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을 위한 심리치유센터‘와락’을 다녀오다

  ‘쌍용자동차(이하 쌍용차) 노조 파업’‘77일간의 투쟁’‘22명의 쌍용 노동자 희생’‘폭력과 상처로 물든 권리’지난 2009년에 일어난 쌍용차 사태가 벌써 3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해고 노동자와 그들의 가족들은 여전히 아물지 않은 상처와 아픔을 안은 채 살아가고 있다. 그런 그들을‘와락’끌어안아 주는 곳, ‘와락’에 다녀왔다. 편집자

 

‘형, 여기 천국 같아.’
   "우리 엄마가 그랬는데 세상이 우리를 속이고 있대요."고무 찰흙 놀이를 하던 다섯 살 남짓의 아이가 옆에 있던 한 여성 조합원에게 말했다. 어머니로 보이는 조합원은 당황해 “별소리를 다 하네. 다 속이는 건 아니야.”라고 말했다. 어느 누가 들어도 그 나이대 아이의 입에서 나올 만한 말은 아니다. 이곳은 쌍용차 해고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심리 치유를 위해 설립된‘와락’이다. 와락에서는 해고 노동자의 배우자들이 조합원으로서 일하고 있다. 정혜신 정신과 박사가 주도해 시작된 집단 상담은 현재 4기까지 진행됐다. 그들을 부모로 둔 미취학 아동이나 초등학교 저학년의 아이들은 와락을‘천국’이라 부르며 와락에서 뛰어논다. “한번은 어떤 아빠가 자녀 셋을 데리고 왔는데 장난감도, 먹을 것도, 밥도 , 맛있는 반찬도 많으니깐 이 꼬마가 자기 형한테 ‘형, 진짜 여기 천국 같아.’이러는 거예요.”권지영 와락 대표는“단 한 명이라도 집에서 재미없고 불행하고 힘든 아이가 여기 와서 여기를 천국 같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으로 와락의 소임을 다 했다고 생각하거든요.”라고 말한다. 이처럼 ‘천국’에서 뛰노는 천진난만하고 해맑은 아이들도, 그들의 부모님들과 마찬가지로 쌍용차 파업의 목격자이자 희생자이다.

도움의 손길들이 모여 생긴‘와락’
  해고 노동자, 그 모습을 지켜보는 아내와 아이들, 가족 구성원 모두가 힘들고 지쳐 있었다. 파업의 후유증은 △우울증△무기력 △정신적 트라우마, 심하게는‘가족 해체’라는 극단적 상황에까지 치닫게 했다. 시간이 약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조금씩 사라질 시기에‘와락’이 개소됐다. 당시‘가족대표위원회’대표직을 맡았던 현‘와락’권지영 센터장은 이렇게 전했다. “힘들고 지쳐 갈 때, 정혜신 박사라는 분이 전화를 주셨어요. 늦게 연락해서 미안하다며 심리 치료의 도움의 손길을 내 주셨어요. 그렇게 상담을 시작하면서 덧나고 있던 각 가정의 문제들이 겉으로 드러나기 시작했고, 힘을 모으기 시작했죠. 우선 치유할‘공간’을 만드는 것이 필요했어요. 그 당시만 해도 길거리 바닥이나 시청 앞 바닥에 모여 앉아 모임을 갖는 것이 전부였으니까요. 그렇게 정혜신 박사님을 시작으로 하나 둘 도움의 손길들이 모여‘와락’이라는 기댈 수 있는 공간이 생겼죠.”

‘도움 받는 사람에서 도움 주는 사람으로’
  '와락'공동체에는 센터장을 비롯해 교사들 모두가 조합원이다. 처음에는 상처와 아픔을 안고 시작했지만, 이제는 누구보다 서로의 마음을 잘 알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교사가 되어 해고 노동자와 가족들의 회복을 위해 힘쓰고 있다. ‘와락’센터 조은영 교사는 1기 집단 상담 치료 참가자다. 그는 해고 노동자의 아내로 그의 남편이 진압 과정에서 부상을 입어 병원에 입원하기까지 힘든 시기를 보내야만 했다. 그는 해고 통지서가 배달된 2009년 어버이 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울먹였다. “그날이면 부모님한테 안부를 전해드리고 편지도 쓰고, 내 아이들에게는 어버이로서 대우도 받고. 근데 그건 고의적으로 했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그리고2009년 5월 22일(금), 사측에서는 용역업체를 고용해 파업을 억누르려 했다. 노동자들의 고용주인 회사측에서 매수한 용역업체와 노조 간 충돌에서 부상자가 발생했다. 조씨는 말했다. “직원 유니폼 입혀서 마치 직원들인 것처럼 내세운 거죠. 근데 다 깡패들이었죠. 제 남편은 내세우지도 못해요. 소화기에 맞아 이가 16갠가 20개인가가 부러진 분도 있어요.”

‘와락에는 와~樂!이 있다.’
  '와락'에는 해고 노동자와 그의 아내들을 위한 집단 상담 치유 프로그램과 함께 아이들을 위한 치유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다. 화·수·목, 주 3번의 놀이치료와 정밀검사를 통해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함께하는 심리치료, 그리고 재능기부를 하는 자원봉사자와 함께하는 음악치료 등의 프로그램이 제공된다. 치료뿐만 아니라 단순한 특기 배우기, 요리교실 등도 있다. 또한 기부를 통해 받은 많은 책과 장난감들로 이뤄진 공간은 아이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곳이다. 해고 노동자 아이들을 위해 이곳에서 3년째 자원봉사를 해오고 있다는 정혜은 씨는 2009년 파업 당시에도 공장 안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봉사를 하며 아이들과 늘 함께해 왔다.‘와락’개소 이후에는 자신의 국악 전공을 살려서 난타·전래동화를 통한 놀이치료를 진행하고 있다. 와락은 시민들의 기부가 끊이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와락’이 처음 문을 열 때, 고문 피해자 모임인‘진실의 힘’에서는 국가에서 받은 손해배상금 2000만 원을 기부했다. 유준상 씨나 김제동 씨 같은 유명 연예인들도 사비로 기부금을 전하며 활동을 후원했다. ‘와락’의 국악강사 정 씨는“악기를 사려고 하는데 너무 비싼 거예요. 언젠가 평택에 김제동씨가 오셨어요. 편지를 써서 도움을 요청했는데 정확히 1주일 후에 돈을 보내 주셨어요. 그래서 그 돈을 가지고‘톤차임’이라는 악기를 샀어요.”라고 말했다. 이 외에도 3000여명이 넘는 시민들이 2억 원을 기탁했다. 심리치료·미술·음악 등에서 전문성을 갖춘 이들이‘와락’을 위해서 자원봉사를 한다. 재능기부가 아닌 물품을 직접 보내 오는 이들도 있다. 방문한 23일(수)에도‘와락’에는 어떤 시민이 보낸 이불과 옷가지가한 꾸러미가넘었다.

 

우리가 끌어안아 줘야 할 과제…
  그러나 아직도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은 미비하다. 2012년 평택시 예산에 편성은 됐지만, 아직 시의원들의 동의를 얻지 못하는 상황이어서 집행되고 있지 않는 상황이다. 기존의 지원 받는 지원금마저시보건소를 거쳐서 들어오기 때문에 많은 지원금을 확보하지 못한다. ‘데모꾼·빨갱이’라는 이미지 또한 이들을 힘들게 한다. 특히 쌍용자동차 회사의 입지가 굳은 시의 분위기 속에서 쌍용 해고자 노조에게 지원금을 지급하는 것이‘특혜’라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이 때문에 시에서도 주변 상황을 의식해 적극적인 지원을 해주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쌍용차 지부 비정규직 지회장 서맹섭 씨는“‘와락’이라는 공간을 통해 어느 정도 심리적 치유는 돼 가고 있지만, 이제는 좀 더 현실적이고 장기적인 해결책이 나와야 할 때입니다. 쌍용자동차 사측은 우리 노조와 합의한 조항을 신속히 이행하고, 정부는 나 몰라라식의 대처보다 적극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속히 나서 줄 것을 바랍니다.”라고 전했다. ‘와락’을 나설 때쯤 난타 수업이 시작됐다. 아이들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함께 박자를 맞췄다. 어린 아이들이지만 모두 박자를 맞추며 하나가 됐다. 모두 함께 웃으며 살 수 있는 세상을 아이들은 북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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