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어드 봉사단 단장 김진수(평생교육·3)

‘진리와 봉사를 세계로’라는 슬로건을 가진 본교는 예로부터 봉사 를 실천해 왔다. 이 정신은 그대로‘숭실다움’에 녹아 있다. 본교 김 진수(평생교육·3) 학우는 입학 전부터 봉사를 실천해 왔지만, 입학 후에도 본교의‘숭실다움’비전에 따라 봉사정신을 널리 펼치고 있 다. 그가 실천하는 숭실다움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봉사를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저희 집안은 원래 봉사 쪽으로 관심이 많았어요. 할아버지는 부산 최 초 YMCA 창립멤버이셨고, 아버지는 거제도 청소년지도위원회로 활동 하시며 청소년 지도 사업을 하셨죠. 가족들은 저에게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며 그것의 첫걸음으로‘봉사’를 알려줬습니 다. 따라서 저는 본격적으로 중학생 때부터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됐죠. 봉사의 계기는 가족의 영향이 있었지만, 사실은 개인적인 부분이 더 큽 니다. 저는 어릴 적 소아암을 앓고 나서 장애를 얻게 돼 힘든 생활을 했 죠. 병 때문에 사춘기 시절에는 줄곧 놀림을 받기도 했고요. 제가 앓았던 소아암은 세계에 몇 안 되는 희귀병이었고, 치료법도 없었습니다. 그런 데 운이 좋게도, 치료를 해주시겠다고 나서는 분이 계셨습니다. 덕분에 저는 성공적인 완치 사례에 이름을 올리게 됐습니다. 그 이후로‘나를 도 와주신 분이 있는데 이렇게 얻은 삶을 허투루 보내면 안 되겠다’는 생각 이 들더라고요. 저도 다른 이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고, 마 침 그것이 가족들의 봉사정신과 함께 시너지가 터져서 이 모든 것이 저 를 봉사의 길로 들어서게 한 것 같아요.
 저는 캠페인 보조부터 시작하여, 독거노인 지원 봉사, 멘토링 등 장기 적인 봉사를 줄곧 해왔고, 대학 입학 후에는 그 세계를 더 넓혀 베트남· 캄보디아·인도에 스텝 및 봉사기획단으로 해외봉사를 다녀오며 꾸준 히 봉사의 단계를 밟아 가고 있습니다.

봉사 경력이 화려한데, 기억에 남는 경험은 없나요?
 2011년 6월과 7월 사이, 베트남으로 해외봉사를 갔을 때 이야기예요. 저희는 그쪽 친구들에게 고무동력기 만들기와 같은 과학교육·한글교 육·풍선 이벤트 등 특별하거나 대단한 것이 아닌 것들을 가르쳤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정말 즐거워하더라고요. 그때 느꼈어요. 그 전까지는 어느 봉사를 가든지,‘이분들이 어려우니까 내가 도움을 줘야 지.’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봉사란‘내가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오히려 그 친구들을 통해 제가 더 많은 것을 깨달았어요. 그들이 원하는 것을 해주는 것, 이것이 참된 봉사였습니다. 게다가 당시 베트남의 한 대 학교와 연계해 봉사활동을 진행했는데, 서로 전혀 말이 안 통했어요. 하 지만 주고받았던 몸짓과 함께 봉사활동을 하며 보낸 시간들 속에서 서로 많이 배운 거예요. 봉사를 통해 나의 능력으로 도움을 주는 것뿐만 아니 라, 나도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는 생각을 그때 처음 하게 된 것 같아요.
 이 마인드를 토대로진행한봉사활동도기억에남아요‘. 스쿨어택’이 라고, 농어촌 지역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교육캠프 프로그램이 있어요. 제가 베어드 단장을 하며 저희가 최초로 기획한 프로그램인데, 이 기획 안에 베트남 봉사활동 때 느꼈던 마음가짐을 녹였어요. 스쿨어 택을 했던 곳이 강원도 철원의 초등학교였는데, 그 아이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으로 봉사하기 위해, 기획 당시 하루에 열 번 넘게 학교 측과 통 화를 하고 메일을 보내며 피드백을 했죠. 힘들게 프로그램을 완성해 시 행했고, 성황리에 마쳤습니다. 사실 그 와중에 진행한 것이 하나 더 있었 습니다. 그 지역사회에는 독거노인 프로그램이 없었는데, 저희가 스쿨어 택을 하며 밤낮으로 독거노인 지원 프로그램을 기획했습니다. 결국 동시 진행을 하게 됐는데, 지역사회 전체의 만족도가 굉장히 높았어요. 후에 이것은 서울시 자원봉사센터에서 캠프 프로그램 개발 성공사례로 뽑혀, 한경직기념관에서 발표하기도 했어요.

많은 경험 속에서 인연을 맺게 된 사람들도 많을 것 같아요. 혹시 봉사를 하면서 만난 사람 중에 지금도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나요?
 스무 살 때 저는 독거노인을 찾아뵙는 봉사활동 프로그램에 참여했었 습니다. 그때 만난 고희순 할머니가 기억에 남아요. 젊은 시절 가산에 있 는 공장에 다니시며 남편 분을 만나 결혼했지만, 일찍 돌아가시고 남아 있던 가족과 연락이 끊겨 독거노인이 되신 분이세요. 저는‘어떻게 말벗 을 해드리지?’라는 생각을 갖고 할머니를 만났는데, 만나 뵙고 오히려정 말 많은 것을 배우고 왔어요. 할머니는“10년을 내다 보라”는 말씀을 많 이 하셨어요. 하고 있는 일들은 쌓이고 쌓여 1년이 되고 2년이 되는 것이 기 때문에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10년을 생각하라는 의미였어요. 순간 을 헛되이 보내지 말고,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며 열심히 살라는 그 말씀 덕분에 저는 보통 스무살과는 다르게 움직였습니다. 그 할머니가 저의 인생의 멘토였던 셈이죠. 다른 한 분은 지금도 영향을 주고 계신 본교 봉 사지원팀 이기문 팀장님이세요. 팀장님의 모토는‘최고보다는 최선을’ 인데, 이것에 따라서 저의 많은 부분을 고쳐주셨습니다. 매 순간마다 저 를 많이 지목하고 지도해 주셔서, 덕분에 제가 많이 성장했습니다. 지금 의 저를 있게 해주신, 항상 고마운 분이세요.

봉사활동이 힘들다고 생각한 적은 없나요?
 봉사활동중에는 힘들다고 느낀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기획 부분에서 많이 힘이 들죠. 봉사활동을 할 때는 즐겁고 행복해서 힘든 것이 전혀 느 껴지지 않지만, 어떤 봉사활동을 할지 기획할 때는 이 프로그램이 성공 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이곳저곳 움직여서 온 몸이 아프더라고요. 많은 기획들을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잠도 줄이고 휴일을 반납해도 시간 이 부족해요. 그래서, 이리 뛰고 저리 뛰다 보니 육체적으로 힘들죠.
 기획 단계에서는, 무수히 많은 변수가 있습니다. 해외 봉사의 경우는 파견국가의 자연이나 정치 상태에 따라, 국내의 경우는 후원 기업의 입 장 혹은 공사 기간, 수혜자 상태에 따라 상황이 많이 달라집니다. 이러한 변수들이 생길 때마다 고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힘이 들어 요. 특히 단장의 자리에서는 기획의 관리, 방향 제시, 얽혀 있는 여러 이 해관계를 동시에 생각하여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머리가 복잡해요.
 사실 정말로 아끼는 단원, 팀원들이 봉사 현장에서 힘들어하는 모습 을 보이면, 리더의 자리에서 지켜보고만 있어야 하는 것이야말로 정신적 으로 정말 힘이 들어요. 그들이 힘들어하고 괴로워할 때, 제가 해줄 수 있 는 것이 별로 없어서 마음이 아프죠.

봉사에 임할 때 특별히 갖는 마음가짐이 있나요?
 저는 매년 새로운 모토를 세웁니다. 2010년, 스무살 때는‘Be bigger’ 였어요. 뜻 그대로 더 커지자는 뜻이었죠. 대학에 들어와서 제 자신이 작 다는 걸 느꼈습니다. 특히 봉사활동을 하고 주위 임원을 둘러보면, 제가 정말 많이 부족하다고 느꼈어요. 따라서 제가 좀 더 커질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놓치지 않고 닥치는 대로 했습니다. 동아리·학생회·알바 등. 그 결과 제가 1학년 때는 열한 탕을 뛰었고, 2학년에 올라오고 나니‘장’ 을 맡았던 직급이 9개였어요.
 어떤 선배가 그러더라고요,‘진수야, 너 그렇게 많이 했는데 뭐 얻었 냐?’근데, 제가 대답을 못했습니다. 그때 느꼈어요. 내가 무엇을 배웠는 지 캐치해야겠구나. 따라서 다음 해의 모토는‘모든 순간에는 이유가 있 으니, 매 순간 배우고자 하는 마음으로 임하자.’로 세웠습니다. 배우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니까 베트남 해외봉사에서도 통했던 것 같아요.
 이번 년도의 모토는‘하자고 생각하고, 하는 것에 집중하고, 하길 잘 했다고 생각하자.’입니다. 이 안에는 긍정과 실천력, 선택과 집중이 담겨 있어요. 제가 단장이 됐잖아요? 단장은 단원들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실 현시켜 주고, 기획한 일을 성사시키며, 높은 만족도와 결과물을 내놔야 해요. 그뿐만 아니라, 학교 소속이기 때문에, 학교 및 교직원들과의 이해 관계를 파악해 가장 효율적인 답을 내야 하죠. 이 모든 것을 망라해야 하 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이런 모토를 가지게 됐습니다. 내년 모토도 미리 세워놨어요. 모토를 일찍 세운 이유는 이제 취업을 준비해야 할 시기니 까요. 세상에 이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내 자신부터 컨트롤을 해야 해요.‘For beyond’, 내년에는 휴학을 해서 하루도 쉬지 않고 달려온 지 난 3년을 정리할 시간을 가져, 저의 역량을 측정해 봐야 할 것 같아요. 이 것을 알아야 제가 또 이를 넘기 위한 계획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죠.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저의 이름 진수는 별 진, 나무 수입니다. 별처럼 세상을 빛내고 나무처 럼 세상에 이로움을 주는 사람이라는 뜻이에요. 저의 비전은 바로 제 이 름의 의미에요. 따라서 저의 비전을 눈에 보이게 할 결과물이 무엇이냐 면, 기업의 CEO가 되는 것이에요.‘히즈빈스’라는 커피 전문점이 있습 니다. 정신장애자분들을 대상으로 커피 교육을 시켜 커피점을 내게 하여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곳이에요. 이처럼,‘장애인이라서 못한다’가 아니고 그들도 사람으로서 사회에 공헌할 수 있다는 인식을 줄 수 있는 기업을 운영하고 싶습니다.

‘숭실다움’을 실천하는 학생으로서,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첫 번째는,‘I can’이 아닌‘they want’를 하세요. 무엇을 하든, 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다는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게 중요합니 다. 이런 것들은 이해와 역지사지로부터 출발합니다. 이를 위해서는‘공 감대’가 필요한데, 남의 기분을 충분히 이해하면서 대화하는 기술, 이것 들이 전부‘they want’를 하도록 해주죠. 두 번째는, 준비하라는 것이에 요. 세상에는 변수가 많아요. 살다 보면 내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분명 있어요. 그런데 대부분은, 뭐 때문에 실패했다는 변명을 하곤 해요. 이것 은 자기가 변수를 예측하지 못했고, 대처하지 못한 것에서 나오는 나약한 소리입니다. 변수에 항상 준비하는 자세, 변수가 터지더라도 불평하 지 않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과 적응력을 길러야 해요.
 사실 우리 학교가 대외적으로 아주 높은 위치는 아닐 것입니다. 그러 나 그 네임 밸류에 자신을 가둬 두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항상 위를 바라 보세요. 최고는 아니더라도, 최선을 다하세요. 제가 어린 나이에 단장이 될 당시, 많은 사람들이 걱정과 우려를 나타냈죠. 하지만 저는 그 편견을 깨기 위해 미친 듯이 노력했고, 결국 해냈습니다. 여러분도 할 수 있을 겁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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