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人文學)은 어떤 학문일까요? 우선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우리 ‘인문학’하면 떠오르는 단어나 구절들을나열해 봅시다. 철학·문학·문과·역사·시, 솔직히 돈이 안 되는 학문, 취업하기 어려운 학과, 말 장난, 추상적인 학문, 학생들이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전공하기에는 좀 그런 학문, 실용성 떨어지는 학문 등등이 지금의 대학생들이 가장 흔히 대답하는 것들입니다. 이런 단어나 구절들이 지니는 의미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인문학이 많은 이미지를 동반하는 학문임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사실 IMF 이후 우리나라에서 인문학은‘위기’와‘열풍’이라는 두 단어를 통해 세간의 사람들과 친숙해진 것 같습니다. 어떤 이들은 인문학이 실용중심 시대에 생존하기 힘든 학문이기에 위기에 처했다고 진단하면서, 그것을 당연한 시대적 흐름으로 해석합니다. 반면 얼마 전에 우리를 떠난 스티브 잡스(Steve Jobs)의 영향 때문인지 몰라도, 어떤 이들은 인문학이 창의성 시대에 꼭 필요한 학문으로 인문학 관련 서적과 강좌가 요즘의 대세라고 평가합니다. 인문학만큼 동시대에‘위기’와‘열풍’이라는 상반된 평가를 동반하면서 우리와 마주한 풍운아 같은 학문도 드물어 보입니다. 어쩌면 이러한 상반된 평가가 우리로 하여금 인문학을 만나 보고 싶게 하는 동기인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사전에 의하면 인문학은 인간의 조건에 관해 탐구하는 학문입니다. 전통적으로 인문학은 문·사·철(문학·역사·철학)로 대표되지만 고고학·신학·언어학·종교학·여성학·예술과 같은 영역들도 넓게는 인문학에 포함됩니다. 여기서 저는 다음과 같은 의문점을 제기해 봅니다. 의학이나 생물학, 자연학, 일련의 사회과학들도 인간의 조건을 탐구하거나 연구하고 있는데, 왜 그것들은 인문학 영역에 포섭되지 않을까요? 아마 그것은 인간의 조건을 탐구하는 방법적 차이에 있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후자의학문들은 비판적이거나 사변적인 방법보다는 실험적이고 실증적인 방법을 더 많이 사용하는 학문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우리는 인간의 조건에 관한 탐구방법에 차이를 고려하여, 인문학을 비판과 사변, 즉 경험보다는 순수하게 생각이나 이성의 작용으로 어떤 앎을 얻으려는 방법을 주로 사용해 인간의 조건을 탐구하려는 학문적 태도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인문학의 정의에 대한 또 다른 궁금증이 있습니다. 과연 여기서 말하는“인간의 조건(human condition)”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여러분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우선“인간의 조건”은 우리말로 정리해 보면“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으로 이해해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인간의 조건은 다양한 해석들을 동반합니다. 예를 들어 인간의 조건이 인간의 외형적 조건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생물학적 조건을 말하는 것인지, 인간의 내면적 조건을 말하는 것인지 참 난해해 보입니다. 하지만 이런 다양한 해석과 입장들도 하나같이 세상 만물과 달리 오직 인간만이 가지는 어떤 독특한 특징을 찾으려는 시도들입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논의된 내용으로 인문학이 어떤 학문인지를 정리해 보면, 인문학은 인간이 사변이나 생각의 방법을 중심으로 인간만이 가지는 어떤 독특한 특징을 찾으려는 학문이라 이해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인지 이미 독일의 철학자 칸트(I. Kant)는“인간의 모든 문제는 인간에 대한 연구로 귀착되고, 인간에 대한 연구가 철학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인문학을 대표하는 철학에서도 다른 존재에 비해 인간만이 가지는 어떤 독특한 특징을 찾으려는 시도와 노력이 있었습니다. 저보다 먼저 인문학과 철학을 공부한 막스 셀러(Max Scheler)는 인간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철학적 인간학’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우주의 생명체들을 네 가지 단계로 분석합니다. 그중 가장 기본적인 단계가‘감정 충동’입니다. 이것은 움직일 줄 모르는 식물까지도 지니고 있으며, 우리 인간 심리 밑바탕에서 도사리고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 단계는‘본능’입니다. 이것은 물론 하등 동물의 본질을 이루는 것이지만 우리 인간들도 예외 없이 가지고 있습니다. 다음 단계는‘습관적 동작’이나‘연상되는 기억’입니다. 이것은 여러 번 반복된 동작에 의해 서서히 정착되어가는 행동 양식을 말합니다. 이것도 고등 동물과 인간에게 있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있는 독특한 특징을 막스 셀러는 마지막 단계인 실천의 단계에서 서술합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정신 내부의‘인격’에 초점을 맞추어어떤 사건안에서 선(善)과 악(惡)을 자유롭게 선택하는 존재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우주에 있어서 인간의 지위≫라는 막스 셀러의 책에서 가장 가슴에 두고 있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것은“인간은 우주 만물들 중에 약속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라는 구절입니다. 약속은 자신이 힘겨워하는 일을 자신에게 강요할 수 있는 일입니다.좀더생각해 보면 우리는약속 안에 살고 있습니다. 좁게는 강의시간도, 학교의 학사 일정도, 마음의 다짐들도 약속을 근본으로 합니다.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법도 넓게는 약속이며, 성경도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약속입니다. 여러분도 약속을 소중하게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왜냐하면 약속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특징들 중에 하나니 말입니다. 이제 앞의 두 인체비례도에 대한 이야기로 강의를 마무리하겠습니다. 그림 A는 세자리아노가 완벽한 원과 정사각형을 먼저 그린 후에 그 안에 인간을 그려 넣은 인체비례도입니다. 하지만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림 B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균형 있는 인간을 먼저 그린 후 그 안에서 완벽한 원과 정사각형을 찾았다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인간을 아는 것이 우선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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