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 접어든 지 어느덧 10년도 더 지난 지금, 우리 사회는‘문맹률’이란 단어가 생소하리만치 거의 모든 국민이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미국의 대통령조차 부러워 마지않는 문명국가가 된 지 오랩니다. ‘국민’의 범주에 굳이 성인만 포함시킬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요즘엔 유치원에 다니는 꼬마 아이들도 글을 읽는 것을 별로 대수롭게 여기지 않을 정도니 말이죠. 하물며 이런 문명국가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여러분은 어떨까요? 특정 외국어를‘제2의 모국어’로 삼자는 궤변이 나돌았을 정도로, 이젠 자국어뿐만 아니라 외국어까지 그 문맹률을 0%로 만들려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많이들 피곤해하시리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어느 책《( 호모 코레아니쿠스》, 진중권, 웅진)을 뒤적이다 뒤통수를 맞은 듯한 충격을 경험했더랬습니다. 그 구절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문맹률은 거의 1% 이하인데, 문서의 해독능력을 판가름하는‘실질적’문맹률은 우리나라를 부러워하는 선진국들에 비해 훨씬 높은 것(허걱! 약 34%)으로 나왔습니다. 더군다나“대학을 졸업한 고학력자들의 문서 독해 능력을 비교하는 점수 역시, 조사 대상국인 22개국 중 꼴찌였다.”고 합니다. 이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립니까? 세계 최저의 문맹률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에서, 자국어에 그치지 않고 외국어까지 유창하게 하는 게 당연한 이곳에서, 여러분의 문서 독해 능력이 형편없다는 게 말이 됩니까?


  ‘분명 조사 대상자들이나 조사 방법에 오류가 있겠쥐’라고 생각하던 찰나 이런 생각이 뇌리를 스쳤습니다. 어릴 때부터 스스로 책을 읽고 생각하는 데 익숙해지기보다 부모의 강요로 책 읽는 흉내만 내봤던 사람이라면, 학교에 들어가 스스로 무언가를 배우고 느끼기도 전에 사교육에 길들여져 학원 선생님이‘떠먹여 준’요점 정리만 쏙쏙 빼먹은 사람이라면, 질풍노도의 시기에 읽을 법한 양서를 손에 쥐기보다 참고서를 통해 누군가가 정리해 준 내용만 달달 외운 사람이라면, 글자 속에 담긴 의미를 파악하고 그 의미를 곱씹으며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우리가 자랑하는 세계 최저 문맹률은 단순히‘가나다라’를 소리 내어 읽을수있음을 보여 주는것일 뿐‘가나다라’에 담긴 의미와 가치를 읽어 낼 수 있음을 보여 주는 게 아님을 말입니다.


  이러한 깨달음은 제가‘명저 읽기’첫 수업 때 여러분께 강조하면서 말씀드린 바에 그대로 녹아 있습니다. 어떤 글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하게 글에 포함된 문자들을 읽어 내는 것이 아니라, 그 글을 이해하려는 의도를 지닌 행위라고 했었지요. 여기서‘이해한다’는 말은‘무슨 뜻인지 안다’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 뜻을 되새겨 자기 것으로 만들고 궁극적으로는 자기만의 뜻을 표출하는 데까지 이르러야 진정으로 무엇인가를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과정에는 글을 비판적으로 읽고 사고하는 능력은 필수입니다. 여하튼 간략히 표현하자면, 타인의 생각과 그 결과물을 바탕으로 자신의 생각과 그 결과물을 내놓는 것이죠. 따라서 명저를 읽는 것은 고리타분한 책 ─명저란 단순히 옛날에 쓰인 훌륭한 책, 즉‘고전’만 의미하는 게 아님을 분명히 밝힙니다. 책이 쓰인 시기를 막론하고 오늘날 많은 이들에게 유의미한 가치를 줄 수 있다면‘명저’라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을 통한 지식쌓기가 아니라 책 속에 담긴 의미와 가치를 지금 내 삶 속에 적극적으로 투영하려는 노력인 것입니다.


  하지만 화려한 이미지와 속도감 있는 영상이 난무하는 현대 사회에서 가만히 앉아 책을 읽고 오랜 시간 그 의미를 되새기기란 무척 고통스러운 일일 겁니다. 이를 반영하듯, 여러분 가운데 약 10% 미만의 학생들만이 수업때 다룰 도서를 접했을 뿐, 나머지는제목만 들어봤거나 아예‘듣보잡’을 떠올리는 표정들을 학기초에 확인하였죠. 그럼 여러분들은 평소 어떤 책을 즐겨 읽나요? 아마도 만화책이나 전공도서를 주로 접하지 않을까요? 아, 활자로 된 인쇄물 따윈 거들떠보지 않으신다구요. 그래서 이 수업을 수강하셨다구요. 그도 그럴 것이, 한 학기에 무려 3권 이상이나 강제로(!) 읽을 기회를 가져야 하니까요.


  이런 현실은 그동안 여러분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훈련을 해본 적이 없는‘, 시험 기계’로 살아왔음을 방증하는 듯합니다. 책도 시험을 치르기 위한 도구로 여겼을 테구요.그러다 보니 장황한 글은‘시르다!’를, 짤막한 댓글 수준의 글은‘조으다!’를외칠 수밖에요. 수업 때마다 제출하는 요약문을 보면 단순히 중요할 것 같은 문장들을 나열할 뿐, 맥락을 고려하거나 의미를 포착한 글을 보기가 흔치 않기 때문이죠(물론 훌륭한 글도 많습니다^^). 또한 자기 전공 분야가 아닌 책에 대해서는 이해 불가를 외치는 경우도 있죠. 우리가 다루는 책들이 인문학이든 과학이든‘교양서’수준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여기에 한 가지 덧붙이자면, 현대 문명의 산물도 여러분의 이런 실정에 보탬이 됐을 겁니다. 지하철 안을 둘러보세요. 모두 손아귀에 놓인 스마트폰을 뚫어지게 쳐다보거나 열심히 손가락으로 문지르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첨단 정보 사회 속에서 첨단과학기술을 누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죠. 다만 손쉽게 많은 것을 얻고 재빨리 소비하다 보니 내가 무얼 봤는지, 나름대로 얻은 의미는 무엇인지 헷갈리는 일이 종종 벌어집니다.이런 일 이 반복되면, 천천히 음미하고 깊이 생각하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집니다. 그러니 책을 읽는 와중에도 스마트폰에 눈길이 가는 거겠죠?


  하지만 여러분은 이와 같은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한 학기 동안 명저를 잘 음미하셨다고 생각됩니다. 책을 읽으면서 명저의 가치와 그 의미를 직접 확인하셨고, 다른 사람들과의 토론을 통해 자기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자기 생각에 대해 반성적인 사고를 펼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명저 읽기>의 의의이자 목적입니다. 이제 학점의 부담을 뒤로 하고 진정한‘명저 읽기’를 몸소 실천하길 빕니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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