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부모님께 인라인 스케이트를 사 달라고 졸라 보았던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그 추억의 물건으로 세계 무대를 제패 한 사람이 있다. 바로 김성진(경영·3) 군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금), 중국에서 열린 제6회 세계 프리스타일 스케이팅 대회 프리 부 문에서 1등을 거머쥐었다. 이밖에도 많은 경기에서도 매번 1등을 놓 치지 않는 그를 만나, 그의 삶과 인라인 스케이트의 이야기를 들어 봤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오후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뚜렷한 이목구비, 깊숙한 눈, 호리호리한 몸의 그는, 인라인 스케이트와는 거리가 멀어 보 이는‘훈남’스타일이었다. 첫인상과 다르게 그는 인라인 스케이트계에 서 대단한 유명 인사다. 인터넷에 그의 이름을 검색하면 수많은 기사가 링크돼 있고, 그의 스케이팅 영상도 인기가 많다.“인터뷰 요청이 많이 들어오시겠어요.”기자의 질문에 그는 주문해 놓은 키위 스무디를 한입 쪽 빨며“안 그래도 아까 다른 인터뷰 하나 마치고 왔어요.”하며 조그맣 게 웃어 보였다.

프리스타일 스케이팅과 ‘김성진’선수
 프리스타일 스케이팅이란 인라인 스케이트를 신고 달리거나 점프하는 등 자유롭게 타는 것을 말한다. 이 안에는‘슬라럼’이라는 종목이 있 다. 고깔 모양의 콘을 일정한 간격으로 깔고 제한된 시간 안에 기술들을 섞어 하나의 퍼포먼스를 보여 주는 종목이다. 김 군은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슬라럼’에서 프리스타일 부문 1위를, 2인 1조로 음악에 맞춰 연기 를 선보이는 페어 부문에서도 1위를 거뒀다.
 “슬라럼에서 가장 재밌는 부분은 ‘프리스타일’이에요. 김연아 선수가 피겨스케이팅에서 음악을 선정하고, 안무를 짜고, 기술을 배치하는 것처 럼 프리스타일도 똑같아요. 50m·80m·120m 간격의 고깔 사이를 누비 며 1분 40초 안에 다양한 것을 보여 줄 수 있으니까 매력적이에요. 그래 서 연습도 프리스타일에 집중하는 편이에요.”
 금메달을 안겨준 지난 대회에는 복병이 숨어 있었다“. 사실 대회 포기까지 생각했었어요.”그는 페어 부문과 프리스타일 부문을 나갔지만, 프리스타일 부문에서 연습을 충분히 하지 못했다. 음악을 선정하고, 안무 를 구상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팀 내에 자신이 가르치는 친구에게 시간을 쏟다가, 정작 그가 해야 할 일에 소홀히 해버린 것이다.“그래도 한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야 함께 나가는 선수들의 사기가 오르니까요.”결국 그는 경기에 참여했고, 본 경기에서 만족할 만한 실력 을 뽐내지 못했다. 하지만 실수없이 잘 해냈고 성적은 그에게 만족스러 운 결과를 안겨 줬다.

수많은 경기, 수많은 1위
 최근에 그는 집에 쌓여 있던 대회 상장들과 메달들을 정리했다고 한 다. 그때 참여한 경기 수를 세어 보니 100개를 웃돌았고, 1등 타이틀 개수 는자그마치107개나됐다“. 107번의우승을했지만,대회한개한개나 가면서 항상‘이번이 마지막이고, 실수하면 후회할 것이다.’라는 마음으 로 매번 열심히 했어요. 이렇게 하다 보니까 대회 성적이 좋았고, 그것이 쌓이고 쌓이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요(웃음).”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는 그 에게는 굳건한 한 길이 있었고, 그 길을 이탈하는 법 없이 쭉 따라왔다. 그렇게 10년이 지났고, 여기까지 왔다.
 많은 경기를 치렀지만, 그에게는 잊을 수 없는 경기가 있다. 그것은 작 년 2011년 독일 세계 선수권이다. 사실 그는 인라인을 잠깐쉰적이 있다. “고등학교 3학년 일 년 동안 선수 생활을 쉰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 사 이에 공식적인 대회가 들어서면서‘랭킹’이라는 제도가 생긴 거예요. 그 전까지는 제가 암묵적인 랭킹 1위로 알려졌는데, 그 제도가 생기고 나서 저의 공식적 순위가 떨어졌어요. 그래서 대학교에 입학 후, 다시 선수 생 활을 하면서 세운 목표가‘다시 랭킹 1위를 탈환하자.’였어요.”하지만 역시 1위를 향한 질주는 어려웠다. 그는 2009년 월드 챔피언십대회에서 실수를 연발했다. 컨디션 조절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픈 상태에서 나간 경기였고, 그는 결국에 많이 넘어졌다. 그리고 또다시 시련이 왔다. 그 다음 연도에 한국에서 열린 경기에서는 경기 중간에 자신이 짠 프로 그램을 잊어버린 것이다. 성적도 좋지 않았다.“그후에 엄청나게 연습을 많이 했죠. 그래서 독일대회에서는 제가 원하는 종목에서 1위를 했어요. 세계 선수권에서 1등을 한 것은 처음이었고, 따라서 저에게는 의미가 굉장히 컸어요.”일 년의 공백 후, 두 번의 좌절을 겪고 얻은 값진 우승이라, 많은 사람에게 축하를 받았다.

열악하지만, 뿌듯한 연습
 인라인 스케이트는 다른 스포츠에 비해 그 휴대성이 편리해 어디서든 탈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연습하는 것은 특정한 기술을 요한다. 따라서 바 닥의 균열에 민감하다.“바닥이 울퉁불퉁하면 제대로 연습을 못해서, 바 닥이 좋은 곳을 찾아다녀요. 하지만 사실은 마땅한 장소가 마련돼 있지 않아요. 특히 오늘 같은 날처럼 비가 오면 탈 곳이 없는데, 지하도나 차가 없는 지하 주차장에서 연습을 하는 편이에요.”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 연습을 하지만, 연습중에 뿌듯할 때가 있다고 한다. 어려운 기술을 깔끔하게 성공했을 때와, 새로운 안무가 술술 나올 때다.“마치 작곡가의 명곡이 단 며칠 만에 완성됐다고 하는 것처럼, 잘 짜인 안무는 머릿속에서 바로 흘러나오거든요. 큰 시간을 들이진 않았지 만, 만족할 만한 성과가 나올 때, 그때 정말 뿌듯해요.”

인기 스타로서의 생활
 그는 어렸을 적 삼촌이 인라인 스케이트를 사 주셨고, 집 앞 올림픽 공 원으로 매일같이 인라인을 타러 다녔다고 한다. 그 시절 그는 태권도 시 범단에 소속돼 있을 만큼 운동을 좋아했던 소년이었다.“사실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어요. 어렸을 때 집에 컴퓨터가 한 대 있었는데, 저희 형이 컴 퓨터를 혼자 차지하니까 저는 밖에 나가 놀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밖 에서 놀다보니 자연스럽게 운동을 좋아하게 됐고, 지금의 제가 있는 것 같아요.”그의 영광은 형 덕분에 얻은 것일 수 있다.
 슬라럼은 한국에서 비인기 종목이지만, 중국에서는 굉장히 인기몰이 중인 스포츠다. 따라서 그는 중국에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다.“중국 팬 에 대한 충격적인 이야기가 있어요. 중국 팬 몇 명이 학교에 찾아온 거예 요! 그래서 저를 만나기 위해 무작정 경영학과 사무실에 찾아갔고, 제 번 호를 물어봤어요. 대에박!”‘대박’을 외치며 그는 크게 웃었다.“사실, 서 로 안면이 있는 팬이지만, 직접 찾아오니 적지 않게 당황했죠.”그는 중 국에 가면 사인도 많이 하고 사진도 많이 찍는 인기 스타다.“사실, 작년 5월에 제가 북경에 있었을 때 사진을 같이 찍은 한 분이 저에게 갑자기 달려들어 뽀뽀를 했어요.”이렇게 극성인 팬도 있지만, 팬이 있는 것에 그는 감사하다.
 인라인 스케이트 모델 중에는 그의 인기를 증명하는 것이 있다. 바로 ‘KSJ 스케이트’다. 2008년 고3 수험생이었던 당시, 그가 즐겨 타는 인라 인 스케이트 생산 회사에서 따로 그의 이름을 딴 모델을 만들어 준 것이 다. 하지만 후회가 되는 점이 없지 않았다.“주변에서는 이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해서 계약을 했죠. 그런데 이때 저는 수험생이라 테스트 를 열심히 할 수 없던 시기였어요. 따라서 스케이트가 출시될 당시, 문제 가 발견됐어요. 제 이름을 걸고 나온 것이라서 저에게 질타가 들어오더 라고요. 이때 느낀 것은 자기 이름으로 무엇을 한다는 게 정말 힘든 일이 라는 점이었어요.”대학을 들어와서 그는 KSJ를 신중히 테스트했고, 이 젠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인기 가도를 달리고 있는 그에게는 요즘 고민이 생겼다. 대한민국 남자들이 피해 갈 수 없는 입대 문제에 직면한 것이다. 프리스타일 스케이 팅은 올림픽과 같은 국제적인 대회의 정식 게임이 아니라서, 메달을 아무리 따도 군대가 면제되지 않는다“. 선수생활을하니까군대를미뤘죠. 그렇지 않으면 군대를 빨리 갔을 텐데. 그래서 고민이 드네요.”
 그는 자신의 인라인 스케이터 생활에 대한 고민은 단 한 번도 해본 적 이 없다.“비인기 종목이다 보니까 주목을 받지 못하는데, 만약‘인기 종목을 했다면 좀 더 잘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봤어요. 그래도 제가 좋아서 여기까지 온 것이니까, 비인기 종목이라는 사실을 탓하지 않아요.”

“부모님께 감사드려요.”
 “선수 생활을 일찍부터 했는데 부모님이 딱히 말리진 않았어요. 그런 데 나중에 어머니께 이야기를 들어 보니, 아버지께서 굉장히 말리셨다고 하더라고요. 부모님은‘네가 좋아하는걸하면서 공부는 남들만큼 해라.’ 라고 하셨고, 그래서 공부도 놓치지 않았어요.”그는 공부와 인라인 스케 이팅 둘 다 하기 위해, 실업계 특성화 고등학교로 진학을 선택했다. 고등 학교입학부터상위권을유지했고, 3학년때는 전교1등을 유지했다“. 저희 부모님은 저를 가둬 놓지 않으셨어요. 따라서 제가 하고 싶은 대로 놔두시면서 다 할 수 있게 해주셨죠. 부모님은 저를 믿어 주셨고, 이런 부모 님의 지지가 저에게 정신적으로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만약 인라인 스케이트가 아니었다면, 그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태권도를 했었으니까 시범단에 계속 있었거나, 태권도 사범을 하거나, 체육관을 차렸을 것 같아요.”사실 그에게는 캐스팅 제의가 들어왔었다. “2008년 스타킹 출현 당시, 대형 기획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그 전에도 이런 연락이 여러 번 들어오긴 했어요.”그는 오디션을 보러 갔고, 서류 에 그의 화려한 전적을 적었다.“제 경력을 보시더니, 하면 안 되겠다고 하셨어요. 원래 그쪽에서 김연아를 캐스팅하려고 했었는데, 이젠 김연아 선수는 그 종목에서 없어서는 안 될 선수잖아요. 저도 비슷하니까요. 생 각 바뀌면 연락 달라고 그러더라고요. 수능 망치면 연락 하려고 했는데, 지금 좋은 대학을 왔네요(웃음).”

‘비인기 종목’타이틀을 탈피하기 위해서
 인라인 스케이트는 언제 어디서나 탈 수 있지만, 슬라럼 자체는 비인 기 종목이다.‘어렸을 때 타던 장난감’이라는 인라인에 대한 인식이, 하 나의 스포츠라는 인식으로 바뀔 수 있는 연맹의 활동이 필요할 것 같아 요. 그리고 어린 친구들이 많이 접할 수 있도록 강습회를 개최하고, 이런 친구들이 커서 엘리트 선수로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열렸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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