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가져야 할 양심

 

믿고 먹을 것이 없다. 최근 소비자들의 입에서 연신 터져나오는 한탄이다. 광동제약 옥수수수염차에서는 중금속이 발견됐다더니, 국민과자 새우깡은 ‘쥐우깡’으로 둔갑했다. 지난달 19일 충북 청원의 소비자는 “노래방 새우깡에서 1.6㎝ 크기에 털이 붙어 있는 이물질이 나왔다”는 제보를 했으나 농심은 여기에 대해 은폐하기에만 급급할 뿐 근본적 대책을 펼치려 하지 않았다. 문제는 이러한 문제가 농심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소비자연맹이 안전위생관련 상담 1980건을 세분화한 결과, 이물질이 나온 경우가 1071건으로 54.1%를 차지했다. 다음으로 유통기한 문의 315건(15.9%), 부작용 290건(14.6%), 변질 241건(12.2%), 기타 63건(3.2%)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기업은 그러한 사고에 대해 유야무야로 대처해왔다. 농심의 이번 사고는 그러한 모습들의 한 단면이다.



발견은 ‘우연’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농심’에 와서 사람들은 크게 분노하는 것일까. 농심은 우리나라 라면 시장의 80%를 차지하는 대규모회사다. 그만큼 사람들이 믿고 먹던 회사였기에 배신감도 더욱 컸다. 특히 이번에 문제가 생긴 새우깡은 1971년 출시 이후 57억 봉지가 팔린 '국민 과자'다. 물론 ‘규모가 크다보니 어쩌다 한 번 일어난 일 아니겠느냐’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소비자연맹에 따르면, 지난 2007년 8월부터 2008년 1월까지 6개월간 가공식품관련 안전위생 고발상담 1980건 중 이물질 신고 1071건을 분석한 결과, 농심에서 제조한 가공식품에서 총 58건의 이물질이 신고됐다고 한다. 이는 유통, 식음료업계를 통틀어 가장 많은 수치였다. 그리 보면 이번 발견은 결코 ‘어쩌다’ 일어난 일이 되지 못한다. 문제는 ‘쥐우깡’ 사건이 있기 전에는 이러한 내용들이 거의 이슈화되지 않았다는데 있다. 얼마나 농심이 사건 덮기에 급급한 태도로 문제를 대처해왔는지를 알 수 있다. ‘소비자의 사랑’으로 커 왔다고 할 수 있는 농심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소비자가 뿔났다


18일 식품의약품안전청에 따르면, 농심의 노래방 새우깡 제품에 쥐머리 형태 이물질이 들어있다는 신고가 접수된 것은 지난달 18일이다. 농심은 그러나 신고를 받은 뒤에도 적극적인 조사나 제품 리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제품수거가 가능한지 여부도 신고접수한지 무려 1주일이나 지나서야 확인했으며, 그 이후에도 회수 등 적극적인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은 것이 밝혀진 이후 소비자들은 농심의 횡포에 분노하며 불매운동 발언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그와 같은 분위기에 편승해 대형 마트들은 문제가 발생한 ‘노래방 새우깡’뿐 아니라 일반 새우깡까지도 매대에서 ‘퇴출’시키고 있다.

▲ 참치캔에서 나온 커터칼날. 이에 동원은 절대 들어 갈 수 없는 일이라고 발표했지만 바로 다음 날 '공정과정에서 일어난 일' 이라고 밝혔다.

▲ 새우깡에서 나온 1.6cm 크기의 이물질.

 

 

 

 

 

 

 

 

 

 


문제는 ‘뻔뻔함’


식약청이 "쥐머리 추정 이물질이 발견됐다"고 17일 공식발표를 하고 나서야 농심은 18일 오전에 보도자료를 통해 '노래방 새우깡' 제품 회수 및 생산 전면 중단을 발표했지만 이미 한달간 소비자들은 '죽은 쥐 새우깡'을 소비해온 뒤였다. 진정 소비자를 생각하는 회사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생쥐머리 새우깡을 모른 척하고 계속 팔았다는 것은 소비자 건강을 전혀 생각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바른 대응자세만 보였더라도 현재와 같은 격렬한 반응은 없었을 것이다.


‘불량’으로 잡고 ‘불량’으로 잡히고


농심은 라면의 종가였던 삼양식품이 우지파동으로 파문에 휩싸이자 신라면을 앞세워 라면시장을 적극 공략해 1위 자리를 차지하는 등, 그동안 식품 안전성을 내세운 홍보전략으로 오늘의 위치에 올랐다. 하지만 당시 소 부산물을 재가공해 만들어낸 우지는 국내 식품위생법상 합법적이었다. 삼양과 삼립, 오뚜기 등은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서 소위 말하는 '공업용 우지'를 식품 가공에 사용하고 있었다. 그리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사실이었다는 거다. 그러나 갑자기 검찰은 공업용 우지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고 언론에서는 연일 공업용 우지에 대한 선정적인 기사를 내보냈다. 삼양식품은 당시 우지 파동으로 수백만 개의 라면을 반품받았고 정말로 삼양라면이 단 한 개도 팔리지 않는 일까지 겪었다고 한다. 법정에서 삼양식품에 추징하려고 한 벌금은 무려 3700억원에 달했으니, 이 정도면 기업을 통째로 넘기라는 소리나 다름 없다. 지금이라면 인터넷을 통한 여론 형성이 이루어져 허무하게 망하지는 않았겠지만 튼튼한 우량기업 삼양식품은 그렇게 무너지고 말았다.


그 사이 농심은 아시안 게임, 올림픽을 후원하며 승승장구, 업계 1위로 전국 라면 시장의 60%를 잠식했다. 그러나 '죽은 쥐 새우깡'이란 어이없는 사고를 터트리고도 이를 은폐하려다가 절체절명의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 ‘안전성’으로 오른 1위가 ‘안전성’으로 흔들리는 셈이다.


식품회사들은 어디로 갈까


최근 중국산 제품들의 문제가 속속 드러나며 소비자들의 ‘메이드 인 차이나’에 대한 불신은 극에 달한 상태다. 이는 이번 ‘쥐우깡’ 사건으로 보다 구체화됐다. 그러나 인건비 등의 기타 제반상황을 고려할 때 농심을 비롯한 식품회사들이 당장 중국에서 나올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식품회사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갈래다. 하나는 일본 빈고쓰케모노사의 김치공장의 사례로, 그곳에서는 중국 채소 농가의 토양성분과 중금속을 검사하는 직원만 150명을 고용하고 있다. 반면 일본 최대 육가공업체로 시장점유율이 86%나 됐던 유키지루시는 수입 쇠고기를 국산으로 속였다가 소비자 분노에 부딪혀 한 달 만에 파산했다. 소비자들은 ‘먹는 것’에 한참 예민해져 있다. 식품회사들은 어느 길을 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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