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김연수 저자와의 만남

 

▲ 사진 제공 김유빈(국어국문 ㆍ2) 학생

지난 14일(수),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의 저자 김연수 소설가의 강연회가 베어드홀 102호에서 열렸다. 국어국문학과가 주관하고 현대문학학회가 주최한 이번 강연회는 본래 신간 소개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김연수 소설가의 삶과 철학에 대한 이야기로 강연 시간이 다 채워졌다. 삶의 진지한 성찰을 딱딱하지 않고 진솔하게 풀어내는 그의 이야기 속에 빠져 보자.

저를 작가로 만든 것은 국방부
 나는 1993년에 방위를 갔다. 그 당시 군대에서 방위들을 단속하려고 밤 에 못 나가게 했다. 1년 6개월 동안 매일 저녁 집에 있으니까 할 일이 정말 없었다. 그래서 그 시간에 뭘 쓰기 시 작했다. 처음엔 시를 썼는데 아무리 써 도 시간이 가질 않았다. 그래서 그 다 음엔 소설을 썼다. 방위 때문에 작가가 됐다(웃음). 복학하고 방위 때 썼던 소 설을 1억 원이 상금으로 걸린 문학상 에 보냈다. 물론 안 됐다. 그런데 그 작 품을 보고 어떤 출판사가 책을 내자고 하더라. 24살에 소설가가 된 것이다.
 세상이 난리가 날 줄 알았는데 아무 일도 없었다. 그래서‘그래도 문단은 주목하지 않을까’했는데 나한테 신경 도 안썼다.‘그러면 학교는…’했는데 아무 관심도 없었다. 그렇게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을 때 어느 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자고 했다.‘스포츠서울’ 이었다. 인터뷰 중 방위 얘기가 나왔다. 기자가 되게 좋아하더라. 그래서 방위 생활을 신 나게 이야기했는데 신문이 나오고 보니 기사 타이틀이‘저를 작 가로 만든 것은 국방부입니다’였다 (웃음). 그게 나의 첫 번째 인터뷰다.
 출판과 인터뷰를 제외하면 나의 20 대는 존재감이 거의 미미했다. 글 쓰는 사람들 대부분의 목표는 많은 사람이 내 글을 읽게 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 에서 본다면 아무도 읽지 않을 때 그 글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내가 20 대 때 썼던 글들이 그런 글들이었다. 내가 썼지만 아무도 내가 썼다는 것을 모르는 글들. 그게 제일 힘들었다. 순 정을 다 바쳐서 연애편지를 썼는데 뜯 기지도 않은 채 쓰레기통에 버려진 걸 발견한 느낌? 등단하고 10년은‘거절’ 에 대한 큰 트라우마를 가지고 지냈다.
 보통‘내 글을 읽는 독자가 한 명이 라도 있으면 글을 쓰겠다.’는 말들을 하지 않나. 나는 그게 어려웠다. 결국 나의 존재감에 크게 실망하고 20대 후 반에 잡지사 기자로 취직했다. 취직하 고 10년 정도 기자로 생활하면서 글을 안 쓰고 지냈다.

노력하면 80%는 성공, 그다음은 흥미다
 기자가 되고 일을 굉장히 열심히 했다.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 월급을 주지 않나(웃음). 나 같은 경우 1994년 에 등단해서 등단작을 제외하고 1994 년부터 2000년까지 낸 책이 한 권인데 200만 원을 받았다. 그러다가 잡지사 에 취직하고 월급이라는 놀라운 경험 을 한 것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회의감이 들었다. 돈을 받으면서 하는 일은 야근을 하며 자정을 넘기기도 하는데, 내가 하고 싶 었던 글쓰기에 대해서는 정작 그렇게 노력한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노력하지 않았는데 세상이 그런 나를 알아 주지 않고 내 글을 읽어 주지 않 는다고 탓하는 것은 웃기다고 생각했 다. 이런 생각이 나를 바꾸는 계기가 됐다. 직장을 다니면서 모아둔 돈도 있 었고, 직장에서 일을 얼마만큼의 강도 로 하는 지도 알았으니 그런 강도로 글 을 써 보자고 결심한 것이다.
 직장을 다니는 것처럼 글을 쓰는 건 어려웠지만 이상하게도 점점 재미가 붙었다. 어느 날 밤 문득‘내가 지금 굉 장히 재밌는 일을 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그걸 느낀 이후로 다른 것들 은 큰 문제가 안됐다. 그 정도의 동기 부여가 되는 경험이었다. 그래서 2002 년부터는 쉬지 않고 계속 썼다.
 존재감을 얻는 것은 사회적으로, 직업적으로 참 힘든 것 같다. 나는 성공 을‘등수로 쳐서 1등이면 성공’이라는 관점으로 20대를 보냈던 것 같다. 그런 데 그렇게 생각하고 난 후로는 나는 아 무런 존재감이 없다. 존재감을 느끼지 못하는 게 너무 힘들었는데 글을 쓰면 서 이게 아니라는 경험을 했다. 자기가 정말로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사 실을 깨닫는 게 가장 성공한 삶이 아닐 까 하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대부분 노력해서‘성공’이 라는 정상의 80% 정도까지는 갈 수 있 다고 생각한다. 글에 비유하자면 굉장 히 노력해서 등단을 했다고 치자. 이게 80%를 온 것이다. 그 다음에는 노력해 도 별로 표가 안난다. 주위가 다 등단 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비슷한 수준 에 그 정도 노력은 다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 다음을 재능 있는 사람 이 성공한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그게 아닌 것 같다. 그다음은‘얼마나 이 일 에 대해 만족감을 느끼냐.’의 문제다. ‘얼마나 인내심이 강하냐.’,‘얼마나 성실하냐.’와는 다르다. 결국 노력 후 에는 자기 일을 얼마나 즐기느냐에 달 린 것이다. 성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생각과 감각을 헷갈리지 말자
 우리는‘생각’하거나‘감각’한다. 생각하는 것은 머리로 따져 보는 것이 고, 감각하는 것은 말 그대로 그냥 느 끼는 것이다. 생각은 직업적인 일이나 자기가 몰두하는 일, 논리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만 사용하고, 평상시에 살아갈 때는 감각만 해야 한다. 예를 들어 평소에 상냥하던 친구가 오늘은 인사를 무시하고 갔다. 그렇다면 그냥 ‘갔다’라는 사실만 인식하고‘왜 갈 까’라는 생각을 하지 말라는 거다.
 이걸 반대로 해서 어려움을 겪는 경 우가 많다. 즉 생각해야 되는 일에 감 각하는 식이다. 글을 쓰는 것을 예로 들어 보자. 내가 직접 쓴 글을 다시 고 칠 때 이 일을 감각적으로 받아들인다 면‘아주 형편없다.’‘창피해 죽겠다.’ 이것에 집중해서 결국‘나는 재능이 없다.’‘고치기도 싫다.’는 식의 결론 에 도달하게 된다.
 일상에서 생각을 이용하면 안 되는 또 다른 이유는 생각의 대부분은 현실 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다른 경우가 많 기 때문이다. 일이 일어났던 순간에 든 생각은 틀린 경우가 많기 때문에 생각 을 사용하지 말라는 거다.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로 그냥 두는 게 상처 없이 살아가는 방법이다. 고민이 있을 때도 ‘이 고민의 강도가 나를 이만큼 아프 게 한다.’이 정도만 감각해라. 고민을 가지고 논리적으로 생각해서 이 고민 이 어떤 식으로 전개가 돼서 어떤 사태 로 귀결될 것인가를 생각하는건 고통을 떠안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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