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0일(수), 개교 115주년을 맞아 첫 <숭실 석좌 강좌>가 열렸다. 강좌에 초청된 첫 손님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앞으로 본 교는 이렇듯 매년 노벨상 수상자들을 초청해 특강을 개최할 예정이다. 그 런데 놀랍게도 이 시리즈 강좌는 한 동문의 아이디어와 후원에서 시작됐단 다. 그 주인공은 현재‘당근영어’대표이사인 노상충 동문이다. 이런 통 큰 프로젝트를 제안했다니, 왠지 범상치 않은 인물일 것 같은 느낌이다. 함께 그를 만나보자.

 

차 한 잔의 여유를 아는 사나이
 인터뷰를 위해 노상충 동문을 만나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한 회사의 CEO다 보니 바쁜 일정시간에 틈을 내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어렵사리 약속을 잡고 그의 회사를 찾아 헤매다 헐레벌떡 그의 사무실로 들어갔 다. 정신없는 기자와 달리, 노상충 동문은 기자에게 다기 세트로 보이차 를 끓여 주며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연륜이 있어 바쁜 와중에도 여유 로운가 싶은데, 그렇다고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니다. 누가 봐도‘젊은 CEO’다.
 그의 사무실에는 느린 템포의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왔고, 곳곳에 책들 이 쌓여 있었다. 누가 그려준 듯, ≪TIME≫ 표지에 그의 모습이 담긴 그 림이 눈에 띄었다. 그는 그 그림을 보고 웃으며 덧붙였다.“우리 직원들 이 앞으로 미국 시사 잡지 ≪TIME≫ 커버스토리에 나올 거라며 그려 줬 어요.”정신없던 기자도 잠시 숨을 고르고 그와 차를 마시면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숭실 석좌 강좌>를 제안하다
 지난달 열린 폴 크루그먼의 특강에는 그도 참석해 들었다. <숭실 석좌 강좌>를 개설하는데큰힘을 보탠 장본인이니첫강의를 듣는게얼마나 뿌듯했을지 감이 온다. 기자가 사정상 강의를 듣지 못했다고 하자“못 들 었어요? 아주 재밌는 강의였는데.”라며 기자 몫까지 아쉬워했다.
 그는 4년 전에 처음으로 노벨상급 석학 초청 강좌를 만들어 달라며 학 교에 제안을 했고, 이후 1억 원 규모의 기부금을 약정했다. 그에게 이런 제안을 하게 된 이유를 묻자 그는 별 거 아니라는 듯 답했다.“저는 항상 우리 학교에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었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학교와 후배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세계적인 석학들을 통해 후배들이 삶의 영감을 얻을 수 있도록 돕자고 결심하게 됐죠.”장학금 기 부로도 후배들을 도울 수 있었지만, 그보다 그는 후배들의 의식을 깨우 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강의를 통해 노벨상 수상자들의 지식뿐 만 아니라 그들의 삶을 후배들이 배웠으면 좋겠어요. 그들의 삶 속에 숨 쉬는 도전정신과 직면하는 힘, 극복하는 힘을요.”

대학 생활에서 책 빼면 껍데기
 경제학과를 졸업한 그는 대학 시절 내내 책에 파묻혀 살았다. 전공 공 부와 영어 공부도 빼놓지 않았다. 당시 그는‘TIME 연구반’에 들어 영어 잡지를 읽으며 영어 공부를 했다.“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인터넷이 있었 던 것도 아니고, 영어 공부할 도구가 많지 않았어요. 그래서 TIME을 보고 친구들과 토론하며, 세계적인 이슈도 알고 영어 공부도 한 거죠.”
 영어 공부와 전공 공부 외의 시간은 모두 책을 읽는 데 보냈다는 그는 책과 잠시도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웬만하면 책을 손에 들고 다니고, 3cm 반경 이내에는 책을 집어들 수있게 했어요.”주로 인문학 추천 도서 들을 많이 읽으며, 방학 때면‘책 100권 읽기’를 목표로 세웠다고 한다. 책을 읽는 동안에는 끊임없이 질문에 질문을 거듭했던 대학 시절 습관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단다.

내 생애 최고의 책 세 권
 대학시절 읽었던 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이 뭐냐는 질문에 그는 칼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을 꼽았다. 영문을 직접 번역해 읽었고, 몇 번이고 고민하며 읽었다. 이 책은 본인 인생에서 가장 영향을 많이 미친 책 TOP3 안에 들기도 한단다. 그는 기자에게 몇 번이고 이 책을 읽어 보 라고 권했다.“이 책을 통해 사회가 어떻게 형성됐는지, 사회의 본질을 알 수 있었어요. 얇은 책이니까 꼭 읽어 보세요.”
 그렇다면 TOP3 책에서 나머지 두 권은 무엇일까.“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 책이요. 이 책도 꼭 읽어보셨으면 하네요. 나머지 한 권은…, 일단 알려드린 책 두 권을 읽으면 그때 알려 드릴게요(웃음).”

회사 직원들도 그를 따라 독서 열풍
 그는 책 이야기를 꺼낼 때면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그만큼 그의 인 생에서 책은 정말 중요한 요소 같았다. 그래서인지 그의 사무실은 마치 ‘서재’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노상충 동문은 지금도 대학 때처럼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회사 경영을 하게 되면서 책 읽을 시간이 빠듯해졌 지만, 한 달에 두세 권은 꼭 읽는다고 한다.
 그의 이러한‘책 철학’은 직원들에게도 전파됐다. 노상충 동문의 아이 디어로 회사 내에서 주기적으로 독서 토론을 하는‘멘토링 데이’를 만들 었다. 마치 그의 대학 시절‘TIME 연구반’에서 친구들과 토론하며 공부 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는 CEO의 역할이 단순히 직원들에게 급여를 지 급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직원들을 성장시킬 수 있게 하는, 함 께 성장하는 일 또한 CEO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의 삶에 자 리 잡은 독서를 직원들에게도 권하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업무 이외의 ‘숙제’에 부담을 느끼던 직원들이 지금은 모두 멘토링 데이를 즐기게 됐 다고 한다.

“삼성을 그만두겠다고?”
 그가 하는 일은 기업의 주재원 교육과 글로벌 역량 교육, 이문화 교육 등을 통해 한국 기업들의 세계화(globalization)를 돕는 것이다. 대표이사 가 되기까지 그는처음부터이길을생각한것은아니었다“. 제가교육학 이나 영어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영어 교육 회사를 차릴 생각이 전혀 없었죠.”  대학 졸업 후, 그는 삼성전자에 취직해 3년 정도 근무했다. 당시 그는 영국에 있는 삼성 유럽 본부에 발령이 나서 일하게 됐는데, 이 시기는 그 에게 터닝 포인트나 다름없었다. 그는 영국에 머무르며 유럽으로 나온 한국 기업들을 많이 만났다. 이때 노상충 동문은 한국 기업들이 해외 경 쟁력이 상당히 약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미 세상은 국가 간의 벽이 허 물어져 세계화가 진행되고 있는데, 한국 기업들은 이에 맞춰 따라오지 못했다. 당시 한국이 세계화에 덜 민감할 때라서 그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평소에 꾸준히 독서를 한 덕에 남들보다 앞서 내다 볼줄 아는 혜안을 갖게 된 것이다.
 “분명 한국 기업들의 제품은 훌륭한데, 글로벌 역량이 없었어요. 심각 성을 느끼고 살펴봤더니 우리나라 내에는 기업들의 글로벌 역량을 올려 주는 시스템이 부재하더군요. 영어 공부나 가르치는 학원만 있을 뿐. 그 래서‘아 이거 누군가는 해야겠다. 내가 한 번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시 작한 거예요.”
 남들은 서로 입사하길 원하는‘드림 직장’을 그만두겠다는 그의 결정 에 주변 사람들 모두 반대했다. 결혼도 아직 안 했는데 좋은 직장 놔두고 왜 그만두냐며. 그러나 이런 반대에도 그는 자신의 일에 대한 확신이 있 었기에 흔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그의 회사는 모교가 있는 상도동에서 세 명의 소수의 인원이 시작하게 됐다.

힘들었던 회사의 성장통을 겪으며
 무작정 시작한 회사는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자금이 없어 회사 상황은 열악할 수밖에 없었고, 당연히 첫 수익도 적자였다. 하지만 첫 술 에 배부르랴. 그는 절대 처음 굳혔던 확신을 굽히지 않고 꾸준히 회사 경 영을 해 재정적 어려움을 뛰어넘었다.
 “재정적으로 힘든 시기를 거친 뒤에 부딪히는 문제들은 대부분 사람 과 관련된 것들이에요. 회사 경영을 하다 보면 사람 때문에 가슴이 까맣 게 될 때가 많아요.”그는 특히 회사 초창기 때 함께 커 온 직원들이 이직 을 하거나, 직원들이 성장하지 못하는 모습을 볼 때 가장 힘들었다고 말 한다. 그만큼 그가 직원들을 가족 같이 생각해 왔기 때문에 이 같은 성장 통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직원들에 대한 희망과 신뢰는 이 성장 통의 시기를 잘 이겨 낼 수 있게 도왔다.
 이런 그의 마음은 회사의 분위기에도 반영이 되는 듯했다. 그의 회사 는 일반적인 사내 분위기와 다르게 생기 있고 자유로워 보였다. 작년에 는 대학경영교육학회에서 그의 회사가 좋은 조직 문화와 경영 시스템을 운영한다는 평으로 경영자 대상도 수상했다.

성공적인 교육 수출을 하는 게 최종 목표
 앞으로 그의 목표는 CEO라면 다 그렇듯, 회사를 최고의 위치까지 끌 어올리는 것이다.“교육 시장의 삼성전자가 되는 게 목표예요.”그는 당 당하게포부를밝혔다“. 우리나라는다른분야는다수출하는데,유독교 육만 수출을 잘 못하고 있어요. 교육 연구 질은 높은데 말이죠. 그래서 우 리가 만든 교육 프로그램들을 해외에서도 사용할 수 있게 하고 싶어요.” 이미 그의 회사는 중국에도 법인이 두 곳이나 있다고 한다. 그가 바라는 미래가 그리 멀지 않은 듯하다. 글로벌 교육 기업을 만들겠다는 그를, 그 의 직원이 그려준 것처럼 TIME 잡지에서도 볼 수 있길 바란다.

“후배들아, 들어다오.”  
 “대학생인 여러분은 항상 삶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했으면 좋겠어요. 나중에 사회에 나와서는 그런 질문들을 던질 시간이 없거든요.”그가 동 문으로서 후배들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넸다. 그가 책을 통해 스스로 삶에 대한 질문을 많이 던졌듯, 후배들도 그렇게 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다. 이런 진지한 고민들이 앞으로의 본인 길을 다져주기 때문에 중요하 다고 말한다. 그는 덧붙여 이렇게 말했다. “지금이 정말 중요한 시기라는 걸 깨달았으면 좋겠어요. 대부분 대학 생들이 토익이나 토플 혹은 학점에 매달려 공부만 하는데, 이걸 잠시 내 려놓고 자신의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고, 이를 통해 본인에게 의미 있는 것을 찾아 나서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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