터 자료들을 모아 기증하게 된 사연을 들어봤다.

오래된 책, 신문, 편지 등 정말 이 많은 자료들을 어떻게 모았습니까?
 평생을 정부 공직에서 근무 했습니다. 주된 업무가 무역과 관계된 일이었기 때문에 외국에 많이 나갈 수 있었어요. 당시에는 주머니 사정 때문에 외국에 나가도 갈 때가 없다보니 저는 주로 헌책방을 갔습니다. 지금은 수요가 많아져 고서들의 가격이 올랐지만, 당시에는 가격이 저렴한 편이었어요. 찾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거든요. 헌책이 당시 가격으로 2~3달러 정도했죠.
 미국에 나가서 4년 동안 현장에서 근무하게 됐을 때 일입니다. 당시 미국에는 마을이나 도시마다 공공도서관이 많았어요. 도서관에 새로운 책들이 많이 들어오게 되면, 모든 책들을 보관할 수 없기 때문에 오래되고 수요가 없는 책들을 판매합니다. 그래서 그 수익을 추수감사절 때 축제를 벌이는 비용으로 쓰는데, 그 때 제가 “나는 1920년 이전의 한국 자료들을 수집하는 학자다. 파는 것이 있으면 나한테 알려 달라. 내가 방문하겠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이메일이 없던 시절, 그곳에서 편지로 저에게 알려줬죠. 무슨 책들이 있고, 그 책들의 값이 얼마인지를 말이죠. 그 목록들을 보며, 책들을 구입했어요. 그렇게 거의 35년을 모았어요. 주로 미국이나 유럽을 다니면서요.

 특별한 계기 없이는 이렇게 많은 책들을 수집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 같은데, 책을 모으게 된 동기가 궁금합니다.
 제가 대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우리나라의 양화진을 방문했어요. 저희 집은 할아버지 세대부터 기독교 집안이어서, 저도 ‘선교사의 묘지를 한 번 가보자.’라는 마음으로 방문했죠. 당시에는 버스비도 없고, 그냥 걸어서 갔어요. 한 시간이 넘게 걸렸죠.
 그곳에는 우리나라를 방문했던 초기 선교사 분들이 묻혀 있습니다. 하나의 성지인 것이죠. 지금은 그래도 아주 잘 관리가 되고 있지만, 제가 처음 방문했던 대학교 2학년 당시까지만 해도 아주 초라했습니다. 잡초도 무성하고, 가슴 아플 정도로 초라했죠.
 우리나라가 이렇게 발전하게 된 이유에는 물론 국민들의 우수함도 가장 크지만 그들이 일찍이 서양의 문물을 전해준 것도 큰 영향을 줬다고 생각해요. 그분들의 희생이 우리나라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는데, 초라한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팠죠.
 그래서 그분들을 보면서 ‘이분들이 쓴 책을 모아야 겠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때부터 책을 모으게 됐죠. 그 이후로도 양화진에는 수십번도 더 다녀왔죠.

 헌책들을 수집하다보면, 아무래도 어려운 점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 당시에도 정말 참 좋은 책 귀한 책들도 만났는데, 제 주머니 사정 때문에 100달러가 넘으면 감히 사지를 못했어요. 당시 돈으로 100달러면 큰 돈이죠. ‘Krean Games(한국의 놀이들)'이란 책은 제가 1985년 당시 500달러하는 가격을 450달러까지 깎아 놓고도 주머니 사정 때문에 도저히 살 수가 없던 책이었죠. 나중에 구하려고 했지만 백방 쫓아다녀도 결국 구하지 못했어요.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아요. 제가 가슴 아팠던 것은 너무 좋아하는 책들을 주머니 사정 때문에 사지 못한 것이거든요. 그렇게 구입하지 못한 책들은 영원히 만날 수 없죠.

 책을 구입할 당시에도 책의 가치를 모두 알아보고 구입했습니까?
 우리나라의 헌 책들은 2000년대 들어와서부터 사람들이 찾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제가 책을 사던 당시에는 외국서점에서 1890년대에 쓰여진 우리나라 책값이 5~20달러 정도했어요. 반면 동시대에 쓰여진 이웃나라 중국의 책은 50달러정도였어요. 일본의 책은 100달러가 넘었죠. 우리나라 책이 일본 사람들이 쓴 책보다 10분의 1의 가격도 안된거죠. 아무래도 당시에는 우리나라가 구민 저술서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그것을 찾는 사람이 없었으니 책이 저렴할 수 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2000년 이후로 어느 한 기업에서 대학에 해마다 막대한 돈을 투자해, 책 수집하는 비용으로 지원한 거예요. 그 때부터 책값이 올랐어요. 외국 서점 주인이 그러더라고요. “미스터 강, 옛날하고 다르다. 찾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중국일본보다 우리 책이 더 비싸졌다.”

 어려운 주머니 사정 속에서도 힘들게 돌아다니시며 35년을 모아온 책들이면, 삶의 일부가 됐을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는 책의 가치 이상으로 귀한 자료들일 것 같은데, 이를 우리학교에 기증하시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물론 오랫동안 수집을 해왔으니 책들을 많이 애지중지했죠. 책이 변질될까봐 방에는 불도 떼지 못하고, 양이 많다보니 사무실과 집에 분산 보관을 했죠. 너무 애지중지하다보니 친구가 와도 방에 들어와보지 못하게 했어요.
 그런데 제가 작년에 70세가 됐습니다. 칠순 때인데, 가족들이랑 저녁을 먹으면서 ‘칠순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했죠. 그리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제 짐을 내려놓을 시기다. 내가 갖고 있는 것, 정말 애지중지하던 것을 이제는 내려놓고 학문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좋은 곳으로 시집을 보내야겠다.’
 그 때부터 어디에 이 책들을 보낼지 고민을 했어요. 어떤 신학교에서도 요청이 왔고, 다른 대학에서도 요청이 들어왔죠. 그런데 제가 갖고 있는 우리나라 책의 반 이상이 교회사와 관련된 기독교 서적이에요. 우리나라 박물관 중에서 기독교박물관이라고 이름 지은 곳은 숭실대학교밖에 없었거든요. 또 제가 장로로 있는 교회를 세운 이태준 목사님이 평양숭실을 나왔어요. 그 분이 당시에  자랑을 많이 하셨죠. 그리고 한국기독교박물관장을 역임하고, 퇴직한 사학과 유영렬 교수가 저의 가까운 친구에요. 그 친구가 저에게 자료가 있는 것을 알고, 그 때부터 얘기를 했어요. 여러 가지를 생각해봤을 때, 기독교 자료를 가장 가치 있게 활용하고 연구하며, 학계에 기여할 수 있는 곳이 이곳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도 반 평생을 모아온 자료이다 보니 섭섭한 마음도 많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
 아들 딸, 시집 장가 보내고 나서는 수집한 책들을 보는 재미로 살았어요. 가만히 책들을 들여다보면, 마치 자고 있는 자식들의 얼굴 같거든요. 모은 자료들을 내고 나면 섭섭한 마음이 든다고 하더라고요. 물론 앞으로도 그런 허전한 마음이 생기겠죠. 그래도 딸을 좋은 집으로 시집보낸다는 마음으로 기증했으니 괜찮습니다.(웃음)

 여기 있는 자료들 모두 애착이 가겠지만, 혹시 가장 애착이 가는 자료가 있으십니까?
 네 있습니다. 바로 뉴욕 어느 고서점에서 구입한 《A CORN OF WHEAT(한알의 밀알)》이란 책입니다. 처음엔 귀한 책인지 모르고 구입했는데, 읽어볼수록 책의 가치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 가장 먼저 세워진 소래교회의 초대 목사, 매켄지 목사의 이야기를 적은 책입니다. 매켄지 목사는 한국에 와서 선교를 하다가 병으로 인해 정신착란증을 앓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요. 그에게는 배우자가 될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매컬리 부인이에요. 남편이 될 사람이 한국에 선교하러 가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에 굉장히 마음이 아팠겠죠. 그래서 매컬리 부인은 한국으로 와서 소래교회의 사진을 담고, 그와 함께 주고 받았던 편지를 엮어 책으로 만듭니다. 그게 바로 이 책이에요. 내용들을 읽어보면 정말 매켄지 목사라는 분이 훌륭한 분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기독교 부흥운동인 평양대부흥운동의 기폭제가 된 일이 바로 원산부흥회운동입니다. 이것은 캐나다 선교사들에 의해 일어났는데, 여기에 매컬리 부인도 포함됐죠. 그런데 매컬리 부인은 매켄지 목사의 영향을 받았으니, 그야말로 매켄지 목사는 성경에 나오는 ‘하나의 밀알’ 같은 분이시죠. 그래서 제가 책을 보관하던 화실의 이름도 ‘매켄지 홀’이라 지었어요.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십니까?
 그 나라의 향토색이 있는 책은 중요합니다. 우리나라에는 그런 것들이 너무너무 많은데 사람들이 값어치를 잘 몰라요. 외국인들과 생활을 하면서 만나보면 그 사람들은 문화에 대한 애착이 많아요. 그래서 수집하는 것도 굉장히 많죠. 예컨대 수집하는 종류로는 책도 있고, 동전도 있고, 심지어 오리 그림이나, 오리 모형을 수집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런데 그 사람이 말하기를 “오리 수집품 중 최고품질이 한국 오리”라고 말하더라고요. 결혼 할 때의 한 쌍의 원앙을 말한 것이더라고요.
 또 미국 버지니아에 가면 담배 박물관이 있어요. 그곳 가운데에 가면 최고로 유명한 물건을 전시한 곳에는 한국의 장죽이 전시돼 있어요. 은실을 대나무에 파가지고 그림을 그렸는데, 담뱃대가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어요. 우리나라 문화 수준이 굉장히 높은 것이죠. 지금은 K-POP이 인기를 얻고 있는 것처럼, 한국의 민족 안에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성질이 있는 것 같아요.
 사업을 하든, 공직을 하든, 교직에 서든 가장 중요한 것은 문화적인 소양을 기르는 것이에요. 이제 문화의 시대잖습니까. 정보의 시대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문화가 앞장서지 않으면 가치는 없습니다. 기능도 좋지만 아름다움도 있어야하고, 그 안에는 이야기가 있어야 해요. 한국의 것들은 이야기가 많아요. 학생들이 한국의 이야기를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그의 기증자료가 전시돼 있는 박물관 한 곳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벽안의 외국인이 왜 양화진에 잠들어 있을까. 책을 찾아 긴 여행을 떠날 때마다 나는 생각하며 묻는다.’ 35년 간 생각했던 질문의 답이 이곳 기독교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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