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교가 주최하고 본교 신문방송국과 문예창작학과가 주관한 ‘제3회 숭실대 전국고교백일장’이 지난 7월 26일(목) 벤처중소기업센터에서 열렸다. 전국 각 지역에서 참여한 이번 백일장은 고등학생들의 창작능력을 엿볼 수 있는 장이었다. 이날 대상은 시 부문에 박혜민(은광여고·3)학생이, △최우수상(소설)에는 김민경(삼산고·3), △최우수상(시) 이규민(안양예고·2)이 당선됐다. 이 외에도 △우수상(소설) 김보명(청원여고·3), 최수영(안양예고·3), 최이슬(문현고·3), △우수상(시) 이나은(세화여고·2), 심현지(문정여고·3), 김혜린(고양예고·2) 학생이 선정됐다. 시 부문의 심사를 맡은 최승호 교수는“아주 새로운 작품은 없었으나 수준 높은 작품들이 많았다.”라고 심사평을 전했다.

 

 

대상-시             

             소나기
                                박혜민(은광여자고등학교)

하늘이 정전 되었다

고요한 마을 안
색색의 지붕들 사이로
물 먹은 바람이 푸르게 밀려온다

오래된 외양간 안
밤구경을 하던 어린 소가
졸린 눈을 부채질하듯 껌뻑인다

후두둑,
소의 발굽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는 놀란 눈을
이리저리 굴린다

졸고 있던 마을을 깨우는
소나기의 노래
소나기는 마을 안을
구석 구석 세탁한다

어느새 비가 그치고
다시 찾아온 고요한 침묵
노른자처럼 오동통 부푼 달이
구름 뒤로 고개를 내밀었다

정전되었던 마을에도
희미한 불빛이 들어온다

비의 침묵을
물로 빚은
어린 소의 긴 울음이 채운다

오래된 책 속에 묻어 있을 것 같은
여름철 소나기 냄새가
마을에 퍼진다

외양간 앞
고여 있는 웅덩이에
어린 소의 워낭소리가
가득 배어 있다

 

최우수상-소설

                                                     오해의 덫
                                                                                                   김민경 (삼산고등학교)

호랑이가 나를 노려본다. 나는 조금 열려 있는 방문 틈으로 호 랑이와 눈을 마주쳤다. 엄마는 호랑이를 삿대질하며 불같이 화 를 냈다. 호랑이는 기죽지 않고 오빠가 팔을 휘저을 때마다 금방 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움직였다. 너 이게 뭐야? 나가서 잘 지낸 다더니 이딴 거나 새기고 들어오고. 너 이런 식으로 살면 나중에 후회해. 엄마가 오빠 눈을 보지도 않고 말했다. 오빠는 호랑이를 한 손으로 쓰다듬었다. 내가 새기고 싶어서 새긴 거니까 신경쓰 지 마. 호랑이는 오빠가 아무리 문질러도 지워지지 않고 오빠의 팔 에 남아 있었다. 거친 파도가 치기 전 잠잠한 바다처럼 오빠와 엄마 사이에 고요한 침묵이 깔렸다. 나는 조용히 방문을 닫았다. 오빠와 엄마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바다 너머에서 들려오는 배 의 경적소리처럼 아득하게 들려왔다. 얼마나 지났을까, 문이 쾅소리를 내며 거칠게 닫히는 소리가 집안에 울렸다. 나는 다시 슬그머니방문을 열었다. 오빠가 거실 에 혼자 남아 호랑이를 새긴 팔로 벽을 내리쳤다. 호랑이가 처음 봤을 때보다 험상궂어 보였다. 나는 더 자세히 보기 위해 방 문 을 살짝 밀었다. 하필 그 순간 문이 끼익하는 비명을 내질렀다. 오빠가 나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나는 오빠의 눈을 피했다. 오빠 는 나에게 다가오더니 손을 내밀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움찔, 몸 을 숙였다. 오빠는 말없이 손을 거두고 나에게 명함을 내밀었다. 명함에는‘피어스’라는 글귀가 또렷하게 적혀 있었다. 나는 조 심스럽게 명함을 받았다. 명함에는 쇠로 된 구슬 같은 것이 촘촘 하게 장식돼 있었다. 오빠가 일하는 가게야. 시간 되면 놀러와라. 오빠의 얼굴을 보진 않았지만 오빠가 미소를 짓고 있다는 것 정 도는알수있었다. 오빠는 현관으로 걸어갔다. 나는 오빠의 뒷모 습을 보며 명함을 주머니 속에 대충 쑤셔 넣었다. 오빠의 귀에도 은 구슬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팔이 어깨에서 툭, 힘없이 떨어져 버릴 것만 같았다. 나는 어 깨를 짓누르던 가방을 바닥에 내팽겨쳤다. 가방에는 참고서가 잔뜩 들어 있어서 묵직한 소리가 났다. 나는 화장실에 가려고 방 문을 열었다. 문이 굳게 닫혀 있는 안방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 려왔다. 나는 화장실에 가려다 말고 안방으로 향했다. 네. 성적은 준상위권이에요. 애가 노력만 하면 될 텐테 도통 성적이 오를질 않아서……. 일단 한두 달 정도 보내보려고 하는데, 집에서 카메 라로 감시 가능한 거죠?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안방의 문고 리를 붙잡고 망설이다가 그냥 몸을 돌렸다. 샤워를 하려고 교복 치마를 내리자 주머니 속에 들어 있던 명함이 툭하고 떨어졌다. 은구슬이 바닥에 부딪혀 짤랑거리는 소리를 냈다.‘피어스’라 고 찍힌 또렷한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내가 중학교에 다닐 때, 오빠의 방에선 항상 기타의 비명과 사 람의 비명이 어우러진 듯한 소리가 났다. 나는 오빠의 방에서 들 려오는 노래소리 때문에 공부를 할 수 없다고 엄마에게 불평했 다. 그리고 어느 날 집에 돌아오니 더 이상 노래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명함 뒤에 약도를 쫓아 시내에 나왔다.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미로를 헤매다가 간신히 낡은 건물 앞에 멈췄다. 지하로 가는 계 단 아래에‘피어스’라는 간판이 반짝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 는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갔다. 간판 옆 투명한 유리문으로 정 육점 조명같은 붉은 빛이 새어나왔다. 나는 유리문 앞에 서서 가 게 안을 살폈다. 붉은 조명은 여러 가지 장신구들을 비춰서 핏빛 으로 물들였다. 텁텁한 담배냄새가 장신구마다 배어 있을 것만 같았다. 덩치가 크고 머리를 빡빡민스킨헤드가 문을 열었다. 나 는 어정쩡하게 서서 계단 위를 힐끔거렸다. 스킨헤드는 나를 빤 히 훑어봤다. 식은땀이등뒤로 흘러 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스킨 헤드의 어깨 너머로 오빠의 얼굴이 보였다. 나는 급히 오빠를 불 렀다. 오빠는 활짝 웃으며 내 쪽으로 걸어왔다. 형님. 제 동생이 에요. 제가 전에 얘기했죠? 야. 너 정말올줄은 몰랐는데 얼른들 어와라. 왜 문 앞에 서 있어. 오빠는 내 손을 잡아끌고 가게 안으 로 들어갔다. 나는 계속 출입문을 힐끔거리면서 검은 가죽 소파 에 앉았다. 스킨헤드가 갑자기 내 어깨를 붙잡았다. 나는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스킨헤드는 아랑곳하지 않고 나에게 음료 수 캔을 내밀었다. 다음달이면 기숙학원에 들어가야 돼. 내가 오 빠에게 말했다. 오빠는 팔에 있는 호랑이를 쓰다듬으며 나를 빤 히 쳐다봤다. 그럼 이제 못오겠네? 이 근래에 제법 놀러오더니. 카운터를 지키던 스킨헤드가 중얼거렸다. 가기 싫다고 얘긴 해 봤어? 내가 나왔다고 네가 책임감을 가질 필 요없어. 난 내가 하고 싶 은 걸 하는 거고. 너도 네 가 하고 싶은 걸 하면 돼는 거야. 오빠가 어눌한 발음으로 말 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가기 싫은 건 아 니야. 엄마는 다 나 잘되라고 그러는 거잖아. 오 빠는 뭔가 불편한 듯 계속 입을 오물거렸다. 왜 그래? 입에 뭐 났어? 내가 오빠에게 손을 내밀 며 물었다. 오빠는 입을 쩍 벌리더니 혓바닥을 내밀었다. 오빠의 퉁퉁 부어 있는 혓바닥에는 은구술이 박혀 있었다. 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오빠는 장난스럽게 씨익 웃더니 거울을 들여다 보며 뱀처럼 혀를 낼름거렸다. 너도 뚫어줄까? 내가 빤히 보고 있다는 걸 느꼈는지 오빠가 물었다. 나는 대답없이 오빠의 귀를 쳐다봤다. 은구슬이 잔뜩 달려 있는 귀는 붉은 빛을 받아 반짝였다. 귀가 얼얼했다. 그러나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나는 현관문 앞 에 서서 거울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고 문을 열었다. 엄마가 문 앞을 서성서리다가 내가 들어오자마자 갑자기 나에게 다가왔 다. 짝! 하는 소리와 함께 내 얼굴이 오른쪽으로 돌아갔다. 뺨이 욱씬거리고 귀가 얼얼해서 순간 정신이 아찔했다. 너 어디서 뭘 하다 온 거야? 요새 학원도 몇 번이나 빠졌다며? 이제 곧 입신데 너 미쳤어? 아니, 너 귀에 반짝이는 건 또 뭐야? 너…너 귀 뚫었 어? 설마 오빠 만났니? 나는 오른쪽으로 틀어진 고개를 다시 돌 리지도 못하고 서 있었다. 엄마는 기가 막힌다는 듯이 내게 다가 와 내 귀를 잡아당겼다. 귀가 찢어져 버릴 것처럼 아팠다. 너무 아파서 비명소리조차도 목구멍에 맴돌았다. 너 니 오빠 구제불 능인 거 몰라? 걔는 누굴 닮았는지 그렇게 생각이 없다니? 나는 내 귀를 붙잡고 있는 손을 쳐냈다. 엄마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봤다. 나는 눈이 화끈거리는 것을 간신히 눌러참았다. 오빠는 그런 사람 아니야! 제대로 대화는 해 봤어? 맨날 화만 내 고. 엄마가 오해하고 있는 거야! 나는 꽥하고 소리를 지르고 발 소리를 쿵쾅거리면서 내방으로 갔다. 등뒤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하고 방문을 쾅 닫고 걸어잠궜다. 귀가 얼얼거리 지 않는 대신, 가슴이 쿵쾅거리고 눈물이 터져나왔다. 엄마는 문을 두드리다가 끝내 포기하고 돌아섰다. 나는 방에 있던 바늘세트에서 바늘만 꺼내 거울 앞에 앉았다. 귀는 엄마가 잡아당겨서 그런지 엄지손가락만큼 퉁퉁 부어 있었다. 나는 조 심스럽게 혀를 내밀었다. 혓바닥이 붉은 애벌레처럼 입 속에서 기어나왔다. 나는 혓바닥에 바늘을 가져다 댔다. 힘을준것도아 니었지만 혀가 따끔하고 아파왔다. 나는 눈을 꽉 감고 손에 힘을 줘 바늘을 눌렀다. 손이 부들부 들 떨리고 나도 모르게 목에서 끅끅거리는 소리가 났다. 혀가 아 프다 못해온얼굴이 욱씬거렸다. 나는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바 늘이 혀에 반쯤 들어갔을 줄 알았지만 바늘은 끝부분만 조금 혀 에 들어가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바늘에서 손을 뗐다. 바늘은 혀 위에 서있는가 싶더니 곧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바늘이 찌르고 있던 자리에서 피가 뿌리를 내리듯 혓바닥으로 퍼져갔 다. 나는 흐르는 줄도 몰랐던 눈물을 닦아내고 다시 바늘을 집어 들었다. 바늘을 피가 찔끔 찔끔 뿜어나오고 있는 혀 위에 가져갔 지만 도저히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갑자기 뜨거운 응어리 가 가슴을 타고 목구멍으로 넘어왔다. 나는 바늘을 떨어트리고 아기처럼 꺼이꺼이 울기 시작했다. 침을 삼킬때마다 입에서 비 린 맛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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