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방콕을 여행한 것은 정확 히 19년 전. 방콕이라는 도시를 그저 우스갯소리로 방에 콕 쳐 박혀서 나오 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우리말의 언어 적 유희와 비슷한 것으로만 여겼다. 지 금은 태국의 국내선 터미널로 사용되 는 돈무앙 국제공항에 첫 발을 내딛었 을때확풍겨 나왔던 이국의 첫 냄새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즐거운 향기라 기보다는 뭔가 사람을 마비시켜 힘을 빼버리는 다소 비릿한 냄새였다고나 할까.
 방콕을 가로지르는 차오프라야 강이 만들어 낸 도심의 수많은 강줄기 때 문에 동양의 베니스라고 불리는 방콕의 원래 이름은‘끄룽텝(Krung Thep)’인 데 그 의미는‘천사의 도시’라고 한다. 지금은 지하철도 생기고 BTS라는 스 카이 트레인도 생겨서 예전보다는 교통 체증이 많이 완화되었지만, 한 시간 동안 수백 미터밖에 움직이지 못하는 자동차에 타고 있을 때면 천사의 도시 가 아니라 매연으로 가득찬지옥처럼 느껴질 때도 많았다. 이름은 천사의도 시인데, 그 내용은 마치 악마의 거처처럼 보이다니.
 새벽사원 왓 아룬, 찬란했던 왕조의 영광을 보여 주기에 충분한 왕궁 왓 프라깨우, 휘황찬란한 조명으로 지갑을 열게 하는 야시장과 짜뚜짝 주말시장, 전 세계 명품을 볼 수 있는 고품격 쇼핑몰, 7000원 내외로 즐길 수 있는 마사지 샵, 전 세계 곳곳에서 온 배낭여행객들의 집결지 카오산 로드, 그리고 침샘을 자극하는 수많은 종류의 길거리 음식까지 방콕은 전통과 현대를 모두 아우르는 도시다.
 하지만 방콕의 진정한 묘미는 아시아의 다른 도시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인종들이 각 지역마다 특색 있는 상권을 이루어 살고 있다 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중국인·인도인·아랍인·아프리카인·서구인· 일본인, 그리고 많은 수의 한국인까지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은, 대 한민국 안에 이미 만들어진 다문화 환경을 접하고 있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다. 같이 존재한다는 의미의 공존은 다른 것에 대한 이해와 존경 이 없으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좋고 나쁜 것이 아닌, 우월하거나 열등한 것이 아닌 단지‘다른 것’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하면, 다양성은 어느새 아름 다움이 되고 그 아름다움은 경쟁력으로 승화한다.
 1993년 이후 지금까지 나는 방콕에 파견근무와 출장, 여행 등으로 50차례 이상 방문했다. 그러나 늘 엄청난 크기의 편안함이 아주 사소한 불편함을 모 조리 없애 주는 것을 보면 방콕에서는‘다양함’이라는 근사한 악기를 천사가 연주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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